사름벼리 신발끈 묶었으니



  신발끈이 풀렸단다. 허리만 폭 숙여서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사름벼리는 혼자 신발끈을 잘 묶는다. 훨씬 어릴 적부터 혼자 끈을 묶고 풀면서 놀았으니까. 곧 신발끈을 다 묶은 사름벼리는 “자, 가 볼까!” 하면서 다시 달린다. 누나한테 돌아와서 신발끈 묶기를 구경하던 산들보라도 누나와 함께 “가자!” 하고 외친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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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놀이 7 - 배 만들었어



  우리 놀이돌이가 배를 만들었다. “아버지, 내가 배 만들었어. 어서 와 봐.” 하고 부른다. “어때, 예쁘지?” 하고 덧붙인다. 작은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어서 아침저녁으로 배를 만들고, 이 배를 다시 풀어서 새로운 배로 만든다. 흩어진 조각은 아이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맞출 수 있다. 무엇이든 손끝에서 태어난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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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자는 동안 영화를



  다른 세 식구가 자는 동안 영화를 본다. 나중에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본다. 내가 고른 영화는 〈늑대와 함께 춤을〉이다. 이 영화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해에 나왔는데, 그해에는 이 영화를 못 보았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중학교를 다닐 적에도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있었으니 극장에 갈 겨를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주말이나 휴일조차 없었기에, ‘학교 바깥’에서 이 영화를 놓고 수많은 말이 많았어도, 어찌 볼 틈이 없었다. 올해가 2015년이니 스물다섯 해가 지난 뒤에야 이 영화를 본다. 나는 지난 스물다섯 해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우리 사회는 지난 스물다섯 해 동안 어떻게 흘렀을까. 〈늑대와 함께 춤을〉은 어린 두 아이하고 보기에는 아직 쉽지 않은 영화로구나 싶은데, 두 아이가 더 자라면 이 영화를 볼 수 있겠지.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가만히 구름과 하늘과 들이 어우러지는 빛깔을 헤아려 본다. 4348.3.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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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야마자키 마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6



함께 먹는 밥 한 그릇

― 식사는 하셨어요?

 야마자키 마리 글·그림

 정은서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9.6.



  아이들과 밥을 먹다 보면, 아이들이 얌전히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보기 참 어렵습니다. 참말 그렇게 몸이 근질근질한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곧바로 내 어릴 적을 돌아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어떠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만, 막상 나도 이 아이들만 한 나이에는 밥상맡에서 온몸이 근질거려서 밖에 나가서 뛰놀고 싶지 않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주 배가 고팠으면 밥술을 뜨느라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참말 아주 빠르게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런데 제법 배가 고프더라도 밥술만 마냥 뜨지 않습니다. 몇 숟갈 먹고 나서 숨을 돌리면, 아 조금 놀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나무라지요. 밥을 다 먹고 놀라면서 나무랍니다. 그러면 다시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지만, 이내 고개를 살며시 들고 놀이를 찾습니다. 이러다가 또 꾸지람을 듣고, 또 놀려 하고, 또 꾸지람을 듣고 …….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밥상을 치우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밥에 마음을 못 쓴 탓이라고 할 텐데, 더 생각해 보니, 나부터 어릴 적에 ‘꼼짝없이 밥상맡에 앉아서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던 일’이 아주 힘들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다가 먹다가 다시 놀다가 먹도록 두는구나 싶습니다.



- ‘몰랐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케첩이 들어가면 요리로 쳐주지도 않는구나. 속는 셈치고 일단 먹어 봐.’ (7쪽)

- ‘이탈리아에서는 ‘쌀’로 만든 도시락이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인 모양이다.’ (19쪽)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습니다. 반가운 이와 함께 있으면, 밥을 함께 먹으면서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그저 한자리에 있기만 하면서 즐겁습니다.


  그런데, 안 반가운 이하고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어도 몸이 고단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이하고 밥을 먹는 자리에 있으면, 그야말로 몸둘 바를 모릅니다. 한입으로는 밥을 먹지만 제대로 씹는지 삼키는지 잘 모릅니다.


  밥상맡에서 으레 생각에 잠깁니다. 왜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고 안 나누어도 즐거울까요? 왜 안 반가운 이와 있을 적에는 이야기를 안 나누면 답답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답답할까요?



- ‘포르치니가 입에 들어 있는 동안이라면 아마 어떤 악담이나 욕설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늙어서 다 죽어 가면 포르치니를 입 안에 집어넣어! 알았지?” “뭣? 싫어, 진짜 싫어! 쪽팔려서 싫어!” (42∼43쪽)

- ‘하우스메이트였던 비슷한 처지의 고학생들과 주머니를 탈탈 털고, 아이디어를 긁어모아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장담했던 대로 티나는 초라한 재료만 가지고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빈궁한 이탈리아의 식생활에 익숙해지고 10년이 지나 오랜만에 일본에 귀국해 보니(1995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있어서 놀랐다.’ (61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식사는 하셨어요?》(애니북스,2013)를 가만히 읽습니다. 그린이가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그림을 한창 배우던 무렵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살짝 우스꽝스레 보여주는 만화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살림돈이 죄 바닥이 나서 쫄쫄 굶어야 했을 적에 더없이 고단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이 만화책으로만 본다면, 고단하고 힘들면서도 서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구나 싶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눈다고 할까요. 없는 돈으로도 함께 누릴 밥을 짓고,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이 먹을 밥을 푸짐하게 짓는 길을 자꾸자꾸 생각한다고 할까요.



- ‘《맨발의 겐》의 비참한 내용에 전율하면서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겐과 똑같은 공복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겐과 똑같은 음식이 먹고 싶어. 얼마 안 되는 쌀을 병에 넣고 몽둥이로 빻은 후, 거의 맹물이나 다름없는 죽을 쑨다.’ “아아, 끝내준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극을 받는 건 검소하고 소박한 것들뿐이네. 참으로 신기한 심리다. 호화로운 요리보다 절박한 상황 속의 검소한 요리.’ (70쪽)





  야마자키 마리 님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그림을 배웠을까 안 배웠을까 궁금합니다. 가난하지 않았어도 그림을 배웠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것 하나 없이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만화를 그렸다면, 이녁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를 그렸을까 궁금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열일곱 살 나이에 혼자 이탈리아로 떠나서 그림을 배우겠다고 하는 아이를 둔 이녁 어버이부터 재미있고 대단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조차 안 마친 나이인데, 이러한 나이에 먼 나라로 열 해 동안 배움마실을 혼자 떠나도록 할 만한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야마자키 마리 님은 이녁이 겪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데, 이녁 어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화로 그려 보아도 무척 재미있으면서 남다르리라 느낍니다. 어떻게 배움마실을 떠날 수 있었고, 어떻게 열네 살에 혼자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며, 어릴 적에는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물려받으면서 삶을 지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려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진작 나왔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 “이거든 저거든 다 똑같은 쌀 아닌가?” “당신은 몰라.” “내는 안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도 자료가 생명인걸! 말해두겠는데, 우리 집도 재료를 까다롭게 따져 가며 먹는다구! 우리 밭만 봐도 알 수 있잖아?” (86쪽)

- ‘리오에서 현지 친구와 합류 … 브라질 여성은 몸매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리고선 끝이 안 보이는 리오의 해안을 몇 km나 파워 워킹 … 그 후 우리는 슈하스코라는 브라질식 스테이크 식당으로 연행되었다 … 슈하스코 다음엔 삼바 그룹의 콘서트로 연행되었다. 2시간 내내 춤 췄을 무렵, 친구가 드디어 복통과 피로로 쓰러졌다. 이런 스케줄이 열흘이나 계속된 덕분에, 코끼리처럼 먹고 마셨어도 내 체중은 확 줄어든 것이었다.’ (123∼125쪽)




  배가 부르게 먹든 배를 곯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엄청난 밥을 먹든 꾀죄죄한 밥을 먹든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함께 누리는 밥이 즐겁습니다. 함께 지어서 함께 차리고 함께 즐긴 뒤에 함께 치우는 밥상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요리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으리으리한 식당이나 레스토랑이나 호텔에 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류 요리사한테서 대접을 받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담은 밥을 즐기면 되고, 우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밥을 먹으면 됩니다.


  물 한 잔을 마셔도 웃으면서 마시면 내 몸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습니다. 밥 한 술을 떠도 웃으면서 먹으면 내 마음에 새로운 사랑이 솟아납니다.


  비싼 밥이 아닌 따스한 밥이 고맙습니다. 멋진 밥이 아니어도 넉넉한 손길로 나누어 주는 밥 한 술이 반갑습니다. ‘밥은 먹었니?’ 하고 건네는 말 한 마디에는 언제나 깊고 너른 사랑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밥부터 먹고 하자.’ 하고 들려주는 말 한 마디에는 늘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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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드는 어린이



  한국말에서 ‘철’이 든다는 말은, ‘홀로서기’를 한다는 뜻이면서 ‘제금을 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철이 들 무렵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요, 따로 살림이 나서 스스로 하루를 일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철이 든 사람은 내 손으로 삶을 짓습니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내 손으로 삶을 짓지 못합니다. 나이가 많이 차기에 철이 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만한 슬기와 마음과 몸이 될 때에 철이 듭니다.


  옛이야기를 가만히 살피면, 어느 이야기이든 반드시 ‘철 들 무렵 아이’가 나옵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어른이라면, 이 어른은 ‘철이 아직 들지 않았으나 곧 철이 들려고 하는 어른’이기 일쑤입니다. 그러니까, 옛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사람은 ‘철이 언제 어떻게 드는가’ 하는 실타래를 천천히 풀면서,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삶을 물려주거나 가르치려 했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문학을 보면 ‘철 들 무렵 아이’나 ‘철이 드는 어른’은 거의 안 나옵니다. 그냥 ‘철없는 아이’나 ‘철없는 어른’이 잔뜩 나옵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문학에 담는 흐름이 거의 끊깁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놀라우면서 새롭게 문학으로 빚어서 나누는 흐름도 거의 끊깁니다.


  문학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문학은 왜 빚어서 나눌까요.


  문학은 심심풀이로 그칠 수 없습니다. 문학은 고전이나 명작이 아닙니다. 문학은 언제나 ‘삶이야기’요, ‘삶이야기’란 어른이든 아이이든 철이 제대로 들면서 사람다운 구실을 하도록 이끌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즐겁게 하루를 짓도록 이끄는 사랑노래입니다. 우리는 모두 철이 제대로 드는 어른이 되면서, 씩씩한 사람이 되어야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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