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펴는 동백꽃송이



  동백꽃은 봉오리가 무척 단단하고 제법 크다. 단단하고 큰 봉오리인 만큼, 봉오리를 터뜨릴 적에 무척 크면서 소담스러운 꽃송이가 된다. 한 송이씩 벌어지고, 위쪽부터 차츰차츰 터진다. 날마다 더 따뜻하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면서 붉은 꽃잎으로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꽃무늬를 입힌다. 한 송이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내 모든 봉오리가 터지면 그야말로 가슴이 벌렁벌렁 뛸 만하다.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가득해지는 봄꽃잔치를 베풀어 준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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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3-23 14:10   좋아요 0 | URL
꽃을 보면 사람의 생각을 알 수있다
큰것과 작은것이아닌..
꽃의 향기

파란놀 2015-03-23 15:31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꽃내음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이
오직 그 결대로 꽃내음만 있어요.

이 어여쁜 동백꽃이 내뿜는 멋진 냄새가
온 집안과 마당을 감싸면서 하루 내내 즐거워요.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15-03-23 16:44   좋아요 0 | URL
네 모두가 즐겁게 생활 하는 곳이 참아름답죠

파란놀 2015-03-23 23:06   좋아요 0 | URL
skysoo17님도 날마다 즐거움 넘치는 아름다운 하루 누리셔요~
 

다시 새롭게 고쳐쓰는 글



  지난해에 마무리지은 글꾸러미를 이달 첫머리에 모조리 고쳐썼는데, 지난 이레에 걸쳐 다시 새롭게 몽땅 고쳐썼다. 마무리를 지었다고 여긴 글꾸러미를 모조리 고쳐쓰면서 눈알이 핑핑 돌았지만, 글손질을 하는 동안 즐거웠다. 이렇게 모조리 고쳐쓴 글꾸러미를 새삼스레 몽땅 고쳐써야 하다 보니 이제는 눈알이 빙글빙글 돌던데, 지난 이레 동안 참으로 신나게 글손질을 했다.


  두 차례 크게 고쳐쓰기를 했는데, 한 번 더 고쳐쓰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교정과 교열만 보면 될까? 책 한 권이 태어나기까지 글쓴이(작가)와 펴낸이(출판사)가 얼마나 돌려읽기를 하면서 어느 만큼 고쳐쓰기를 하는지 읽는이(독자)는 잘 모르리라 본다. 다만, 빗대어 어림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차례상을 올리는데, 글종이(지방)를 새롭게 붙인다고 해서 차례상을 몽땅 새로 올리는 셈이다. 3대에 이르는 차례를 지낸다면 차례상을 세 차례 모조리 새로 올리도록 하던 옛날 양반님들 상차림처럼 글꾸러미를 고쳐쓴 셈이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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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만족’ 문학



  어린이문학은 어른이 아이한테 베푸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을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이 글이 어른이 아이한테 선물처럼 건네기도 하는 문학이라 여길 수 있지만,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누리는 문학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문학이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한테 베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아이와 어른이 사람으로서 삶을 함께 누리려는 길을 찾는 문학입니다. 이리하여, 어린이문학은 늘 사랑을 다룹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마주하면서 바라볼 수 있기에 비로소 삶을 함께 지으면서 누리는 길을 찾습니다. 둘(아이와 어른)이면서 하나(사람)인 서로가 삶으로 함께 나아가기에 이 자리에서 사랑이 태어나고, 이러한 얼거리가 곱게 흐르는 숨결을 다루는 어린이문학은 늘 꿈으로 뻗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스스로 하고픈 일과 놀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른은 다른 어른(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만 해서는 삶을 짓지 못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준 장난감을 받아서 손에 쥐어야 놀이를 하기만 해서는 삶을 짓지 못해요.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스스로 일을 슬기롭게 찾아야 삶을 짓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놀잇감을 꾸미고 가꾸어서 신나게 놀아야 삶을 짓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대리만족’을 하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이 어릴 적에 누리지 못한 이야기를 담는 문학이 아니고, 어른이 아이 눈높이가 되어서 쓰는 문학이 아닙니다. 어른이 저마다 어릴 적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고 되새기거나 떠올리면서 쓰는 문학으로는 어린이문학이 나오지 못합니다. ‘아이 눈높이가 되어’서 쓰는 문학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쓰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쓰되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쓰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아이 눈높이’를 맞춘다면서 어설프게 쓰기에 ‘어설픈(유치하거나 치졸한)’ 글이 자꾸 나옵니다. ‘어른으로서 제 삶을 짓지 못한 채’ 글을 쓰기에, 글감(소재)과 이야기(주제)를 학교생활이나 집안생활을 건드리는듯이 ‘생활동화’를 쓴다고 하지만, 막상 아이들한테 아무런 꿈이나 사랑을 못 심는 글이 거듭 나옵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어른이 씁니다. 이 대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습니다. 이 대목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선물처럼 주거나 아이들한테 베푼다고 하는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지도 않’습니다. 삶이나 사랑이나 꿈은 ‘좋고 나쁨’으로 가르거나 나타내지 못합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이 되어야 그릴 수 있고, 꿈은 오로지 꿈이 되어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삶을 써서 아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면, 온통 삶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꽃송이가 되는 넋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대리만족’이 아닌 ‘삶·사랑·꿈’을 함께 심어서 함께 가꾸고 함께 누리려는 넋일 때에 비로소 어린이문학을 쓰는 사람(작가)으로 설 수 있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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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는 글쓰기



  글쓰기를 배우려고 대학교에 가는 사람이 퍽 많다. 가만히 보면, 대학교에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다. 요즈음은 대학교 학과 이름을 바꾸어서 쓰기도 한다는데,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못 가르칠 까닭은 없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글쓰기를 못 가르칠 까닭이 없다. 여느 강의나 강좌에서도 글쓰기를 못 가르칠 까닭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글쓰기를 배우려 한다면, 대학교에 갈 수도 있고,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도 있으며, 여느 강의나 강좌를 들을 수도 있다.


  대학교에 가서 글쓰기를 배워야 할까? 꼭 대학교에 가야 글쓰기를 깊거나 넓게 배울 수 있을까? 아니다. 대학교에 가서 좋은 대목이라면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다는 대목일 테지. 그리고, 그 대학교를 나온 ‘선배 작가’와 줄이 닿을 수 있다는 대목일 테지.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대학교에 갈 일이 아니다. 글을 써야 한다. 대학교에 가고 싶다면, 대학교에 갈 일이다. 글을 쓸 일이 아니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내 삶을 쓰는 일이다. 글에 무엇을 담겠는가? 바로 내 이야기를 담는다. 내 이웃이나 동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쓰더라도 언제나 ‘내 눈길’로 쓰고 ‘내가 겪은’ 만큼 쓰며 ‘내가 아는’ 대로 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언제나 ‘내가 쓰니’까 ‘내 이야기’요 ‘내 삶’이다.


  아이들이 읽을 책을 쓰려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내 이야기’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싣는 글도 ‘보도 기사’가 아니라 ‘내가 두 다리로 이 땅을 밟으면서 겪은 이야기’이다.


  글을 쓰려 하든 다른 일을 하려 하든, 나는 먼저 내 모습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내 글을 쓸 수 있다. 대학교에 다니거나 대학교에 가려고 하는 사람한테 들려줄 수 있는 말은 늘 하나이다. 졸업장을 거머쥐고 싶으면 대학교를 즐겁게 마치고, 글을 쓰고 싶으면 대학교를 그만두라고.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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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03] 집에서 나오다



  집에서 나와야

  집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삶



  집을 나오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옛집에서 나와 새집으로 갑니다. 처음 태어난 자리에서 새로 나아갈 자리를 살핍니다. 처음 받은 사랑을 새롭게 키우려고 씩씩하게 한 걸음 내딛습니다. 나는 어느 한 집에서만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떠돌아다닐 까닭은 없습니다. 내가 처음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도 되고, 어느 다른 곳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일구어도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삶’을 지으려고 ‘내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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