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2.20. 큰아이―높다란 우리 집


  그림순이더러 ‘사름벼리가 살고 싶은 집’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이야기한다. 사름벼리는 층층이 포갠 집을 그린다. 층마다 다른 살림이 있고, 층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집이다. 우리 자동차도 하나 그리고, 새와 나비가 찾아와서 날아다니는 터전을 그린다. 꽃이 피어 나비가 새롭게 찾아들고, 하늘에 구름과 별이 가득하며, 해도 함께 웃는다. 예쁜 집이로구나.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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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날리기 놀이 2 - 그림자도 달린다



  천날리기를 잇달아 한다. 놀이순이는 놀이돌이한테 펄럭이는 천 끝자락을 따라서 잘 좇으라고 말한다. 천을 휘 쳐드니 바람을 타면서 나풀거리고, 두 아이와 천은 저마다 예쁜 그림자를 마당에 새기면서 웃음소리를 터뜨린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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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날리기 놀이 1 - 나를 잡아라


  어머니 옷가지를 마당에 너는데, 놀이순이가 스카프라고 할 만한 얇은 천을 두 손으로 끝자락을 쥐고는 뒷걸음으로 달린다. 바람 따라 천이 나풀나풀 날린다. 몹시 재미있어 한다. 놀이돌이는 누나를 좇으며 잡는다고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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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곯아떨어지기


  엊저녁에 할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까지 곯아떨어진다. 밤새 여러 가지 꿈이 찾아온다. 이 꿈 저 꿈 곰곰이 헤아리는데, 어느 꿈에서고 나는 길을 몰라 뚜벅뚜벅 헤맨다. 마지막 꿈에서는 함께 길을 걷던 사람을 등에 업고 짐은 두 손에 든 채 한참 길을 헤맨다. 나는 왜 스스로 고단하게 지낼까. 나는 왜 스스로 힘겹게 짐을 짊어질까. 기쁘게 짓는 웃음으로 춤을 추는 삶으로는 왜 나아가지 않을까. 꿈에서 깨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등떼기를 바닥에 붙이려고 하니 등떼기를 바닥에서 뗄 수 없구나. 일어나면서 웃으려고 생각해야지 일어날 수 있구나. 이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미고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몸은 멀쩡하다. 잘 쉬고 잘 잤다. 새벽 세 시가 조금 넘는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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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56. 한자말은 영어처럼 외국말

― 한국말, 우리말, 토박이말, 시골말, 숲말



  ‘한자’로 지은 말을 제대로 살필 줄 아는 학자가 무척 드뭅니다. ‘알파벳’으로 지은 말은 으레 ‘외국말’인 줄 알면서, 막상 ‘한자’로 지은 말이 ‘외국말’인 줄 제대로 느끼거나 바라보는 지식인이 아주 드뭅니다.


  오늘날 한국을 보면, 한자로 지은 말이 퍽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사람이 여느 때에 늘 쓰는 말 가운데 ‘한자로 지은 말’은 얼마 안 됩니다.


  한국말사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일본사람이 지은 일본말사전을 베낀 탓에, 일본에서나 쓰던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아직 꽤 많이 나돕니다. 한국사람이 쓴 일도 쓸 일도 없는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뜬금없이 실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조선 무렵에 정치권력자가 쓰던 ‘궁중 한자말’이 한국말사전에 지나치게 많이 실렸습니다.


  우리는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 무렵에 정치권력을 거머쥔 사람은 ‘인구 통계로 치면 몇 퍼센트’가 될까요? 1퍼센트는커녕 0.1퍼센트도 안 됩니다. 조선 무렵에 ‘중국글로 쓴 책’을 익히면서 지식인 노릇을 한 사람도 ‘인구 통계로 치면 0.1퍼센트는커녕 0.01퍼센트’조차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중국글로 쓴 책’에 적힌 한자말이 그대로 나오고, ‘궁중 한자말’도 고스란히 나와요. 이와 달리, 조선 무렵에 이 땅에서 99.9퍼센트나 99.99퍼센트에 이르던 여느 사람이 쓰던 말은 모두 실리지 않습니다. 고장마다 다르게 쓰던 고장말을 한국말사전에 제대로 담지 않아요. 시골마다 다르게 살려서 쓰던 시골말을 한국말사전에 알차게 싣지 못합니다.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토박이말’은 한국사람이 예부터 손수 지어서 쓰는 말입니다. ‘우리말’은 ‘토박이말’이나 ‘한국말’을 가리키기도 하고, 둘을 아우르기도 하는 이름입니다. ‘표준말’은 현대 사회나 정치나 문화를 펴면서 나라에서 한 가지 틀로 세운 말입니다. ‘시골말’은 손수 흙을 가꾸면서 삶을 스스로 짓는 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한자말’은 한자로 지은 말입니다. 그러면, 한자말은 어디에 들어갈 만할까요? 한자말은 어디에도 들어갈 만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은 한국말도 토박이말도 우리말도 표준말도 시골말도 아닙니다. 한자말은 그저 ‘한자말’입니다. 알파벳으로 지은 ‘영어’는 어떠할까요? 영어도 한국말이 아니고 토박이말이 아니며 우리말이나 표준말이나 시골말이 아닙니다. 영어도 그저 ‘영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자말과 영어는 모두 ‘외국말’입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외국)’에서 쓰는 말이 바로 한자말과 영어입니다.


  조선 무렵 궁중에서 한자말을 썼습니다. 그러면, 궁중에서는 왜 한자말을 썼을까요? 중국 정치를 섬기려는 뜻에서 한자말을 썼고, 조선 무렵 궁중에서는 ‘중국 한자말’을 썼습니다. 궁중에서 쓰던 ‘중국 한자말’을 한국 지식인도 받아들여서 썼습니다. 이들은 ‘중국 한자말’로 정치를 하고 사회를 지키며 문화를 폈습니다. 이들은 손수 흙을 가꾸면서 삶을 짓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느 사람(백성,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삶을 지으면서 ‘풀’이나 ‘나무’나 ‘숲’을 가꿀 적에, 궁중 권력자나 지식인은 ‘草’라든지 ‘木’이라든지 ‘林’ 같은 한자를 썼습니다.


  조선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 힘에 무너지면서 일제강점기가 되니, 이때부터 ‘중국 한자말’이 차츰 밀려나면서 ‘일본 한자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고, ‘일본말’까지 뒤따라 들어옵니다. 조선 사회는 마흔 해 가까이 식민지가 되어 짓눌려야 했는데, 식민지에서 풀려난 뒤에 ‘일본 제국주의 부역자’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을 익히면서 공무원이 되거나 지식인 노릇을 하던 이들은 예전과 똑같이 ‘일본 한자말·일본말’로 글을 쓰거나 신문을 내거나 책을 묶었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에서 ‘한국’으로 이름을 바꾼 이 사회에는 ‘중국 한자말’에다가 ‘일본 한자말’이 두루 퍼집니다. 정치권력자와 지식인은 ‘여느 시골사람이 쓰는 말’은 조금도 안 쓰면서 ‘권력자가 쓰는 한자’로 생각을 펴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조선 무렵뿐 아니라 고려 무렵도 똑같습니다만,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우리말’이라고 할 ‘한국말’을 살피거나 가꾸거나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언제나 ‘다른 나라 말(외국말)’인 한자말을 썼고, 이 한자말은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뜻이 같으나, 다르게 쓰는 한자말’이 몹시 많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궁중 사회와 지식 사회는 이웃 두 나라 정치권력을 섬기던 버릇으로 ‘다른 나라 말(외국말)’로 정치·경제·학문·문화·문학 따위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해방 뒤에 미군정을 거쳤고, 미국 사회와 문화 물결이 다시금 스며듭니다.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그만 ‘중국 한자말 + 일본 한자말 + 미국말(영어)’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다가 한국에서 정치와 지식을 거머쥔 이들이 ‘한국 한자말’을 새로 지어서 씁니다. 한국말이 아닌 외국말인 ‘한자말’인데, 한국에서 쓰는 한자말은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한국 한자말’ 이렇게 세 가지로 더 가지를 칩니다.


  여느 사람도 쓸 만한 한자말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도 쓸 만한 영어가 있으니, 외국말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느 사람이 쉽게 쓰는 수수한 한자말은 ‘외국말’에서 ‘들온말(외래어)’로 자리를 바꾸면서 ‘한국말’ 품으로 녹아듭니다. 외국말이기에 모두 손사래를 쳐야 하지 않습니다. ‘버스’나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외국말을 받아들여서 쓰듯이 ‘학교’나 ‘교과서’나 ‘사회’ 같은 외국말(한자말)도 받아들여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외국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사람으로서 스스로 우리가 쓸 말을 손수 짓는 넋을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외국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여서 아무렇게나 쓰는 삶이 아니라, 손수 한국말(우리말)을 새롭게 짓는 슬기로운 마음이 될 수 있어야지요. 오늘 우리가 한국말(우리말)을 새롭게 짓는다면, 이 말은 ‘숲말’입니다.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면서 스스로 우거지는 숲처럼, 우리 삶과 사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바탕이 되는 말이라는 뜻에서 ‘숲말’입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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