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5.3.7. 큰아이―쓰고 쓸수록



  글씨는 쓰면 쓸수록 는다. 말도 하면 할수록 는다. 흙도 가꾸면 가꿀수록 기름지고 싱그럽게 가꿀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삶은 스스로 하면 할수록 아름답게 북돋운다. 글순이가 공책에 또박또박 정갈하게 빚은 글씨를 바라본다. 이 얼마나 놀라운 숨결인가.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쓰고 또 쓰고 다시 쓰고 거듭 쓰면서 손아귀힘을 기를 테지. 저마다 아름다운 몸짓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빚을 테지. 아이 글씨가 자라는 만큼, 어버이도 글씨를 한결 똑똑히 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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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네버랜드 클래식 13
케니스 그레이엄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88



‘영국 고전’을 굳이 읽혀야 한다면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케네스 그레이엄 글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3.5.5.



  ‘영국 고전 동화(명작)’라고 하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시공주니어,2003)을 읽습니다. 영국에서는 어떤 동화를 놓고 이렇게 침이 마르고 닳도록 부추기는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보면 앞뒤로 수많은 칭찬과 추천글이 실립니다. 그만큼 대단하니까 갖가지 칭찬과 추천글을 붙이는구나 싶으면서도,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그 같은 칭찬과 추천글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책이건 칭찬과 추천을 못 받을 만한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 “난 강 옆에서, 강과 함께, 강 위에서, 강 속에서 살아. 나한테 강은 형이자 누이이자 숙모이자 친구이자 음식이고, 술이자 목욕탕이기도 해. 강이 내 세상이고, 다른 건 하나도 필요 없어. 강이 갖고 있지 않은 건 가질 필요도 없고, 강이 모르는 건 알 필요도 없어.” … “세상에, 붉은 태양이 떠올라서 까만 나무줄기를 비추는데, 그 눈길을 걸어오는 기분이라니! 고요한 길을 따라서 걸어오는데, 이따금 눈덩이들이 미끄러져 내리면서 가지가 뚝 부러지는 거야. 그러면 펄쩍 뛰어 숨을 곳을 찾게 되지.” ..  (20, 96쪽)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손에 집을 적에, 미국에서 ‘고전 동화(명작)’라고 손꼽는 《초원의 집》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초원의 집》처럼 시골살이나 숲살이 이야기를 알뜰살뜰 담은 책일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책이름부터 ‘버드나무’와 ‘바람’을 밝히니까요.


  그런데, 막상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펼치니, 버드나무 이야기도 없고 바람 이야기도 없습니다. 시골이나 숲이나 삶하고 얽힌 이야기가 하나도 흐르지 않습니다. 영국사람이 현대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누리는가 하는 대목은 나오지만, 이러한 현대문명을 누가 어떻게 손수 짓는가 하는 이야기마저 한 줄로도 안 나옵니다. 책 첫머리에 ‘강’을 노래하는 말마디가 몇 줄 나오기는 하되, 냇물이 어떠한 숨결이고 무늬이고 빛깔이고 냄새인지 같은 이야기는 따로 없습니다. “나한테 강은 형이자 누이이자 숙모이자 친구이자 음식이고, 술이자 목욕탕이기도 해(20쪽).” 같은 이야기가 끝입니다.


  미국에서 고전 동화로 손꼽는 《초원의 집》을 보면, 집을 어떻게 짓고, 밥을 어떻게 지으며, 옷을 어떻게 짓는가 같은 이야기가 아주 꼼꼼하면서 부드럽게 흐릅니다. 우물을 어떻게 파고, 새로운 집으로 떠날 적에 짐을 어떻게 꾸리며, 밥상은 어떻게 차리고, 설거지는 어떻게 하고, 씨앗은 어떻게 심고 …… 같은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맑고 밝게 흐릅니다.


  이와 달리 영국 고전 동화라 하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보면, 온통 ‘소비’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쓰고 저것을 누리고 하는 이야기만 있을 뿐,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지어서 누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참말로 책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 모울이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얘기 들었니? 강마을에선 온통 그 얘기뿐이야. 토드가 오늘 새벽에 기차를 타고 시내에 가서 아주 커다랗고 비싼 자동차를 주문했대.” … “인간들은 늘 어딘가에 도착해서 한동안 머물고, 번창하고, 건물을 짓고는 또 떠나지. 그게 그들이 사는 방식이야 … 인간들이 사라진 건 세찬 바람과 끈질긴 비가 세상을 뒤흔들던 때였어. 몇 년 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렸지. 우리 오소리들도 그 일에 한몫 거들었을지 누가 알겠니? 도시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어.” ..  (60, 102쪽)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보면, 사람 사이에서 온갖 모험을 하는 여러 들짐승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들짐승은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사람과 똑같은 집에서 살며, 사람과 똑같은 밥을 먹습니다. 두꺼비가 살코기를 접시에 담아서 먹습니다. 오소리와 족제비가 술을 마십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에 여러 들짐승을 ‘주인공’처럼 집어넣었지만, 이들 몸짓이나 삶이나 생각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과 겉모습만 사람이 아닌 들짐승으로 다루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짐승’이나 ‘벌레’를 좋아한다고 여겨,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짐승이나 벌레로 꾸몄을 뿐입니다.



.. “저,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아주머니는 세탁 일을 한다고 하셨죠? 바로 그거예요. 나는 보시다시피 기관사예요. 끔찍하게 옷을 더럽히는 직업이죠. 날마다 그렇게 많은 셔츠를 벗어 놓으니 제 아내가 빨래라면 진저리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만약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가서 더러운 셔츠들을 빨아 주신다면, 이 기차에 태워 드리겠어요.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건 아주 특별한 경우니까요.” … 래트는 이렇게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리고 도시락 바구니를 꺼내어 음식을 간단히 챙겼다. 손님의 태생과 입맛을 생각해서 기다란 프랑스 빵 한 덩어리와 마늘 생그리어에서 꺼낸 소시지, 저장해 두었던 치즈 조금 ..  (199∼200, 229쪽)



  영국에서 영국 아이들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신나게 즐기는 일은 그 나라 삶입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한국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즐길 만할까요? 현대문명과 도시문명을 찬양하듯이 그리는 이 작품에서 무슨 ‘자연’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자연 묘사’조차 한 줄로도 안 나오는 작품인데, 이 책에서 어떤 ‘자연 예찬’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해리 포터》를 쓴 사람도 어릴 적에 이 책을 신나게 읽었다고 하는 추천글을 붙이면, 이 책을 한국 아이들도 읽을 만한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아이들한테 선물처럼 물려줄 ‘모험 이야기’는 기껏 ‘마차를 밀어낸 자동차’에 흠뻑 사로잡혀서 고속도로를 아주 거침없이 싱싱 달리는 짓거리일는지요? 시골길에서도 자동차를 마구 달려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처박는 몸짓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모험 이야기’일는지요?



.. 래트는 제비들을 질투하면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이렇게 초라하고 재미없는 마을에 무슨 볼일이 남아서?” 한 제비가 말했다. “때가 되면 또다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싱싱한 풀, 촉촉한 과수원, 따뜻한 날씨, 곤충이 사는 연못, 소가 풀을 뜯고, 건초를 만들고, 죄 없는 이브가 사는 집 주위에 늘어선 농장 들이 우리를 불러대는 소리가 말이야.” …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도저히 입을 다물지 않거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때에는 무서운 배저 아저씨가 와서 잡아갈 거라고만 하면 금세 잠잠해졌다. 비록 남들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배저 아저씨에게 이것은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  (216, 320쪽)



  고전이나 명작을 읽히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고전이나 명작을 읽히는 일이 썩 좋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고전이나 명작을 읽힐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도 읽고 어른들도 읽을 ‘이야기’라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아름다운 삶이 따사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삶을 그리지 않고 툭탁질을 다루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모저모 ‘가르침(교훈)’은 있으리라 느낍니다. 욕심쟁이에다가 수다쟁이에다가 자랑쟁이인 두꺼비를 빗대어 아이들한테 어떤 교훈을 심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교훈 때문에 꼭 이 책을 읽혀야 한다면, 따로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 하지 말고, 어버이 누구나 아이를 곁에 앉히고 먼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내려온 옛이야기 한 토막을 조곤조곤 입으로 들려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꼭 책을 거쳐서 ‘교훈 심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치거나 키울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 책을 쓴 분이 이녁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책이라고 합니다. 많이 아픈 이녁 아이한테 ‘영국 문화’와 ‘영국 사회’와 ‘영국 현대문명’을 알기 쉽도록 풀어서 보여주려고 이러한 책을 썼다고 느낍니다. 몸이 아파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이녁 아이한테 여러모로 생각힘을 북돋우려고 이런 이야기를 쓸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뿐입니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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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마을 딸기꽃



  자전거를 타고 이웃마을을 지나가다가 딸기꽃을 본다. 해마다 맨 먼저 딸기꽃이 피는 곳이라고 느끼는 자리인데, 삼월을 갓 넘길 무렵부터 딸기꽃이 핀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사월 한복판이 되어야 비로소 딸기꽃이 피는데, 볕이 얼마나 잘 드는가에 따라 딸기꽃은 한 달 남짓 사이를 두고 꽃이 터진다. 해마다 이 자리를 지켜보면, 마을 할매가 딸기풀을 신나게 뽑거나 자르시지 싶은데, 딸기넝굴은 씩씩하게 더 뻗는다. 마을 할매도 들딸기인 줄 알 텐데 왜 딸기넝굴은 뽑거나 자를까? 이제 딸기를 훑을 아이들이 없으니 구태여 딸기넝굴이 돌담을 타고 자라도록 할 까닭이 없을는지 모른다. 딸기넝굴 가시에 가끔 긁힐 수 있으니, 이런 아이들은 얼른 뽑거나 잘라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시골마을에 아이와 젊은이가 돌아온다면 딸기풀이 뽑히거나 사라지지 않으리라.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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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밭에 매화꽃잎


  우리 집 매화꽃도 한창인 날을 지나 하나둘 떨어진다. 꽃차례까지 붙은 채 떨어지기도 한다. 매화나무 둘레는 폭신한 쑥밭이다. 매화꽃잎은 쑥잎한테 폭 안긴다. 아이들은 쑥밭에 떨어진 매화꽃잎을 줍고, 나는 매화꽃잎을 가만히 바라본다. 꽃차례까지 곱게 붙은 이 아이들은 밥그릇에 살짝 얹어야겠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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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집과 초피나무 새잎



  나뭇가지 한쪽에, 또 겨우내 시든 풀줄기 한쪽에, 크고 작은 벌레집이 있다. 이 벌레집은 새봄을 맞이하기를 기다릴 테고, 새봄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따끈따끈한 기운이 퍼지면 조용히 벌어지리라. 무당벌레는 일찌감치 깨어나서 돌아다닌다. 마을 빨래터에는 물방개도 깨어났다. 멧새와 텃새 모두 먹이를 찾으려고 하루 내내 신나게 돌아다닌다. 모두 기다리던 봄이고, 모두 새롭게 깨어나는 봄이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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