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이룬 골목



  책방으로 이룬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를 보아도 책방이고 저기를 보아도 책방입니다. 책방골목에 책물결이 흐릅니다. 어느 책방에 깃들어도 책내음이 가득 번집니다. 이곳에서는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고, 저곳에서는 책 열 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읽을 책을 손에 쥘 수 있고, 앞으로 보름이나 한 달쯤 넉넉히 즐길 만한 책을 가슴 가득 안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책방골목으로 찾아가서 바지런히 온갖 책을 그러모을 수 있습니다. 책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읽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테니까요. 오늘 읽을 책과 함께 먼 모레에 느긋하게 읽을 책을 알뜰살뜰 장만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장만하고, 판이 끊어져서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춘 책도 장만합니다.


  작은 책방에서는 책꽂이 앞에 서서 가만히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방에서는 골마루를 천천히 거닐면서 책을 바라봅니다. 작은 책방에서 작은 책꽂이에 알차게 간추려서 꽂은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장에서 너른 책꽂이에 넉넉하게 건사한 책을 바라봅니다. 어느 책이든 내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내 마음길을 따사로이 비추어 줍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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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3-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수동인가요?? 이제 웬만한곳은 헌책방 골목이 없어지는것 같다군요ㅜ.ㅜ

파란놀 2015-03-31 00:09   좋아요 0 | URL
헌책방골목은 부산에만 있어요.
다른 곳은 `골목`이 아니고 `거리`인데,
책방거리가 `출사지`는 되어도 `책나들이터`로는
좀처럼 거듭나지 못하는 듯합니다..
 
고우영 놀부전 - 新 고전열전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90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삶’

― 놀부전

 고우영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8.12.26.



  고우영 님이 새롭게 빚은 만화책 《놀부전》(애니북스,2008)을 읽습니다. 우리는 흔히 ‘흥부전’으로만 알고, ‘흥부 이야기’만 생각하지만, 고우영 님은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놀부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새로운 만화를 빚습니다.


  흥부 이야기는 무엇이고, 놀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흥부는 어떤 삶을 누렸고, 놀부는 어떤 삶을 누렸을까요? 흥부는 그저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을까요? 놀부는 마냥 마음씨가 모진 사람이었을까요? 흥부 이야기는 어떤 눈길로 바라본 이야기일까요? 놀부 이야기라면 우리는 어떤 눈길로 바라볼 만할까요?



- “이 봐. 엄마. 새 꽃을 꺾었지. 그리구 까마중 먹어 엄마. 있잖아, 접때 엄마 묻던 날, 엄마 줄려구 까마중 많이 땄었는데, 놀부 짜식이 깽깽거려서 내가 콱 먹어 버렸다. 화가 나서 그랬지 뭐.” (23쪽)

- ‘바보 같은 기집애. 어쩌자고 그 험한 산을 저 혼자서 다녔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 그 작은 몸으로 엄마 무덤을 덮어서 비를 가리겠다는 거야? 바보 같은 기집애! 제까짓게 덜컥 감기에나 걸리지 별 수 있겠어?’ (43쪽)





  고우영 님이 빚은 만화책에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일을 하는 놀부와 놀순이가 나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사람들이 흔히 듣거나 아는 흥부 이야기에 ‘흥부가 하는 일’은 제대로 안 나옵니다. 흥부가 흙을 짓거나 가꾸는 이야기라든지, 흥부가 비탈밭을 일군다거나 기름진 논밭을 가꾸려고 힘쓰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비다리를 고친 흥부 이야기는 들을 수 있으나,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놀부와 흥부 사이에 다른 형제나 누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같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어떤 삶을 지었을까요. 두 아이 어버이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왜 큰아들 놀부는 커다란 집과 너른 들을 건사하면서 살고, 작은아들 흥부는 보잘것없는 집에 땅뙈기도 없이 살까요.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두 사람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요.



- “저희들이 할 테니까, 주인님은 좀 쉬십시오.” “그런 소리들 말게. 신성한 근로의 즐거움을 자네들만 독차지하려는 거냐?” “남들 보기에 뭣해서 그럽니다.” “게으름 피우는 것도 하늘에 죄 짓는 일이 된다네.” (84쪽)

- 땅문서가 건너가고, 흥부는 신이 났다. “너희들 어딜 가니?” “읍내에 갑니다.” “거긴 뭣하러?” “독립 기념으로 자축파티를 하러 갑니다.” (91쪽)




  우리는 흥부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익히 들은 흥부 이야기는 참말 흥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우리는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으레 들은 놀부 이야기는 참으로 놀부 이야기가 맞을까요?


  놀부와 흥부는 형과 동생이라 하는데, 두 사람은 왜 따로 지내면서 한 사람은 굶고 한 사람은 안 굶을까요.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안 낳고 한 사람은 왜 아이를 자꾸 낳을까요.


  놀부와 흥부를 낳은 어버이는 두 아이를 가르치거나 기를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흥부는 형 놀부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놀부는 동생 흥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둘은 서로 아낄 줄 모르는 사이일까요, 아니면 마음으로 깊이 아끼는 사이일까요? 우리가 읽거나 듣는 ‘흥부 이야기’에 가려진 깊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잊거나 잃은 ‘놀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놀부와 흥부라는 두 사람 발자취를 떠나,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지거나 어깨동무하는 사랑 이야기를 잊거나 잃지는 않았을까요?



- “하여간 비닐재배 그거 우리도 해 볼 만 하던데요?” “쏴랍! 쌰꺄!” “엄동설한에도 시금치, 파, 상치, 깻잎, 막 키워서 시장으로 반출시켜요.” “스키야! 원래 식물이란 햇볕을 받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계절에 자라야만 사람 몸에 이로운 거야!” “그러나, 비닐 재배, 저 사람들, 눈부신 흑자를 올리고 있던데요?” (134쪽)

- “우리야 배가 좀 고플 뿐이지, 자유가 있잖아! 이 보라구! 청풍 맑은 집 속에 아이들과 함께 편히 누워 있잖소?” “편해요?” “편하지!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하고 몸이 편하니 말도 편하다.”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마음이 편해요?” “말이 그렇다는 것 아닌가!” (157쪽)





  고우영 님이 빚은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그저 시골내기로서 착하면서 듬직합니다. 만화책 《놀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약삭빠르면서 못 미덥습니다.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는 온 집안을 두루 살피면서 깊이 마음을 쓸 줄 알고, 흥부는 집안일에는 젬병일 뿐 아니라 노닥거리기만 즐길 뿐입니다. 어버이가 힘껏 일군 땅이 넓다 보니 놀부는 이 땅을 잘 건사하려고 마음을 쓰는데, 흥부는 넉넉한 삶을 탱자탱자 보내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부는 차츰 걱정이 늘어납니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린 동생을 걱정합니다. 놀부는 착한 마음이지만 걱정이 늘고 느는 삶이 됩니다. 흥부는 바보스럽지만 걱정이 없습니다. 땅이고 돈이고 털어먹기 일쑤이지만 언제나 걱정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손에 흙을 안 묻힐 생각입니다. 약삭빠르게 머리를 쓰면서 살 생각입니다. 흥부한테는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는 만큼 이웃이나 동무나 형이나 누이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없습니다.



- “아, 문 열어! 문!” “어떤 개망나니 같은 놈이 와서 무조건 문을 열라는 거야? 너는 예의도 범절도 없냐?” “아쭈 아쭈? 요놈 보게? 넌 아래위도 없냐?” “나라에는 왕이 주인이요, 집에서는 가장이 주인이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므로 이곳의 주인이다. 너는 뭐냐?” (184쪽)

-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이렇게 알뜰히 지키며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큰아들은요, 오늘날 촌놈 농사꾼 바보 얼간이가 되어 초가집에서 푸성귀 먹고 삽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사치와 낭비만 일삼던 둘째 놈은요, 형이 베풀어 준 도움 속에서 나태하게만 살더니 저런 갑부가 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예? 아버지. 동생이 잘 사는 것이 배가 아파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아픕니다만, 허나 제가 싫은 것은요, 어째서 일만 하던 개미는 초라해지고, 깽깽이 켜던 여치는 얼어죽지 않고 아방궁에 살게 됩니까?” (188쪽)




  걱정이 많던 놀부는 《놀부전》 끝자락에서 걱정을 비로소 털어냅니다. 마음속에 깊이 또아리를 틀었던 걱정과 시름을 말끔히 털어냅니다. 바야흐로 놀부는 시골에서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투박한 시골내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흥부대로 노닥거리는 재미로 죽 나아갑니다. 흥부한테는 ‘죽은 어버이와 누이’ 생각이 없고, ‘시골에서 흙을 파는 형’ 생각도 없습니다. 흥부는 제 꾀를 잘 살린 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누리고, 흥부네 아이들은 버릇없이 큽니다.


  ‘원작’과 대면 여러모로 비틀거나 고친 《놀부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새롭게 읽어서 새롭게 지은 이야기라고 해야 더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시골지기 놀부와 도시내기 흥부를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멋스럽게 빚은 만화책인 《놀부전》이라고 느낍니다.


  놀부는 늘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삶찾기’로 나아갑니다. 흥부는 늘 꾀와 꾀를 거듭하면서 ‘삶놀이’로 나아갑니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거나 궂거나 좋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삶입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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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04] 스스로 서기



  바람을 마시며 선다

  하늘과 함께

  이 땅에서



  아이가 스스로 서도록 삶을 보여주고 사랑스레 살 수 있으면 아름다운 어버이 노릇이 되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씩씩하게 서도록 사랑을 물려주고 아름답게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슬기로운 어버이 구실을 하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기쁘게 노래하도록 이야기를 들려주고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으면 너그러운 어버이 길을 걸으리라 생각해요.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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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님이 '고무신' 이야기를 여쭈셔서

문득 생각해 보니,

고무신 이야기로 글을 써 보면

재미있겠다고 여겨

고무신을 신는 즐거움을 한 번 적어 봅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마음을 건드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


고무신과 책읽기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에 고무신을 신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도 틀림없이 고무신을 팔았을 테지만, 내 어버이가 나한테 고무신을 신으라고 사서 신긴 일이 없고, 내 동무 가운데 고무신을 신은 아이도 없습니다. 동네에서도 고무신을 발에 꿴 사람을 볼 수 없었어요. 어쩌다가 시골에 갔을 적에만 드문드문 고무신을 보았을 뿐, 이 신을 딱히 내가 신어야 한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2003년에 이르러 비로소 고무신을 처음으로 신습니다. 이무렵부터 시골에서 일을 했기에 ‘시골에서 흙을 밟으며 지내는 시골사람’이라면, 운동신이나 가죽신이 아닌 고무신을 발에 꿰어야겠다고 느꼈어요. 저절로 고무신을 찾았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시골에서는 다른 신을 신으면 퍽 성가십니다. 으레 흙길을 다니고 숲길을 걸으니 운동신이나 가죽신은 안 어울립니다. 고무신은 흙이 잔뜩 묻어도 털기에 수월하고 빨기에도 쉽습니다. 게다가 고무신은 빨고 나면 곧 말끔하게 말라요.


  무엇보다 고무신은 신바닥이 아주 얇습니다. 그래서 고무신을 발에 꿰고 걸으면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짙게 느낄 수 있어요. 고무신을 한 번 꿴 뒤로는 이 느낌이 아주 사랑스럽고 즐거워서 다른 신을 꿸 생각을 한 번도 안 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스러운 흙바닥이 살갑습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다운 딱딱한 바닥이 차갑습니다. 살가운 시골바닥을 느끼면서 노래하고, 차가운 도시바닥을 느끼면서 춤을 춥니다. 어느 곳에서든 이 지구별을 느끼도록 북돋우는 고무신이기에, 내 발은 늘 고무신차림이요, 내 몸은 언제나 고무신과 함께 노래합니다. 4348.3.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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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2 이것 저것 그것


  한국말에는 ‘이·그·저’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 말에도 ‘이·그·저’를 가리키는 낱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처럼 ‘이·그·저’가 넓게 가지를 치면서 쓰이는 말은 없다고 느낍니다. 참말 한국말에서는 ‘이·그·저’를 붙여서 온갖 것을 다 나타냅니다. 맨 먼저 ‘이것·저것·그것’이 있어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낱으로 가리킬 적에는 ‘이·그·저’라 하는데, 이 말마디 뒤에 다른 말을 붙이면 ‘이·저·그’로 앞뒤가 바뀝니다.

 이것 저것 그것
 이이 저이 그이
 이곳 저곳 그곳
 이때 저때 그때
 이날 저날 그날
 이쪽 저쪽 그쪽

  곰곰이 생각하면 이 실마리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이’ 하나입니다. ‘이’는 바로 ‘나’입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하나’요 ‘이’이며 ‘나’입니다. ‘처음’에 ‘하나(이·나)’가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로움’이 싹트고 ‘다른 하나(둘)’가 나오면서 ‘너’가 됩니다. 둘만 놓고 본다면 ‘이것’과 ‘그것’입니다. 이것과 그것은 ‘이때’와 ‘그때’이며, ‘이때’는 ‘오늘’이요, ‘그때’는 ‘어제’입니다. 처음 두 가지는 “오늘과 어제”입니다. 그래서, 둘만 놓고 헤아릴 적에는 “이와 그”입니다.

  “이와 그(오늘과 어제)”일 때에는 아직 안 움직입니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나와서 “너와 나”로 되었을 뿐입니다. 이제, 너와 나 사이를 이으면서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을 숨결이 찾아듭니다. 새로운 씨앗이 너와 나 사이에 놓여요. 이리하여, 비로소 ‘저’가 나오고, 저(저것·저곳·저때)는 바로 ‘모레(앞날)’입니다. 이리하여, 이와 그는 처음에 ‘이·그·저’였으나, 이내 ‘이것·저것·그것’으로 자리를 바꾸어요. 오늘(이)이 모레(저)로 가면서 어제(그)가 되거든요.

  나와 너가 있기에 ‘우리’가 태어납니다. 나와 너가 있어서 둘은 ‘우리’로 거듭납니다. 한국말에서는 오직 두 사람이어도 ‘우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낱말은 처음부터 너와 나를 아우르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니와 나 둘이 있을 적에 “우리 언니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어머니와 나 둘이 있을 적에도 “우리 어머니입니다” 하고 말하지요. 게다가 내가 혼자서 사는 집을 말할 적에도 “우리 집입니다” 하고 말해요. 혼자 사는 집이 왜 “우리 집”인가 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너)과 나(말하는 쪽)를 아우르기에 ‘우리’가 되거든요.

  오늘(이)과 어제(그)가 모이기에(만나기에) 모레(저)가 태어납니다. 오늘과 어제를 이어서 모레로 나아갑니다. 나와 너는 우리가 되어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나는 너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쁜 넋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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