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놀이 1 - 너는 로봇이 되어



  산들보라가 집 둘레에서 낡은 살림 하나를 주워서 로봇으로 삼는다. 헌 쇠붙이를 먹는 로봇을 본 뒤인데, 몇 해 앞서 우리 집 전깃줄을 갈아치울 적에 나온 부스러기 하나가 어디에서 굴렀는가 보다. 전깃줄 둘이 다리가 되고, 전깃줄을 휘휘 감는 통이 몸이 된다. 로봇이 달리 로봇이고 인형이 달리 인형인가. 마음으로 바라면서 바라볼 때에 로봇도 되고 인형도 되어 새롭게 살아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놀이돌이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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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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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0



나무와 함께 푸른 숨결을

―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

 이세 히데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2010.5.5.



  앵두나무 곁에 섭니다. 우리 집 앵두나무는 사월을 앞두고 꽃봉오리를 하나둘 터뜨립니다. 앵두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앵두꽃에서는 앵두내음이 퍼집니다. 앵두알에서도 앵두내음이 나고, 앵두꽃에서도 앵두내음이 납니다. 그리고, 앵두나무 줄기와 가지에서도 앵두내음이 납니다.


  모과나무 곁에 섭니다. 우리 집 모과나무는 사월을 앞두고 새잎이 돋습니다. 새잎은 한꺼번에 벌어집니다. 앵두나무나 매화나무는 꽃잎이 먼저 피고, 모과나무는 나뭇잎이 먼저 돋습니다. 모과나무에서는 모과내음이 나고, 모과잎에서도 모과내음이 납니다. 모과꽃이 곧 곱게 피어나서 한껏 고운 빛을 내뿜다가 천천히 스러지면, 모과알이 맺으면서 짙푸르다가 샛노란 모과알로 거듭날 테지요.


  봄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에는 봄내음이 가득합니다. 봄바람에는 봄에 피어나는 꽃이 뿜는 냄새가 깃들고, 봄에 돋는 새잎에서 흐르는 냄새가 감돕니다. 겨우내 고요히 잠자던 풀과 나무가 깨어나면서 한꺼번에 터뜨리는 냄새가 가득한 봄바람입니다.



.. 이 초록 동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  (3쪽)





  아침에 별꽃나물을 뜯습니다. 봄을 맞이한 우리 집 마당은 온통 풀밭입니다. 아직 우거진 풀밭까지는 아니지만, 겨울 끝자락부터 천천히 고개를 내민 여러 가지 들풀이 조촐하게 풀밭을 이룹니다. 이 풀밭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별꽃나물을 훑고, 다른 들풀도 훑습니다. 민들레는 아직 많이 돋지 않아서 민들레잎을 둘만 뜯습니다.


  봄풀은 날로 먹어도 싱그럽고, 간장이나 된장을 찍어 먹어도 상긋합니다. 무쳐서 먹을 수 있으나, 그냥 먹어도 됩니다. 아니, 봄풀은 바로 뜯어서 바로 먹을 적에 가장 향긋하구나 싶어요.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어 물기를 탁탁 털고는, 꽃접시에 소복하게 담아서 신나게 먹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함께 즐깁니다.


  바야흐로 봄내음이 무르익는 삼월 막바지요, 나무마다 새로운 잎사귀나 꽃송이를 주렁주렁 다는 기쁜 하루입니다.



.. “너도 으아리꽃을 좋아하는구나.” “(내 그림) 보지 마세요!” ..  (11쪽)





  이세 히데코 님 그림책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청어람미디어,2010)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프랑스에 있다는 어느 식물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와서 꽃과 풀과 나무를 그림으로 담는 어린 가시내가 있습니다. 이 어린 가시내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식물원 아저씨가 있습니다.


  어린 가시내는 어떤 일로 프랑스에 왔을까요. 어린 가시내는 무슨 즐거움을 누리려고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올까요. 어린 가시내는 프랑스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오면서 꽃을 얼마나 많이 그렸을까요.



.. 해바라기는 해님을 좋아하지? 아, 빨리 아침이 왔으면 ..  (22쪽)



  식물원 아저씨는 그림순이한테 해바라기 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해바라기 씨앗을 나누어 받은 그림순이는 집에서 이 씨앗을 심어서 꽃을 피웁니다. 프랑스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해바라기 꽃그릇을 식물원 아저씨한테 물려줍니다. 그동안 식물원에서 그린 꽃 그림도 살포시 남깁니다.





.. 숲처럼 커다란 나무. 별빛 쏟아지는 밤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이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있었다. 250년 동안이나 이렇게 ..  (41쪽)



  아이는 그림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가슴에 꽃내음을 듬뿍 담았습니다. 아이를 떠나 보낸 식물원 아저씨는 꽃 그림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꽃빛을 새롭게 담습니다. 두 아이와 어른 사이에 나무가 있습니다. 오랜 나날 이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한테 꽃내음을 베풀고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던 나무가 두 사람 사이에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식물원 아저씨와 그림순이로 만난 두 사람은, 먼먼 지난날에는 어떤 사이로 만났을까요. 커다란 나무는 두 사람 가슴에 어떤 이야기꽃을 피워 줄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불어 일본에서 프랑스로 갑니다. 프랑스에 머문 바람은 다시 불어 일본으로 갑니다. 일본으로 온 바람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아르헨티나로 갑니다. 아르헨티나에 닿은 바람은 다시 바다를 가로질러서 한국으로 옵니다. 한국에 온 바람은 또 드넓은 땅을 지나 중국도 베트남도 찾아가고, 이 바람은 다시 바다를 훨훨 가로질러서 지구별 온 나라를 골고루 돕니다.


  사랑이 흘러 봄이 찾아옵니다. 사랑이 싹터서 여름이 됩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가을이 환합니다. 사랑을 갈무리하며 겨울을 고요히 쉽니다. 두 손 모아 가슴 가득 이야기씨앗을 담은 두 사람은 오늘도 커다란 나무 곁에 서서 가만히 귀를 나뭇줄기에 댄 채, 나무가 들려주는 푸른 숨결을 마십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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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도 별꽃나물 맛있어



  아침에 마당에서 훑은 별꽃나물을 먹는다. 날로 먹어도 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고 하니, 사름벼리는 “벼리는 스스로 집어서 먹을래.” 하면서 간장에 척 찍어서 먹는다. 별꽃처럼 네 마음에도 별과 같은 꽃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아름다운 풀이니, 신나게 먹고 마음껏 뛰놀기를 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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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밥그릇은 내 마음대로



  밥상을 차린다. 국그릇을 먼저 올리고 밥그릇을 올린다. 이러고 나서 다른 접시를 하나씩 더 올리는데, 다른 접시가 올라가느라 아이들 밥그릇과 국그릇을 옆으로 조금씩 민다. 산들보라는 제 밥그릇을 옆으로 밀지 말라면서 다시 슥슥 옆으로 민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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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53 : 꿈과 희망



방정환은 순수하게 식민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계몽의 요구를 간직하고 있었겠지만

《이재복-우리 동화 이야기》(우리교육,2004) 110쪽


 꿈과 희망을

→ 꿈과 사랑을

→ 꿈과 빛을

→ 꿈을

→ 푸른 꿈을

 …



  오늘날에는 흔히 ‘희망(希望)’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제대로 헤아리는 사람은 아주 드문 듯합니다. ‘희망’은 “1.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2.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희망 사항”이란 “바라는 것”이고, “돌아가기를 희망한다”는 “돌아가기를 바란다”입니다.


  ‘가능성(可能性)’은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을 가리키는데, ‘실현(實現)’은 “꿈, 기대 따위를 실제로 이룸. ‘실제 이루어짐’으로 순화”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현’은 고쳐쓸 말이고, 이 고쳐쓸 말로 낱말풀이를 붙인 ‘가능성’도 고쳐쓸 말인 셈입니다. 몽땅 고쳐써야 하는데, 아무튼 ‘가능성’이란 “이루어질 것”을 나타냅니다. 이리하여, “희망이 보이다”는 “이루어지리라 보이다”요, “희망이 있다”는 “이루어지겠다”입니다.


  한국말 ‘꿈’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으로 풀이합니다. 이 낱말풀이에도 ‘실현’이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꿈’을 ‘희망’으로 풀이합니다.


 꿈이 실현되기를 희망하다

→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다

→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다


  ‘꿈’이라는 한국말을 ‘희망’이라는 한자말로 풀이한다면, 거꾸로 ‘희망’이라는 한자말은 ‘꿈’이라는 한국말로 풀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낱말은 같은 뜻이면서 하나는 한국사람이 쓰는 낱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낱말이라는 얘기입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방정환은 그저 식민지 어린이한테 푸른 꿈을 보여주면서 깨우치려는 뜻이었겠지만


‘순수(純粹)하게’는 ‘그저’로 손봅니다. “희망을 주고 싶다는 계몽(啓蒙)의 요구(要求)를 간직하고 있었겠지만”은 “꿈을 보여주면서 깨우치려는 뜻이었겠지만”이나 “꿈을 밝히면서 알려주려는 뜻이었겠지만”으로 손질합니다. 꿈이든 희망이든 ‘줄’ 수 있지 않습니다. ‘보여주’거나 ‘알려줄’ 뿐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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