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한 송이를 보라



  동백꽃 한 송이를 본다. 아침에 바라보는 동백꽃은 나더러 ‘다른 것은 보지 마. 오직 하나만 바라봐.’ 하고 말을 건넨다. 이리하여, 아침볕을 받으며 살몃살몃 벌어지는 동백꽃 한 송이만 바라본다. 어떤 숨결이고, 어떤 빛깔이며, 어떤 내음인지 가만히 바라본다. 네가 우리 집에서 피어나기에 우리 집에서 얼마나 즐겁고 놀라운 사랑이 함께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읽는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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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빵 6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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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6



새와 사람이 사는 곳

― 토리빵 6

 토리노 란코 글·그림

 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9.25.



  나무가 없는 곳에는 새가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새가 깃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있는 곳이어야 새가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새가 깃들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날개를 쉽니다. 짝을 찾아서 노래를 하고, 짝을 찾지 않아도 노래를 합니다. 나무에 사는 벌레를 살피며 콕콕 찍어서 먹고, 짝을 지어 알을 낳을 즈음에는 깃털과 잔가지를 그러모아 둥지를 엮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새가 있으며, 새가 있을 때에 노래가 있습니다.



- 어차피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저 매일을 살아간다. 평범한 풍경 달력이 사실은 무척 좋았다 … 국내선을 타고 훗카이도 상공을 날았을 때, 나는 이미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계절의 방’의 원형은 옛날에 살던 작은 마을의 작은 보육원 홀이다. 나의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며,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3∼4쪽)





  나무가 없는 곳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나무가 없어도 사람들은 잘만 살 수 있는 듯이 여깁니다. 집이나 동네에 나무 한 그루 없으면서 연필과 종이와 책을 쓰고,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책걸상을 쓰며, 나무 한 그루 없는데 참말 이것저것 다 하는 듯합니다.


  사람은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힙니다. 사람은 나무열매를 따서 먹습니다. 사람은 마른가지를 그러모아 불을 지핍니다. 사람은 우람한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을 때에 사람이 있으며, 사람이 있을 때에 삶이 있습니다.



- 주택가를 조금 벗어난 곳에는 오래된 커다란 감나무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옛날에는 열매로 곶감을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일부러 올라가 따려는 사람도 없어져 열매가 푹 익는다. 다양한 새들을 먹이고 있는 모양이다. 먹을 만큼 먹은 새들이 떠나가고 빨갛고 투명한 열매에 아쉬운 듯 머뭇거리는 석양빛이 비치면, 큰 나무 한가득 등불이 켜진다. (12쪽)




  토리노 란코 님이 빚은 만화책 《토리빵》(AK커뮤니케이션즈,2011)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토리빵》을 빚은 아가씨는 새를 아끼고 보살핍니다. 사람이 굳이 새한테 먹이를 챙겨 주지 않아도 될 노릇이지만, 도시에서 새는 먹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려고 숲을 밀고 들을 짓밟았기 때문이에요. 숲이 그대로 있으면 새는 먹이 걱정이 없이 오붓하게 어울려 지낼 테지만, 숲이 사라지거나 망가지니까 새는 겨우내 힘든 하루를 보냅니다.


  새는 ‘공장에서 찍은 것’을 못 먹거나 안 먹습니다. 새는 숲이나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요? 사람은 공장에서 찍은 것도 더러 먹을 수 있으나, 사람도 숲과 들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숲과 들이 있어야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어요.



- 고양이는 추우면 달라붙는다. 십자매와 동박새도 달라붙는 걸 좋아한다. 참새는 무리지어 있지만 미묘한 간격을 유지. 그리고, 오리는 물가 블록을 좋아한다. 푹신푹신하니까 함께 달라붙어 있으면 따뜻할 텐데, 라고 생각해 만져 봤더니 표면이 얼었다. 서로 달라붙는 게 따뜻한 것은 열이 방출된다는 증거. 물새의 단열 효과는 완벽하다! (33쪽)





  숲에서 삶을 짓던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아끼면서 새를 이웃으로 삼았습니다. 새를 살가운 이웃으로 삼은 사람은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랫소리를 슬기롭게 익히기도 합니다. 새가 서로 속삭이는 말을 귀여겨들었으니 이 말을 똑같이 노래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새 노랫소리를 내면서 새를 끌어들일 줄 아는 사람이 퍽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소리를 흉내낼까요? 자동차 달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소리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를 흉내낼까요?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 목소리를 흉내낼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예전에는 새노래뿐 아니라 바람노래를 고스란히 따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풀잎이 사각이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고, 개구리나 매미가 노래하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 삼백초와 함께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쇠뜨기이지만 나는 꽤 좋아한다. 이런 ‘분해놀이’도 할 수 있고. 예전에 도쿄에서 쇠뜨기로 가득 찬 공터를 본 적이 있다. 민들레 한 포기도 없어, 완벽한 진녹색!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쇠뜨기는 오래되어 말라붙은 고무처럼 딱딱하니까 누군가 들어가서 밟았다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겠지. 초여름이 되면 쇠뜨기는 너무 자라서 푸석푸석해지고 만다. 그것은 봄에만 볼 수 있는 정원. 사람도 새도 꽃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완벽한 녹색의 성역. (68쪽)





  새봄이 된 사월 첫머리에 들마실을 하면서 뱀밥을 뽑아서 먹습니다. 땅을 뚫고 솟은 모습인 쇠뜨기는 싱그러우면서 맑은 맛입니다. 뱀밥은 사람도 즐기지만 벌레도 즐겨요. 속속 솟은 쇠뜨기를 가만히 살피면, 벌레 먹은 자리가 꽤 있습니다.


  벌레 먹은 풀잎일수록 맛난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잘 안 먹는 풀잎이라면 사람한테도 그리 맛있지 않은 풀잎이라는 뜻입니다. 벌레 먹는 열매도 사람한테 맛난 열매입니다. 벌레 안 먹는 열매라면 사람한테도 안 맛있을 만한 열매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언제나 새가 살 만한 곳이었습니다. 새가 살 만한 곳도 언제나 사람이 살 만한 곳이었어요. 그러면, 오늘날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은 새한테 얼마나 살 만한 곳이 될까요. 맨땅이 없는 도시는 새한테 얼마나 즐거운 곳이 될까요.


  우리 집 처마에 있는 제비집은 새끼 제비가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이듬해에 새로 찾는 터전이 됩니다. 물려줄 만한 집을 튼튼하게 지어 기쁘게 물려주는 제비입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집을 마련해서 어떤 아이한테 어떻게 물려주는지 궁금합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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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언제나 자동차와 함께



  언제나 자동차와 함께 다니는 산들보라는 앞으로 자동차를 장만해서 우리 식구를 데리고 다녀 줄 수 있다. 그래,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면허증도 따고 자동차도 장만해서 몰면 되지. 신나게 달리렴. 자동차가 뒤집어지게는 하지 말고, 하늘을 훨훨 날아서 다니렴.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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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5 삶은 춤노래



  삶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만, 틀에 박힌 춤이나 노래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스스로 기쁨을 가꾸어 누리는 춤이요, 손수 즐거움을 지어서 나누는 노래일 때에, ‘삶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으로 됩니다. 기쁨이 없는 춤이나 즐거움이 사라진 노래라 한다면, 쳇바퀴처럼 똑같은 굴레에 갇혀서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춤과 노래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춤만 출 수 없고, 노래만 부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운차게 추는 춤이라도 노래가 함께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조용하게 부르는 노래라도 춤이 같이하기 마련입니다. 춤과 노래는 늘 함께 있습니다. 둘은 다르게 있는듯이 보이지만, 언제나 하나로 움직입니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춤꾼과 노래꾼이 연예인이나 대중가수라는 이름으로 따로 있습니다. ‘뒷춤꾼(백댄서)’이라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게다가, ‘입벙긋 노래꾼(립싱크 가수)’마저 있습니다. 춤이면서 춤이 아니고 마는 오늘날 문명사회이고, 노래이면서 노래가 아니고 마는 오늘날 방송과 문화입니다. 이리하여, 제도권 입시지옥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나 제도권 톱니바퀴 월급쟁이 회사에 갇힌 어른들 누구나, 춤이 아닌 춤과 노래가 아닌 노래에 빠져듭니다. 스스로 굴레에 갇힌 하루이니, 굴레에 가두는 춤과 노래에 젖어듭니다.


  삶을 손수 짓는 사람은 춤과 노래를 손수 짓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흙을 만지면서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은 사람은, 일하거나 놀다가 언제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다섯 살 아이도 여든 살 할배도, 일하거나 놀다가 스스러 우러나오는 노래와 춤으로 한판 멋지게 어우러집니다. 이를 가리켜 ‘한마당’이요 ‘한놀이’이요 ‘한마당놀이’라고 합니다. ‘마당놀이’라고도 하고 ‘들놀이’라고도 합니다.


  장작으로 삼을 나무를 하면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지게 가득 나무를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제 삶을 제 손으로 지으니, 스스로 신이 나서 노래가 나와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텔레비전도 없었지요. 임금님이 부르라 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는 임금님 손길이 안 닿아요. 책도 글도 모르지만, 흙을 알고 풀과 나무를 알며, 하늘과 바람을 알고, 물과 벌레와 짐승을 모두 아는 ‘숲사람(시골사람)’은 스스로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사위를 잇습니다.


  절구를 빻든 베틀을 밟든 노래입니다. 다듬이질을 하든 밥을 짓든 노래입니다. 아이들도 소꿉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언제나 노래입니다. 삶일 때에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몸짓에서 노래와 춤이 함께 흐드러집니다.


  삶은 춤노래입니다. 춤노래는 삶입니다. 춤꾼이나 노래꾼이 된다면 삶이 아니라 굴레(제도권)입니다. 어느 하나에 얽매이는 모습은 삶과 동떨어집니다. 언제나 모두 아우르고, 늘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삶은 두레요 품앗이입니다. 삶은 웃음이요 이야기입니다. 기쁘게 춤추고 즐겁게 노래합니다. 기쁘게 가꾸는 삶이요, 즐겁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밥을 지어 아침저녁을 차리면서 엉덩이를 실룩거리거나 어깨를 들썩입니다. 콧노래가 흐릅니다. 다 함께 까르르 웃으면서 수저를 듭니다. 이야기꽃이 핍니다. 바로 이때에 삶입니다.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춤과 노래는 바로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삶이듯이,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춤과 노래입니다.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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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4.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된다



  마당에서 날마다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당에서 풀을 얻습니다. 마당과 밭이 있으면 누구라도 한 해 내내 싱그러운 풀을 얻습니다. 이 풀은 물에 헹구어 바로 먹어도 되고, 된장이나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무침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 뜯어서 먹으니, 저녁이 되어 남는 풀이 있으면, 또 엊저녁에 뜯어서 아침나절에 남는 풀이 있으면, 이 아이들을 밀반죽에 섞어서 부침개를 부칩니다.


  밀반죽에 풀을 잔뜩 넣으면 풀내음과 풀맛이 짙습니다. 밀반죽에 풀을 조금 넣으면 밀내음과 밀맛이 짙습니다. 풀을 잔뜩 넣은 부침개는 풀빛이 짙고, 풀을 조금 넣은 부침개는 밀빛이 짙습니다.


  우리 집에는 ‘밥을 먹는 입’이 넷이라, 부침개를 으레 너덧 장 부칩니다. 한 사람한테 한 장씩 돌아가는 몫입니다. 여덟 장이나 열두 장을 부칠 수도 있지만, 네 사람한테는 너덧 장이 꼭 알맞습니다. 더 먹을 수 있을 듯싶기도 하지만, 막상 부침개를 하고 보면 한 사람한테 한 장이 가장 알맞습니다.


  나는 으레 내 몫을 맨 마지막에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몫을 먹습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먹을 적에는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고, 모두 맛나게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놀이를 할 적에, 나는 홀로 조용히 밥상맡에 앉아서 내 부침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는 빛은, 여러 빛이 아니어도 됩니다. 한 가지 빛이어도 즐겁고 두 가지 빛이어도 곱습니다. 세 가지 빛이든 네 가지 빛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빛이든 모두 빛입니다. 어떤 빛이든 오롯이 빛이면서, 깊고 너른 고요한 숨결이 깃듭니다. 빛마다 새로운 숨결이 고요하게 흘러서 깊고 너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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