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야 (김향이) 푸른숲 펴냄, 2001.8.28.



  동화책 《나는 책이야》는 ‘나는 책이야’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바깥마실을 나가는 삶을 담는다. 그런데 ‘나는 책이야’라는 이름이 붙은 책에 깃든 이야기는 ‘책과 얽힌’ 이야기가 아니라 ‘책과 안 얽힌’ 이야기이다. 《나는 책이야》라는 동화라고 하면 ‘책’과 얽힌 실타래를 풀면서 이야기를 꾸미면 한결 잘 어울리면서 부드럽게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나는 이야기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과 사귀지 못하는 아이가 책과 사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데, 책은 ‘책’이라는 꼴을 하지만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요, 책에 담는 이야기는 모두 ‘삶’이다. 그러니, 이러한 얼거리를 더 또렷이 보여주거나 제대로 밝힐 수 있도록 글을 짰다면 훨씬 재미났으리라 느낀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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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야
김향이 지음, 김유대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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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6 ‘걸음마’와 ‘걸음’



  모든 아기는 걸음마를 디디면서 이 땅에 새롭게 서려 합니다. 걸음마는 아직 걸음이 되지 못한 몸짓이지만, 아기는 저를 낳은 어버이처럼 걷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니,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서서 이 땅을 디디려 합니다. 아기는 제 힘을 써서 제 몸으로 우뚝 서려 합니다. 홀로 씩씩하게 서려 합니다. 그러니까, ‘홀가분하’게 서려고 ‘걸음마’를 뗍니다.


  아기가 ‘첫’ 걸음마를 뗀 뒤에는 ‘새’ 걸음마를 떼려고 애씁니다. 걸음마가 날마다 새롭도록 애씁니다. ‘첫걸음마’는 언제나 ‘새걸음마’로 나아갑니다. 걸어 보려고 애쓰고 힘쓰고 용쓰면서 나중에는 드디어 ‘걸음’이 됩니다. 어버이 손을 잡지 않고도 제법 먼 길을 혼자 걸어서 오갈 수 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걸음’이라고 합니다.


  걸음마를 떼면서 걸음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맘마를 떼면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걸음마요 맘마입니다. ‘밥’이 아닌 ‘맘마’입니다. 밥처럼 지어서 밥처럼 먹으라고 하는 맘마입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이가 얼마 안 돋거나 없으며, 아이는 이가 아직 제대로 안 돋았기 때문입니다.


  아기와 아이가 떼는 걸음마는, 어른으로 치자면 ‘훈련’이라 할 만합니다. 어른도 어떤 낯선 일을 처음으로 할 적에는 서툴거나 어수룩합니다. 낯설기에 익숙하지 않아요. 어른도 일손을 익숙하게 하려면 하고 또 하고 다시 해야 합니다.


  손놀림이나 몸놀림이 익숙해지면, 이제부터는 새롭게 하려고 나섭니다. ‘똑같이’ 하려고 나서는 삶이 아닙니다. ‘새롭게’ 하려고 나서는 삶입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익히는 까닭은 ‘어른과 똑같이’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른처럼 걸음을 떼’고 나서 ‘내 나름대로 새롭게 걸음을 지으’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낯선 일을 마주하면서 손놀림과 몸놀림을 익숙하게 가다듬으려 하는 까닭도, 어른들 나름대로 ‘이 일을 새롭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누리’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걸음마나 맘마를 거칠까요? 왜 ‘훈련’을 할까요? ‘삶짓기’를 하려는 뜻입니다. 삶을 지으려는 뜻으로 ‘걸음마(첫 단추)’를 떼려 합니다. 첫 단추를 꿰면 다음 단추를 꿸 수 있고, 단추를 모두 꿰면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옷입기’는 ‘삶짓기’와 같습니다. ‘걸음 떼기’는 ‘삶짓기’와 같아요. 나한테 찾아드는 새로운 하루(오늘)를 그야말로 새롭게 맞이해서 새롭게 누리려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떼려 하고, 이 첫걸음이 언제나 새걸음이 되도록 몸을 움직입니다.


  삶을 지으려고 하는 걸음마(훈련)입니다. ‘잘 걷는 선수’가 되려고 걸음마를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틀’에 갇히려고 똑같은 걸음걸이를 익히려 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를 놀려 제대로 걸으려고 하는 까닭은, 내 마음과 몸을 제대로 다스려서 내 삶을 제대로 지을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걸음이 아닌 걸음마는 여러모로 서툽니다. 아직 삶이 아닌 훈련은 이모저모 서툽니다. 서툴지만 빙긋빙긋 웃으면서 걸음마를 떼려 합니다. 서툴지만 활짝활짝 웃으면서 훈련을 하려 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삶짓기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 삶짓기를 이루는 길로 씩씩하게 새 걸음을 내딛습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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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88. 2015.4.1. 꽃내음 큼큼



  꽃내음을 큼큼 맡자. 매화꽃이나 살구꽃이나 동백꽃은 퍽 먼 데에서도 꽃내음을 맡을 수 있지만, 조그마한 들꽃은 가까이에 코를 대고 큼큼 맡아야 꽃내음을 맡는다. 작은 아이들 꽃잎을 코에 대고 살살 움직이면 꽃내음은 한결 짙으니, 새봄을 맞이해 들녘에 들꽃이 가득한 날에는 가만히 쪼그려앉아 이곳저곳 코를 큼큼거리면서 들내음과 봄내음을 들이켠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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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플레이소녀 2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89



네 꿈과 내 꿈은 늘 하나

― 플레이 플레이 소녀 2

 요시즈키 쿠미치 그림

 하시모토 히로시·와타나베 켄사쿠 글

 서울문화사 펴냄, 2015.2.27.



  나무는 씨앗으로 심을 수 있고, 나뭇가지로 심을 수 있습니다. 가지치기를 한다면서 솎아낸 나뭇가지를 건사해서 옮겨심으면 이 나뭇가지는 어느새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새로운 나무 한 그루로 우뚝 섭니다.


  나무를 옮겨심을 적에는 땅을 깊이 팝니다. 나뭇가지 아래쪽이 새로운 뿌리로 튼튼하게 설 수 있도록 깊이 심습니다.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떨구어 새로운 나무로 자라도록 할 적에는, 씨앗이 땅에 포근히 안겨 천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립니다. 나무씨앗은 처음부터 싹을 틔우거나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찬찬히 쌓이는 나뭇잎과 풀잎이 삭고 썩어서 새로운 흙이 될 무렵 께어나고, 다람쥐나 들쥐가 먹이로 삼아 땅에 파묻어 주면 고요히 잠들어서 쉬다가 어느새 씩씩하게 깨어납니다.


  씨앗으로 돋은 어리고 작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이 어리고 작은 나무가 우람하게 서는 어른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는 지 헤아립니다. 내가 손수 옮겨심은 작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이 작은 나무는 곧 줄기가 굵어지고 새로운 가지를 죽죽 내놓습니다.



- “넌 왜 모두가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았는지 알아?” “예? 그, 그건, 으음?” “잘 들어 류타로. 너희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빠지지 않은 거야.” (5쪽)

- ‘그 연습시합 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내 목소리는 결국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노력하고 연습해서, 만약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닿았더라면, 그것은 정말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을지도 몰라.’ (22쪽)





  가느다란 줄기를 쓰다듬고, 여린 잎을 어루만집니다. 내 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어린나무한테 옮깁니다. 작은 나무가 커다란 나무로 자라면서 나누어 줄 푸른 바람을 꿈꿉니다.


  나무 앞에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가 내 노래를 듣고 기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나무 옆에 서서 춤을 춥니다. 나무가 내 춤을 보고 즐겁게 크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불러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앞에서 노래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 곁에서 춤을 춥니다. 아이들과 나무 둘레에서 놀고, 떨잎을 주워 나무 둘레로 옮깁니다.



- “괜찮아! 우리가 먼저 믿지 않으면, 기적은 시작되지 않아!” (41쪽)

- “주장, 언제까지 연습할 겁니까? 벌써 11시예요. 그만 돌아가죠.” “시끄러워! 응원단보다 먼저, 우리가 집에 갈 수는 없잖아!” (43쪽)

- “으, 음치는 여전하지만, 하지만, 응원가는 못 불러도 상관없어요. ‘영혼’만 담겨 있으면! 그러니까 이렇게 형편없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를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서 지금 무척 행복해요!” (66쪽)





  하시모토 히로시 님과 와타나베 켄사쿠 님이 글을 쓰고,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그림을 그린 《플레이 플레이 소녀》(서울문화사,2015)는 둘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굵으면서 짧게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응원단을 이끄는 가녀린 아이가 씩씩한 젊은이로 우뚝 서는 이야기를 담는 《플레이 플레이 소녀》입니다.


  가녀린 아이는 스스로 가녀리다고 여기면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러나, 가녀린 아이가 저 스스로 얼마나 가녀린가 하는 대목을 깨달은 뒤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가녀린 모습을 바보스레 돌아본다거나 슬프게 되새기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가녀린 모습이지만, 앞으로는 이 땅에서 홀로 서서 씩씩하게 살아갈 꿈을 짓습니다.



-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매일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다 같이 실력을 높이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오로지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인가요? 관현악부는 그렇게 작은 물에서 놀면서 만족하는 겁니까?” (69쪽)

- ‘그래, 응원의 힘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응원단이 혼을 담아도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때, 응원단이 자기들이나 동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 가야 할 것인가. 응원단이란 무엇을 응원해야 하는 것인가, 응원단이란 무엇인가.’ (130∼131쪽)





  응원단으로 뛰는 아이들은 동무들한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동무들이 새롭게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아이들이 응원단입니다. 그러면, 응원단 아이들은 어떠한 숨결이어야 할까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기운차지 않다면, 다른 동무한테 기운을 끌어내지 못하겠지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씩씩하지 않다면, 다른 동무더러 씩씩하라고 말하지 못하겠지요. 응원단 아이들이 스스로 꽃처럼 피어나지 않는다면, 다른 동무가 꽃처럼 스스로 피어나도록 기운을 북돋우지 못하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응원단이 되어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담금질합니다. 응원단 아이들은 바로 ‘나부터 스스로 씩씩하게 서도록’ 온힘을 기울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응원단은 아무도 응원하지 않습니다. 응원단은 그저 스스로 서서 스스로 외칠 뿐입니다.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는 어떠할까요? 경기장 선수도 저 스스로 서서 경기를 벌입니다. 남이 내 자리에 들어와서 경기를 맡아 주지 않습니다. 선수인 내가 경기장에서 스스로 기운을 끌어내어 움직입니다.



- “응원이란, 먼저 동료와 손을 마주 잡는 것. 옆의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는 것. 혹시 멀리 있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없어도, 목소리로 대지를 뒤흔들어, 마음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상대와 단단히 이어져 있으면, 그 마음은 반드시 힘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135∼136쪽)

- “우리는 무엇을 응원하러 왔나? 우리는 야구 시합을 응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라! 묵묵히 열심히 싸우는 ‘사쿠라기 고교의 친구’를 응원하러 온 것이다!” (147∼149쪽)





  네 꿈과 내 꿈은 늘 하나입니다. 우리는 경기에서 이기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잘 치르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을 잘 벌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응원을 하는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너와 나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요 동무이자 사람이라는 대목을 깨달아 기쁘게 노래하려는 뜻입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누리기에 응원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알아차렸기에 신나게 응원을 합니다. 삶을 짓는 기쁨을 혼자 붙잡거나 가둘 뜻이 없으니, 활짝 웃고 어깨를 펴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만화책 《플레이 플레이 소녀》에 나오는 가녀린 아이들은 바로 이 아이들 스스로 너무 기운이 없이 어설프게 살아온 줄 깨달으면서 눈을 뜹니다. 내가 나를 찾을 적에 나부터 기쁘고, 내가 나를 찾는 기쁨으로 웃을 적에, 내 둘레에 있는 동무도 스스로 기운을 내면서 웃습니다.


  언제나 함께 흐르는 꿈이고, 늘 함께 자라는 사랑입니다. 4348.4.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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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52. 마음결을 살리는 말결

― 위아래가 없는 말넋



  시를 쓰는 신현림 님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이라는 책을 낸 적 있습니다. 이 책 166쪽을 보면 “아주머니와 나는 계속 이야기꽃을 피워 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값진 대화가 이어졌지요.”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이야기꽃’과 ‘대화(對話)’라는 낱말이 잇달아 나옵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다른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두 낱말 모두 한국말사전에 나오는데, ‘대화’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주고받는 이야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꽃’과 ‘대화’는 뜻이 같은 셈이고, 글쓴이는 ‘뜻이 같은 두 가지 말’을 나란히 적은 셈입니다.


  시를 쓰는 분이 쓴 글이니, 여러 가지 낱말을 섞어서 쓸 만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꽃’이라는 낱말을 넣었으면, 다음에는 ‘이야기밭’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잔치’나 ‘이야기마당’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고, 그냥 ‘이야기’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얼거리를 헤아리는 어른은 퍽 드뭅니다. ‘이야기’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낱말을 하나하나 일구어서 쓰려는 마음을 키우는 어른은 참 드물어요.


  한자말 ‘대화’를 쓰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도 쓸 수 있습니다. 영어로 ‘story’를 쓸 수 있을 테고 ‘talk’를 쓸 수도 있어요. 요즈음은 ‘북 토크’라든지 ‘북 콘서트’ 같은 말을 쓰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오르지 않은 영어요, ‘한국말 아닌 외국말’이지만, 이런 영어를 거리끼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책 수다’나 ‘책 이야기잔치’쯤 될 텐데, 이처럼 한국말로 새롭게 생각을 지으려고 하는 흐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요.


  생각을 차근차근 북돋운다면 ‘책 이야기놀이’나 ‘책 이야기꽃’ 같은 이름을 쓸 수 있고, ‘책꽃 이야기꽃’이나 ‘책·이야기·꽃’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책놀이 이야기놀이’라든지 ‘책·이야기·놀이’처럼 새로운 이름을 얼마든지 지을 만합니다.


  말을 살리는 길은 쉽습니다. 나 스스로 삶을 살려서 넋을 살릴 때에는 말이 기쁘게 살아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어떤 낱말을 캐내야 ‘말 살리기’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살찌울 수 있는 말을 스스로 마음속에서 일으킬 때에 말을 살립니다.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쓰는 말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가꿀 때에 말을 즐겁게 살립니다.


  신현림 님이 쓴 글을 보면 ‘계속(繼續)’이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끊이지 않고 이어 나감”을 뜻한다고 해요. 이 한자말을 쓰는 일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한번 돌아보셔요. “나는 끊이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워”처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꽃을 자꾸 피워”나 “나는 이야기꽃을 그대로 피워”나 “나는 더 이야기꽃을 피워”나 “나는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워”나 “나는 곱게 이야기꽃을 피워”처럼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느 낱말을 써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실타래가 아닙니다. 때와 곳을 더 넓게 살피면서 생각을 한껏 북돋울 낱말을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실마리입니다.


  한국말이 한자말보다 낫기 때문에 한국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쓸 뿐이면서, 한국말로 넋과 삶을 아름답게 살찌우거나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말 한 마디를 바라보면서 내가 선 자리를 새롭게 돌아보고, 내가 선 자리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아가는 삶길을 새롭게 살펴서 가꿉니다. 말 한 마디는 내 넋과 삶과 길을 새롭게 가꾸거나 일구거나 북돋우는 밑바탕입니다.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합니다. 사회의식이나 고정관념이나 학교교육이나 제도권이나 교과서나 이론이나 지식이라는 딱딱한 틀을 내려놓고, 우리 삶과 넋과 꿈과 사랑과 숨결과 생각과 마음과 이야기를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고맙다’라는 낱말 한 마디는 “그대가 나한테 넓게 베푼 마음을 흐뭇하게 여기는 뜻”을 나타내려고 씁니다. 이리하여, 이러한 뜻을 ‘내가 너한테 나타내’려고 ‘고맙다’라는 낱말을 쓴다면, 나는 아주 스스럼없이 나와 마주한 너(그대, 이녁)한테 고개를 숙여 절을 해요. 네가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어도 ‘고맙다’ 하고 말하면서 절을 합니다. 이러한 뜻과 느낌을 담은 낱말이니, 예부터 ‘고마-’라는 말밑에 깊거나 너른 숨결이 깃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누는 까닭은 이런 숨결과 넋을 다시금 되새겨서 새로운 마음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위나 아래가 없습니다. 말에는 계급이나 신분이 없습니다. ‘높임말’이 있습니다만, 높임말은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너(그대, 이녁)를 섬기거나 모시면서 함께 아름다운 삶으로 가려고 쓰는 말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돌볼 수 있는 마음이 되려고 높임말을 씁니다. 이리하여, 높임말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한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이일 때에 높임말을 씁니다. 높임말이 아닌 여느 말에도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마음을 담을 수 있으니, 서로 나이가 많이 벌어지더라도 ‘여느 말’로 따사로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한식구끼리는 높임말을 거의 안 쓰지요. 한식구끼리는 으레 ‘여느 말’을 써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가 ‘여느 말’로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식구끼리는 ‘나이’를 헤아리지 않고 ‘사랑’을 헤아리기 때문에, 여느 말을 쓰면서도 무척 따스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도 서로 ‘나이’가 아닌 ‘사랑’을 살피기 때문에, 높임말 아닌 여느 말을 쓰면서 언제나 웃음꽃이 피고 기쁜 노래가 흐릅니다.


  말결을 살피면서 마음결을 살립니다. 마음결이 살아나면 삶결이 살아납니다. 삶결이 살아날 때에 꿈결과 사랑결이 함께 살아납니다. 새롭게 살아난 꿈결과 사랑결에 따라 따사롭고 넉넉한 이야기결이 태어납니다. 아주 조그맣다 싶은 낱말 한 마디에서 모든 숨결이 새롭게 피어납니다. 4348.3.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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