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물이 뒤늦게



  마당 한쪽 꽃밭에 돌나물이 일찌감치 올라와야 했으나 별꽃이 먼저 싹이 터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바람에 돌나물은 옆으로 밀리고 밀린 끝에 이제서야 겨우 고개를 내민다. 올 삼월에는 돌나물을 아직 맛보지 못한다. 이만큼 돋아서야 돌나물을 훑어서 먹을 수 있을까. 꽃이 피어서 씨앗을 퍼뜨리도록 그냥 두어야 하지 않을까. 별꽃나물이 스러진 뒤에 돌나물이 비로소 기지개를 켤는지 모른다. 슬슬 별꽃나물이 씨앗을 내놓으면서 흙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올 테지. 토실토실 싱그러운 풀줄기가 차츰 흙빛을 덮는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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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씨앗주머니는 벌써



  사월로 접어들면 제비꽃은 꽃송이는 진작 져서 없고, 씨주머니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씨주머니에도 깨알보다 작은 제비꽃씨가 톡톡 터져서 퍼지거나 개미가 바지런히 주워서 가져가서 텅 비기 마련이다. 아직 몇 톨 남은 제비꽃씨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제비꽃 잎사귀를 살짝 들추면 어김없이 개미가 오글오글 부산하다. 이제 사월에는 제비꽃이 거의 다 졌으니 앞으로 얼마쯤 뒤면 다시 제비꽃이 필까. 늦여름에 필까, 이른가을에 필까, 아니면 한겨울에 다시 필까. 풀숲에서도 피지만, 돌틈에서 많이 돋는 제비꽃을 바라본다. 쪼그려앉아서 꽃대와 잎사귀와 씨주머니한테 인사를 한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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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면 1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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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9



첫걸음을 내딛으려는 꿈

― 유리가면 1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아기가 첫걸음을 뗍니다. 아기는 걷고 싶기 때문에 첫걸음을 뗍니다. 첫걸음을 뗀 아기는 몇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빠지거나 주저앉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기운을 내어 일어서려 합니다. 날마다 더 기운을 내고 또 기운을 내어 두 걸음과 세 걸음을 잇달아 내딛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한참 지났어도 어떤 일이든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잘 하니까 어떤 일이든 그야말로 기운차게 뻗습니다. 잘 못하는 사람은 잘 못하니까 어떤 일이든 주눅들 수 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이 일 저 일 맞아들입니다.


  어느 일을 맞아들이건, ‘잘 할까, 못 할까’를 따지면, 나는 늘 ‘잘 할는지, 못 할는지’와 같은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어느 때에는 잘 하겠지만, 어느 때에는 잘 못하겠지요. 어느 때에는 잘 하면서 기쁠 테지만, 어느 때에는 잘 못하면서 슬플 테지요.



- “나, 할 거야! 몽땅 배달할게!” “마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호낮서 120군데나 배달할 순 없어!” “난 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꼭 〈춘희〉 입장권을 줘.” (23쪽)

- “단념해. 너한테 연극 구경은 과분해. 배달이나 하는 주제에 건방지게.” (34쪽)

- “어떻게 비비 역을 연구했지?” “연구라니, 그런. 단지 TV나 코미디 같은 걸 보고.” “그렇다면 넌 사람들 흉내를 내고 있는 것뿐이야. 비비를 연기하는 건 너야. 비비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비비의 가면을 쓸 수가 없는 거야.” (84쪽)





  걸음은 잘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꼭 뚜벅뚜벅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굳이 반듯하게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걸음은 그저 걸으면 됩니다. 이렇게 걷든 저렇게 걷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빨리 걷든 느리게 걷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갈 길을 걸어가면 돼요.


  걸어가다가 넘어질 수 있어요. 걷다가 담벼락에 꽈당 부딪힐 수 있어요. 가던 길이 끊어져서 멀리 에돌아 가야 할 수 있어요. 아무튼 다 됩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어요.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으면 됩니다.


  내 삶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누구나 제 길을 제 힘으로 가면 되는데, 때때로 ‘제 숨결’을 잊거나 놓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만 쭈뼛거립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바보스럽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면서 그만 움찔합니다.



- “하지만 알고 계세요? 마스미 씨, 오노데라 씨. 저 애는, 〈춘희〉의 무대를 단 한 번 본 것뿐이에요. 그런데도 3시간 반짜리 무대의 대사를 한 마디,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 포즈까지 통째로 암기해 버린 겁니다.” (56∼57쪽)

- ‘연극! 연극에 나간다! 내가! 처음이야! 남에게서 칭찬받은 것은.’ (61쪽)

- ‘선생님이 날 비비 역으로 정한 건 우리 집이 가난하기 때문? 다른 역할은 의상비가 많이 드니까?’ (63쪽)





  나는 다른 사람 눈치에 따라 걸어야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 걸음걸이가 예쁘면, 참말로 내 삶도 예쁘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 걸음걸이가 미우면, 참으로 내 삶도 밉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내 젓가락질이 서툴어 보인다고 하면, 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젓가락질을 못 하니까 밥을 못 먹을까요? 내 삽질이 어설퍼 보인다고 하면, 나는 삽질을 ‘잘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삽질을 못 하니까 나무를 못 심을까요?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두발자전거를 도무지 못 타는 사람이 있어요. 두발자전거를 도무지 못 타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은 자전거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연기하기에 따라서 이 역은 주역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될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무시당하게 될지도.” “아줌마.” “말해 두는데 마야, 배역의 좋고 나쁨은 문제가 안 돼. 맡겨진 역을 멋지게 연기해 내면 되는 거야. 무대 위로 한 걸음 나서면, 그때부터 넌 이미 네 자신이 아닌 거다.” (64쪽)

-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쓴다. 그 여자의 기분으로, 그 여자의 성격으로, 그 여자의 마음으로!’ (66쪽)

- 기타지마 마야, 13세.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자그마한 중국요리집의 보잘것없는 더부살이 종업원. 그 아침, 뭐 하나 볼 것 없는 이 작은 소녀의 가슴속에 정열적인 불새 한 마리가 눈을 떴다.“ (71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새롭게 읽습니다. 아직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유리가면》인데, 1970년대에 처음 나온 이야기를 2010년대에 새삼스레 다시 들춥니다. 예전에 다 읽은 이야기이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천천히 첫 쪽부터 새롭게 읽어 봅니다.


  《유리가면》에는 커다란 기둥 구실을 하는 아이가 둘 나옵니다. 아이 하나는 스스로 언제나 기쁨을 노래하면서 삶을 누리려 하면서 ‘둘레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아이 둘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피를 되새기면서 더 빼어난 연극배우가 되려는 꿈을 키웁니다. 아이 하나는 기쁨과 노래와 삶으로 연극길을 걷습니다. 아이 둘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피를 더 끓어넘치게 하려는 삶으로 연극길을 걷습니다.



- 극단원들의 비웃는 소리 따위는 마야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유미의 훌륭한 연기만이 온통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을 뿐. (138쪽)

- “봄밤의 공기는 정말 상쾌해. 잠이 싹 달아나네. 뭐 좋아! 첫 열차가 다닐 때까지 철길을 따라 걸어가지 뭐. 자! 도쿄를 향해 출발!” (158쪽)

- “어째서 좀더 관대한 눈으로 이 애를 봐주지 않는 겁니까? 왜 이 애 안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겁니까? 이 애가 아무 쓸모도 없는 애인지 어떤지, 나라면 단 하나의 재능이라도 찾아내서 키워 줄 수 있어요.” (178쪽)




  두 갈래로 다른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낫거나 뛰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갈래로 다른 두 사람은 그저 두 갈래로 다를 뿐입니다. 다른 아이 눈치를 본다면 내 연극길을 갈 수 없습니다. 다른 아이가 잘 하는구나 싶은 대목을 흉내내려 한다면 내가 잘 하는구나 싶은 대목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 본 연극을 통째로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대단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그저 ‘한 번 본 연극을 통째로 외울’ 뿐입니다. 어느 아이는 연극을 수없이 보았어도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못 외울 수 있습니다.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못 외운다고 해서 연극을 못 하거나 어설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사를 잘 못 외울 뿐입니다.


  값진 냄비를 써야 밥을 더 잘 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냄비만 써야 밥을 더 잘 하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우리 손길로 짓고, 우리 마음으로 지으며, 우리 사랑으로 짓습니다. 손길과 마음과 사랑이 고루 어우러지는 살림이 된다면, 어떤 냄비를 쓰고 어떤 불을 지피더라도 맛있는 밥 한 그릇을 짓습니다.




- “얼굴은 배우의 생명이에요.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 그 아이의 일생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180쪽)

-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는 것뿐! 그리고 지금은 그 첫걸음!” (185쪽)



  저마다 꿈으로 나아가려고 첫걸음을 뗍니다. 첫걸음이 놀랍도록 대단해서 눈부실 수 있고, 첫걸음이건 두걸음이건 세걸음이건 그저 자빠지거나 넘어지기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아랑곳할 일은 없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나는 내 길을 가면 되고, 내 길을 사랑하면 되며, 내 길을 씩씩하게 보듬을 수 있으면 됩니다.


  첫발을 내딛으면서 두발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처음 한 번 씩씩하게 발을 내딛었으면, 이제부터 언제나 새롭게 한 발씩 내딛을 수 있고, 바야흐로 걸음이 됩니다.


  걸음은 어설퍼도 됩니다. 걸음은 매끄럽거나 멋있어도 됩니다. 어떤 걸음이라 하든,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어디로 걷는가를 알면 됩니다. 내가 걷는 길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으면 됩니다. 꿈으로 가는 길에서는 늘 웃음노래가 환하게 퍼집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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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4-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린 시절 잠 안 자고 읽었던 그 만화네요.

파란놀 2015-04-10 22:13   좋아요 0 | URL
연극과 삶을 그리는
앞자락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느껴요.
마무리를 안 짓는 요즈음은... 여러모로 아쉽고요...
 

고흥집 75. 집고양이 되고 싶은 (2015.4.9.)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다. 이 아이들한테는 우리 집이 저희 보금자리이다. 어른으로 큰 뒤에도 우리 집 둘레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미 고양이는 멀리 떠난 듯한데, ‘새로운 어른 고양이’는 자꾸 섬돌에 앉아서 쉬거나 자고, 마루문을 열어 놓았으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고, 마당에 천막을 쳐 두면, 이 천막에도 슬그머니 들락거린다. 다른 들고양이나 마을고양이는 눈을 마주치면 움찔하다가 내빼기 바쁜데, ‘우리 집에서 태어난 들고양이’는 눈이 마주쳐도 빤히 바라보다가 먼저 고개를 옆으로 살며시 돌린다. 이러면서 니아아아아옹 하고 오래도록 노래한다. 너는 집고양이가 되려는 셈이니?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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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602) 쇠북


칼자루와 녹슨 못과 철조망을 녹여서 / 큰소리 울려 퍼지는 / 쇠북 하나 만들려 하네

《서홍관-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서,1989) 107쪽



  한국말사전에서 ‘쇠북’을 찾아보면 “‘종(鐘)’의 옛말”로 풀이합니다. 오늘날 쓸 낱말이 아니라고 다룹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오얏’을 찾아보아도 “‘자두(紫桃)’의 옛말”로 풀이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일입니다. ‘쇠북’이나 ‘오얏’은 옛말로 다루어야 할까요? 이 낱말이 옛말이라면 얼마나 예스러운 말일까요? 언제부터 이 낱말을 안 썼다고 할 만할까요?


  한국말사전에서 ‘종(鐘)’을 찾아보면 “어떤 시간 또는 시각을 알리거나 신호를 하기 위하여 치거나 흔들어 소리를 내는 금속 기구”로 풀이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둘레에 알리도록 소리를 낼 적에 쓰는 연장이 ‘쇠북’이거나 ‘종’인 셈입니다.


 쇠북 . 가죽북 . 종이북

 큰북 . 작은북 . 모둠북 . 둥글북


  북은 여러 가지로 만듭니다. 쇠로 만들 수 있고, 가죽이나 종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북은 크게 만들 수 있고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북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고, 둥글거나 세모낳거나 네모낳게 만들 수 있어요. 어떻게 만들려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북이 태어나고, 어떻게 쓰려 하느냐에 따라 새삼스러운 북이 나옵니다.


  여러모로 살피면, 요즈음은 ‘북’을 친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고, ‘드럼(drum)’을 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잡이’나 ‘북재비’는 찾아보기 어렵고, ‘드러머’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서는 흔히 ‘종지기’를 말하는데, ‘쇠북지기’나 ‘쇠북꾼’이나 ‘쇠북잡이’나 ‘쇠북재비’는 나올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쇠북소리’나 ‘쇠북노래’ 같은 낱말은 태어날 수 없을는지 궁금합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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