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90] 우리 집 꽃나무

― 아름다운 지구별을 꿈꾸며



  나는 도시에서 지낼 적에 큰아이를 데리고 날마다 골목마실을 다녔습니다. 큰아이가 마음껏 뛰거나 달릴 수 있는 골목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큰아이가 꽃과 풀과 나무를 언제나 아끼고 어루만질 수 있는 골목밭을 찾아다녔다고 할 만합니다. 한 가지를 더 헤아리면, 아이와 함께 나도 꽃과 풀과 나무를 마음에 담으면서 아름다운 생각으로 삶을 가꾸고 싶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작은아이가 태어났고, 두 아이는 날마다 ‘우리 집 꽃’과 ‘우리 집 풀’과 ‘우리 집 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 집 꽃을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쓰다듬을 수 있고, 우리 집 나무와 아침저녁으로 인사할 수 있어요.


  이웃집 꽃나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집 꽃나무도 사랑스럽지요. 이웃집 꽃나무는 이웃집까지 찾아가야 비로소 마주하면서 바라볼 수 있어요. 우리 집 꽃나무는 우리 집 마루에 앉아서도 바라볼 수 있고, 우리 집 마당에 서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울 적에도 우리 집 나무가 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며 춤추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온갖 새가 우리 집 나무에 찾아들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내가 아이들과 이곳에서 돌보면서 사랑하는 나무는, 내 이웃한테는 ‘이웃집 나무’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늘 바라보며 아끼는 나무는, 내 동무한테는 ‘우리 모두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는 나무’가 됩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모든 사람이 저마다 ‘우리 집 꽃나무’를 누리면서 아낀다면, 이 지구별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가만히 꿈을 꿉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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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꽃씨 하나 창비시선 80
서홍관 지음 / 창비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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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6



제비춤 만나는 새봄

― 어여쁜 꽃씨 하나

 서홍관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9.9.15.



  요즈음 도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제비를 볼 길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도시로 찾아오는 제비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비는 지난해에 묵은 제 둥지로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도시는 끝없이 재개발과 재건축을 할 뿐 아니라, 제비 같은 새가 잡아먹을 애벌레나 날벌레가 사라져요. 자동차와 공장이 지나치게 많고, 풀숲이나 나무숲이 자취를 감추지요. 이런 도시는 제비뿐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도 메마르거나 팍팍하기 일쑤입니다.



.. 이제 네가 바라볼 것은 / 늦겨울 파릇하게 자라나는 보리싹과 / 봄날 강언덕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 들쑥무더기 같은 것들이니 ..  (민들레 2)



  제비가 찾아갈 수 없는 도시이지만, 도시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크기가 줄어드는 도시는 없습니다. 크기를 줄이려 하는 도시도 없습니다. 도시로 몰리는 사람은 끝없이 늘기만 합니다. 도시에 깃든 사람은 도시에서 빠져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도시에 발을 들였으면, 죽어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도시에만 머물려 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바퀴벌레와 모기와 파리를 빼고는 도무지 도시에서 못 살겠다고 하는데, 왜 사람은 도시로 몰리려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바퀴벌레와 모기와 파리를 빼고는 도시에서는 숨이 막혀서 거의 다 죽어 버리거나 미쳐 버리는데, 왜 사람은 도시를 붙잡고 안 놓으려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어쩌면, 사람도 도시에서 죽어 버리거나 미쳐 버린 탓에 도시를 못 벗어나지는 않을까요.



.. 이 나라에서는 /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연다고 / 총경비 2조 4천 4백억원이나 들여서 / 외국인선수들 숙소에는 냉난방과 오락시설까지 갖춰놓고 / 우리 산업근로자들의 작업장에는 / 배기시설 안전설비도 안해놓고 / 수은을 먹건 카드뮴을 먹건 내버려둔다면서요 ..  (송면이가 떠나가요)



  시골에서 살기에 제비를 만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예전에는 손으로 짓는 시골일이었으나, 이제는 기계로 만드는 시골 ‘농업’이나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은 온통 기계투성이에 비닐투성이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사람 손길을 타는 땅은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온갖 곳에 농약을 뿌려대니, 사람이 손을 뻗어 흙을 만질 일이 없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마늘이나 파를 뽑을 적에는 손을 쓰겠지요. 그러나 농약투성이 밭뙈기와 논자락을 맨 살갗을 대면서 만지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도 논밭에서 살 수 없고, 개구리와 새도 논밭에서 살 수 없습니다.



.. 들길을 걷노라면 / 찰랑거리는 논물에는 / 물달개비 향기가 좋은데 / 잎잎이 붙은 물잠자리들이 / 달빛에 잠이 깰까 걱정되네요 ..  (넋 건지기)



  서홍관 님이 빚은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사,1989)를 읽습니다. 시집 이름 그대로 ‘어여쁜 꽃씨’를 그리는 이야기를 묶은 책입니다.


  꽃씨는 참으로 어여쁩니다. 새로운 꽃을 품은 씨앗이니 어여쁠 수밖에 없습니다. 꽃씨처럼 사람씨도 참으로 어여쁩니다. 비록 오늘날 이 지구별에는 전쟁무기가 끔찍하게 넘치고, 바보짓을 하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예술과 과학과 종교가 득실거리지만, 이러한 바보짓을 걷어내어 마음바탕을 읽을 수 있다면, 우리 가슴에는 아름다운 사랑씨가 있는 줄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바탕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별에 끔찍한 전쟁이 안 멈추리라 느껴요.



..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 총이 없어 도망쳐 다니는 / 우리집 아이가 안돼 보이기도 하고 / 장난감 총을 가졌다고 위협하고 다니는 / 옆집 꼬마가 괘씸하기도 하다 ..  (장난감 총)



  어른들은 스스로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스스로 손에 쥡니다. 어른들은 전쟁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한테 팝니다. 어른은 참말 서로 죽일 수 있는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아이는 놀이로 서로 죽이는 버릇을 일찌감치 몸에 익힙니다.


  남북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전쟁무기가 남북에 가득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총부리를 겨눕니다. 서로 아끼려 하지 않으니 탱크와 전투기와 폭탄과 미사일을 엄청나게 만듭니다. 서로 보살피거나 헤아리려 하지 않으니 군대를 키우고, 젊은이는 군대에서 썩도록 내몹니다.



.. 청무우 다발 위에는 청무우눈꽃 / 쌓아놓은 볏단 위에는 볏단눈꽃 / 쓰레기더미 위에는 쓰레기눈꽃 /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탱자나무눈꽃 ..  (눈꽃)



  우리한테 핵무기가 있어야 우리가 느긋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핵발전소가 있어야 우리가 전기를 잘 쓸 만하지 않습니다. 핵발전소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세우는 시설입니다. 핵발전소가 있어서 핵쓰레기가 나와야, 이 핵쓰레기로 핵무기를 만들어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핵발전소를 붙잡는 까닭은 군대와 전쟁무기를 붙잡는 까닭과 똑같습니다. 정부에서 군대와 전쟁무기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를 없앨 수 없습니다. 다른 전쟁무기는 그대로 있는데 핵무기만 없앨 수 있지 않아요. 모든 전쟁무기를 한꺼번에 없애려고 해야 비로소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없앨 수 있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도시이든 시골이든 우리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이 되어 기쁘게 노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손길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아름답게 노래를 부를 줄 알 때에, 제비는 도시와 시골 곳곳에 기쁘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제비가 돌아와서 깃들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을 가꿀 노릇입니다.



.. 나라에서는 / 철이네 식구들더러 / 핵우산의 보호 아래 / 편안히 잠들라 했다. // 어느 날 / 큰 나라들이 전쟁을 시작했고 / 서로 단추 몇 개를 누르더니 / 철이네 식구들은 / 곤한 꿈꾸다 사라져버렸고 // 그 후 수십 년 동안 / 그 나라에는 / 먼지만 오래도록 쏟아져내리더니 / 아직껏 풀도 나지 않고 / 새도 울지 않는다고 한다 ..  (핵우산)



  우리 보금자리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리기 좋은 곳이 아니라,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남북녘 어디에서나 제비춤을 맞이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교사가 되며, 누구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를 쓰고, 누구나 노래를 부르며, 누구나 삶을 짓는 아름다운 숲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월에 사월꽃을 그리면서 밭자락에 어여쁜 꽃씨를 심을 수 있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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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책넋 돌보기

39. 새로 읽는 책, 다시 읽는 책



  누구나 저녁을 맞이하고, 누구나 밤을 보내며, 누구나 새벽을 맞이합니다. 누구나 아침을 열고, 누구나 한낮 햇볕을 쬐며, 누구나 하루 내내 바람을 마십니다. 흐르는 시간을 멈춘 채 잠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흐르는 시간을 타면서 하루하루 지내요.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해와 달과 날이 늘 다릅니다. 언제나 다르게 흐르는 하루이고, 늘 다르게 찾아오는 아침이자 낮이며 저녁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고, 오늘과 모레가 같을 수 없어요. 우리는 노상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삶을 꾸린다고 할 만합니다.


  똑같은 하루는 없지만, 똑같은 하루인 듯이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달력에 적힌 날짜는 다르지만 어제와 오늘 이곳에서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철마다 날씨가 달라도 봄이건 여름이건 똑같은 일을 똑같은 때에 똑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면, 철이 달라도 달라지는 줄 못 느낄 수 있어요. 이를테면,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한 해 내내 똑같은 기계를 손에 쥐고 똑같은 물건을 찍어야 합니다.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도 한 해 내내 똑같은 길을 몰아야 합니다. 비나 눈이 온다면 날씨가 다를 뿐, 해야 하는 일은 똑같아요.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떠할까요? 학교를 오가는 하루는 날마다 똑같을까요? 날마다 똑같은 수업이고 똑같은 공부이며 똑같은 시험일까요? 똑같은 시험문제를 똑같이 외워서 똑같이 ‘안 틀리고 다 맞히도록 몸을 길들이는’ 하루를 보내는가요?


  리 호이나키 님이 에스파냐에서 ‘카미노 걷기’를 한 이야기를 담은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달팽이,201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걷기’는 오늘날 온 지구별을 두루 가로지르면서 퍼지는 ‘문화’가 됩니다. 한국에서도 제주 올레길 같은 시골길을 ‘오직 두 다리에 기대어 걸어서 다니는 나들이(여행)’를 아름다운 문화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매우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걷기 여행’이 따로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예전에는 여행이든 마실이든 누구나 으레 두 다리로 걸으면서 다녔거든요. 멧등성이를 타거나 봉우리를 오를 적에도 스스로 걸어서 다녔고, 옆마을에 가든 먼 곳까지 가든 마땅히 걸어서 다녔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경제생활이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타야 하고, 그럼으로써 대지는 파괴된다. 또 그런 자동차에 실어 나르는 것에 의지하면 할수록 땅은 점점 더 황폐해진다. 이것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없을까? 한정된 자연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152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자동차를 타기 때문에 나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두루 타는 오늘날 ‘따로 걸어서 다니는 여행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자동차만 타서는 여행이나 운동이 안 되는 줄 알아차리는 사람이 생겼다고 할까요. 자동차는 이곳에서 저곳까지 내 몸을 빠르게 옮겨 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지만, 이곳과 저곳 사이에 있는 수많은 삶을 찬찬히 바라보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까지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동차는 ‘교통’으로서 빠르게 다니도록 돕지만, 빠르게 다니는 만큼 삶읽기하고는 동떨어지는 셈입니다. 자동차를 타면 탈수록 이웃하고 멀어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더 먼 곳까지 오갈 수 있으나, 바로 옆에 있는 이웃하고 만날 틈은 없어요. 자동차를 타면 한식구가 어디이든 수월하게 다닐 수 있으나, 막상 자동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어려워요. 자동차에서는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없으니까요.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에서 멀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 계략 때문에 당신이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텔레비전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아닐까 한다(83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텔레비전과 손전화가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내 방에 앉아’ 온갖 일을 할 수 있고,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굳이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텔레비전과 손전화만 있으면 걱정이 없어요.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남 이야기’만 들여다보느라 ‘내 이야기’를 손수 짓는 길하고 멀어져요. 손전화를 켜서 목소리만 주고받는 사이, 내 동무와 이웃하고 숨소리를 느끼면서 바람과 햇살과 하늘과 땅을 함께 살피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새로 지은 최근 건물들은 모든 것이 엄격하게 표준화되어 있다.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하지만 옛 건물들을 인간의 손으로 직접 지은 것이다 … 오늘날 임금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건축 자재들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예술적 재능과 상상력을 겸비한 옛날 장인들은 끊임없이 돌 하나하나를 짜 맞춰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 냈다(438∼439쪽).” 같은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학교에서 모든 교실은 똑같이 생깁니다. 다르게 생긴 교실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입히려는 옷은 모두 똑같습니다. 크기만 다를 뿐 모든 학생은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머리카락 길이마저 똑같이 맞춥니다. 가슴에 붙이는 이름표는 다를 테고, 얼굴 생김새나 살빛은 조금씩 다를 테지만, 멀리서 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요새는 너나 할 것 없이 ‘흰 살결’이 되려고 애씁니다.


  우리한테는 똑같은 하루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는 모두 다른 날이고, 한 해가 지나면 새로운 해가 찾아옵니다. 열세 살 나이는 꼭 한 번이고, 열여섯 살 나이도 꼭 한 번입니다. 어른도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은 꼭 한 번만 누립니다. 우리 모두 어느 하루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다니는 길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거의 똑같이 생깁니다. 학교와 회사와 가게도 어디나 거의 똑같이 생깁니다. 교과서와 텔레비전과 손전화에 나오는 이야기도 어느 고장이든 다 똑같습니다. 아파트도 똑같이 생기고, 자동차도 똑같이 생겨요. 고속도로도 똑같이 생기고, 책방도 똑같이 생기며, 빵집이나 찻집이나 닭집조차 ‘똑같은 이름이 걸린 가게’만 퍼집니다. 빵집지기마다 다 다른 손맛을 살려서 빚는 빵을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예전에는 시골이나 도시 모두 ‘다 다른 길’이었습니다. 마을사람이 손수 닦은 골목이나 고샅은 마을마다 다 다른 모습이며 얼거리였어요. 시골 논밭도 땅에 따라 다 다른 모습이었고, 살림집과 마당과 꽃밭도 사람마다 다 달리 가꾸었어요. 오늘날에는 시골 논밭을 거의 똑같은 네모난 틀로 짜맞추었고, 집을 손수 짓는 사람이 거의 사라져서, 건설업자가 똑같이 만든 집을 돈만 치러서 장만하거나 빌립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스스로 조금씩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숨결이고 사람인데, 학교와 사회와 마을 어디에서나 ‘똑같은 틀’로 우리를 가두려 한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여행을 다녀도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훌쩍 다녀오는 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천천히 걸으려 합니다. 누군가는 더 빨리 걸을 수 있고 누군가는 더 느리게 걸을 수 있어요. 걷다가 끝까지 못 갈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저 걷고, 걷는 만큼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아늑하게 생각을 키우려 하지요.


  똑같은 책은 없습니다. 모든 책은, 이 책을 손에 쥐어 읽는 사람들 마음씨와 눈길과 생각에 따라 ‘다 다르’면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새롭게 읽으면서 새롭게 살고, 다시 읽으면서 내 넋을 다시금 가꿉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과 함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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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604) 하나, 하나로, 한나라


죄없는 나를 왜 찌르는가 / 나를 꼭 찔러야 / 통일이 되는 줄 아느냐고 외치고

《서홍관-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사,1989) 117쪽



  한자말 ‘통일(統一)’을 이 나라에서 쓴 지 얼마나 되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한자로 지은 낱말이니 여느 시골사람은 이런 말을 쓸 일이 없었을 테지요. 나라나 겨레가 여럿으로 쪼개진 자리에서 이러한 낱말을 쓸 테니, 한국에서 이 낱말을 널리 쓴 때라면 아무래도 해방 언저리부터이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통일’을 찾아보면 “1. 나누어진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체계 아래로 모이게 함 2. 여러 요소를 서로 같거나 일치되게 맞춤 3. 여러 가지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음”으로 풀이합니다. 찬찬히 간추리자면 “하나로 모이게 함”이나 “하나가 되게 맞춤”이나 “한곳으로 모음”을 ‘통일’이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나타내는 셈입니다.


 하나되기

 하나로

 한나라


  1980년대에 ‘통일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던 이들은 곧잘 ‘하나되기’를 말했습니다. 한자말 ‘통일’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한국말로 쉽게 적으려던 낱말인 ‘하나되기’입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조금 숨통을 트었다고 할 만합니다. 군사독재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조금 걷혔기 때문입니다. 이즈음 온갖 영어가 밀물처럼 밀려들기도 했지만, 한국말을 새롭게 엮어서 즐겁게 쓰려고 하는 물결도 살몃살몃 치기도 했습니다. 이러면서 ‘하나로’라는 낱말이 곳곳에서 불거졌어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여러 곳에서 ‘하나로’를 말했고, 회사이름이나 가게이름이나 물건이름으로 이 이름이 널리 쓰였습니다.


  1970년대에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펴낸 한창기 님은 ‘韓國’이라는 이름은 뿌리가 없다면서, 이 나라와 이 겨레에 참답고 슬기로운 뿌리를 밝히는 이름을 새롭게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면서 빚은 새 이름이 ‘한나라’입니다. 우리 겨레를 일컬어 ‘한겨레’라고 하듯이, 우리 나라를 일컬어 ‘한나라’라고 할 때에 올바르다고 했어요. 이 이름은 2000년대로 넘어선 뒤 어느 정당에서 제 이름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통일이 되는 줄 아느냐

→ 하나가 되는 줄 아느냐

→ 하나로 되는 줄 아느냐

→ 한나라가 되는 줄 아느냐


  한자말 ‘통일’을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낱말을 안 써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한테 가장 알맞거나 사랑스러운 낱말을 제대로 지어서 쓰는지 안 쓰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몸 . 한마음 . 한넋 . 한생각

 한나라 . 한누리 . 한별

 한삶 . 한노래 . 한사랑


  ‘하나되기(하나가 되다)’를 생각할 수 있다면, 차츰 가지를 뻗어 “한몸이 되다”와 “한마음이 되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낱말로 추려서 ‘한몸되기’와 ‘한마음되기’도 생각할 수 있어요. ‘한넋’과 ‘한생각’이라는 낱말에다가 ‘한넋되기’와 ‘한생각되기’를 함께 생각해 볼 만합니다.


  정치 얼거리로 따지면 ‘한나라’이고, 지구 얼거리로 따지면 ‘한별’이며, 온누리(우주)로 따지면 ‘한누리’입니다.


  하나로 어우러진 삶이기에 ‘한삶’이 되면서, 한삶에서는 ‘한노래’를 부르고, ‘한사랑’을 나눕니다. 하나로 어우러진 삶으로 나아가면서 쓰는 말과 글이라면 ‘한말’과 ‘한글’이에요.


  때와 곳을 가만히 살피면 “통일이 되는 줄”은 “하나가 되는 줄”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과 ‘하나’가 서로 똑같이 쓰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 저 말 붙이지 않아도 ‘하나’라는 낱말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나눌 만해요.


 하나 . 하나님 . 한 . 한님 . 한동무

 온하나 . 온님 . 온벗 . 온사람


  해를 해님이라 하고 별을 별님이라 하듯이, ‘하나’를 ‘하나님’으로 적을 수 있고, ‘한 + 님’이라는 얼개로 ‘한님’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었으면, 서로서로 ‘한님’이라 부를 수 있고, ‘한동무’로 삼을 수 있습니다. 크게 하나가 되거나 모두 하나가 되었으면 ‘온하나’인 셈이며, 온하나가 된 사람은 서로 ‘온님’이나 ‘온벗’이나 ‘온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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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한 모습



  어른한테는 젓가락질이 대수롭지 않다. 어른한테는 옷 갈아입기가 대수롭지 않다. 어른한테는 걸음걸이가 대수롭지 않다. 어른한테는 글씨 쓰기가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젓가락질이며 옷 갈아입기며 걸음걸이며 글씨 쓰기가 모두 대수롭다. 이리하여, 혼잣힘으로 바지를 꿰려고 용을 쓰는 몸짓이란 더할 나위 없이 대견하다. 손과 발과 몸에 차근차근 힘살이 붙이면서 아이는 저마다 제 나이와 결에 맞게 스스로 옷을 입거나 벗을 수 있다. 4348.4.1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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