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94



거짓말과 참말 사이에서

― 라이어 게임 1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6.10.25.



  참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대로 말을 하면 참말이 됩니다. 거짓말은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감추거나 가리거나 고치거나 바꾸어야 비로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참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부드럽게 흐릅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대로 하는 말이니까 참말입니다. 이와 달리 거짓말은 안 부드럽습니다. 거짓말을 하자면 이리 꾸미거나 저리 꾸미기 마련입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 없는 말이 거짓말이니, 이리 막고 저리 고쳐서 꺼내는 거짓말은 그야말로 거칠거나 엉성하기 마련입니다.



- ‘지금 나의 작은 소망, 그것은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부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는 절대 이 말을 할 수 없다.’ (13∼14쪽)

- ‘무서웠다. 날마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1억 엔을 숨긴 서랍 앞에서 한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나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21쪽)




  거짓말은 자꾸 커집니다. 처음 거짓말을 할 적에는 살짝 고비를 넘기려는 마음이었을는지 모르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고비는 다시 찾아오고, 고비를 다시 넘기려고 하다 보니 더 크게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자꾸자꾸 커지고 고비도 자꾸자꾸 커져요. 이리하여 나중에는 어찌저찌 손을 쓸 길이 없다고 할 만해요.


  참말도 자꾸 커져요. 처음에 참말을 할 적이든 나중에 참말을 할 적이든 다 똑같습니다. 자꾸자꾸 커지는 참말은 커지면 커질수록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로 퍼지면서, 우리 마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도록 북돋웁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참말을 하는 사람은 참말이 북돋우는 기운을 받아서 마음이 가볍습니다. 서로서로 ‘커지는 것’은 똑같은데, 거짓말은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고, 참말은 우리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 “왜 그랬어?” “아키야마 씨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 비정상이야. 보통 사람은, 눈치를 챈다고. 두세 시간쯤 지나면, 속았다는 걸.” “네? 뭐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미련스러우니 속고 다니는 거지!” (61쪽)

- “알 게 뭐야! 네 아버지가 어떻게 됐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나는 남의 일 같은 건 일절 관심 없으니까!” (72쪽)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빚은 만화책 《라이어 게임》(학산문화사,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만화책을 바탕으로 영화와 연속극이 나왔습니다. 만화는 퍽 오랫동안 나오다가 갑작스레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고들 말이 많습니다. 아무튼, 《라이어 게임》은 거짓말처럼(?) 첫 권이 나와서 거짓말처럼(?)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은 너무나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참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면서 저마다 삶을 새롭게 이끌려고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는 만화이니까, 언제나 거짓말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는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고, 저 사람이 하는 거짓말도 생각해야 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다르게 하는 거짓말을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그만, 이 만화를 그리는 분도 이녁 삶에서 거짓말만 가득 넘치고야 말 수 있습니다.



- ‘울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뭣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내 편을 들어 주니까.’ (85쪽)

- “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시면 안 돼요? 이 작전의 의도를. 아키야마 씨는 작전이라고 했지만, 날이면 날마다 하는 말이라곤 그냥 선생님의 집을 감시하는 것뿐. 솔직히 저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무의미, 하다? 사기꾼이 즐겨쓰는 수단 중 하나는, ‘상대를 이상한 심리 상태로 만들어서 속인다’라는 거야.” (96∼97쪽)




  거짓말은 삶을 살리지 못합니다. 거짓말로는 삶을 살릴 수 없습니다. 봄인데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겨울인데 겨울이 아닌 봄이라고 거짓말을 어떻게 될까요. 풀씨도 나무씨도 모두 죽겠지요. 풀씨와 나무씨가 모두 죽으면,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모두 죽고 말아요. 철에 맞추어 제대로 씨가 새로 트지 못하면, 지구별은 그저 시커먼 죽음더미가 될 뿐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란 없습니다. 착하면 착한 말일 뿐이고, 거짓이면 거짓인 말일 뿐입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말일 뿐이요, 거칠면 거친 말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름답게 들린다고 해서 늘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거칠게 들린다고 해서 안 사랑스러운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삶은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닙니다. 삶은 언제나 속사랑이요, 속마음이에요. 그러니까, “라이어 게임”에 휩쓸리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습니다.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한두 번쯤 옆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10억 원이나 100억 원을 손에 거머쥐면 기쁠까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거머쥔다면, 다른 사람도 나한테 눈속임이나 말속임으로 큰돈을 가로챌 수 있어요.



- “후지사와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글쎄, 1억 엔의 빚을 지게 됐으니, 평생을 바쳐 갚든가, 워낙 수상한 단체가 벌인 일이니 뒷세계로 팔려 가든가, 어찌 됐든 앞으로 그 작자의 인생은, 암흑이지.” (169쪽)




  거짓말은 거짓말로 갑니다. 참말은 참말로 갑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갑니다. 미움은 미움으로 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오늘 내가 두 손으로 고운 씨앗을 심으면 고운 풀이 돋고 고운 열매를 얻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으려 하는지는 바로 내가 생각합니다. 네가 시켜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네가 이끄는 대로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내 뜻에 따라 내 꿈을 심습니다.


  한꺼번에 큰돈을 손에 쥐려고 하는 생각이라면, 큰돈을 손에 거머쥐는 만큼 내 삶에서 잃는 것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큰돈을 얻으면서 사랑과 꿈을 잃는다면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큰돈을 얻느라 이웃과 동무를 잃는다면 삶이 기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보살피는 따사로운 삶이 없이 돈만 두 손에 쥘 적에는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삶과 사랑과 웃음입니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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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이어게임..잘봤죠.
뭐..저런게 있어..했는데 만화가 원작인..드라마는 이중 구조를 가져가던데.
아무튼..선생님의 말로는 슬펐어요.

파란놀 2015-04-17 11:38   좋아요 1 | URL
연속극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원작만화가
끝을 어영부영 갑자기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장소] 2015-04-1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선생님스토리가 끝이 아니고.몇개의 게임이 더 진행되요.
진짜 라이어게임을 하는 그 뒷 세계랑..아마도 시즌2나올듯..
 

살림순이 22. 나도 청소 잘해 (2015.4.15.)



  우리 집 살림돌이가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울 적에 그릇 네 개에 물을 조금씩 받아서 막대수세미로 조금씩 적신 뒤 빨래터 바닥 이끼를 걷는다면서 애쓴다. 응? 그냥 막대수세미로 문지르면 될 텐데? 그릇에 물을 받아서 수세미를 적셔서 비비는 몸짓은 어디에서 봤니? 네 아버지는 이런 수세미질을 한 적이 없을 텐데?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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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16 23:5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청소도 잘 하고 사랑스럽네요.
마을 공동 빨래터를 텔레비젼에서만 봤는데 아직도 존재하는군요.
신기해요.

저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참 부럽네요.

파란놀 2015-04-17 04:36   좋아요 0 | URL
이제 마을 빨래터는...
마을에서 `흉물`이거나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다들 집에서 수도를 쓰고 세탁기를 쓰거든요.
우리 마을에는 우리 아이들이 있어서
흉물이 아닌 놀이터가 됩니다~ ^^

BRINY 2015-04-17 10:50   좋아요 0 | URL
저희 시골은 벌써 오래전에 빨래터를 없애버렸던데, 아이들이 있었다면 좋은 놀이터였겠네요.

파란놀 2015-04-17 11:39   좋아요 0 | URL
네, 젊은이와 아이가 없으면
마을에서는
이 빨래터 물이끼를 걷기
너무 번거롭고 힘들어서
다들 쉽게 없애고 마셔요..

BRINY 2015-04-20 11: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어릴 때는 마을 청년들이 빨래터 대청소를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다들 도시로 나가버린지 오랩니다. 저희 할아버지네 시골집도 평일에는 빈집입니다...

파란놀 2015-04-20 13:11   좋아요 0 | URL
예, 그렇군요. 참말 젊은 사람들이 빨래터 물이끼를 걷어야지요. 늙은 할머니들한테 이 일을 맡기기란... 여름이건 겨울이건 참 죄송한 노릇이에요...
 

시골아이 139. 머리에 이고 (15.4.15.)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으러 간다. 이제는 굳이 아이들더러 이것저것 함께 들자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나도 들래!’ 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살림순이요 시골순이도 막대수세미뿐 아니라, 물 풀 적에 쓰는 그릇을 제가 들겠다고 말한다. 한손에는 막대수세미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그릇꾸러미를 들고는 머리에 인다. 시골에서 이웃 할매가 늘 보여주는 모습이면서 아이가 저절로 배우고 따라하면서 누리는 어여쁜 삶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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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50 떨잎·가랑잎·진잎



  잎사귀가 떨어집니다. 바람이 불어 그만 톡 끊어져서 떨어집니다. 아직 푸른 잎사귀인데, 그만 바람을 맞고 떨어집니다. 때로는 벌레가 갉아서 떨어집니다. 때로는 새가 쪼거나 밟아서 떨어집니다. 어느 때에는 아이들이 장난스레 놀다가 떨어지고, 어른들이 툭 치고 지나간 탓에 떨어집니다. 더 햇볕을 쬐면서 푸르게 노래하고 싶던 잎사귀는 몹시 아픕니다. 서운하고 서러우며 슬픕니다. 그래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잎, ‘떨잎’은 한동안 푸른 빛을 고스란히 지킵니다. 다시 나뭇가지에 붙고 싶습니다.


  ‘가랑잎’은 다 마른 몸뚱이인데 안 떨어지기도 합니다. 나뭇가지에 말라붙은 채 대롱대롱 매달리며 겨울을 나기도 합니다. 다 말랐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가랑잎 가운데 나뭇가지한테서 안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습니다. 어미나무가 그리울까요. 어미나무한테 매달려서 칭얼거리려는 뜻일까요. 봄까지 버틴 가랑잎도 있지만, 봄이 되어 새로운 잎이 하나둘 돋으면, 가랑잎은 어느새 톡 떨어집니다. 다른 모든 가랑잎이 지난가을과 지난겨울에 떨어져서 찬찬히 삭아서 흙으로 돌아간 뒤에 비로소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흙땅에서 흙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봄이 되면 흙에서도 새로운 풀이 돋으니까요. 새롭게 자라려는 풀잎은 봄에 떨어진 가랑잎이 성가십니다. 왜 이제서야 떨어져서 ‘내 햇볕’을 가르느냐고 성을 냅니다.


  가을과 겨울에 떨어진 가랑잎은 겨우내 풀벌레한테 보금자리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풀벌레는 가랑잎이 소복히 쌓인 데를 찾아서 조용히 깃들어요. 그러니, 가랑잎은 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흙으로 다시 태어날 뿐 아니라, 흙땅에서 겨울잠을 잘 조그마한 풀밭 동무와 이웃한테 고맙고 너른 품이 되어 주지요.


  ‘진잎’은 이제 다 말라서 지는 잎입니다. 질 때가 되어, 지는 잎입니다. 아직 덜 말랐어도 잎이 지기도 합니다. 이제 그만 나뭇가지한테서 떨어져 흙으로 일찌감치 가려는 마음입니다. 나뭇가지는 진잎더러 더 머물다 가라고 말하지만, 진잎은 괜찮다면서 손을 젓습니다. 어차피 곧 갈 흙이라면, 일찌감치 떨어져서 흙내음을 맡겠노라 합니다. 진잎은 씩씩하게 흙 품에 안겨서 바람 따라 또르르 구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들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은 진잎을 보고는 한 마디 하지요.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빛깔이 고울까.” 사람들은 진잎을 찬찬히 살피면서 한둘쯤 골라서 줍습니다. 책 사이에 꽂습니다. 책 사이에 꽂고는 알맞게 눌러서 마저 말리면 멋진 책살피로 거듭납니다. 진잎은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가려고 나뭇가지를 떠나는데, 이 아이들 가운데에는 사람들 손을 거쳐서 오래도록 새로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어요.


  잎은 모두 같은 잎입니다. 그러나, 잎은 모두 다른 삶을 누립니다. 잎은 모두 똑같은 어미나무한테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잎은 모두 다른 삶을 지으면서 다른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더 좋거나 나쁜 삶은 없습니다. 책살피가 된 진잎을 빼고는 모두 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흙으로 살아나고, 새로운 흙으로 살다가 다시 어미나무 뿌리를 거쳐서 새로운 잎사귀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돌고 돌고 다시 돌면서 새로운 숨을 받습니다. 돌고 돌고 또 돌면서 새로운 바람을 마십니다. 나뭇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나뭇잎이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까지 곱게 흐릅니다. 4348.3.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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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09 : 고택古宅



추사 고택으로 가는 길 끝이 없는 / 밭고랑에 납빛 적의를 번쩍이며 / 잔설들이 잠복해 있다

〈추사 古宅 길〉, 《노향림-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창작과비평사,1998) 70쪽


 추사 고택으로 가는 길

→ 추사 옛집으로 가는 길

 추사 古宅 길

→ 추사 옛집 길



  이 보기글을 보면, 시에 붙인 이름에는 ‘古宅’이라 적고, 싯말에는 한글로 ‘고택’이라 적습니다. 시에 이름을 붙일 적에는 한자를 드러내어야 그럴듯해 보인다고 여길 수 있고, 싯말에서는 굳이 한자를 안 드러내어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든 싯말이든 모두 쉽고 정갈하게 한국말로 ‘옛집’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싯말을 살피면 ‘적의’와 ‘잔설’과 ‘잠복’ 같은 한자말이 잇달아 나옵니다. 이 낱말은 모두 한글로 적습니다. 한자를 안 밝힙니다.


  한자말이기에 한자를 밝혀서 적어야 할는지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赤衣/翟衣’나 ‘殘雪’이나 ‘潛伏’으로 한자를 밝혀서 적으면 시가 될까요? 한글로 적으면 시가 될까요? 한자도 한글도 아닌 한국말로 ‘붉은옷/납빛으로 붉은 옷’이나 ‘남은 눈’이나 ‘숨다’로 적으면 시가 될까요?


 옛집 . 낡은 집 . 오래된 집 . 묵은 집


  집은 집입니다.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이면서 “옛집”입니다. 새로 지은 집은 “새로 지은 집”이면서 “새집”입니다. 옛집이기에 ‘옛집’이라 하고, 새집이기에 ‘새집’이라 합니다. 이를 구태여 ‘古宅’이나 ‘新宅’이라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추사 옛집으로 가는 길 끝이 없는 / 밭고랑에 납빛 옷을 번쩍이며 / 남은 눈이 숨었다


“납빛 적의”에서 ‘적의’는 ‘赤衣’일까요, ‘翟衣’일까요? 아무래도 불교에서 쓴다는 ‘赤衣’이지 싶은데, 그러면 “붉은 납빛 옷”이나 “납빛으로 붉은 옷”으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그냥 “납빛 옷”으로 적을 수도 있어요. ‘잔설(殘雪)’은 ‘남은 눈’으로 손질하고, “잠복(潛伏)해 있다”는 “숨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고택(古宅) : 옛날에 지은, 오래된 집


..


묶음표 한자말 210 : 호구虎口



서른넷 으젓한 나이를 도끼로 삼고 / 평생의 적수와 호젓하게 만나는 / 虎口의 바람으로 간다

《복거일-五丈原의 가을》(문학과지성사,1988) 33쪽


 虎口의 바람으로 간다

→ 범 아가리 바람으로 간다

→ 범 아가리에 바람으로 간다

 …



  ‘虎口’라는 한자말에서 ‘虎’와 ‘口’는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tiger mouth’에서 ‘tiger’도 ‘mouth’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한국말은 ‘범’과 ‘입’입니다. 그리고, ‘입’은 사람한테만 쓰고, 새한테는 ‘부리’라 하고, 짐승과 물고기한테는 ‘주둥이’라 합니다. ‘아가리’는 구멍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쓰고, ‘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씁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에 나오는 ‘虎口’는 한국말로 “범 아가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시를 쓴 분이 한자나 한문을 좋아해서 일부러 썼다면, 어찌할 수 없겠지요. 아마 어떤 이는 한자나 한문이 아닌 영어를 좋아해서 ‘tiger mouth’ 같은 영어를 쓸 수 있고, ‘wind of tiger mouth’처럼 시를 쓸 수 있어요.


 호구에 들어가다

→ 범 아가리에 들어가다

 순순히 널 따른다고 날 호구로 아니

→ 고분고분 널 따른다고 날 바보로 아니


  시를 쓰는 자리이든 여느 자리이든 외국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습니다만, 한국사람이 읽을 시라면 굳이 외국말까지 빌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서른넷 의젓한 나이를 도끼로 삼고 / 평생 맞잡이와 호젓하게 만나는 / 범 아가리에 바람으로 간다


‘적수(敵手)’는 ‘맞잡이’나 ‘맞들이’나 ‘맞수’로 손볼 수 있습니다. ‘평생(平生)’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온삶’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호구(虎口)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 호구에 들어가다 / 호구를 벗어나다.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호구를 잡다 / 순순히 널 따른다고 날 호구로 아니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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