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지 않은 모과꽃송이를



  아직 터지지 않은 모과꽃송이를 바라본다. 활짝 터진 꽃송이도 곱지만, 터질 듯 말 듯하면서 입을 다문 꽃송이도 곱다. 손을 뻗어 여린 꽃송이를 살짝 만져 본다. 꽃잎은 나뭇잎과 댈 수 없도록 보드랍다. 봄에 갓 돋은 나뭇잎도 부드럽다만, 나뭇잎은 ‘부드럽’고 꽃잎은 ‘보드랍’다.


  곧 터지려는 모과꽃송이가 빙그르르 돈다. 아니, 빙그르르 돌 듯이 꽃잎이 말렸다. 아니, 잔뜩 옹크리던 꽃잎이 천천히 풀리면서 ‘빙그르르 도는 무늬’를 보여준다고 해야 하리라.


  해바라기도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고, 수많은 들꽃과 나무꽃도 하늘을 바라본다. 새파란 하늘숨을 마시면서 꽃잎이 열린다. 파랗디파란 하늘바람을 머금으면서 꽃송이가 터진다. 4348.4.1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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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가 되었다
조태일 지음, 신경림 엮음 / 창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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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7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사랑해

― 나는 노래가 되었다

 조태일 글

 신경림 엮음

 창비 펴냄, 2004.9.25.



  봄에 꽃이 필 무렵 어김없이 벌이 찾아듭니다. 아직 이르다 싶은 삼월에도 벌이 찾아듭니다. 사월이면 벌이 무척 많이 늘어납니다. 사월에 피어나는 꽃은 삼월보다 훨씬 많아요. 마당에 선 동백나무에 동백꽃이 한창이던 때에는 벌도 수백 마리가 윙윙거렸습니다. 동백꽃이 거의 다 진 이즈음에는 동백나무 둘레에 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채꽃과 갓꽃이 곳곳에 흐드러지다 보니 갓꽃밭과 유채꽃밭은 벌떼로 아주 시끄럽다 싶을 만합니다.


  벌떼는 매화가 매화꽃을 터뜨릴 적에도 몰리고, 모과나무가 모과꽃을 터뜨릴 적에도 몰립니다. 군데군데 피어나는 민들레꽃에도 벌이 내려앉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냉이꽃과 별꽃에도 벌이 내려앉습니다. 벌과 나비는 꽃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꽃에 살며시 내려앉아서 꿀이나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이러면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어요.



.. 내 어릴 적 / 산속에서 길을 잃고 / 엄마야! 엄마야! 엄마야! / 울부짖던 그 소리 ..  (메아리)



  어젯밤에 아이들과 마을 논둑에 서서 별바라기를 하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는 보름쯤 앞서 깨어나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풀밭 여기저기에도 풀벌레가 깨어나서 드문드문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직 왁자지껄한 노래는 아닙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도 드문드문 들릴 뿐입니다.


  모두 노래를 부릅니다. 낮에는 낮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밤노래를 부릅니다. 노는 아이들은 놀이노래를 부르고, 일을 하는 어른들은 일노래를 부릅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는 마실노래를 부르지요. 나는 밥을 지으면서 밥노래를 부르는데,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밥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과 내가 부르는 밥노래는 사뭇 다릅니다.



..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 그곳이 나의 고향, / 그곳에 묻히리 ..  (풀씨)



  조태일 님은 1999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창비,2004)는 조태일 님이 저승길로 떠나고 난 뒤에 신경림 님이 새로 엮어서 내놓은 책입니다. 조태일 님이 그동안 내놓은 시집 여러 권에서 추리고 가리고 골라서 엮은 시집입니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우리는 ‘시’라고 하는 글을 책으로 읽는데, 시가 깃든 책인 시집은 ‘노래책’과 같구나 싶어요. 시는 삶을 노래한 글이고, 삶을 노래한 글을 묶은 책이니, 시집은 언제나 노래책이 되리라 느낍니다.



.. 꽃들, 줄기에 꼼짝 못하게 매달렸어도 /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 아빠꽃 엄마꽃 형꽃 누나꽃 따라 / 아기꽃 동생꽃 쌍둥이꽃 / 바람들을 잘도 가지고 논다 ..  (꽃들, 바람을 가지고 논다)



  노래는 소리에 담은 가락입니다. 그저 흐르는 소리는 그저 소리이지만, 소리에 가락이 담기면 노래로 거듭납니다. 그저 흐르는 자동차 소리라든지 버스 소리라든지 기차 소리는 그냥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고즈넉하게 들을 수도 있으나,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끊이지 않는 고속도로 옆에 서면 온갖 자동차가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청이 찢어질 듯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소리도 내 마음에 따라서 노래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마다 다 다르게 달리면서 내는 소릿결을 느껴서 가락을 헤아리면 노랫가락이 됩니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꾀꼬리가 들려주는 소릿가락을 들으면서 시끄럽다고 느낄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개구리와 풀벌레와 꾀꼬리가 들려주는 소릿가락을 노래로 들을 사람이 있어요. 어느 때에는 반가운 소리이기에 노래요, 어느 때에는 달갑잖은 소리이기에 시끄럽습니다.



.. 자유가 시인더러 / 시인이 자유더러 / 멱살을 잡고 무슨 말인가를 하지만 / 전혀 알아들을 수 없네. / 우리 같은 촌놈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네 ..  (자유가 시인더러)



  네가 나한테 들려주는 말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사르르 녹는다면, 네 말은 나한테 노래와 같습니다. 내가 너한테 들려주는 말이 네 마음에 스며들지 못하고 사르르 녹지도 못한다면, 그저 담벼락에 부딪혀서 떨어지는 돌멩이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따스한 사랑을 품고 스며드는 말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로 듣는 말은 노래가 됩니다. 이와 달리, 아무런 사랑을 담지 않은 말은 이야기도 노래도 되지 못합니다. 다투는 말이 되면서 시끄럽구나 하고 느끼는 소리로 머뭅니다.


  자유가 시인더러 무슨 말을 했을까요. 시인은 자유더러 무슨 소리를 했을까요. 둘은 서로 노래를 불렀을까요. 둘은 서로 노래하는 마음이었을까요.



.. 파란 하늘 아래 / 잠자리 날고 // 잠자리 날개 아래 / 파란 연못 잠들었다 ..  (대낮)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사랑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시를 사랑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시가 저절로 솟아납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읊는 말에는 언제나 가락이 실려서 노랫말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노랫말처럼 된다기보다 그예 노래가 됩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른한테서 배우는 노래가 아니라, 놀면서 스스로 기쁘고 신나서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 누구나 시인입니다. 왜냐하면, ‘어른’이라는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서 신나게 놀고 기쁘게 노래하면서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작가라는 이름이 있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인입니다. 시집을 내거나 잡지에 작품을 싣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는 가슴으로 하루를 열기에 시인입니다.



.. 타고난 시골솜씨 한철 만나셨다 / 산1일번지에 오셔서 / 이불 빨고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 / 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 / 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신다 ..  (어머님 곁에서)



  조태일 님이 그동안 부른 노래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시선집 《나는 노래가 되었다》로 새롭게 태어난 조태일 님 노래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제 조태일 님은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습니다. 조태일 님은 더는 삶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태일 님이 부른 삶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삶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삶노래를 부르고, 우리 아이들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삶노래를 부릅니다.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아 저희 아이들한테 새롭게 삶노래를 물려주겠지요.


  노래가 흐르고 흐릅니다. 생각과 꿈이 흐르고 흐릅니다. 사랑과 삶이 흐르고 거듭 흐릅니다. 언제나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춤추는 노래가 흐릅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시를 쓰고, 삶을 꿈꾸기에 시를 읽습니다. 삶을 아름다이 가꾸면서 시를 쓰고, 삶을 사랑스레 보듬으면서 시를 읽습니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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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4-18 10:13   좋아요 0 | URL
조태일 님의 <國土>를 아주 오래전에 읽은 시간이 떠오르네요.

이번에 한대수 님께서 새로 내신,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의 들어가는 말에서

- 내 노래를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 ˝바로 이 책이 나의 자서전이구나˝였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거나 기타를 안고 작곡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들이 멜로디가 된다. 67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많았겠는가?

범죄와 끔직한 테러로 인간이 이성을 잃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평화의 노래를 ˝천천히. 꾸준히. 끝까지˝ 불러야 한다. - 에 공감이 되었어요.

오늘도 함께살기님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파란놀 2015-04-18 11:14   좋아요 0 | URL
한대수 님이 새로 책을 내셨군요.
그 책에도 사랑스러운 노래 같은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조태일 님 `시선집`을 읽다 보니
따로따로 `시집 한 권`씩 읽는 흐름이
한결 낫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꼈는데,
그래도 아무튼 이렇게
시선집으로 새롭게 읽으면서도
아련하면서 오래되고, 또 곧게 흐르는 노래 같은 숨결을
다시금 느껴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바무와 게로, 오늘은 시장 보러 가는 날 (시마다 유카) 중앙출판사 펴냄, 2001.4.30.



  바무와 게로는 함께 산다. 아침을 함께 맞이하고, 서로 즐겁게 어울려 놀면서 지낸다. 어디를 가든 자동차를 타고 신나게 나들이를 다닌다. 함께 밥을 짓고,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먹는다. 서로 아끼는 마음이기에 하루가 새롭고, 서로 돌보는 마음이니 언제나 노래가 흐르는 삶이다. 그림책 《바무와 게로, 오늘은 시장 보러 가는 날》을 아이들과 읽으면서 생각한다. 사랑과 평화는 참으로 쉽고 아늑하다. 어려울 일이 없다. 서로 아끼는 사이라면 집에 무엇을 둘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는 보금자리라면 집에 무엇을 갖출까? 아이들이 언제나 쉽고 기쁘게 배울 수 있는 이 따사로운 기운을 어른들도 언제나 쉽고 기쁘게 나누면서 가꾼다면 삶이 한결같이 아름답겠다고 느낀다. 4348.4.1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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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무와 게로 오늘은 시장 보러 가는 날
시마다 유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2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15년 04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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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51 ‘거듭나다’와 ‘바뀌다·달라지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어제와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어제와 사뭇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몸을 바꾸었을까요? 네, 몸을 바꾸었을 테지요. 몸은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마음을 바꾸었으니, 몸은 마음에 따라 바뀌었을 테지요.


  마음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그동안 흘러온 결을 고스란히 내려놓고 새로운 길로 가려 할 때에,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동안 흘러온 결을 하나도 안 내려놓으려 한다면, 나는 하나도 안 바뀝니다. 하나를 내려놓으면 하나가 바뀔 테고, 모두 내려놓으면 모두 바뀝니다.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지기는 하되 새롭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달라지기는 하는데 왜 새롭지 못할까요?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옮기느라 ‘다른 모습’은 되지만, 정작 마음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북돋우지 않으니, 겉모습은 ‘다르게’ 드러나지만, 속알맹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때에는 ‘달라지는 쳇바퀴’에 갇힌 모습입니다.


  달라지거나 바뀌기에 한결 낫거나 더 낫지 않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지거나 바뀔 수 있습니다. 아름답게 달라질 수 있고, 엉터리로 바뀔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모습은 늘 달라지거나 바뀝니다. 다시 말하자면, 달라지거나 바뀌는 모습은 우리 삶자리에서 첫째 조각(1차 단계, 1차원) 언저리입니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얼거리예요. 크게 달라지거나 많이 달라져서 둘째 조각이나 셋째 조각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거나 바뀌는 모습은, 언제나 이 자리에서만 맴돕니다. 더 나아가거나 뻗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달라지거나 바뀔 적에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자리만 옮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갔다가, 다시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바뀜·달라짐’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면, 눈을 뜨고 깨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지요. 새로 태어나야지요.


  거듭나거나 새로 태어나는 모습도 ‘바뀜·달라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새로 태어남’은 바뀌거나 달라진다는 말로는 모두 나타낼 수 없어요.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삶은 ‘새로움’입니다. 허물을 내려놓고 나비로 깨어난 삶은 ‘오직 새로움’입니다. 허물을 몽땅 이곳에 두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삶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새로움’입니다.


  ‘새롭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바뀌거나 달라지더라도 쳇바퀴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뀌거나 달라지는 모습에 갇혀요. 바뀌기는 늘 바뀌는데 ‘새로운’ 숨결이 없다면, 바뀌거나 말거나 늘 같습니다.


  우리는 굳이 안 바뀌어도 되고, 굳이 너와 내가 ‘달라 보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꾸려는 생각이 아니라, 거듭나려는 생각일 때에 새롭습니다. ‘너와 내가 다른 모습’이라는 겉차림에 매달리지 말고, 새로 태어나려는 생각일 때에 기쁨이 흘러넘쳐 사랑이 됩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삶’이 아닙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은 ‘이제부터 새로 태어나서 이루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나서 이루는 삶’이기에 싸움이 그치지 않고, 좋고 싫다는 뭇느낌에 얽매입니다. 이래야 좋고 저러면 나쁘다고 하는 뭇느낌에 얽매인 삶이라면, 이때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거듭나서 새로 태어나는 넋일 때에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나누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홀가분하게 서려면, 날마다 늘 새로 태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어제와 다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새로 태어난다’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에서 모레로 새로 태어난다’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쳇바퀴를 도는 사람은 ‘날짜만 다른 나날’을 똑같이 보냅니다. 굴레에 갇힌 사람은 ‘자리만 바꾼 나날’을 똑같이 보냅니다. 내 바보스러운 버릇이나 몸짓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바꾸거나 달라지도록 하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꾸거나 달라지도록 하더라도 늘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아요. 우리는 누구나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 깨어나서 아름답게 눈을 뜰 수 있습니다.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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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버스를 기다렸어



  버스를 노래하고 노래하는 산들보라는 왜 버스가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적에 이 아이마냥 버스 타기를 무척 즐겼구나 싶다. 그러나, 버스를 애써 타도 곧 내릴 때가 되곤 했다. 오늘 우리 시골집에서는 버스를 타자면 그야말로 한참 달린다. 읍내로 나갈 적에도 제법 오래 달리고, 다른 도시로 마실을 다니려면 여러 시간 동안 꼼짝을 못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산들보라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기를 무척 즐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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