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꽃봉오리 새롭게



  후박나무 꽃봉오리가 올해 봄에도 새롭게 터진다. 동백꽃이 거의 다 질 무렵 비로소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후박나무이다. 그래서, 동백나무 커다란 꽃송이를 신나게 쓸고 쓴 뒤, 바야흐로 후박나무 비닐잎과 묵은잎을 신나게 쓴다. 날마다 마당을 쓸면서 새 꽃봉오리를 바라본다. 새롭게 터지는 꽃송이와 잎사귀는 매우 싱그럽다. 지난 한 해를 짙푸르게 살다가 노랗게 물들면서 떨어지는 잎도 몹시 곱다. 새로운 아이들이 새로운 숨결로 빛나고, 새롭게 터지는 아이들이 새로운 노래로 아침을 열어 보인다. 4348.4.25.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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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62. 바깥을 보고 싶어 (2015.4.16.)



  조그마한 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바깥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두 손으로 수레 옆판을 잡고 일어서서 내다보려고 한다. 이렇게 일어서면 몸이 흔들리지만, 자전거돌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깥이 보고 싶다, 바깥이 보고 싶어, 자꾸자꾸 노래한다. 그래, 바깥이 보고 싶으면 네가 얼른 커서 스스로 자전거를 달리면 돼.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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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606) 맑끈끈띠·맑은 테이프 (투명 테이프)



  속이 비치는 테이프를 쓰면, 말 그대로 ‘속이 비칩’니다. 누런 빛깔인 테이프를 쓰면, 속이 비치지 않고, 말 그대로 ‘누런 빛깔’을 봅니다. 푸른 빛깔인 테이프를 쓰면, 이때에도 속이 비치지 않고, 말 그대로 ‘푸른 빛깔’을 봅니다. 이밖에 ‘까만 빛깔’인 테이프가 있고, 알록달록 여러 빛깔로 된 테이프가 있습니다.


  ‘테이프(tape)’는 영어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네 가지 뜻풀이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종이나 헝겊 따위로 만든 얇고 긴 띠 모양의 오라기. ‘띠’로 순화” 같은 뜻풀이처럼, 한국말로 ‘띠’로 적어야 하는 자리에 ‘테이프’를 잘못 쓰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테이프 커팅’을 한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띠 끊기’나 ‘띠 자르기’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붙이려고 친친 감는 끈적끈적한 띠일 때하고, 소리나 영상을 담는 띠일 때에는 ‘테이프’를 따로 고쳐쓰기 어렵습니다. 이때에도 고쳐쓰려면 얼마든지 고쳐쓸 수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녹음 테이프’라 하지 말고 ‘소리띠’라 할 수 있어요. 다만, ‘소리띠’ 같은 말을 쓰자면 처음부터 이렇게 썼어야 하는데, 이제껏 한국사람 스스로 이와 같이 쓰려고 생각을 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소리띠’로 써야 올바를 테지만, 이렇게 쓰자고 말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한 가지를 더 생각하면, “붙일 때에 쓰는 테이프”는 ‘끈끈띠’나 ‘끈끈이’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파리 끈끈이”를 떠올리면 되거든요. 파리가 달라붙도록 길게 드리운 띠를 ‘끈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을 붙일 적에 쓰는 것에는 ‘끈끈띠’ 같은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다만, 이때에도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와 같이 썼다면 널리 고쳐쓸 만할 텐데, ‘테이프’ 같은 영어를 한국말로 어떻게 쓰면 즐겁거나 아름다울까를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띠 . 끈 . 오라기

 소리띠 . 그림띠

 끈끈띠 . 붙임띠


  띠나 끈이나 오라기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는 마땅히 이 낱말로 써야 올바릅니다. 녹음 테이프나 붙이는 테이프를 가리키는 자리라면 오늘날 흐름에서는 ‘테이프’로 쓸 때가 한결 나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테이프’ 같은 낱말을 그대로 쓰면서도 아이들한테는 ‘소리띠’나 ‘끈끈띠’ 같은 말마디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테이프’로 그대로 쓰더라도 앞으로 백 해나 오백 해 뒤는 말이 어떻게 거듭날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아이들한테는 한국말로 생각을 살찌우거나 키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한국말을 스스로 생각하고 가꿀 수 있도록 말길을 열 수 있습니다. 적어도, “‘테이프’는 붙이는 띠를 가리키지. 한쪽이 끈끈해서 붙일 수 있는 띠라고 하는 것에 ‘테이프’라는 이름을 붙였어.”처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한마디를 덧붙여 “어른들은 끈끈하게 붙이는 띠에 ‘테이프’라는 이름을 지어서 쓰는데, 너는 어떤 이름으로 지어 볼 수 있을까? 네가 한 번 새롭게 이름을 지어 보겠니?”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맑은 끈끈띠 . 맑은 테이프 ↔ 투명 테이프 . 유리 테이프

 누런 끈끈띠 . 누런 테이프 ↔ 황 테이프

 푸른 끈끈띠 . 푸른 테이프 ↔ 청 테이프


  붙이는 띠를 가리키면서 ‘투명(透明)’과 ‘황(黃)’과 ‘청(靑)’ 같은 한자말을 자주 씁니다. 어른들은 이 낱말이 익숙하니 어른으로서는 이녁 말을 고치기 어려울 테지만, 아이들은 이런 이름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투명·황·청’을 쓰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맑은·누런·푸른’을 쓸 수 있습니다. 글잣수를 줄인다면 ‘맑테이프·눌테이프·풀테이프’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4348.4.25.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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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7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05



그리운 너를 만나고 싶어서

― 경계의 린네 17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3.25.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열일곱째 권에 흐르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니, 모두 ‘만남’과 얽힌 삶입니다. 가슴속에 담은 뜻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거나 밝히지 못해 응어리로 남은 아이들이 나옵니다. 가슴속 말을 들려주지 못한 탓에 그만 ‘넋’이 몸에서 빠져나와서 이리저리 떠돌기도 합니다.


  부끄럽거나 쑥스러워서 차마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애써 말을 하더라도 저쪽에서 콧방귀를 뀔까 걱정해서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끝내 말을 못 할 수 있습니다.





- “저, 하지만, 이대로 이승에 머물러 있어 봤자, 여자친구 유미도 이미 저승에 가 있을걸, 매미니까.” “응, 이미 환생까지 마쳤을 것 같은데.” (21쪽)

- “이 낫은 악령에 오염된 영철로 만들어졌다고?” “알겠다. 그래서 다른 사신의 낫을 공격하는 거구나.” (31쪽)



  사람은 누구나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옆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못 읽기 마련이고, 스스로 생각을 키우지 않으면, 둘레에서 어떤 마음으로 나와 마주하는지를 도무지 모를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려면 내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네가 내 마음을 읽으려면 너도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마음으로 이야기를 못 나누고, 아무런 마음도 못 읽어요.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려는 넋일 때에 비로소 마음과 마음이 만납니다.





- “우연히?” “그 부분을 들어야겠는데.” “린네 님, 저승의 주보관에 도둑이 들었대요.” (66쪽)

- ‘이것도 사례금 천 엔, 아니 너를 억울한 저주에서 풀어 주기 위해서야!’ (89쪽)

- “쥬몬지, 사람을 깔보면 곤란해.” “아니, 상품으로 받을 팥빵이 머리에 꽉 차 있잖아?” “우선 이 숭고한 영을 구하는 게 도리지.” (105쪽)



  마음에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맺힌 이야기를 풀어야지요. 그러면, 마음에 맺힌 이야기는 누가 풀까요? 바로 내가 풉니다. 그런데, 아직도 부끄럽거나 쑥스럽다면? 누군가를 불러서 너와 나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 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너와 나 사이에서 부드러운 징검돌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말길을 틀 수 있습니다.


  말과 말이 오갈 수 있는 길이 열려야 마음을 나눕니다. 마음과 마음이 홀가분하게 드나들 길이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을 꽃피웁니다.


  너를 만나고 싶다는 그리움을 꽁꽁 가두거나 묶으면, 그만 억눌립니다. 그리움을 풀지 못하면, 그예 터지고 맙니다. 곪은 데는 덧나고, 다친 데는 도지며, 아픈 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생채기와 앙금과 응어리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몸을 다스려야 합니다. 싱그러운 물을 마시면서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 “이대로 돌아가려고?” “쥬몬지를 깨울까?” “아니, 괜찮아. 우연히 만났을 뿐이고, 썩 친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얼른 돌아가야지.” (162쪽)

- “이대로 돌아가 봤자 해결되는 건 없어. 그건 사카키, 너도 알고 있겠지? 너는 자기 생령을 전혀 컨트롤 못하고 있어. 왜냐면 네 생령은 훈련으로 다루게 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튀어나온 거니까.” (177∼178쪽)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삶이 피어납니다. 삶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이야기가 피어나는 자리에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웃음이 피어나는 자리에서는 다시 사랑이 피어납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앙금을 모두 털면서 어깨를 활짝 펼 수 있기를 빕니다. 4348.4.25.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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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2015-04-2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 보여요

파란놀 2015-04-27 08:29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뜻있기도 한 만화입니다
 

응어리 내려가는 글쓰기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다시 나왔다. 열두 해 만이다. 열두 해 앞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무렵, 그 책은 ‘돌아가신 이오덕 님’과 ‘아픈 몸으로 살던 권정생 님’ 두 분뿐 아니라, 둘레 다른 사람 가슴에 생채기를 입혔다. 그래서 그무렵 나는 이오덕 님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하고 ㅎ출판사하고 맞서 싸웠다. 다시 책마을 일꾼으로 돌아갈 수 없을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짙었으나, ‘책 하나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를 했다.


  지난 열두 해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난 열두 해 동안 내 삶은 어떠했을까? 나는 이제 책마을 일꾼으로 일하지 못 한다. 그러나, 나는 책마을 일꾼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책마을 일꾼으로 더 일할 수 없게 가로막히고 말았지만,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길로 갔으면 내 삶이 빛났을까? 나는 아직 모른다. 어느 길로 가든 삶은 늘 빛나기 마련이고, 고요하게 숨죽이기도 할 테며,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리라 느낀다.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나온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배가 몹시 아팠다. 찢어지게 아팠다. 뒷간에 가서 물똥을 눈다. 속을 쓸어넘기고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한숨을 몰아쉰다. 비로소 조금 개운하다. 그렇구나, 지난 열두 해 동안 내 삶에 응어리처럼 맺힌 것이 내려갔구나. 고마운 일이다. 지나온 열두 해를 되짚으면서, 앞으로 걸어갈 열두 해를 꿈꾼다. 4348.4.24.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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