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봉오리는



  장미꽃이 터지면 크게 벌어진다. 넓게 벌어지는 꽃송이는 천천히 움이 트고, 천천히 굵어지며, 천천히 벌어지면서, 바야흐로 활짝 피어난다. 맨 처음 맺는 망울을 보면 무척 조그마한데, 조그마한 망울은 날마다 조금씩 커지면서 붉은 빛깔이 가득한 보드라운 잎으로 바뀐다. 울타리에 장미넝쿨이 뻗도록 하면서 이 놀랍도록 붉은 꽃송이가 터지도록 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짠하도록 새빨간 꽃송이는 마음을 뜨겁게 불태운다. 넝쿨줄기를 뻗는 나무 가운데 장미처럼 커다란 꽃송이를 매다는 나무는 얼마나 더 있을까. 활짝 펼쳐진 뒤에도 눈부시도록 곱지만, 아직 앙다문 봉오리도 눈부시게 고운 장미꽃을 바라본다.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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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택배



  인천에 있는 형한테 ‘원고 출력’을 맡겼다. 우리 집 인쇄기는 토너가 거의 다 되어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부쳐 주었다고 하는데, 토요일에는 안 오고 월요일에도 안 오다가 드디어 오늘 온다. 아이고, 고마워라! 왔구나! 목요일까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보내야 한다. 오늘 부치면 늦지 않게 닿을까. 아슬아슬하게 글을 마치고 종이로 뽑았다. 이제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와야지. 하늘아, 하늘아, 우리 두 아이와 우체국에 다녀올 테니, 비는 오늘 그만 내리렴. 오늘 하루 비가 안 와도 돼. 알지? 고맙구나.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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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왕자 덜신 (C.W.니콜) 논장 펴냄, 2006.11.25.



  ‘덜신’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왕자는 열여섯 살 나이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태 동안 숲사람으로 지내야 한다. 옷과 신조차 모두 벗어 알몸이 된 채 숲에서 살아야 한다. 부끄러움이나 창피나 짜증을 느낄 수 있으나, 덜신은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어서 마음이 차분하다. 까마득한 앞날과 같지만, 그동안 동무로 지낸 까마귀가 찬찬히 길을 일러 준다. 아주 가까이에 있던 몹쓸 사람들 때문에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사람이 쓰는 말’을 내려놓고 ‘숲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천천히 ‘새로운 눈’을 뜬다. 《벌거숭이 왕자 덜신》은 덜신 왕자가 숲사람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잘 보여준다. 건너뛰거나 얼렁뚱땅 지나가지 않는다. 터무니없이 꾸미지 않으며, 억지스레 꿰어맞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열여섯 살 나이인 푸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열여덟 살 나이인 젊은이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로 접어드는 푸른 숨결한테 무엇을 가르치는가?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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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왕자 덜신
C. W. 니콜 지음, 서혜숙 옮김 / 논장 / 2006년 1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15년 04월 2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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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5] 볍씨



  민들레씨가 동그스름하게 맺힙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이다!” 하고 외치면서 꽃대를 톡 꺾은 뒤 후후 불어서 씨앗을 날립니다. 아이들과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으레 씨를 뱉습니다. 감을 먹을 적에는 감씨를 뱉고, 수박을 먹을 적에는 수박씨를 맺습니다. 포도를 먹을 적에는 포도씨를 뱉습니다. 오이씨나 참외씨는 그냥 먹습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쌀밥은 쌀알로 짓고, 쌀알은 벼알에서 겨를 벗긴 속살입니다. 벼알은 봄에 논에 심어서 새로운 벼알을 거두도록 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벼알은 따로 ‘볍씨’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얼마 앞서까지 시골사람은 볍씨를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서 잘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볍씨를 손수 갈무리해서 되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거의 다 농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다가 씁니다. 농협에서는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벼 종자(種子)’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나마 ‘米種子’라고는 안 하지만, 농협 일꾼은 ‘씨·씨앗’이라는 낱말을 도무지 안 씁니다. 이리하여, 요새는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도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농협 일꾼 말투대로 ‘벼 종자’라고만 말합니다. 어느새 ‘씨감자·씨고구마’라는 말마디는 ‘감자 종자·고구마 종자’로 바뀝니다.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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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빛을 바라보며 글쓰기



  작은 불빛을 바라본다. 새까맣게 어두운 밤에 작은 불빛을 바라본다. 지구별까지 닿은 별빛은 얼마나 작은가. 그러나, 저 빛을 보낸 별은 지구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지구에 빛과 볕과 살을 베푸는 해님은 언뜻 보기로 아기 손톱보다 작아 보이지만, 막상 크기로 대면 지구보다 훨씬 크다.


  내가 바라보는 작은 불빛은 참으로 작지만, 곰곰이 따지면 하나도 안 작다. 내 눈에 비치기로는 작되, 이 불빛에 깃든 숨결은 대단히 클 수 있다. 불빛에 깃든 숨결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는 이 불빛을 그저 조그마한 불이요 빛으로밖에 모른다.


  아이들 눈빛을 바라본다. 아이들 말마디를 듣는다. 아이들 몸짓을 마주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읽으면서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사랑하는가. 먼저 내 가슴에서 샘솟는 숨결을 느끼고, 내 마음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아야겠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작은 불빛을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앞길을 내다보아야겠다.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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