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29) 약간의 11


부모에게 과잉보호를 받고 스스로 날갯짓을 해 볼 약간의 기회도 가져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전의우 옮김-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양철북,2008) 151쪽


 약간의 기회도 가져 보지 못한

→ 기회를 한 번도 누리지 못한

→ 틈도 한 번 없는

→ 틈을 조금도 누리지 못한

→ 틈도 이제껏 빼앗긴

 …



  기회나 틈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있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 번조차 없을 때가 있고, 수없이 많이 있기는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틈도 여태 없던 아이들

 틈조차 아예 없던 아이들

 틈마저 빼앗긴 아이들


  이제까지 아무 틈도 없다면 “틈도 없던” 셈입니다. 여태껏 틈을 누리지 못했다니, “틈을 빼앗긴” 셈이기도 합니다. “틈을 잃은” 셈이요, “틈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온 셈입니다. 4341.8.29.쇠/4348.4.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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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가 지나치게 감싸느라 스스로 날갯짓을 해 볼 틈도 없는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부모(父母)에게 과잉보호(過剩保護)를 받고”는 “부모한테 지나치게 보살핌을 받고”나 “어버이가 지나치게 감싸느라”로 손질합니다. “기회(機會)도 가져 보지 못한”은 “기회도 없는”이나 “기회도 빼앗긴”이나 “틈도 없는”이나 “틈도 빼앗긴”으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05) 약간의 12


사진은 특성상 셔터를 누르는 순간 결과가 완성된다. 현상이나 인화를 통해 약간의 수정을 할 수 있어도 사진 속에 담긴 내용은 변화시킬 수 없다

《김영갑-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81쪽


 약간의 수정을 할 수 있어도

→ 살짝 고칠 수 있어도

→ 조금은 손볼 수 있어도

→ 어느 만큼 다듬을 수 있어도

→ 웬만큼 매만질 수 있어도

→ 살짝살짝 손질할 수 있어도

 …



  한 가지를 볼 수 있는 눈이라면 다른 한 가지뿐 아니라 열 가지도 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한 가지를 바르게 다스리는 몸짓이라면 이 한 가지를 비롯해서 다른 것도 모두 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말 한 마디를 슬기롭게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일도 슬기롭게 바라봅니다. 글 한 줄을 올바로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일도 올바로 다스립니다. 4342.3.8.해/4348.4.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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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단추를 누르면 그림이 나온다. 현상이나 인화를 해서 살짝 손질할 수 있어도 사진에 깃든 이야기는 바꿀 수 없다


“사진은 특성상(特性上)”은 “사진이란”으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셔터(shutter)’는 ‘단추’로 손질하고, “누르는 순간(瞬間)”은 “누르는 때”나 “누르면”으로 손질하며, “결과(結果)가 완성(完成)된다”는 “알맹이가 나온다”나 “끝난다”나 “그림이 나온다”로 손질해 봅니다. “인화를 통(通)해”는 “인화를 해서”로 다듬고, ‘수정(修正)’은 ‘손질’이나 ‘고치기’로 다듬으며, “사진 속에 담긴 내용(內容)”은 “사진에 담긴 이야기”나 “사진에 깃든 이야기”로 다듬습니다. ‘변화(變化)시킬’은 ‘바꿀’이나 ‘갈아치울’이나 ‘고칠’로 고쳐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75) 약간의 13


나는 더 이상 열이 심하지 않다. 단지 약간의 열이 남아 있을 뿐이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한기상 옮김-언니가 가출했다》(우리교육,2007) 169쪽


 약간의 열이 남아 있을

→ 열이 조금 남았을

→ 열이 가볍게 있을

→ 몸이 아직 뜨거울

→ 몸이 살짝 뜨거울

 …



  ‘살짝’ 같은 한국말을 넣으면 ‘-의’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가볍게’ 같은 한국말을 넣을 적에도 ‘-의’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앞말과 뒷말을 이을 적에 어떤 낱말을 써야 아름다울까 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리면 실마리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이제 후끈거리지 않는다. 그저 몸이 살짝 뜨거울 뿐이다

나는 열이 더 나지 않는다. 다만 열이 살짝 남았을 뿐이다


‘더 이상(以上)’은 ‘더는’이나 ‘더’로 손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이제’로 손볼 수도 있습니다. ‘열(熱)’은 ‘뜨거움’이나 ‘뜨거운 기운’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열이 심(甚)하지 않다”는 “뜨겁지 않다”나 “너무 뜨겁지 않다”나 “후끈거리지 않다”나 “달아오르지 않다”로 손볼 만합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손질하고, “남아 있을”은 “남았을”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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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54.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달고 움직입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자리에 우뚝 서서 살아간다는 풀과 꽃과 나무인데, 이들도 사람하고 똑같이 늘 그림자를 달고 한들거립니다. 한자리에 가만히 서도 해가 움직이고 지구가 빙글빙글 도는 결에 맞추어 그림자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날과 달과 철이 흐르는 결에 따라서 그림자가 바뀝니다.


  집과 돌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종이와 연필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모두 그림자를 달고 삽니다. 지구에서는 누구라도 어느 것이라도 그림자와 함께 있습니다.


  빛에는 어둠이 함께 있고, 목숨에는 그림자가 함께 있습니다. 삶에는 죽음이 함께 있으며, 웃음에는 눈물이 함께 있어요. 기쁨에는 슬픔이 함께 있고, 노래에는 고요가 함께 있습니다. 따스함에는 차가움이 함께 있고, 움직임에는 멈춤이 함께 있어요. 그래서,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삶을 읽을 만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읽을 만합니다.


  이 사진은 이렇게만 읽어야 하지 않고, 저 사진은 저렇게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릅니다. 모두 새롭습니다. 모두 다 다르면서 새롭게 움직이고 살아가는 넋입니다.


  꽃을 볼 적에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꽃을 보아도 아무것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에도 불빛이 환한 도시에서 즐겁게 놀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지만, 한밤이 어둡지 않아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은 쳐다보지 않으면서 언제나 바깥으로만 떠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봅니다. 삶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삶을 보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봅니다. 사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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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라내기’ 하면서 읽는 사람은



  글을 잘라내기로 읽는 사람을 보면 예전에 참 짜증스럽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잘라내기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어느 모로 보면, 나조차도 글을 잘라내기를 한달 수 있다.


  ‘잘라내기’와 ‘통’으로 읽는 몸짓은 어떻게 다를까? 잘라내기를 하면서 글 앞뒤를 뚝 끊으면 무엇을 읽을 만할까? 통으로 글을 읽는 사람은 무엇을 얻는다고 할 만할까?


  잘라내기를 하는 사람은 글쓴이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저버리는 셈이다. 글쓴이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못살게 굴려는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이기에 잘라내기를 한다고 할 만하다. 글을 통으로 읽는 사람은 글쓴이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일 뿐 아니라, 글쓴이한테서 여러모로 배울 구석이 많다고 여길 테고, 글쓴이와 함께 새로운 배움길을 걷고 싶다는 뜻이 된다고 할 만하다.


  글이나 책을 읽는 까닭은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배울 마음이 아니라면 굳이 글이나 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배울 뜻도 마음도 생각도 아니면서 ‘글이나 책’을 마주한다면, 어떤 글쓴이 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못살게 굴려는 뜻이 되고 만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서, 어떤 글쓴이 한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서 함께 배움길을 걸으려는 뜻조차 없이, 그저 바보스레 제자리걸음이나 쳇바퀴질을 하려는 몸짓이 되리라 느낀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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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96



함께 먹을 때에 맛나고 달다

―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글

 정지현 옮김

 낭기열라 펴냄, 2006.2.10.



  어제 낮에 아이들과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살짝 가게에 들러서, 과자 한 봉지씩 골라도 된다고 말하니, 두 아이 모두 초콜릿을 집습니다. 배가 고프다면서 초콜릿을 고릅니다. 초콜릿 값을 셈하고 나오면서 이제 군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우리가 탈 버스가 그만 코앞에서 부웅 하고 떠납니다. 시골에서는 손님이 적어 버스마다 자리가 널널하기 마련인데, 오늘 따라 군내버스가 읍내 버스역에서 일찍 떠납니다. 앞으로 한 시간 남짓 다른 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허허 웃다가 읍내 버스역 걸상에 아이들을 앉힙니다. 걸상에 앉아서 초콜릿을 뜯어서 먹으라고 얘기합니다. 초콜릿을 저마다 하나씩 쥐고 서로 나누어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내 어릴 적을 되새깁니다. 나도 어머니하고 저자마실을 나와서 ‘과자 하나 골라 봐’ 하는 말을 들으면 으레 초콜릿을 집었다고 느낍니다. 과자 한 봉지보다 값이 센 초콜릿은 여느 때에는 엄두를 못 내지만, 이렇게 ‘마음껏 고르라’는 말을 들으면 거침없이 손을 뻗습니다. 야금야금 먹으면서 몇 조각을 어머니한테 건네면, 어머니는 으레 ‘안 먹어, 너 다 먹어.’ 하고 말씀합니다. 나는 어머니한테서 배운 대로 우리 아이들이 초콜릿을 몇 조각 떼어 작은 손으로 내밀면 ‘응, 고마워. 너희 먹어.’ 하고 말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내밀면서 ‘아버지도 먹어야지요.’ 하고 말하면 그야말로 기쁘게 받아서 입에 넣습니다.



.. 저런 행위로 자기들끼리의 애정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그게 남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모르는 것일까 …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까? 나를 두고 뭐라 하고 있을까? 어린 여자애가 어쩌면 저렇게 뚱뚱하냐며 비웃고 있을까?’ … 왜 이렇게 괴로운 거지? 사실은 즐거워야 하잖아. 미헬과 사귀게 되었고, 내 옆에 프란치스카가 있으니까.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지? 벌써 오래전에 다른 것이 찾아왔는데, 왜 잊지를 못하는 걸까 ..  (12, 14, 67쪽)



  조그마한 과자 한 조각이라 하더라도 네 사람이 다시 넷으로 나누어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를 먹을 때가 있습니다. 과자 한 조각이 뱃속에 들어간다는 느낌조차 없을 만합니다. 그런데, 혼자 과자 한 조각을 먹으면 ‘아쉽구나’ 하고 느끼지만, 여럿이 아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먹으면 ‘즐겁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주 조그마한 조각이 뱃속에서 새로운 기운을 길어올립니다. 뱃속은 허전할는지 몰라도 마음은 넉넉하기에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웃음노래를 부릅니다.


  물 한 모금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마실 수 있습니다. 돈 한 푼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밥 한 술도 과자 한 조각처럼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할 만한 일이란 없습니다. 나눌 수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사랑도 나누고 꿈도 나누며 이야기도 나눕니다. 삶도 나누고 노래도 나누며 웃음도 나누어요. 그러니까, 함께 나눌 때에 더욱 기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을 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어깨동무를 할 때에 그야말로 기쁘고, 함께 나누려 하지 않을 때에는 어깨동무나 두레는 없이 쓸쓸하거나 썰렁하거나 고단합니다.



.. “젠장.” 에바는 수영용품을 챙겨 들고서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에바는 문을 쾅 히거 닫는 걸 좋아했다. 그건 에바가 화났을 때 유일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밖에 또 뭘 할 수 있을까? 소리라도 지를까 … 왜 아빠는 이따금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하게 행동하는 것인지 에바는 이해할 수 없었다 … 비곗살에 파묻혀 에바는 가려졌다. 지방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 가볍게 살아가는 에바, 사랑스런 모습이어야 할 에바, 진짜 에바, 참된 에바가 말이다 ..  (26, 34, 147쪽)



  미리암 프레슬러 님이 빚은 청소년문학 《씁쓸한 초콜릿》(낭기열라,2006)을 읽습니다. 《씁쓸한 초콜릿》은 초콜릿을 다루는 이야기책은 아닙니다. ‘에바’라는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책이고, 에바라는 아이는 제법 통통한 몸집인 듯합니다. 어쩌면 살이 퍽 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가 ‘먹기’를 좋아하거나 즐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어요. 아 아이는 모든 짜증과 골과 힘겨움과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먹기’로 풉니다.



.. 베르톨트가 태어났을 때 에바는 벌써 다섯 살이었다. 동생이 태어나자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을, 흥분에 들뜬 아빠의 커다란 목소리를 에바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사내아이예요. 정말 사내아이라고요!” 아빠의 웃음은 전과 달랐다 … 베르톨트는 무척 빠른 속도로 먹었다. 사실 집어삼킨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베르톨트는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고집스럽게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에바야, 넌 왜 안 먹니?” 아빠가 물었다. 그제야 에바는 아직 자기가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는 아빠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아빠가 잔소리를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입맛이 나겠어요.” ..  (86, 95쪽)



  배고파서 먹는 사람이 있고, 아프고 슬퍼서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고프지만 못 먹는 사람이 있고, 아프고 슬퍼서 못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배부른 사람은 더 먹지 않아도 됩니다. 아픈 사람한테서는 아픔이 사라져야 합니다. 슬픈 사람한테서는 슬픔이 녹아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배고픈 사람이 자꾸 배고픕니다. 배부른 사람도 자꾸 배부릅니다. 아픈 사람은 자꾸 아프고, 슬픈 사람도 자꾸 슬픕니다.


  삶과 사회는 왜 이렇게 외곬로 치달아야 할까요. 우리 삶자락에 왜 이렇게 사랑과 꿈이 찬찬히 스며들지 못할까요.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이 왜 이렇게 퍼지지 못할까요.



.. 자유. 에바는 연어 한 점을 입 안에 넣었다. 자유. 모험이라든가 크고 넓은 세계처럼, 격정적이며 아름답게 들리는 단어였다 … 이번에는 음악에 젖어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번보다 많은 시간과 미헬의 손길이. 하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아주 좋아지기까지 했다. ‘난 할 수 있어. 늘 잘할 수 있어.’ … “넌 내 여자친구잖아. 난 네 남자친구고. 그런데 왜 날 두려워해?” 미헬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두려움? 그게 두려움이었을까 ..  (116, 135, 164쪽)



  청소년문학 《씁쓸한 초콜릿》에 나오는 ‘뚱뚱한(또는 통통한) 에바’는 저 스스로를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에바는 저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저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미워합니다. 아들만 높이 여기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면서 이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들만 높이 여기다가 이 아들이 학교성적이 시원찮으니 아들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아버지를 그야말로 못마땅해 하지만 이런 마음조차 나타내지 못합니다.


  뚱뚱하거나 통통한 몸을 가리려고 널널한 치마만 입는 에바는 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적이 없습니다. 에바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도 에바가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듣거나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에바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퍼먹기’ 하나에다가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는 일’ 하나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 땅에도 ‘수많은 에바’가 있습니다. ‘먹기’로 아픔과 슬픔을 달래는 아이가 있고, ‘굶기’로 아픔과 슬픔을 다독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몰라서 헤매거나 떠도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왜 아프거나 어떻게 아픈가를 살피지 않아요. 그저 이 아이들한테 한마디만 합니다. ‘대학교에 가라’고. 아이들은 참으로 착해서 대학교에 갈 때까지 모두 꿋꿋하게 참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가고 나서는 ‘회사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어른이요 사회입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짝짓기를 하라’고 말하는 어른이며 사회이고, 짝짓기를 하면 ‘아기를 낳으라’고 말하는 어른과 사회이며, 아기를 낳으면 ‘아파트를 장만하고 연금과 보험에 들며 자가용을 몰라’고 말하는 어른입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일이 없는 어른이요 사회입니다.



.. 에바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뚱뚱한 가슴과 뚱뚱한 배, 뚱뚱한 다리를 가진 뚱뚱한 소녀가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 소녀는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약간 눈에 띄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못생기진 않았다. 에바는 뚱뚱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뚱뚱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도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었다. 대체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패션잡지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생긴 여자들만이 아름다운 것일까 …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에바는 갑자기, 자신이 원했던 에바가 되어 있었다. 에바는 웃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  (203∼204쪽)



  밥 한 그릇은 함께 먹을 적에 맛있습니다. 초콜릿 한 조각은 아무리 작아도 함께 나누어 먹을 적에 대단히 달콤합니다. 이야기는 함께 나눌 적에 아무리 ‘하찮은 것’을 놓고 이야기하더라도 즐거워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노래는 대중노래를 부르든 민중노래를 부르든 찬양노래를 부르든, 우리 스스로 기쁘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어서 부르면 늘 기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씁쓸한 초콜릿》에 나오는 ‘뚱보 에바’는 이제껏 제 삶을 제대로 바라보려 한 적이 없습니다.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뚱뚱하면 밉지’라든지 ‘날씬해야 예쁘지’ 같은 말에 휘둘렸습니다. 바보스러운 아버지가 외치는 말에 아뭇소리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뚱보 에바’는 ‘그냥 에바’로 살기로 다짐합니다. 아니, 뚱보도 날씬이도 아닌, 에바 그대로를 바라보기로 하면서, 스스로 무엇인가 달라진 줄 깨닫습니다.


  에바는 무엇을 했을까요? 에바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했습니다. 에바는 억지로 살을 빼려고 하는 짓을 그만두면서, 스스로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꿈꾸는 ‘나다움’을 찾자고 생각합니다. 나를 나대로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길을 바라보자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제대로 웃은 적이 없던 에바는 제 모습을 제대로 바라본 첫날, 비로소 웃음을 마음껏 짓습니다. 스스로 웃음을 지은 에바는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다만, 에바가 짜증과 골과 아픔과 슬픔 때문에 ‘퍼먹기’를 했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고, ‘이대로 많이 퍼먹는 삶’을 그대로 갈 수 없다고, 어머니한테 ‘밥’을 예전처럼 주지 말라고 말하면서, 에바도 스스로 제 밥을 짓는 삶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합니다. 에바네 어머니는 에바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는, 에바네 아버지한테 ‘앞으로 새로 지을 밥’이 입맛에 안 맞는다면 혼자 밖에 나가서 외롭게 밥을 사다 먹으라고 해야겠다고 말하면서 웃습니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습니다. 함께 꿈꾸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함께 짓는 사랑이 달콤합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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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소연



  공을 차는 지소연 님이 있다. 스물네 살이라 하고 키는 161센티미터라고 한다. 이녁은 ‘지메시’라는 이름을 얻기도 하는데, ‘메시’라는 사람은 스물여덟 살에 키는 170센티미터라고 한다. 메시라고 하는 사람은 축구를 대단히 잘해서 ‘하느님’ 소리를 듣는다. 키가 작고 몸도 그리 크지 않은 두 사람인데, 둘은 발놀림이나 몸놀림이 몹시 빼어나다고 한다.


  키가 크거나 덩치가 좋아야 공을 잘 차지 않는다. 몸집이 크거나 힘이 세야 운동경기를 잘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운동경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놀랍도록 보여주고, 운동경기뿐 아니라 삶을 어떻게 짓는가를 찬찬히 알려준다.


  161센티미터라는 키와 가벼운 몸무게로 20∼30센티미터는 더 크고 몸도 훨씬 큰 사람들을 젖히거나 밀리지 않으면서, 하늘 높이 뜬 공도 거뜬히 받는다면, 이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169센티미터라는 키로 배구 무대에서 후위공격까지 하던 장윤희 님이 있다. 여자로서 169센티미터라면 작은 키가 아닐 테지만, 배구선수로서 이만 한 키라면 참으로 작다. 그러나 이녁은 나비처럼 날고 벌처럼 쏘듯이 경기장에서 뛰어다녔다.


  모든 일은 언제나 마음과 생각으로 한다. 하겠노라는 생각을 마음에 단단히 새길 때에 어떤 일이든 한다. 하겠노라는 생각이 없어서 마음에 아무것도 새기지 않을 때에는 참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천 쪽이나 만 쪽에 이르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 읽겠노라는 생각을 마음에 즐겁게 새기면 며칠이 아니라 하루 만에 읽을 수도 있다. 몸도 키도 작은 수많은 어머니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업고 안고 이끌면서 저자마실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작은 몸집으로 어떻게 살림을 다부지게 이끌고 가꾸면서 아이들한테 사랑과 꿈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작은 사람은 그저 몸이 작을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몸은 작아도, 속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크면 못 할 만한 일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몸은 커도, 속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작으면 못 할 일만 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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