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순이 9. 피리 소리가 차츰 (2015.4.26.)



  큰아이가 부는 피리 소리가 차츰 자리를 잡는다고 느낀다. 스스로 손을 놀리면서 스스로 가락을 잡는구나 싶다. 스스로 날마다 불고 또 불어서 휘파람을 익숙하게 부는 큰아이는, 이제 바람을 내쉴 적에 제법 차분하다. 아직 흔들리거나 떨리는 결을 느낄 수 있으나, 퍽 고르게 숨을 내쉬다 보니, 피리를 불 적에도 소리가 천천히 가닥을 잡으려 한다. 날마다 불고 또 불고 다시 불면, 머잖아 피리로도 노래를 멋지게 불리라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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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스 파랑새 그림책 79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5



버스를 타는 아이들은

― 빨간 버스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파랑새 펴냄, 2009.4.24.



  나는 어릴 적에 버스를 타면 맨 앞이나 맨 뒤에 즐겨 앉았습니다. 맨 앞에 앉으면 버스가 달리는 길이 시원하게 트여서 넓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맨 뒤에 앉으면 버스가 달리면서 휙휙 지나치는 길을 가만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맨 앞이나 맨 뒤가 아닌 가운데쯤에 서면 창밖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디쯤 지나가는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버스에 손님이 가득한 날은 이리저리 밀리면서, 막상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리기도 합니다.


  아마 누구라도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아서 느긋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싶어 하리라 느낍니다. 어정쩡한 자리보다는 눈앞이 시원하게 트이는 자리를 좋아하겠지요. 그러니, 우리 집 아이들이 맨 앞에 앉아서 신나게 바깥을 내다보려고 하는 마음을 잘 알 만합니다. 아이들은 키가 작으니 가운데쯤 어정쩡하게 서거나 앉으면 바깥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애써 버스를 탔는데 창밖을 구경할 수 없으면 몹시 서운합니다.




.. 수업이 끝나면 키티는 버스에 타서 두리번거려요. 키티는 언니랑 앉고 싶은데, 언니는 친구들이랑 앉고 싶대요. 키티는 맨 앞자리에 앉고 싶은데, 다른 애가 늘 먼저 앉아 있어요 ..  (4쪽)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이레나 보름에 한 차례쯤 버스를 탑니다. 읍내를 다녀올 적에 버스를 탑니다. 그야말로 어쩌다가 한 번 타는 버스요 자동차인 터라, 아이들은 읍내마실을 몹시 기다립니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소리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늘 똑같이 바라보는 창밖 모습을 언제나 새롭게 마주합니다.


  시골버스가 구불구불힌 길에 흔들리며 달리면 까르르 웃으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버스를 마치 놀이기구로 여깁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 타는 버스인 터라, 내릴 적에 단추를 꼭 누르고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먼저 단추를 누르면 골을 부리기까지 하고, 단추가 손에 안 닿는 곳에 있으면 그야말로 섭섭합니다.




.. “가자.” 언니는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가요. 키티는 언니를 따라가느라 늘 총총대요 ..  (10∼11쪽)



  제인 고드윈 님이 글을 쓰고, 안나 워커 님이 그림을 그린 《빨간 버스》(파랑새,2009)를 읽습니다. 자동차나 버스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빨간 버스》 같은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주 들추지는 않습니다. 틈틈이 들추기는 하되, 손수 버스를 만들어서 놀기를 훨씬 좋아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집 작은아이처럼 버스놀이를 곧잘 했다고 떠오릅니다. 장난감이 없어도 맨손으로 버스 모습을 그려서 놀고, 연필이나 나무젓가락을 버스로 삼아서 놉니다. 돌멩이나 나뭇잎을 버스로 삼기도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길고도 거칠며 깊은 곳을 버스가 달린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생각에 폭 빠져서 놀이를 할라치면, 참말 나는 버스를 타고 아주 먼 곳을 신나게 달린다고 느낍니다. 꿈에서 깨어 이곳으로 돌아오면 아쉽습니다.


  버스를 타고 움직일 적에 때때로 이 버스가 하늘을 날거나 바닷속을 누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덜컹거린다든지, 구부정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릴 적에는 온몸이 짜릿짜릿합니다.




.. 키티가 부스스 눈을 떴을 때, 사방이 아주 깜깜했어요. 키티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리번거렸어요.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  (22쪽)



  그림책 《빨간 버스》는 ‘버스놀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버스와 얽힌 애틋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몸이 작고 마음이 여린 아이가 언니 꽁무니를 좇으며 버스를 타지만, 막상 언니와 어울려서 놀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니 옆에 앉지도 못하고, 맨 앞에 앉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언니 없이 혼자 버스를 탔는데 그만 버스에서 잠들었다고 해요.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걱정하면서 덜덜 떨 적에, 버스 일꾼이 아이를 알아봅니다.



.. 바로 버스 운전사 아저씨였어요. “아저씨, 저 못 내렸어요.” 키티가 콩알만 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저씨는 조용히 웃음을 짓더니, 빨간 담요를 가져와서 키티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어요 ..  (26쪽)



  그림책 《빨간 버스》에 나오는 아이는 맨 앞에 앉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언니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운 마음이 되어 버스를 타고 싶습니다. 날마다 타고 다니는 버스에서 즐겁게 웃고 맑게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혼자 동떨어진 채 말 한 마디 섞지 못하고 쓸쓸하게 달리는 버스가 아니라, 창밖도 신나게 구경하면서 동무나 언니하고 도란도란 말을 섞을 수 있는 버스가 되기를 바라요.


  더 빨리 달려야 하지는 않습니다. 더 멀리 달려야 하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길을 달리더라도, 이 길에서 즐거움을 실컷 맛보고 싶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어요. 모두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면 버스는 몹시 따분합니다.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다면 버스는 몹시 괴롭습니다.


  웃고 떠들기에 싱그러운 기운이 흐릅니다. 서로 따스하게 마주보면서 마음을 기울이기에 즐거운 바람이 붑니다. 이곳과 저곳 사이를 잇는 버스는 나와 너 사이에서 이야기를 싣고 가볍게 달립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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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권정생) 양철북 펴냄, 2015.5.1.



  이오덕 권정생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을 읽는다. 이 책은 2003년에 갑작스레 나온 적 있다. 그때에는 이 책을 안 읽었다. 작가와 맺은 다짐을 어기고 ㅎ출판사에서 몰래 펴낸 책을 함부로 읽을 수 없었다. 이 편지꾸러미가 제대로 된 출판사를 만나서 제대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열두 해 만에 두 분 편지꾸러미를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예쁜 책으로 찬찬히 읽는다. 두 분이 나눈 편지는 1970년대 이야기여도 새롭고, 1980년대 이야기여도 새삼스럽다.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더 흐르더라도 두 분이 맺은 꿈과 사랑은 한결같이 흐르리라 느낀다. 고이 잠든 두 분이 나눈 이야기는, 오늘 이곳에서 고이 꿈을 꾸거나 사랑을 속삭이려는 사람들한테 고운 마음밥이 되거나 생각씨앗이 될 테지. 한 쪽을 읽고 숨을 가다듬고, 두 쪽을 읽으며 숨을 돌린다. 석 쪽을 읽고 한동안 책을 덮으며, 넉 쪽을 읽으며 마당으로 내려서서 햇볕을 받으며 먼 하늘 구름을 바라본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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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5년 04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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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큰아버지한테서 받은 선물



  인천에 있는 형한테 돈을 빌린다. 이달과 다음달 살림돈이 아주 밑바닥이라서 버티고 견디고 참고 허덕이다가 빌린다. 고맙게 숨통을 트면서 작은아이한테 버스 장난감을 선물로 장만한다. 모자란 살림돈을 채우면서 왜 버스 장난감을 사느냐고 한다면, 작은아이는 이 장난감 버스를 선물로 넉넉히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작은아이는 장난감 하나를 오래도록 아끼고 건사하면서 놀 줄 안다. 이것 만지면서 놀다가 지겨워 하거나, 저것 만지면서 놀다가 잊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제 ‘장난감 자동차’ 가운데, 경찰차와 소방차와 작은차가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 버스가 없는 줄 느꼈다. 이리하여 ‘버스 자동차’를 노래했으니 버스 장난감 하나를 들일 만했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장만한 버스는 ‘인천 공항버스’이다. 재미있게도 그러네. 인천에 있는 큰아버지가 보태 준 살림돈으로, 고흥 읍내에 있는 문방구에서 ‘인천 공항버스’ 장난감을 장만했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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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2] 둘이 느긋하게

― 마당에서 듣는 노래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놀다가 후박나무 밑에서 지렁이와 딱정벌레를 봅니다. 지렁이와 딱정벌레를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자꾸 만지작거리면 작은 이웃이 아프거나 다친다고 서로 말을 섞기도 합니다.


  조용히 바람이 불고, 볕이 들다가 구름이 비치기도 합니다. 풀잎하고 빛깔이 엇비슷한 초피꽃이 핍니다. 후박나무도 꽃을 피우려고 비늘잎을 떨굽니다. 여러 새가 후박나무 우듬지에 내려앉아서 노래하다가, 지붕에도 앉고, 전깃줄이나 전봇대에도 앉습니다.


  마당에서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서 노는 아이들은 새와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풀과 꽃과 나무가 베푸는 냄새를 맡습니다. 이러면서 해가 나누어 주는 볕과 빛과 살을 받아먹습니다.


  둘이 느긋하게 놉니다. 나도 느긋하게 일합니다. 둘이 찬찬히 놉니다. 나도 찬찬히 일합니다. 시골사람을 두고 느긋하거나 느리다고 말하기 일쑤인데, 시골에서는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골일은 날과 달과 철을 헤아려서 제때에 알맞게 하는 일이니까요. 모든 시골놀이도 날과 달과 철을 살펴서 그때마다 신나게 하는 놀이가 되니까요.


  아이들이 마시는 바람을 어버이가 함께 마십니다. 아이들이 듣는 노래를 어버이가 함께 듣습니다. 아이들이 누리는 햇볕과 햇살과 햇빛을 어버이가 함께 누립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은 우리 보금자리요 삶터입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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