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알 바라보기



  매화꽃이 졌으니 매화알이 익는다. 작은 꽃이 졌으니 작은 알이 맺는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알이지만, 차츰 굵는다. 어떤 열매도 처음에는 모두 조그맣다가 차츰 굵는다. 길다란 오이도 오이꽃이 져서 처음 익을 무렵에는 참으로 작다. 커다란 박도 박꽃이 진 뒤 비로소 열매가 익을 무렵에는 대단히 작다. 사람을 빚는 씨앗도 맨 처음에는 더없이 작다. 알찬 열매로 익기까지 모두 조그마한 씨앗이요 꽃이다. 푸르게 우거지는 잎은 열매가 잘 맺도록 기운을 북돋운다. 매화잎은 날마다 짙푸르게 거듭나고, 매화알도 날마다 단단하게 여문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리가면 4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510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 유리가면 4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아무리 맛난 밥을 먹더라도 몸이 꽁꽁 묶였다면, 밥맛이 없습니다. 으리으리한 호텔에 묵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 발짝조차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면, 으리으리한 호텔은 감옥입니다. 온갖 시설을 훌륭하게 갖춘 학교라 하더라도 입시지옥만 바라본다면, 온갖 시설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읽은 책이나 갖춘 책이 많아도 지식을 머릿속에만 담으면서 자꾸 다른 책을 장만하기만 한다면, 수많은 책과 지식은 모두 덧없습니다.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무나 밝은 저 웃음은. 나와 같은 역을 하게 되어 벌벌 떨며 불안해 할 줄 알았더니. 마치, 마치 나 같은 건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한 저 웃음. 이 아유미 따위는.’ (11쪽)

- “극단 온딘이 어떤 〈키 재보기〉를 하는지, 아유미가 어떤 미도리를 연기하는지, 나하고는 상관없어. 나는 내 미도리를 연기할 뿐.” (30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넷째 권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유리가면》에 나오는 츠기카게 님과 마야는 연극을 둘러싸고 고단한 가시밭길을 걷습니다. 두 사람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과 못살게 구는 무리가 있습니다. 삶에서 연극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한 두 사람한테서 연극을 빼앗으려고 하는 모질거나 못난 사람과 무리라고 할까요.


  그런데, 츠기카게 님이나 마야는 둘레에서 아무리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더라도 다시 일어섭니다. 다시 일어서면서 웃고, 다시 기운을 차릴 뿐 아니라, 이제껏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 “아유미와 경쟁한다니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굉장한 미인이겠지?” “그냥 평범한 여자애지요.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소녀라고 할까.” (49쪽)

- “이곳에서 당신과 겨루다니, 재미있게 됐군요.” “겨뤄? 일부러 같은 연극을 고르고, 무대 연습을 못하게 조작하고, 우리 순서를 온딘의 바로 뒤로 잡고, 뒷공작이 대단하시던데. 사실은 내가 두려운 거겠지. 오노데라 씨.” (74∼75쪽)





  곰곰이 따지면, 츠기카게 님이나 마야가 아무 볼 일이 없을 만큼 하찮다고 여긴다면, 이 둘을 괴롭힐 사람도 못살게 굴 무리도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하기 때문에 자꾸 괴롭히려 합니다. 괴롭혀서 쓰러뜨리려 하고, 못살게 굴어서 무너뜨리려 하지요.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한 숨결과 넋으로 연극길을 걷기 때문에, 둘레에서 이 둘을 아무리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든 끄떡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파서 울고, 때로는 슬퍼서 넘어지지만, 언제나 새롭게 기운을 차리는 두 사람입니다. 언제나 새삼스레 웃음꽃을 피울 줄 아는 두 사람이에요.



- “아유미의 완벽한 연기도 멋지지만, 하지만 이 아이의 미도리도 신선해 보이지 않아? 아유미가 이 장면에서 어렴풋한 성숙미를 느끼게 했던 것에 비하면, 이건 과연 소녀의 사랑이구나, 하는 느낌이군요.” (92쪽)

- “나 왠지, 아유미보다 이 마야라는 애의 미도리에 더 호감이 가는데.” “왜일까? 아유미 쪽이 훨씬 예쁘고 연기력도 있는데, 이쪽 미도리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 불가사의해, 이 아이.” (102쪽)





  〈홍천녀〉라는 연극을 선보인 츠기카게 님한테 사람들이 끌린 까닭이나, 마야가 보여주는 연극에 사람들이 끌리는 까닭은, 밑바탕이 같습니다. 두 사람은 빈틈없는 무대보다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줍니다. 츠기카게 님은 빈틈없는 모습까지 있으면서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주었다면, 마야는 아직 아름다운 무대만 보여줄 수 있으나, 마야와 맞서는 아유미를 바라보면서 마야도 ‘빈틈없이 보여주는 무대’를 차근차근 꿈꾸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리고, 아유미라는 아이도 마야를 맞잡이로 바라보고 살피면서, 아유미한테는 없으면서 마야한테 있는 숨결이나 넋이 무엇인가를 하나씩 깨달으려고 합니다. 아유미는 오늘 이곳에서 보여주는 무대만으로도 빈틈이 없지만, 빈틈없는 연기만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거나 건드릴 수 없는 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아무리 빈틈없이 연기를 하더라도, 빈틈없는 연기는 ‘빈틈없는’ ‘연기’일 뿐인 줄 천천히 알아차리려 합니다.


  그렇다고 빈틈없는 연기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빈틈없는 연기는 늘 빈틈없는 연기에서 맴돌 뿐입니다. 빈틈없는 연기는 나빠질 일이 없습니다만, 이와 마찬가지로 좋아질 일도 없습니다. 나빠지지도 않으나 좋아지지도 않기 때문에, 빈틈없는 연기를 지켜보는 사람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숨결이 없고 살내음이 없으며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숨결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곧 질리기 마련입니다. 살내음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머잖아 지치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없는 빈틈없는 연기는 이내 시들기 마련입니다.




- “대단해, 저 애. 그냥 절을 하는 것만으로 관객의 주목을 한몸에 받다니. 멋지게 관객의 호흡을 붙잡았어.” “아유미도 참, 우연일 뿐이야.” “그렇겠지.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119쪽)

- “마야, 연극을 하고 있을 때의 너는 볼품없는 아이가 아니야. 연극을 할 때면 항상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야. 어떤 때는 시골 아가씨, 어떤 때는 말괄량이 마을 처녀. 왕여노롣, 요정으로도, 우등생도 될 수 있고 우주인도 될 수 있어. 천 가지, 만 가지의 가면을 쓰고 천 가지, 만 가지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거야. 남들은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지만, 넌 달라.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멋진 일이냐! 연극을 해라, 마야! 그래야 넌 비로소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어. 그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비로소 너라는 인간의 가치가 나타나는 거야.” (158∼159쪽)



  사랑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장마가 들어도 곰팡이가 피지 않습니다. 사랑은 배고파도 힘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난해도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 배운 지식이 없어도 어리석지 않습니다. 사랑은 외딴 곳에 있어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먼 길을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사랑은 바로 삶을 이루는 기둥이요 뼈대이며 살점이고 모든 빛과 고요입니다. 사랑은 바로 삶을 키우는 노래이고 춤이며 웃음이자 이야기입니다.


  《유리가면》에 나오는 마야한테는 ‘사랑’이 있습니다. 남녀 사이에 오가는 짝짓기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고요하면서 그윽한 사랑입니다. 따스하면서 너른 사랑입니다. 고마우면서 반가운 사랑입니다. 꿈으로 나아가는 날갯지이 되는 사랑입니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610) 양념가루(가루양념)


분말(粉末) = 가루

스프 : x

수프(soup) : 고기나 야채 따위를 삶아서 낸 즙에 소금, 후추 따위로 맛을 더한 서양 요리

양념 : 맛을 돋우려고 쓰는 재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

soup base



  라면마다 ‘분말스프’가 들었습니다. 그냥 ‘스프’라고만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프’로 적으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한글로는 ‘수프’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라면에 넣는 ‘분말스프(스프)’는 영어로 ‘soup base’를 줄여서 쓴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분말수프베이스’를 줄여서 쓰는 셈인데, 라면을 만드는 회사 가운데 ‘분말스프’ 아닌 ‘분말수프’로 적는 곳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끓여서 먹는 국물”은 ‘수프’라 하고, “라면을 끓일 때에 양념을 하는 가루”는 ‘스프’라고 여긴다고 할 만합니다. 라면 회사에서는 ‘스프’와 ‘수프’를 아예 다른 것으로 여겨서 둘을 다르게 적는다고 볼 만합니다.


 분말스프 = 분말 + 스프 → 가루 + 양념


  한국말사전을 찾아봅니다. ‘분말’은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가루’로 고쳐쓰라고 밝힙니다. 그러니까, 라면에 넣는 ‘분말스프’는 먼저 ‘가루스프’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가루양념 . 양념가루


  가루로 되어서 맛을 더할 적에 쓰는 ‘분말스프’입니다. 그러니, ‘가루로 된 양념’이라든지 ‘양념 구실을 하는 가루’인 셈입니다. 가루로 된 양념이라고 여기면 ‘가루양념’이라 할 수 있고, 양념 구실을 하는 가루라고 여기면 ‘양념가루’라 할 수 있어요.


  ‘양념가루’나 ‘가루양념’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오릅니다. 그렇지만, 이 낱말을 쓰는 사람이 제법 있고, 양념가루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도 있어요. 라면 회사에서도 앞으로 ‘양념가루·가루양념’이라는 낱말을 받아들여서 ‘분말스프’와 같은 어수룩한 낱말을 손질할 수 있을까요?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다니기



  아이들과 살기에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니 늘 아이들을 바라본다. 두 아이는 서로 가장 가까운 놀이동무가 되고, 툭탁거리는 일도 있으나 사이좋게 아끼고 지켜보면서 하루를 누린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어떤 사이가 될까. 어버이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두 사람 사이가 이어질 테지.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삶을 물려받는가. 어버이가 보여주고 싶은 삶을 아이가 바라보면서 찬찬히 제 삶을 짓겠지. 아이가 철이 들어 온 하루를 스스로 빚을 때까지는 어버이가 들려주고 보여주고 알려주는 길대로 아이가 걸어가리라 느낀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동안, 어버이는 제 삶을 일구면서 아이가 사랑과 꿈을 짓는 넋을 북돋운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리가면 3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508



빛나는 얼굴

― 유리가면 3

 미우치 스즈에 글·그림

 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4.30.



  놀이는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놀이는 재미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거나 대단한 놀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기쁘게 하는 놀이가 아니라면 재미없습니다.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힘겹습니다. 아무리 쉽다고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고단하기 마련입니다.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은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재미있게 일하는 어른들은 얼굴이 맑게 빛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스럽게 고요한 바람입니다.




- ‘바보같이. 그 애가 실수를 잘 얼버무렸다고 해서, 왜 내가 안심이 되는 거지?’ (9쪽)

- ‘평소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돌멩이처럼 수수하고 튀지 않는 보잘것없는 소녀인데. 어째서일까.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저 아이, 빛나고 있어!’ (26쪽)



  미우치 스즈에 님 만화책 《유리가면》(대원씨아이,2010)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 접어든 《유리가면》에서 ‘마야’라는 아이는 연극밭에 발을 더 깊게 내딛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씩씩하게 연극길을 걷습니다. 학교에서 학과공부는 아주 어수룩하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돋보이면서 아름답습니다. 방정식 하나를 못 외워서 쩔쩔매지만, 연극 무대에서 외는 이야기는 토씨 하나도 안 틀립니다. 연극 무대에 서는 마야는 모든 사람 눈길을 한몸에 사로잡습니다.





- ‘이게 무슨 짓이지? 꽃다발이라구? 지금까지 어떤 여자에게도 꽃 따위를 보낸 적이 없는 내가? 그것도 열 몇 살짜리 소녀에게.’ (46∼47쪽)

- ‘마야, 묘한 아이야. 학교 공부는 방정식 하나 제대로 못 외우면서, 드라마의 대사는 단번에 외우다니. 정말 희한한 녀석이야.’ (55쪽)



  누군가는 연극 무대에서 쩔쩔매겠지요.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쩔쩔매더라도 학과공부는 눈부시게 잘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춤이나 노래에는 영 어수룩할 테지요. 그러나, 춤이나 노래는 어수룩하더라도 글을 잘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집살림 가꾸는 일에는 어수룩하지만, 자전거를 매우 잘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괭이질이나 호미질은 어수룩하지만,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어른이 있습니다. 회사원으로도 공장 노동자로도 일이 아주 어수룩하지만, 밥을 잘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총이나 활을 다룰 줄 모르지만, 풀과 나무를 사랑하면서 아끼는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자리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빛나는 삶터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 어울리는 지구별이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제 꿈을 키우는 별나라입니다.




- ‘그래, 연극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어. 연극이란 재미있어. 차례차례로 여러 가지 인물이 될 수 있는걸.’ (101쪽)

- ‘어째서 이 세상에 그런 아이가 있는 거지? 예쁘고 영리하고 유복한 가정. 게다가 연기의 천재. 어째서 난 그렇게 태어나질 못했지?’ (146쪽)

- ‘그래 움직임도, 아주 작은 동작의 차이로 여러 가지 성격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거야. 성격을 만든다! 그렇다! 성격을 만들어 낸다! 어째서 몰랐을까?’ (152∼153쪽)



  마야라는 아이는 연극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마야가 갈 길은 학과공부가 아닙니다. 연극입니다. 마야한테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은 한숨을 쉬어야 합니다. 마야는 다른 일은 그야말로 어수룩하거든요. 청소도 어수룩하고 밥도 어수룩합니다. 도무지 연극이 아니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둘레를 살펴보면, 마야처럼 어느 한 가지를 눈부시게 잘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직 어느 한 가지를 잘 하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대로 제 솜씨를 드러내지 못하면서 숨을 죽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제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학과공부에 얽매여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얼굴로 지내야 아름다울까요? 스스로 가장 재미난 일이나 놀이를 누리는 얼굴로 지내야 아름답겠지요. 아이들은 어떤 낯빛으로 노래하거나 춤출 때에 예쁠까요? 대중노래나 연속극을 흉내내는 노래나 춤이 아닌, 스스로 사랑스러운 꿈으로 나아가는 노래와 춤을 누릴 수 있을 때에 예쁘겠지요.





- “그게 어쨌다는 거냐? 우리는 우리야! 다른 사람들이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106쪽)

- “아유미는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다. 완벽한 미도리를 연기하겠지. 원작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미도리 그 자체를. 완벽한 미도리, 그것이 천재의 한계라는 거다. 결코 그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다는 얘기지.” (161쪽)



  마야와 달리 ‘아유미’는 천재입니다. 아유미와 달리 ‘마야’는 삶을 연극으로 누리는 아이입니다. 천재인 아유미가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은 ‘빈틈없는 무대’입니다. 삶을 연극으로 누리는 마야가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은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무대’입니다. 아유미는 백 번이나 천 번을 무대에 올라도 언제나 ‘똑같이 빈틈없는’ 무대를 보여줄 테고, 아유미는 백 번 무대에 오르면 백 가지 무대를 보여주고 천 번 무대에 오르면 천 가지 무대를 보여줄 만합니다.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멋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른 삶으로 태어나서 저마다 다른 길을 스스로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8.5.2.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