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나무판



  책꽂이를 짤 적에 반드시 뒤쪽에 얇은 나무판을 댄다. 얇은 나무판을 대지 않으면 책꽂이가 되지 않는다. 뒤쪽에 두꺼운 나무판을 댈 수 있으나, 책꽂이를 짜면서 뒤쪽에 두꺼운 나무판을 대는 사람은 없다. 두꺼운 나무판을 대면 책꽂이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책꽂이 뒤쪽에 나무판을 안 대면 어떻게 될까. 얇은 나무판이라지만, 이 나무판을 뒤쪽에 안 되면, 아무리 두꺼운 나무로 단단히 틀을 짰어도,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뒤틀린다. 얇은 나무판을 대고 작고 가는 못을 박더라도, 이 얇은 나무판이 있기에 책꽂이는 안 흔들리고 안 뒤틀린다. 언제까지나 튼튼하게 서서 책을 지켜 준다.


  책을 이루는 종이는 얇다. 겉종이는 두툼하고, 속종이는 얇다. 얇게 빚은 종이에 온갖 이야기를 얹는다. 나무를 베어 얇게 보들거리는 종이를 빚은 뒤, 언제까지나 고이 흐르는 이야기를 얹는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얇은 속종이를 읽는다. 얇은 속종이에 얹은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이루는 종이는 얇지만, 이 얇은 종이에 얹힌 이야기는 깊다. 이야기가 있기에 책이고, 이야기를 얹어서 나누기에 책이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책을 물려주고, 이야기를 펼치기에 책을 쓴다. 얇은 나무판처럼, 얇은 종이처럼, 얇고 가냘프면서 하얀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얇은 종이에 까만 글씨를 새겨서 이야기를 짓듯이, 얇고 가냘프면서 하얀 마음에 까만 씨앗을 하나둘 심어서 아름다운 생각을 짓는다. 4348.5.5.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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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놀이 21 - 너른 터를 달리려고



  아이들은 마냥 달리면서 신난다. 아이들은 마음껏 달릴 수 있을 때에 신난다. 너른 터, 이른바 운동장이나 광장 같은 곳은 꼭 있어야 한다. 조그맣다 하더라도 마당이 있어서 실컷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질척거리는 땅이든, 엉성한 풀밭이든, 어떤 땅이어도 다 좋다.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땅을 이 아이들한테 주어야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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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놀이 13 - 어디에서나 함께 놀자



  큰아이가 동생과 인형놀이를 한다. 서로 인형을 하나씩 들고 어디를 가든 함께 논다. 이러다가 다른 더 재미난 놀이가 있으면 인형을 내려놓고 다른 놀이에 사로잡힌다. ‘반짝 인형놀이’인 셈이다. 인형은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인형은 아이들이 다시 와서 함께 놀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하나는 누워서, 하나는 엎드려서, 둘은 다른 모습으로 두 아이를 기다린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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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꽃이 질 무렵



  처음 피어난 딸기꽃이 질 무렵 바람은 아주 따스하다. 딸기꽃이 질 무렵 봄이 저무는구나 싶은 바람이 불고, 이 바람을 쐬면서 들일을 하는 일꾼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딸기꽃이 져서 딸기알을 맺을 무렵, 들일을 하는 일꾼은 들딸기를 훑으면서 고픈 배를 가신다. 시골 들판에서 들딸기는 들일을 하는 들사람과 들동무요 들님이 되어 준다. 하나둘 지면서 새롭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딸기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8.5.4.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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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꽃과 지는 꽃



  피는 꽃이 있으니 지는 꽃이 있다. 피는 꽃은 햇볕을 받아 눈부시고, 지는 꽃은 햇볕을 품에 담으면서 씨앗으로 거듭난다. 피는 꽃은 지난해에 여문 씨앗에서 새로 깨어난 숨결이고, 지는 꽃은 이듬해에 새롭게 깨어날 수 있도록 가슴에 고요하게 사랑을 담은 넋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이 꽃대에 함께 있다. 한몸에 피는 꽃과 지는 꽃이 나란히 있다. 곱구나. 4348.5.4.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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