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는 언제나


  새벽에는 언제나 아주 일찍 일어나려고 한다. 그래야 쌀을 씻어서 불릴 수 있으니까. 겨울이라면 밤에 쌀을 씻어서 불리나, 따뜻한 봄과 더운 여름에는 새벽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쌀을 씻는다. 새벽녘부터 하나둘 사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아련하게 떠올리면서 쌀을 씻는다. 해가 솟으면서 퍼지는 빛살과 볕을 고루 느끼면서 쌀을 씻는다. 싱그러이 부는 살풋한 바람을 받으면서 쌀을 씻는다.

  이 쌀을 끓여서 밥을 지으면 맛나겠지. 몸을 살리고, 마음을 북돋운다. 마음에 따순 생각이 자라도록 몸에 예쁜 밥을 베푼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언제나 기쁘면서 푸른 마음이 된다. 4348.5.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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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을 열다



  올해는 오월 십오일에 뒷문을 연다. 뒷문은 어디인가? 마루문이 집에서 앞문이고, 뒤꼍을 바라보는 쪽 문이 뒷문이다. 오늘은 방이 26℃까지 오른다. 두 아이가 모두 덥다고 한다. 벌써 이런 날씨가 되었나 하고 돌아보다가 참말 그렇구나 하고 다시 생각한다. 나도 꽤 더워서 민소매를 입어야 할는지, 아니면 웃옷은 벗어야 할는지 망설이는 하루이다.


  뒷문을 여니 뒷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시원하다. 맑구나. 아이들도 잘 자겠지. 밤에 추우면 이불깃을 여미면 된다. 시골밤은 좀 추워야 한다. 그래야 몸이 더욱 튼튼하게 자라리라.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한다. 아직 논에는 아무도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개구리가 그야말로 힘차게 노래한다. 예쁜 개구리들아, 밤노래를 들려주어 고맙다. 4348.5.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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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13.

 : 걷고 걷는다



도서관에 들른 뒤 우체국으로 달린다. 오월이 한껏 무르익으니 가만히 서서 해를 바라보면 덥고, 나무그늘에 서면 시원하며, 자전거를 달리면 바람맛이 아아아 상큼하다. 어느덧 이런 철이 되었구나. 달력이 아니라 바람과 하늘을 보니 이렇게 철이 사뭇 바뀌는구나.


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인 호덕마을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한창 공사를 한다. 상수도 공사를 한다. 시골마을에 수돗물이 흐르도록 하겠다면서 벌이는 공사이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이 공사를 모두 반기는 듯하다. 관청에서 자꾸 ‘지하수’는 나쁘다고 떠벌이고 ‘수돗물’이 몸에 좋다고 외치니까, 시골에서조차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구나 싶다.


늘 느끼는데, 시골에서조차 도시처럼 수돗물을 마신다면,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로 와서 살고 싶을까 궁금하다.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은 손수 흙을 일굴 뿐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맑은 물과 고운 볕과 넓은 하늘과 푸른 숲을 누리려는 마음이라고 본다. 아닐까? 도시에서 애써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데, 맑은 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면 즐거울까? 수돗물을 마셔야 하는 곳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고픈 도시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가 잠든다. 바람 따라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빈 쌀푸대를 하나 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흘릴 즈음, 큰아이가 “나, 자전거에서 내릴래. 걷고 싶어.” 하고 말한다. 참말 걷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아껴 주려는 마음일까. 아무튼, 자전거를 세워서 걷기로 한다. 자전거순이에서 걷기순이로 바뀐 큰아이는 들길을 노래하면서 총총총 달린다. 하하하 웃으면서 춤을 춘다. 큰아이가 보여주는 멋진 ‘걸음춤’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걷기순이야,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어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끌어야 한단다. 자전거를 달려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달리지. 그러니까, 네가 참말 스스로 걸으면서 들바람을 쐬고 싶으면 그저 그 마음 그대로 기쁘게 걸으렴. 네 아버지는 자전거를 달리든 걷든 모두 즐거우니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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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문학동네 펴냄, 2015.4.28.



  정수복이라는 분이 쓴 산문책을 읽는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라는 책인데, 책 첫머리를 보니,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자나 지식인이 ‘어렵게 쓰는 글’하고 ‘논문 쓰기’를 살작 나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이야기도 들려줄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막상 정수복이라는 분이 쓴 글도 ‘쉽지’ 않다. 무척 딱딱하고 어려운 낱말이 가득하다.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도 많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라는 책은 ‘논문이 아닐’ 뿐, ‘여느 논문에서 흔히 볼 만한 말투’가 가득한 ‘인문책’이다. 어느 모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책이름부터, 글쓴이는 스스로 ‘사회학자’라고 밝힌다. ‘서울시민’이나 ‘한국사람’으로서 서울을 걷는 발걸음이 아니라, ‘사회학자’로서 서울 같은 도시를 걷는다고 밝힌다. 그러니, 이 책은 논문이 아니면서도 논문과 닮은 글이 될밖에 없다. 동네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동네를 거닐어도 이 책처럼 글을 쓰지는 않으리라. 정수복 님이 ‘논문 글쓰기’를 넌지시 나무라려고 한다면, 누구보다 정수복 님부터 스스로 ‘동네 아저씨’가 되어서 ‘이웃 아저씨’한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걸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투로 글을 쓰면 될 텐데. 걷는 이야기를 쓰니 반가우면서도, 스스로 어깨에 힘을 못 빼면서 다른 사람더러 어깨에 힘을 빼라고 자꾸 말하니까, 책을 읽다가 자꾸 눈에 걸린다. 4348.5.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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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서울을 생각한다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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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바다출판사 펴냄, 2015.5.8.



  마루야마 겐지라는 분이 쓰는 글은 무척 차분한 듯싶지만, 가만히 보면 ‘차분함’이라고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면 무엇인가 하면, 마루야마 겐지라는 분은 오직 ‘마루야마 겐지다운 글’을 쓴다. 아무 흉내도 내지 않는다. 어떤 글흐름(문예사조)도 따르지 않는다. 그저 마루야마 겐지로서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글로 빚는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라는 책도 오직 마루야마 겐지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을 묶었다고 느낀다. 다만,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어떤 마음이거나 몸짓이거나 삶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살며 도시살이가 익숙한 분이 옮길밖에 없었을는지 모르나, 시골에서 곁님하고 둘이 살면서 흙을 만지고 글을 쓰는 마루야마 겐지다운 숨결이나 목소리가 잘 드러났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번역이니까’ 읽는다고 할까? 마루야마 겐지를 한국말로 옮겨 주었으니 고맙게 느낀다고 할까?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다른 바람맛을 누릴 수 있었다면, 이 책은 사뭇 다른 번역이 되었으리라 느낀다. 고마우면서 아쉬운 책이다. 4348.5.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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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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