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못하고는 없는데



  아이들이 놀다가 다투든, 아이들이 놀면서 노래하든, 잘못하거나 잘하고는 없다. 그런데 이를 으레 잊는다. 왜 잊을까? 아이들과 촛불보기를 하면서 한 아이씩 재운다.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 스스로 내가 아이들하고 ‘잘하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적에 언제나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다그치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하는 일’이라거나 ‘잘못하는 일이 없다’고 여길 까닭이 없다. 그저 ‘아이들하고 함께 이곳에서 살며 같이 나누는 숨결’인 줄 느끼면서 맞아들이면 된다. 두 아이는 모두 잔다. 어쩌면 큰아이는 자는 척하다가 살그머니 일어날 수 있다. 깊이 잠들었기에 낮잠을 잘 자려 하면서 예쁜 아이가 아니요, 살풋 잠들려 하다가 일어나기에 안 예쁜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늘 온갖 모습으로 어버이를 일깨운다. 이러면서 아이도 아이 스스로 배운다. 함께 살기에 함께 가르치고, 함께 사랑하기에 함께 배운다. 4348.5.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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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78. 2015.5.15. 밥판과 풀밥



  아직 밥상을 다 올리지 않았으나,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을 부른다. 우리 집 풀밥잔치 밥상을 누리자. 먼저 밥술을 뜨렴. 다른 먹을거리도 곧 밥상에 올릴 테니. 숨가쁘게 밥상을 차리면 어느새 어깨에 힘이 빠지면서 살짝 졸음이 온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아서 밥을 먹지만, 내 마음은 잠자리로 날아가서 살짝 드러눕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밥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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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52) 위 13


옛날에는 / 별들이 밤마다 / 지붕 위로 / 내려와 / 놀았어 … 그런데 도화지 위에 / 딱 쌀알만 한 점 한 개만 찍은 아이도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실천문학사,2007) 62, 125쪽


 지붕 위로 내려와

→ 지붕에 내려와

 도화지 위에

→ 도화지에



  비는 ‘땅 위에’ 내리지 않습니다. 비는 ‘땅에’ 내립니다. 눈은 ‘논밭 위에’ 내리지 않아요. 눈은 ‘논밭에’ 내립니다. 눈은 ‘길 위에’ 쌓이지 않습니다. 눈은 ‘길에’ 쌓여요.


  그림은 ‘종이에’ 그립니다. ‘종이 위’나 ‘종이 아래’에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글은 ‘공책에’ 씁니다. ‘공책 위’나 ‘공책 아래’에 글을 쓰지 않아요. 4348.5.17.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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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 별이 밤마다 / 지붕에 / 내려와 / 놀았어 … 그런데 도화지에 / 딱 쌀알만 한 점 하나만 찍은 아이도


‘별들이’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들’을 덜어서 ‘별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점 한 개(個)”는 “점 하나”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7) 위 14


낙엽 위를 걷고 있으면 올 한 해 정원의 편력(遍歷)이 끝난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루야마 겐지/이영희 옮김-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2015) 118쪽


 낙엽 위를 걷고 있으면

→ 가을잎을 밟고 걸으면

→ 가랑잎을 밟고 걸으면

→ 가랑잎을 밟으며 걸으면

→ 가랑잎을 밟으면

→ 가랑잎 길을 걸으면

 …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나뭇가지에서 바싹 마른 잎이 떨어집니다. 길바닥에 가랑잎이 쌓이고, 사람은 가랑잎을 밟으면서 걷습니다. ‘가랑잎 위’를 걷지 않습니다. ‘가랑잎을 밟으며’ 걷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가랑잎 길’이나 ‘가을잎 길’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4348.5.17.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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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을 밟고 걸으면 올 한 해 꽃밭 일도 끝났구나 하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낙엽(落葉)’은 ‘가랑잎’이나 ‘진 잎’이나 ‘가을잎’으로 바로잡을 낱말입니다. “걷고 있으면”은 “걸으면”이나 “거닐면”으로 손보고, “정원(庭園)의 편력(遍歷)”은 “꽃밭 일”로 손봅니다. “끝난 것을 실감(實感)하지”는 “끝났구나 하고 느끼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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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6) 속 45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독자들의 사랑과 문인들의 아낌 속에 한국 현대시의 폴리스Polis를 이루게 된 사실은 문학과지성사에 내린 지복이기도 하지만

《황병승-여장남자 시코쿠》(문학과지성사,2012) 기획의 말


 독자들의 사랑과 문인들의 아낌 속에

→ 독자가 사랑하고 문인이 아껴 주면서

→ 독자한테서 사랑받고 문인이 아끼면서

→ 독자와 문인한테서 사랑받으며

→ 독자와 문인이 아껴 주면서

 …



  “아낌 속에”나 “사랑 속에”처럼 글을 쓸 수도 있으나, 이러한 글은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으면서”나 “사랑을 받으며”로 손질하면 되는데, ‘아낌’은 “아낌을 받으면서”로 손질할 수도 없습니다. “수줍음을 받으면서”나 “부끄러움을 받으면서”나 “슬픔을 받으면서”처럼 한국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아끼다’를 ‘아낌’처럼 적을 수 있으나, 이 글흐름에서는 “문인들이 아껴 주면서”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일수록 글을 더 잘 살필 노릇이고, 글로 시를 짓는 사람이라면 한국말을 더 깊고 넓으면서 제대로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4348.5.17.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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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이 독자와 문인한테서 사랑받으며 한국 현대시에서 새로운 마을을 이룬 대목은 문학과지성사에 내린 큰 기쁨이기도 하지만


‘폴리스Polis’는 “고대 그리스 국가”라고 하는데, ‘촌락집주(村落集住)’라고도 한답니다. 다만, ‘촌락집주’는 일본사람이 지은 낱말이지 싶은데, 한국에서는 ‘새마을’이나 ‘새로운 마을’로 손질해서 쓰면 되리라 느낍니다. “이루게 된 사실(事實)은”은 “이룬 대목은”으로 손봅니다. ‘지복(至福)’은 “더없는 행복”을 뜻한다고 하니, ‘기쁨’이나 ‘큰 기쁨’으로 손봅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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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1. 찔레꽃내음이 찬찬히 퍼져서 (2014.5.14.)



  밥상에 올릴 풀을 뜯으려고 뒤꼍을 오를 때면 찔레꽃 하얀내음이 훅 끼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새봄인 삼월에 피는 꽃도 봄내음이 물씬 나고, 매화꽃이나 모과꽃이나 유채꽃이나 동백꽃이나 후박꽃이나 장미꽃도 싱그러운 내음이 몹시 곱다. 그런데 오월로 접어들어 여름을 코앞에 두고 찔레꽃이 피면, 이제껏 퍼지던 꽃내음을 모두 잊을 만큼 대단히 짙고 새하얀 꽃내음이 퍼지면서 온몸을 사로잡는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보낸 적이 없으니, 찔레꽃하고 얽힌 이야기가 아직 없다. 그러나 바로 오늘부터 내 삶을 새로 열어 내 이야기를 새롭게 지을 수 있다고 느낀다. 어제 이야기는 없어도 오늘 이야기가 있고, 앞으로 두고두고 누릴 모레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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