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5.5.18. 큰아이―벚꽃 흣날린다



  우리 집에는 벚꽃이 없으나, 그림순이가 벚나무를 그려 주었다. 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제 낮에 우리 집 네 사람이 씩씩하게 걸어서 바닷가를 다녀왔다. 이때에 버찌를 주워서 먹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때에 벚나무를 본 생각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그렸구나 싶다. 그리고, 오늘 우리 집에 벚나무가 없어도 앞으로 벚나무를 심어서 기를 수 있다. 아무렴. 그렇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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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2015-05-19 05:59   좋아요 0 | URL
와우 멋집니다

물끄러미 2015-05-19 06:01   좋아요 0 | URL
벚꽃 흩날릴 때 느꼈을 그 마음이 전해지는듯, 아름다워요

파란놀 2015-05-19 06: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눈부신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있으면
누구나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는구나 싶어요

물끄러미 2015-05-19 07:02   좋아요 0 | URL
네 새삼 깨닫습니다
 

아이 그림 읽기

2015.5.17. 큰아이―달님 자네요



  그림순이가 빚은 ‘우리 집 숲자락’ 그림을 바라본다. 달님이 잔다고 하는 이야기부터 온갖 이야기가 그림 한 장에 소복소복 드리운다. 그림 한 장에 얼마나 넓고 깊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그래,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모두 담을 수 있겠지. 예쁘구나.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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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7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16



삶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사랑스럽다

― 은여우 7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4.30.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은 아이하고 나누는 사랑을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알 만할까 하고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만 살았다면, 내가 하루 내내 아이를 돌보고 밥을 차려서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이것저것 손수 가르치고 보여주는 삶을 지내 보지 않았으면, 나는 무엇을 알거나 깨닫거나 느꼈을까 하고 문득 헤아려 봅니다. 나 스스로 아이와 함께 살지 않은 나날이었으면, 나를 낳아 돌본 어머니 마음을 얼마나 읽을 만했을까 하고 문득 곱씹어 봅니다.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시골마을에 보금자리에 마련해서 살림을 찬찬히 꾸리지 않았으면,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아줌마 이웃’ 마음을 어느 만큼 읽거나 살필 만했을까 하고 문득 되새겨 봅니다.





- “하루도 갈래?” “하루는 안 가! 그 여자애들 또 오면 어떡해! 이번에는 꼭 쫓아낼 거야!” “산책이나 그런 거 재미없어. 바깥은 북적북적 시끄럽기만 하고.” “그러니까 잠깐씩이라도 나가서 자꾸 익숙해져야지. 신의 사자도 요즘의 바깥 모습을 알아두면 좋잖아. 그래. 슈퍼에 가자! 감귤 사 줄게!” (12쪽)

- “여름뿐이라 짧게 느껴지지만, 그건 매미에게는 정해진 인생이니까.” “응.” “매미는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았으니까 괜찮아. 인간에게도 정해진 수명이 있는걸.” (18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조촐한 일본 절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일곱째 권에서도 차분하게 흐릅니다. 앞선 여섯 권과 일곱째 권을 나란히 놓고 살피면, 일곱째 권에서도 앞선 여섯 권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 ‘수수한’ 이야기입니다. 흔한 이야기요, 너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보잘것없다고 할 만한 자잘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단하지 않고 수수한 이야기를 엮은 만화책이 재미있습니다. 놀랍거나 짜릿하지 않고 투박하면서 흔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 살갑습니다. 크거나 거룩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마주할 만한 조그마한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이 사랑스럽습니다.





-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든 뭐든 옛날과는 달라. 너도 신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거야. 하지만 신사는 변하지 않을 거고, 나 역시도 그래. 앞으로도 사라질 때까지 내 인생을 살아갈 뿐이지. 너도 네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거야.” (37쪽)

- “하고 안 하고는 별개로 쳐도, 좀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63쪽)



  오월이 무르익는 봄날 저녁은 개구리 노랫소리가 어마어마합니다. 다만, 시골에서만 이렇습니다. 그리고, 시골이라 하더라도 면소재지나 읍내에서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기 어려워요. 시골에서도 면이나 읍하고 한참 떨어진 두멧자락이 되어야 개구리 노랫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늦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이끌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등불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손전등조차 없이 논둑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면서 구름이 가득한 날이라, 밤에 별도 없습니다. 별빛에도 기대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 밤눈을 밝히면서 논둑길을 걷습니다. 신나게 울어대는 개구리는 논둑길을 세 사람이 걷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마 개구리 스스로 저희가 내는 우렁찬 노랫소리에 ‘사람 발자국 소리’쯤 쉽게 파묻히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들녘 한복판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춥니다. 두 아이와 함께 들녘 한복판에 서서 눈을 감습니다. 깜깜한 밤에 들녘 한복판에 서니 그야말로 개구리 노랫소리와 도랑물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뛸 만큼 싱그러운 소리입니다.




- “하루의 기억을 나눠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필요 없어. 저 녀석에게는 앞으로의 기억이 있잖아.” (117쪽)

- “그나저나 요리도 잘하시고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뇨, 아뇨. 그렇게 대단하지 못 해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했으니까요.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났거든요. 마침 집에 있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했고, 마코토에게 엄마 노릇도 해 주고 싶어서, 누나에게서 배우고 친구에게서 배우고, 정말 필사적이었죠.” (150쪽)



  내가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누리는 놀이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두 아이는 ‘잡기놀이’ 한 가지만 해도 한두 시간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래하고 웃고 떠들면서 신납니다. 장난감 하나 없이 마당에서 평상을 사이에 두고 잡느니 잡히느니 하면서 사뿐사뿐 걷다가 달리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열 번 스무 번 읽은 그림책이라 해도, 백 번 이백 번 다시 읽으면서 새롭습니다. 어느 그림책은 두 아이와 함께 살면서 천 번 이천 번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리 이름난 그림책이 아니어도, 아이들 스스로 재미나다고 여기는 그림책이라 하면, 천 번 이천 번은 가볍게 되읽습니다. 되읽을 적마다 새롭고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 《은여우》 일곱째 권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만화책이 낱권책으로 어느새 일곱째 권이 나오고 머잖아 여덟째 권이 나올 텐데, 앞으로도 수수하면서 투박하고 자잘한 이야기가 가득하리라 느낍니다. 도드라지지 않지만 사랑스럽습니다. 눈에 뜨이지 않지만 아름답습니다. 너와 나는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고, 나와 너는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아무래도 《은여우》라는 만화책은 늘 이 대목을 가만히 짚는구나 싶어요.





- “요시즈미 씨는 선생님 부탁으로 히와코를 돌보게 됐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가 되고, 오늘도 우연히 마코토의 친구들이 집에 와서 저와 요시즈미 씨가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네에.” “그렇게 생각하면 참 대단하죠.” “대, 대단한 건가요?” “그럼요! 큰일은 아니지만 대단한 거예요.” (153쪽)



  선물꾸러미가 커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물이기만 하면 다 좋습니다. 그리고, 선물이 없어도 반갑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큰아버지나 이모나 외삼촌이나 이모부하고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도 웃음을 그치지 못합니다.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을 드셨느냐는 둥, 무엇을 하시느냐는 둥, 보고 싶다는 둥, 흔한 인사말이 오갈 뿐인데, 아이들은 전화기를 붙잡은 몸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아이들하고 날마다 부르는 놀이노래와 자장노래는 지난 여덟 해에 걸쳐서 하루에 한 차례씩 불렀다고 쳐도 삼천 번쯤 부른 셈입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부른 노래라면 만 번을 부른 노래도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큰아이하고는 어느덧 삼천 날이 가깝도록 함께 살았고, 얼추 만 차례에 가깝게 밥상을 마주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큰일’은 아닐 테지만 대단합니다. 아니, ‘대단한’ 일도 아니라 할 테지만 멋집니다. 아니, ‘멋진’ 일도 아니라 할 테지만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래오래 두고두고 수수한 밥 한 그릇을 함께 나눌 테고, 수수한 노래를 함께 부를 테며, 수수한 놀이를 함께 즐기겠지요.


  삶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밤도 이 대목을 느끼면서 두 아이 이부자리를 여밉니다. 두 아이 사이에 가만히 누워서 두 아이 가슴을 살며시 토닥입니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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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0 숨으로 쉬는 바람



  우리는 ‘살려’고 ‘숨’을 쉽니다. 그렇지만, 막상 ‘살려’고 하는 우리들이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냥 삽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숨을 쉬기는 하지만, 정작 숨을 쉰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면서 숨을 쉬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숨을 쉽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느낍니다.


  살면서 ‘삶’을 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살지만 ‘삶’을 거의 안 느끼거나 아예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아침을 새로 맞이할 때마다 그야말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삶을 늘 못 느끼거나 안 생각하는 사람은, 아침을 다시 맞이할 때마다 그야말로 ‘다시 찾아온 아침’에 해야 하는 수많은 일을 떠올리면서 바쁩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새롭게 하루를 삽니다. 삶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똑같은 하루를 다시 보냅니다. 이와 같은 얼거리로, 숨을 쉬는 일에서도, 숨을 늘 스스로 바라보고 제대로 쉬는 사람은 내가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을 가꾸는 숨결이 어떠한 바람결인가를 돌아보면서 내 살결이 늘 새롭게 피어나도록 북돋웁니다. 숨을 늘 안 보고 안 느끼면서 그냥 쉬기만 하는 사람은 내가 몸으로 받아들이는 숨결로 마음을 가꾸는지 안 가꾸는지 모르는 채 그저 하루를 보내기만 합니다.


  숨을 안 쉬면 죽기 때문에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을 안 쉬면 죽기 때문에, 숨만큼 사람한테 대수로운 것이 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수로운 숨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숨을 잊고 숨결을 잃습니다. 숨을 모르고 숨결을 안 배웁니다. 숨을 등지고 숨결을 제대로 안 익힙니다.


  숨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숨과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몸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숨과 마음과 몸을 제대로 바라보기에 삶을 이루고, 숨과 마음과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럭저럭 살림을 꾸리고 밥을 먹는다고 해서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먹고사는 일을 한다고 해서 ‘삶을 짓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삶을 짓는다고 할 적에는 날마다 새로운 몸짓으로 새로운 웃음과 노래를 짓는 이야기를 이룹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온삶 가운데 가장 바탕이 되면서 가장 대수로운 일부터 제대로 바라보면서 해야 합니다. ‘숨쉬기’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냥 버릇이 되거나 길든 채 마셨다가 내쉬는 숨이 아니라, 제대로 바람결을 느끼고 살피면서 나한테 맞아들여야 하고, 나한테 맞아들인 바람결이 우리 몸에서 새로운 숨결로 흘러서 내 마음결을 가꾸도록 새 기운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에는 ‘바람을 마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람이란 무엇일까요? 바람이란 바로 하늘입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바로 바람입니다. 바람은 파란 하늘을 이루는 거미줄 같은 뼈대이면서 바로 하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바람)만 제대로 쉬어도 몸이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쉴 때에 몸이 무럭무럭 자라요. 아이들이 자라는 까닭은 밥을 먹기 때문이 아니라,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바람(숨)을 먹느냐에 따라서 몸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리하여, 밥은 영양에 맞추어 먹더라도, 바람이 제대로 들지 않는 곳에서 사는 아이는 몸이 여리거나 파리하지요. 바람이 제대로 들면서 싱그러운 곳에서 사는 아이는 밥을 적게 먹어도 몸이 튼튼하면서 씩씩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으레 ‘더 낫다는 학교’를 찾아서 집을 옮기려 합니다. 아이가 다닐 학교와 직장을 살펴서 ‘집 사고팔기’를 되풀이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누리면서 새롭게 지을 삶을 생각하는 ‘보금자리 가꾸기’에 마음을 쏟는 어른이 너무 드뭅니다. 이러니, 아이는 아이대로 바람다운 바람을 못 쐬고, 어른은 어른대로 쳇바퀴질 같은 회사를 다니며 돈만 버느라 바람다운 바람을 못 마십니다. 도시 문명사회에서는 그저 경쟁과 다툼과 경제와 지식과 졸업장만 판칩니다. 삶다운 삶이 없이, 사랑다운 사랑조차 싹트지 못해요. 바람결이 아무런 힘을 못 쓰니까요.


  바람 한 줄기가 내 둘레에서 흐르다가 내 몸으로 들어와서 온몸을 휘감은 뒤 다시 불길처럼 내 몸 바깥으로 터져나가도록 숨을 쉬어야 합니다. ‘숨쉬기’가 곧바로 ‘숨 터뜨리기’로 거듭나야 합니다. 불 같은 바람을 마시고 뱉으면서, 온몸에 파란 거미줄을 이루어 나 스스로 새로운 하늘이 되어야 합니다.


  숨은 곧 바람이고, 바람은 곧 하늘숨입니다. ‘숨 = 바람 = 하늘숨’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을 숨쉬는 사람이란 누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숨을 쉬는 목숨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하늘을 마시는 사람이 바로 ‘님’입니다. 바람숨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님, 그러니까 ‘하느님’입니다. 내 가슴속에 님이 깃들고, 내 가슴속에 깃든 님을 깨우는 바람을 마시기에, 이 바람이 새로운 숨결이 되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을 심을 수 있고, 이 새로운 생각이 모든 새로운 것을 이루어, 바야흐로 내 삶이 깨어납니다.


  숨을 쉬면서 모든 것을 짓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모든 삶을 짓습니다. 하늘을 머금으면서 모든 꿈을 짓습니다.


  하느님이 온누리를 지었다는 뜻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 땅은 다른 어떤 놀라운 ‘남’이 짓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숲도 내가 지었고, 끔찍한 전쟁무기도 내가 지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곁님과 이루는 보금자리도 내가 지었고, 무시무시한 차별·경쟁·신분·노예도 내가 지었습니다. 좋고 나쁜 모든 것을 바로 내가 지었습니다.


  숨을 엉터리로 쉴 때에 내가 모든 엉터리를 짓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때에 내가 모든 아름다움을 짓습니다. 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람과 하늘을 마시는 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읽고 느껴서 알아야 합니다.


  ‘숨쉬기’는 ‘숨보기’라고 할 만합니다. 내가 받아들이는 숨을 내 눈과 마음으로 함께 바라봅니다. ‘몸에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결이 있고, ‘온눈(제3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람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눈을 함께 써서 바람결을 읽고 느껴서 삭입니다. 바람결이 불꽃처럼 피어나도록 북돋웁니다.


  한숨을 쉬면서 새숨으로 나아갑니다. 한숨에서 멎으면 제자리걸음이 되면서, 그저 무거운 몸뚱이가 됩니다. 한숨을 쉬었으면 바로 ‘두숨’, 곧 ‘새숨’으로 뻗어야 합니다. 두숨이나 새숨으로 뻗지 않고 그저 한숨만 내쉬기에, 내가 지은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걱정과 근심과 괴로움과 고단함만 찾아듭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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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2. 밤개구리를 만나러



  해 떨어진 저녁에 두 아이를 이끌고 논둑마실을 나선다. 하루 내내 비가 온 날이다. 논마다 물이 찰랑거리고, 개구리가 우렁차게 운다. 지난해 이맘때를 헤아리니, 개구리 노랫소리가 조금 줄어든 듯하다. 아무래도 농약을 많이 쓰는 논이기 때문에 개구리가 이듬해에 새로 깨어난다 하더라도 숫자는 차츰 줄어든다. 아무튼, 아이들하고 밤개구리 노랫소리를 들녘 한복판에서 호젓하게 듣는다. 눈을 감는다. 조용히 춤을 추면서 밤개구리한테 마음으로 말을 건다. 이렇게 하고 나서 걷다가 달리다가 놀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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