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뿌리를 심고서



  파뿌리를 심는다. 호미로 땅을 파고 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심는다. 다 심고 나서 흙을 톡톡 눌러 준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붓는다. 이곳에서 새롭게 자라렴. 몇 번 잘라서 먹을게. 그 다음에는 꽃이 피도록 그대로 둘 테니, 우리 집에서 예쁘게 함께 살자.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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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있다 - 평화로운 녹색의 미래를 위하여
페트라 켈리 지음, 이수영 옮김 / 달팽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숲책 읽기 76



‘전쟁무기와 군대’가 아닌 ‘호미와 연필’로

― 희망은 있다

 페트라 켈리 글

 이수영 옮김

 달팽이 펴냄, 2004.11.15.



  큰파를 장만하면 아래쪽은 알맞게 잘라서 마당 한쪽에 옮겨심습니다. 꽁댕이만 남은 큰파이지만, 하루쯤 지나면 조금씩 새 줄기가 오르려 하고, 이틀 사흘 나흘 지나는 동안 차츰 푸른 줄기가 튼튼하게 고개를 내밉니다. 이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면 파뿌리가 흙하고 한몸으로 얼크러지면서 곧고 싱그러운 파줄기가 하늘바라기를 하듯이 솟습니다.


  두 아이를 불러서 파뿌리를 함께 옮겨심습니다. 작은아이는 호미를 쥐고, 큰아이는 꽃삽을 쥡니다. 콕콕콕 땅을 찍어서 알맞게 구덩이를 판 뒤, 아이가 손수 파뿌리를 쥐도록 맡긴 다음 흙을 살살 쓸어서 뿌리를 덮습니다. 이 다음에 물을 뜨는 몫은 큰아이. 큰아이가 대야에 물을 떠오면, 큰아이가 스스로 물을 조금씩 붓도록 합니다.


  파뿌리를 옮겨심는 아이들은 눈망울을 빛냅니다. 파뿌리를 옮겨심으면서 오직 파뿌리만 생각합니다. 다른 곳은 바라보지 않고, 다른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 파뿌리가 흙 품에 포근하게 안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뿌리를 다 심은 뒤에는 큰돌을 파뿌리 둘레에 놓습니다. 잘못해서 이곳을 밟지 않도록 하려고요.



..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비와 군대를 위해 사용되는 풍부하고 정교한 과학기술은 세계의 빈곤과 인플레이션과 절망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 우리는 재정적 폭력과 국가적 폭력, 또는 보복 폭력에 의해 항상 패배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되는 것을 거부한다 … 폭력을 폭력으로, 전쟁을 전쟁으로, 불의를 불의로 제거할 수는 없다 … 평화와 정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 비폭력을 저버리는 사람은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  (14, 24, 25쪽)



  페트라 켈리 님이 쓴 《희망은 있다》(달팽이,2004)를 읽습니다. 독일에서 녹색당을 여는 큰일을 이끈 페트라 켈리 님이 손수 쓴 글을 묶은 책으로는 《희망은 있다》 한 권이 한국말로 나왔고, ‘페트라 켈리’ 전기로 《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나남출판,1994)와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2002)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위인전으로 《녹색 세상을 꿈꾼 여성 정치가 페트라 켈리》(파란자전거,2003)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페트라 켈리 님은 1947년에 태어나서 1992년에 숨을 거둡니다. 이이는 마흔 몇 해를 이 땅에서 살면서 이 땅에 ‘푸른 숨결’이 깃들기를 바랐습니다.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이 너른 바다로 씩씩하게 헤엄쳐 가듯이 널리 퍼지기를 바랐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과학 어느 곳에서도 ‘푸른 숨결’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길을 바랐습니다. 삽차로 짓는 문명이 아니라, 두 손으로 짓는 삶을 바랐습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운 거짓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호미와 연필로 손수 일구는 참다운 평화를 바랐습니다.



.. 비폭력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인간이라는 자신의 종과 화해하는 것, 자연과 우주와 화해하는 것이다 … 부드러움과 일체감,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참여, 연대감, 분리시키고 분열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이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의 모토는 이렇다. ‘부드럽게 뒤집자!’ … 상대방이 사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사악한 일을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핵억지력 이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 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46, 47, 56, 69쪽)



  《희망은 있다》라고 하는 조그맣고 푸른 책은 그야말로 조그맣고 푸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쟁무기는 언제나 전쟁무기를 끌어들일 뿐이고, 핵무기도 언제나 핵무기를 끌어들일 뿐이라는, 아주 쉽고 조그마하면서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지구별을 크게 아울러서 ‘전쟁무기에 쓰는 돈’을 헤아리면, 날마다 7조 원에 이른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설마 7조 원이나 하겠느냐고 여길 수 있지만, 지구별에 있는 ‘군인 숫자’는 교사와 의사와 간호사를 모두 더한 숫자보다 곱절이나 많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이 숫자는 얼추 비슷합니다. 남녘도 북녘도 군인이 끔찍하도록 많습니다. 육군과 공군과 해군도 있지만, 전투경찰에다가 ‘그냥 경찰’까지 참으로 많습니다. 나라에서는 으레 치안과 질서를 말하지만, 총이나 칼이 있어서 평화를 지키는 일은 없습니다. 총이나 칼이 있기에 언제나 총과 칼을 앞세운 군사독재와 전쟁과 학살이 불길처럼 치솟습니다.


  군인한테 들여야 하는 유지비를 헤아리고, 갖가지 군수물자를 돌보는 돈을 따지면, 참말 지구를 통틀어 하루에 7조 원을 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하루 7조 원을 전쟁무기에 앞으로도 그대로 쓸 생각인지, 이제부터 이 어마어마한 돈을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쓸 생각인지, 제대로 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 미국 행정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착취를 당해 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모든 해방운동을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모욕적인 행위로 해석했고, 그로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그들이 전혀 원치 않았던 구석으로 내몰았다 … 탱크 한 대를 생산하는 비용이면 10년간 유행성 천연두를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계실 겁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한 척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45만 채의 소박한 집들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  (88, 108쪽)



  부탄이라는 나라는 농약과 비료를 한 방울도 안 쓰겠다고 나라에서 먼저 밝혔습니다. 부탄은 어떻게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요? 군대를 거느리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군대나 전쟁무기를 돌보는 데에 돈과 품을 안 쓰려고 하면, 이쯤이야 넉넉히 할 만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상급식’에서 그칠 수 없어요. 모든 교육과 복지는 ‘무상교육’과 ‘무상복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공립도서관은 더 늘어나야 하고, 국공립도서관은 알차고 아름다운 책을 넉넉히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사람이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에 기대지 않으면서 싱그럽고 튼튼한 곡식과 열매를 거두도록 이끄는 데에 돈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골에서 삶을 짓겠노라 다짐하는 젊은이가 늘어날 테고, 온 나라에 평화와 사랑이 감돌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렇게 앞길을 헤아리는 정치 일꾼이 너무 드뭅니다. 이러한 앞길을 꿈꾸려는 어른도 퍽 드뭅니다. 핵발전소가 있기에 핵쓰레기가 나오고, 핵쓰레기를 매만져서 핵무기를 만듭니다. 핵무기를 안 만들어도 핵쓰레기를 시멘트로 지은 처리장에 수십만 해 동안 가두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 텐데, 이런 바보짓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는 정치 일꾼이나 여느 어른이 참으로 드뭅니다.



.. 우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생명에 적대적인 고층 아파트들과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그저 묵묵히 견뎌야 한단 말인가 … 전 세계가 무기경쟁에 쏟아붓는 비용은 하루에 7조 원이 넘는다. 무기경쟁에 자원을 모두 집어넣는 바람에 셀 수 없는 아이들이 문맹, 질병, 굶주림, 죽음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 오늘날 전 세계 군인의 수는 교사, 의사, 간호사 수의 두 배에 이른다 … 영혼의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생생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이 우위에 놓인다면 인간은 더 이상 미움과 경멸에 사로잡혀 사물과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144∼145, 159∼160, 177, 178쪽)



  아침저녁으로 마당과 뒤꼍에서 풀을 뜯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내가 시골집에서 이루는 즐거운 살림은 호미로 짓고, 연필로 빚습니다. 나는 농약이나 비료로 즐거운 살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나는 총이나 칼로 우리 보금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나는 군대나 전쟁무기에 기대어 우리 마을을 돌볼 수 없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가 아닌 ‘호미와 연필’로 가꾸는 삶입니다. 전쟁무기는 새로운 전쟁무기로 뻗고, 군대는 더 큰 군대로 이어집니다. 호미는 새로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를 짓습니다. 연필은 ‘호미로 일군 아름다운 보금자리’ 이야기를 글로 옮기도록 해서, 먼먼 곳에 있는 고운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실마리를 엽니다.


  총을 녹여서 호미로 바꾸면 됩니다. 탱크도 잠수함도 핵발전소도 모두 내려놓고 연필을 쥐면 됩니다. 군부대를 세우지 말고, 숲을 보살피면 됩니다. 젊은이한테 전쟁훈련을 시키지 말고, 손수 흙을 가꾸는 사랑스러운 살림살이를 가르치면 됩니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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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과 오른손 비빔질



  내 첫 빨래는 국민학생 때이지 싶다. 어쩌면 더 일찍 빨래를 했을는지 모르나, 더 앞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국민학교 3학년 때가 아닌가 싶으나, 이 또한 또렷하지는 않다. 아무튼, 그무렵 운동신을 손수 비벼서 빨던 때가 첫 빨래이지 싶고, 운동신을 한 켤레 빨기까지 한 시간쯤 걸렸다. 어머니가 운동신을 빨면 십 분이나 이십 분이면 척척 해내는데, 나는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운동신을 한 번 빨면, 더럽히지 않으려고 한 주 내내 살금살금 얌전하게 다닐 뿐 아니라, 누가 내 발을 밟기라도 하면 잔뜩 뿔이 났다.


  스무 살 적부터 제금을 나서 살면서 모든 빨래를 손으로 했다. 마흔 살을 넘은 오늘도 거의 모든 빨래를 늘 손으로 한다. 빨래가 많거나 두툼한 옷가지나 이불을 빨래할 적에는 힘이 꽤 든다. 그래서 비빔질을 오른손으로 하다가도 왼손으로 해야 한다. 한쪽 손으로만 비빔질을 하면 팔이 저리다.


  비누를 묻힐 적에도 두 손을 갈마드는데, 스무 해 남짓 두 손을 갈마들면서 비빔질을 하는데 아직 왼손 비빔질이 오른손 비빔질만큼 척척 나아가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가 왼손으로는 좀 힘이 떨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두 손을 갈마들면서 비빔질을 하고 헹굼질을 하니, 내 왼손은 힘살이 제법 붙는다. 오른손잡이이지만 왼손으로 팔씨름을 할 적에 밀리는 일이 드물다.


  오늘 빨래를 잔뜩 하면서 새롭게 한 가지를 생각해 본다. 오른손이 힘드니 왼손으로도 비빔질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두 손이 골고루 튼튼하기를 바라면서 두 손으로 비빔질을 하자고 생각해 본다. 왼손으로도 씩씩하게 비빔질을 하고, 오른손으로도 재미나게 비빔질을 하자고 생각해 본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넌다. 어깨와 팔뚝이 없는 듯하다. 아, 오늘 빨래 참 많이 했구나. 등허리를 톡톡 두들긴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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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책읽기



  아이들이랑 곁님하고 이틀에 걸쳐서 퍽 오래 걸었다. 자동차가 안 다니는 길만 골라서 논둑길과 숲길을 걸었다. 이 길을 걷고 난 뒤 사흘에 걸쳐서 생각에 잠겨 본다. 어떤 길이 걸을 만한 길일까? 자동차가 많이 달린다면 아무래도 걷기에는 안 좋겠지. 그러나, 자동차 때문에 안 좋은 길이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내 마음에 따라서 좋음과 싫음이 갈린다. 마음이 넉넉하거나 푸근하거나 사랑스러우면, 어떤 길을 걷든 즐거우면서 기쁘다. 마음이 안 넉넉하거나 안 푸근하거나 안 사랑스러우니, 좋은 길이라는 데를 걸어도 즐거움이나 기쁨이 안 솟기 마련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잘 자라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할 뿐 아니라, 풀내음과 나무내음과 꽃내음이 흐드러지는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 아름다운 길은 누가 지었을까? 이 아름다운 길은 어떤 손길로 태어났을까?


  바람이 어루만지고 해님과 흙과 빗물이 일군 숲길을 바라본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숲짐승이 골고루 얼크러지면서 함께 지은 숲길을 바라본다. 나는 마음 가득 기쁜 사랑을 담을 때에 기쁜 삶이 되고, 나와 이웃인 수많은 목숨붙이는 저마다 기쁘게 노래할 때에 아름다운 길, 이른바 ‘걷고 싶은 길’을 함께 짓는다. 4348.5.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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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12) 정원사적


그토록 소설가적이었던 나는 남쪽의 부드러운 바람을 따라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금세 정원사적인 내가 되어 오랫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초목 하나하나에 다시 시선을 던지고

《마루야마 겐지/이영희 옮김-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2015) 43쪽


 정원사적인 내가 되어

→ 정원사인 내가 되어

→ 정원사 같은 내가 되어

→ 정원사다운 내가 되어

→ 정원사가 되어

→ 나는 정원사가 되어

 …



  ‘정원사적’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소설가적’이라는 낱말도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일본사람은 글을 쓰면서 어디에나 ‘-的’을 붙이는데, 한국사람은 글을 쓸 때에 ‘-다운’을 붙이거나 ‘같은’을 덧달면 됩니다. 4348.5.19.불.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그토록 소설가로 살던 나는 부드러운 남쪽 바람을 따라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곧 나는 정원사가 되어 오랫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푸나무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고


“남쪽의 부드러운 바람”은 “남쪽에서 부는 부드러운 바람”이나 “부드러운 남쪽 바람”으로 다듬고, ‘금세(今時)’는 ‘곧’으로 다듬으며, ‘초목(草木)’은 ‘푸나무’로 다듬습니다. “시선(視線)을 던지고”는 “바라보고”나 “보고”나 “쳐다보고”로 손봅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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