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장난감 볼래



  산들보라가 장난감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면소재지 가게 한쪽에 매달린 장난감을 바라보면서 눈을 뗄 줄 모른다. 그저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 거머쥐는 길만 생각해서 말한다. 그 장난감이 그리 갖고 싶니? 그 장난감이 네 손에 있어야 즐겁게 놀 수 있겠니?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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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5-05-20 22:23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가 많이 자랐네요.^^
편안한 저녁되세요~
 

긴 마실 마치고 집으로



  아침 열한 시 오십 분 즈음 집을 나섰다. 오늘 나들이는 골짜기 다녀오기. 그런데, 골짜기에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다른 길로 돌아서 가 보자’는 곁님 말에 다른 길로 돌다가 이웃 호덕마을 앞까지 가고 말아, 어차피 온 김에 면소재지까지 가기로 한다. 면소재지까지 온 김에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간다. 읍내로 나온 김에 산들보라 다섯 돌째를 맞이한 선물을 하나 장만하고, 사름벼리 글그림판도 장만한다. 저녁으로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와 김밥을 먹고, 느긋하게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다. 바야흐로 집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바깥바람을 쐴 줄 몰랐다. 더군다나 작은아이까지 낮잠을 거르고 이렇게 잘 돌아다닐 줄 몰랐다. 두 아이가 제법 자랐기에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네. 마당에 있는 바깥물을 틀어서 발과 신을 씻긴 뒤 집으로 들여보낸다. 이야, 집이로구나. 다음에 우리 천등산 고갯마루도 넘을 수 있겠네? 기다렸어. 너희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우리 다리로 이 시골자락을 마음껏 누비는 날을 기다렸어.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내린 뒤, 집으로 달려가는 산들보라 뒷모습이 대견하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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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1 ‘일’과 ‘직업’



  한국말사전에서 ‘일’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으로 풀이하고, ‘직업(職業)’이라는 낱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풀이합니다. 아마 오늘날 사회에서는 이렇게 풀이할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직업’은 모르되, ‘일’을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활동”으로 풀이를 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일’이라는 낱말은 여러 곳에서 씁니다. 이 낱말을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만, ‘일’은 처음부터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는 안 썼습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써서 움직이는 모든 삶을 가리켜 ‘일’이라 했어요. 이리하여, 아이한테는 ‘놀이 =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네, 심심하구나.” 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생기지 않거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거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에도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흐름과 움직임이나 몸짓이 나타날 때에 비로소 ‘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스스로 움직여서 무엇을 이루면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직업’이나 ‘노동’이기 때문에 ‘일’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어떤 것을 이루거나 지을 적에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일’이나 ‘옛 일’을 돌아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도울 일’을 찾습니다. ‘기쁜 일’을 함께 기쁘게 여기고, ‘슬픈 일’을 같이 슬프게 삭입니다. 꾸짖거나 나무랄 일이 있을 테고, 북돋우거나 살릴 일이 있을 테지요. ‘네가 다녀오면 될 일’이라든지 ‘손수 나무를 심으면 될 일’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이 있어’야 삶이 있습니다. 노동을 하거나 직업이 있어야 삶이 있지 않아요. ‘일이 있어’서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일 때에 삶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야 삶이 있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면 돈이 있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가 일을 할 적에는 돈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삶 때문에 일을 하고, 오로지 삶을 가꾸고 지어서 아름답게 하루를 누리려는 뜻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즐거우면서 돈도 저절로 따라옵니다. 기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기쁘면서 돈도 찬찬히 따라오지요. 고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고될 뿐 아니라 돈도 고되게 들어와요. 힘겹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힘겨운데다가 돈도 힘겹습니다.


  일을 찾으려 한다면, 먼저 삶을 어떻게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고 하는 삶을 먼저 찬찬히 생각해서 알뜰살뜰 가꾸어야 합니다. 삶을 그림으로 아름답게 그릴 때에, 내가 할 일이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삶을 그림으로 즐겁게 그리기에, 내가 할 일이 즐겁게 나타납니다. 삶을 그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는다면, 직업이나 노동은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리하여 돈은 좀 벌거나 만질는지 모르나, 막상 ‘무엇을 해야 내 삶이 기쁘거나 아름답거나 보람이 있는지는 모르는’ 모습이 되고 말아요. 생각이 없이 돈만 벌어서 무엇을 할까요? 삶을 그리지 않고 돈만 많이 모은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하는 옛말은, 생각을 해서 삶을 그리는 사람만 ‘삶을 누리’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고되거나 벅찬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일이 고되거나 벅찹니다. 지겹거나 따분한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꿈이 없으니 지겹거나 따분합니다. 귀찮거나 성가신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사랑이 없으니 귀찮거나 성가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그리고, 꿈을 지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 삶을 그려서 담고, 꿈을 지어서 놓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서 가꾸어야 합니다. 이때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름다운 손길을 타면서 따사롭고 넉넉하게 이루어집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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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58. 한국말에 없는 ‘소유격 조사’

― ‘-의’를 쓸 까닭이 없는 까닭



  흔히 쓰는 말이면서도 흔히 잊고 지나가는 말이 많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는 바람을 늘 마시는 목숨이면서도 늘 바람을 마시는 줄 잊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늘 마시지만, 참말 바람을 1초라도 안 마시면 죽는다고 여기면서 늘 ‘바람 마시기(숨쉬기)’만 생각한다면 아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늘 쓰는 말을 굳이 더 헤아리지 않기 일쑤입니다. 아주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이듯이 아주 부드럽게 흐르는 말입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쉽게 바람을 마시듯이, 아이와 어른 누구나 쉽게 말을 합니다. 많이 배우거나 똑똑하거나 힘센 사람만 숨을 쉴 수 있지 않듯이, 적게 배우거나 조금 어리숙하거나 힘이 여린 사람도 얼마든지 말을 합니다.


  ‘소머리국밥’이라고 합니다. ‘콩나물해장국’이라 합니다. ‘된장찌개’라 합니다. ‘들꽃’이라 하고, ‘복숭아나무 열매’라 하며, ‘상추쌈’이라 합니다. ‘언니네 이발관’이요 ‘쌀집’이며 ‘전주식당’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면서 ‘-의’를 사이에 넣는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의’를 넣는 말투는 그야말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아예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남의집살이’나 ‘닭의장풀’ 같은 자리에는 ‘-의’가 들어갑니다. ‘-의’를 아예 안 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말을 쓰면서 ‘남집살이’나 ‘달개비’라는 말도 함께 씁니다. ‘-의’를 붙인 제법 오래된 낱말이 있어도 ‘-의’를 안 붙인 훨씬 오래된 낱말이 나란히 있습니다. ‘남의집살이’라는 낱말을 가만히 보면, ‘딴집살이·한집살이’ 같은 낱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나의집살이’라고 하지 않아요. 이와 맞물려 ‘너의집살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남의집살이’ 같은 말은 언제부터 왜 누구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한국사람은 ‘딴집살이’처럼 말을 짓는 삶이었어요. 이 틀을 안 살피고 ‘-의’를 함부로 넣으려고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한국말에는 ‘소유격 조사’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처음부터 없었기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한국말에는 처음부터 소유격 조사가 없을까요? 한국말에서는 쓸 일이 없으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왜 소유격 조사를 쓸까요? 쓸 일이 있으니 쓴다고도 할 테지만, 쓸 일이 없으나 ‘학교 문법’이나 ‘사회 문법’으로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쓴다고 하겠습니다. 서양 말법 틀에 따라 한국 말법을 억지로 짜맞추다가 소유격 조사가 생기고, 일본 말투가 자꾸 스며들면서 소유격 조사를 쓸 일이 불거집니다.


  한국말에서 소유격 조사를 쓸 일이 없으나 앞뒷말을 이으면서 ‘ㅅ(사이시옷)’을 쓰기도 하기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처럼 ‘ㅅ’을 넣습니다. 그런데 ‘나무토막·나무젓가락·나무집·나무뿌리·나무눈·나무꽃·나무껍질·나무때기·나무말미’처럼 ‘ㅅ’을 안 넣는 낱말이 무척 많습니다. 앞뒷말을 이으면서 ‘ㅅ’을 쓰기는 하되 ‘ㅅ’조차 그다지 안 쓰는 한국말입니다. 일본사람은 ‘나무껍질’을 ‘木の皮’로 적습니다. 이를 잘못 옮기면 “나무의 껍질”처럼 됩니다. 일본사람은 ‘나무꽃’을 ‘木の花’로 적어요. 이를 잘못 옮기면 “나무의 꽃”이 되고 맙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하면서 학교 문법을 배웁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의’를 소유격 조사로 여기면서 배웁니다. 어른들이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사회 문법에 따라 ‘-의’를 손쉽게 소유격 조사로 삼아서 퍼뜨립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밥맛’이나 ‘된장맛’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밥의 맛”이나 “된장의 맛”처럼 말법을 깨면서 쓰기 일쑤입니다. 한국말은 ‘들꽃’이나 ‘멧꽃’이나 ‘숲꽃’이지만, 한국 말법을 잊은 채 “들의 꽃·산의 꽃·숲의 꽃”처럼 잘못 쓰는 사람이 늘고, 이러한 말투가 올바른 줄 여기는 사람마저 나타납니다. 일본 영화 “茶の味”를 한국에서 “녹차의 맛”으로 옮겼는데, 일본 사람은 ‘の’를 넣더라도, 한국사람은 “녹차맛”이나 “차맛”으로 영화이름을 적어야 올바릅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온 일본말과 일본 말투와 일본 한자말도 소유격 조사를 부채질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앞서까지 한국에서 여느 사람은 한자말을 쓸 일이 없었고, 지식인이 한자를 쓰더라도 ‘-의’를 사이에 넣어 말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와 교육이 모두 식민지가 되면서 ‘-의’를 곳곳에 넣는 글투와 말투가 퍼졌고, 해방이 된 뒤에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물결은 일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에 처음으로 ‘우리 글 바로쓰기’ 물결이 제법 일면서 ‘-의’를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내 시들해졌어요. 요즈음은 초등학교이든 중·고등학교이든 대학교이든 사회이든 ‘-의’를 살뜰히 털면서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쓰려고 생각을 가꾸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바람맛을 몰라도 누구나 바람을 마실 수 있습니다. 바람내음을 몰라도 누구나 바람을 쐬면서 살 수 있습니다. 바람을 생각하면서 숨을 쉬는 사람이 참으로 드뭅니다.


  말맛을 몰라도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말결을 몰라도 누구나 말을 나누면서 살 수 있습니다. 말을 생각하면서 말을 주고받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드뭅니다.


  ‘문체’나 ‘표현 방법’을 바꾸어야 ‘내 글투’가 되지 않습니다. 바람맛을 헤아리듯이 말맛을 헤아릴 수 있어야 ‘내 말씨’가 깨어납니다. 말마다 다른 숨결을 살피면서 읽을 때에, 사람마다 다른 넋인 줄 살피면서 읽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숨결로 살아가는 넋인 줄 살피면서 읽을 때에, 삶마다 다른 숨결이로구나 하고 살피면서 읽을 수 있고, 다 다른 사랑결과 생각결과 꿈결을 느낍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릅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똑같다면, 지구별에서 모든 사람이 한 가지 말만 쓸 테지만,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고, 삶과 넋이 다르기에, 어디에서나 ‘다른 말’을 씁니다. 그래서, ‘관사가 없는 말’이 있고, ‘관사가 있는 말’이 있습니다. ‘관사도 성별을 갈라서 쓰는 말’이 있고, ‘관사를 쓰더라도 성별을 안 갈라서 쓰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유격 조사를 쓰는 말’이 있을 테고 ‘소유격 조사가 없는 말’이 있어요. ‘토씨(조사)와 씨끝(어미)에 따라 달리 쓰는 말’이 있고, ‘토씨와 씨끝이 안 달라지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분사와 현재진행형과 온갖 때매김(시제)’을 낱낱이 가리는 말이 있다면, 이를 하나도 안 가리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이 나라 삶과 넋에 따라서 살펴야 합니다. 영어에 ‘소유격 표현’이 있으니 한국말에도 ‘소유격 표현’이나 ‘소유격 조사’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국말을 제대로 씁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배우고 가르쳐야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사람답게 삶을 가꾸면서 사랑을 북돋우고 슬기롭게 꿈을 지을 수 있습니다. 4348.4.20.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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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2
아나 후앙 그림, 조나 윈터 글, 박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3



사랑을 찾아 삶을 지으며 그림을 그리다

― 프리다

 조나 윈터 글

 아나 후안 그림

 박미나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2002.12.24.



  조나 윈터 님이 글을 쓰고, 아나 후안 님이 그림을 그린 《프리다》(문학동네어린이,2002)를 읽습니다. ‘프리다 칼로’라고 하는 분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멕시코에서 1907년에 태어나서 1954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여러 사고를 치르면서 몸이 아파야 했고, 함께 짝을 지은 사내가 보여준 몸짓 때문에 마음이 아파야 했다고 합니다. 수없이 수술을 하면서 몸을 깎는 아픔을 받아들여야 했고,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을 마주하는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맞아들여야 했다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프리다 칼로 님은 ‘사랑을 찾는 삶’이었구나 싶습니다. 몸을 내려놓고 마음까지 내려놓으면서, 오직 사랑 하나를 바라보면서 삶을 짓지 않고서는, 하루조차 버틸 수 없는 나날이었으리라 싶습니다.



.. 프리다 집은 파란색이지요. 코요아칸이란 마을에 있어요 ..  (3쪽)





  누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더 돋보이지 않고, 누가 나를 싫어하니까 내가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 그대로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대서 아이들이 더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싫어한대서 아이들이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답게 그대로 아름다웁고 사랑스러운 숨결입니다.


  좋아함과 싫어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 언제나 마음앓이를 합니다. 누가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거나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언제나 마음이 다치거나 힘들거나 괴롭습니다.


  내가 너를 좋아할 까닭이 없고, 네가 나를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만나면 됩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아름답게 만나지 못합니다. 좋다거나 싫다고 하는 느낌에 끄달리지 않으면서 고요히 흐르는 사랑이 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납니다.




.. 프리다는 그림 그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어요. 그림을 그리면 하나도 슬프지 않았지요 ..  (9쪽)



  프리다 칼로 님은 스스로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뛰어난 스승이나 놀라운 스승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나 강의나 수업이나 책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멕시코라는 나라에서 흐른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기쁘게 그림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프리다 칼로 님이 보여주는 그림은 ‘멕시코 이야기 그림’입니다. ‘멕시코 민화’라고도 할 만합니다. 프리다 칼로 님이 보여주는 그림은 ‘현대 회화’도 ‘초현실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겨레가 예부터 그린 ‘민화’라고 하는 그림도 ‘사람 이야기’입니다. 여느 시골자락에서 시골살이를 일구면서 누린 그림입니다. 프리다 칼로 님이 빚은 그림도 멕스코 여느 시골자락에서 시골살이를 일구면서 손수 밥과 집과 옷을 지은 사람들이 빛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땅을 일구는 시골사람입니다. 바람을 마시고, 꽃과 나무를 아끼면서 땅을 가꾸는 시골사람입니다. 비와 눈을 노래하고, 벼락과 천둥을 바라보는 시골사람입니다. 정치나 경제를 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전쟁무기도 군대도 모르는 채, 제 땅을 제 손으로 일구면서 삶을 노래하고 웃음과 춤으로 두레를 엮은 수수한 시골사람입니다.




.. 사고가 난 뒤 프리다는 달라졌어요.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고, 늘 몸이 아팠어요 ..  (21쪽)



  우리는 누구나 천재이면서 천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직 하나뿐인 목숨을 사랑으로 받아서 태어납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넋으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다 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규 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여기는데, 지난날에는 아무도 학교를 안 다녔으나, 모든 사람이 손수 땅을 부치면서 밥을 얻을 줄 알았고, 풀줄기에서 실을 뽑아서 옷을 지을 줄 알았으며, 나무를 베고 흙과 돌과 짚을 얻어서 집을 지을 줄 알았습니다. 아무런 ‘학교교육’이 없이, 지난날 모든 사람이 손수 밥과 집과 옷을 장만하며 살았어요. 게다가, 지난날에는 책 한 권이 없어도 ‘살면서 쓸 모든 말’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국말사전이나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이나 나무도감 같은 책을 옆에 두어야 ‘풀이름’이나 ‘벌레이름’을 알 만하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풀과 벌레와 물고기와 새와 숲짐승과 나무 이름을 모조리 알았어요.


  그러니, 예부터 우리는 누구나 ‘천재’였고, 오늘날에는 스스로 천재인 줄 잊으면서 학교교육만 받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내 삶을 그림으로 그리는 천재’로 살 수 있으나, 정작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틀에 따라서 남한테 보여주려는 예술작품 만들기’입니다.




.. 프리다는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어요 ..  (27쪽)



  그림책 《프리다》를 천천히 읽습니다. ‘자유’를 뜻한다는 ‘프리다’를 어버이한테서 선물처럼 이름으로 받은 프리다 칼로 님은 이녁 그림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멕시코라고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랑과 자유’가 바로 프리다 칼로 님이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은 노래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참말 “프리다는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습니다. 흉내를 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오직 이녁 마음속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면 됩니다.


  프리다 칼로 님은 이녁 스스로 사랑한 ‘내 모습’이자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 스스로 사랑할 ‘내 모습’이자 ‘한국사람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고 글로 쓰며 사진으로 찍으면 됩니다.


  사랑을 찾아 삶을 지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사랑을 찾아 살림을 꾸리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랑을 찾아 보금자리를 가꾸며 노래를 부릅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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