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인문학 -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 한식 인문학
정혜경 지음 / 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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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7



아침저녁으로 손수 지은 밥을 먹다

― 밥의 인문학

 정혜경 글

 따비 펴냄, 2015.5.10.



  우리 집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습니다. 아침에 한 끼니를 먹고, 저녁에 새로 한 끼니를 먹습니다. 낮에 살살 배가 고프다 싶으면 샛밥을 먹습니다. 때로는 주전부리를 마련합니다.


  나들이를 갈 적에는 도시락을 마련합니다. 면소재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도시락을 먹든, 읍내 느티나무 밑에서 도시락을 꺼내든, 알맞춤한 통에 밥이랑 반찬을 함께 담습니다.


  집 바깥에서 밥을 먹는 날이라면, ‘바깥밥’을 먹습니다. 바깥에서 먹으니 바깥밥입니다. 그러니, 집에서 먹는 밥이라면 ‘집밥’입니다. 집 바깥에서 밥을 먹는 날이라면, 마실이나 나들이를 다니다가 먹는 밥입니다. 이때에는 바깥밥이면서 ‘마실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집 바깥에서 밥을 먹는 날에는 “우리 오늘 즐겁게 ‘마실밥’ 먹자” 하고 말합니다.



.. 한국인은 밥을 먹기 위해 김치나 간장 같은 발효음식을 반찬으로 먹는 것이지, 반찬을 먹으려고 밥을 먹는 게 아니다 … 아침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반대다. 밥은 천천히 소화되기 때문에 혈당치가 장시간 안정 상태로 유지된다 ..  (18, 288쪽)



  정혜경 님이 쓴 《밥의 인문학》(따비,2015)을 읽습니다. 정혜경 님은 한겨레한테 ‘밥’이 무엇인가를 놓고 도톰한 책 한 권을 내놓습니다. 옛책에 남은 글과 옛 유물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서 한겨레하고 밥이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살피고, 밥삶이 어떤 발자취로 이어졌는가를 살피며, 문학에서 다루는 밥을 살피다가는, 과학으로 밥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끝으로는, 오늘날 한국사람이 널리 먹는 여러 가지 밥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김치볶음밥이라든지 비빔밥이라든지 쌈밥이라든지 김밥이란 무엇인가 하고 차근차근 밝힙니다.


  그런데 좀 아쉽다고 해야 할 만한 대목을 곳곳에서 봅니다. 이를테면 148쪽에 나오는 “남새는 우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지만, 채소의 순우리말이고 푸새, 푸성귀도 순우리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명의 원형도 북한 요리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대목입니다. 글을 쓴 정혜경 님은 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일하신다고 합니다. 《밥의 인문학》이라는 책은 한겨레한테 ‘밥’이 가장 소담스럽거나 대수롭다고 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러면, ‘밥’과 얽힌 ‘한겨레 말’에 깊고 넓게 눈을 뜨면서 이야기꽃을 함께 펼칠 때에 한결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밥을 먹은 삶’을 이었습니다. 한겨레는 ‘음식(飮食)을 섭취(攝取)한 역사(歷史)’가 아니요 ‘조석(朝夕)을 식사(食事)하는 문화(文化)’도 아닙니다. 글쓴이 정혜경 님은 곳곳에서 ‘밥심(밥힘)’을 말합니다. ‘밥심’처럼 한겨레한테는 ‘밥삶’이요 ‘밥살이’입니다. ‘밥짓기’와 ‘밥차림’입니다.


  요즈음은 시골 할매와 할배도 ‘남새·나물·푸성귀’를 제대로 갈라서 쓰지 않지만,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기 앞서까지 거의 모든 시골사람은 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펴서 옳게 쓰면서 살았습니다. 마늘처럼 손수 심어서 얻은 풀은 남새요, 쑥처럼 스스로 잘 자라는 풀은 나물이며, 남새와 나물을 아울러 푸성귀입니다. 단군 옛이야기에 나오는 ‘쑥과 마늘’은 ‘나물과 남새’ 가운데 하나씩 손꼽아서 ‘사람이 먹는 밥’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었어요.



.. 쌀밥을 먹는 귀족층이 생겨난 것은 삼국시대 무렵이므로,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공동 식사의 풍습이 일반적이었으리라 본다 … 왕족이나 귀족은 쌀을 주식으로 즐길 수 있었지만 쌀 생산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일반 백성은 쌀을 충분히 먹기 어려웠다 … 하층계급에서 조나 보리를 먹는 사람은 그래도 풍족한 편이고, 더 어려운 경우에는 나무껍질을 먹었다고 한다 ..  (33, 39쪽)



  밥상맡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수저를 듭니다. 밥을 먹으면서 ‘밥노래’를 부릅니다. 밥 한 술이 즐거우니 노래가 흘러나오고, 밥 두 술이 기쁘니 노래가 저절로 샘솟습니다.


  밥을 먹는 사람도 노래하지만, 밥을 짓는 사람도 노래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밥을 짓는 사람부터 노래를 해야 밥을 먹는 사람이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읊고 덩실덩실 춤을 추어야, 밥상맡이 아늑하면서 넉넉합니다.


  밥을 짓는 사람이 노래하려면, 밥을 짓도록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사람이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흙을 짓고 건사하면서 보살피는 사람이 기쁘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일 때에, 남새도 나물도 싱그러우면서 알찹니다. 흙을 사랑하는 삶이기에 밥을 사랑할 수 있고, 밥을 사랑하는 삶이기에 서로 아끼면서 돌보는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고려에 강남미가 들어온 것은 당시 세자 신분이자 원 세조의 외손이었던 충선왕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는 외국으로부터 쌀을 들여온 최초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 강남미는 그 당시 굶주리던 고려인들을 구휼하기보다는 일본 원정 비용이나 기근 발생 시의 이동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당시 쌀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품목은 주로 농산물이었다 ..  (46, 62쪽)



  정혜경 님은 ‘밥’을 노래한 수많은 문학과 옛책을 빌어 ‘밥’이란 참으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밥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문득 깨닫습니다. 한국에서 시나 소설을 쓴 분들이 참말 밥 이야기를 자주 썼군요.


  그래서, 나도 내 나름대로 내가 읽은 ‘밥을 노래한 책’을 떠올려 봅니다. 《밥의 인문학》에서는 다루지 않은 책 가운데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나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 열두 권을 떠올립니다. 《나츠코의 술》이라는 만화책은 ‘일본 전통술’을 양조장에서 손수 담그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얼핏 보자면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이지만, 열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보면 4/5에 이르는 이야기는 ‘술’이 아니라 ‘시골 흙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나츠코의 술》이라는 만화책은 ‘술을 맛있게 빚는 사람’이 가장 크게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사랑해야 할 대목은 바로 ‘쌀을 가장 훌륭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길’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에 나오는 ‘나츠코’는 손수 쟁기를 쥐어 논을 갑니다. 기계를 빌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서 새벽부터 밤까지 쟁기질을 해서 논을 갈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손품이 깃든 논에 손으로 모를 찧고 손으로 피를 뽑으며 손으로 나락을 벤 뒤, 손으로 하나하나 널어서 말린 뒤, 다시 손으로 벼알을 훑어야, 이러한 쌀을 술로 빚을 때에 더없이 깊고 너른 맛이 나온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츠코라는 사람은 농약도 비료도 안 쓰고 손수 똥거름을 논에 뿌립니다. 나중에 맛난 술을 빚을 쌀이니, 이 쌀에 농약과 비료를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여깁니다. 농약으로 지은 쌀로 술을 빚으면 그 술에서 농약 냄새가 흐른다고 느끼거든요.


  가장 맛난 밥은 어떤 밥일까요? 바로 내가 손수 흙을 일구어서 얻은 나락으로 지은 밥입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거둔 쌀을 내 고장에서 흐르는 싱그러운 냇물을 길어서 내가 숲에서 베어 온 나무를 찍어서 불을 지핀 뒤 짓는 밥이 가장 맛납니다.



.. 밥짓기는 가족들이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을 때 행복한 노동이 될 수 있다. 요리는 매우 창조적인 행위다 …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말에서) ‘두루거리상’은 여러 사람이 격을 차리지 않고 둘러앉아서 한데 먹게 차린 음식상으로 두리기상이라고도 한다. ‘사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이는 농사꾼들이 힘든 일을 할 적에 끼니 밖에 참참이 먹는 음식을 말한다 … 충무김밥은 김과 밥 사이에 아무런 재료가 없어도 김밥이라는 요리가 가능함을, 그냥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맛있게 가능함을 보여준 창조의 원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  (199, 244, 340쪽)



  정혜경 님은 “우리 옛글에는 어떤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들이 있고 우리 조상들은 이를 활용하여 우리 언어를 윤택하게 하고 어려운 삶을 유머르 받아들인 것 같다(178쪽).” 같은 이야기를 적기도 하지만, 우리 옛사람은 ‘글(한문)’을 모르며 살았습니다. 옛날 옛적에 글을 남긴 사람은 양반과 지식인뿐입니다. 양반과 지식인은 손수 흙을 일구지 않았습니다.


  ‘밥’이나 ‘쌀’이나 ‘나락(볍씨)’ 같은 낱말은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라 ‘흙을 일구던 시골사람’이 입으로 지어서 입으로 물려준 말입니다. ‘사자성어’는 ‘한문’이라고 하는 글을 기름지게 할 뿐입니다. 한겨레가 오랜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말’을 기름지게 하는 ‘새로운 말’은 손수 짓는 삶에서 길어올리는 말입니다.


  ‘꼬두밥’이나 ‘진밥’이나 ‘누룽지’를 한자말로 일컫는 사람은 없습니다. ‘찰밥’이나 ‘수수밥’이나 ‘감자밥’을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빔밥’이나 ‘남새밥’이나 ‘나물밥’을 한자말로 가리키지 못합니다. ‘김밥’이나 ‘쌈밥’이나 ‘덮밥’이나 ‘볶음밥’은 오롯이 이러한 한국말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겨레 말을 기름지게 하는 말이 비롯한 곳은 바로 흙이요, 숲이며, 들입니다. 흙말이요 숲말이며 들밥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먹는 밥은 흙밥이고 숲밥이며 들밥입니다.


  정혜경 님은 “물을 좋아하는 이팝나무 습성으로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던 모양이다(183쪽).”와 같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입니다. 옛사람은 달력이나 시계에 기대지 않고 살았습니다. 옛사람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흐름을 낱낱이 살펴서 흙일과 숲일과 들일을 했습니다. 제비가 돌아오는 철을 살피고, 바람결과 바람맛을 읽으며, 해가 흐르고 달과 별이 돋는 기운을 헤아렸습니다. 이 모두를 살펴서 씨앗을 심고 흙을 가꾸었어요.



.. 한국의 전통문화의 특징은 자연과 가까이 있고, 자연을 받아들여 바탕에 깔아놓은 데 있다 … 우리에게 보약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을 담은 밥을 먹으면 보약이 된다 ..  (120쪽)



  우리는 누구나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늘 밥을 먹지만, 막상 밥을 제대로 못 살피기 일쑤입니다. 너무 바쁜 하루요, 쳇바퀴처럼 고되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 사는 수많은 이웃은 흙을 못 밟으면서 살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 회사일이나 공장일을 하는 숱한 이웃은 바람 한 줄기를 제대로 못 쐬기 마련이고, 햇볕 한 줌조차 제대로 못 쬐기 마련입니다. 이러다 보니, 밥 한 그릇을 받으면서도 밥이 나온 바탕을 미처 못 살피곤 합니다.


  해가 있고, 바람이 있으며, 흙이랑 풀이랑 나무에다가, 빗물이 있기에, 비로소 밥이 있습니다. 다만, 해와 바람과 흙과 비만 있대서 밥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모두를 고루 아끼는 사람이 사랑스레 흘리는 땀방울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밥이 나옵니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풀밥이든 감자밥이든 고기밥이든 다 맛있습니다. 어느 밥이든 다 좋습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아름다운 숨결로 지어서 나누는 밥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몸과 마음을 살찌웁니다. 쌀을 먹든 밀을 먹든 기쁜 마음일 때에 삶이 살아납니다. 쌀밥을 먹든 빵을 먹든 기쁨이 없이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만 가슴에 담으면 영양소도 살아나지 못하고 맛도 없을 뿐더러 보람조차 없겠지요.


  자연을 담은 밥, 그러니까 햇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어우러진 숨결에 내 따사로운 손길을 섞는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그러니, 밥을 슬기롭고 사랑스레 잘 먹는 사람은 늘 튼튼한 몸이 되면서 웃는 마음이 됩니다. 4348.5.2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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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시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저자마실 나와서

가방 가득 먹을거리

장만한 뒤

한 시간 남짓

군내버스 기다리고는

드디어 850원 1700원 치러

집으로 돌아간다.


두 아이가 씩씩하게

버스역 둘레를 뛰노는 동안

가방에서 시집 한 권

꺼내어 읽다가

조용히 다시 넣고는

작은아이 왼손을 펼치고

작은아이 오른손을 쥐어

작은아이 이름 넉 자를

손가락 글씨로 적는다.



2015.5.9.흙.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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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 걸어서 가자



  우리 또 걸어서 놀이터에 가자. 우리는 잘 걸어갈 수 있어. 잘 걸을 수 있지. 씩씩하게 걸어서 놀이터에서 마음껏 달리자. 그러고 나서 집에는? 또 걸어올 수 있고, 버스를 탈 수 있겠지. 기운을 내서 가자. 우리는 두 다리로 어디로든 갈 수 있어. 하늘을 날듯이 마음껏 모든 길을 갈 수 있어. 4348.5.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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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77. 비



흰민들레 한 포기를

마당 한쪽에 옮겨심은 날

비가 내렸다.

대나무 한 그루를

뒤꼍 한켠에 옮겨심은 날

비가 왔다.

탱자나무 한 그루를

대나무 옆에 나란히

옮겨심은 날

또 비가 듣는다.

빗물 먹고 씩씩하게 뿌리내려서

튼튼하게 함께 살자.



2015.4.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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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95] 오늘 아침에는 감꽃 주워 먹지

― 감꽃내음 맡으며 하루 열기



  우리 집 뒤꼍에 있는 감나무는 샛노란 감꽃을 피웁니다. 바야흐로 찔레꽃내음과 감꽃내음이 섞인 고운 바람이 온 집안을 감돕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뒤꼍을 거닐며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다가 두 아이를 부릅니다. 안개랑 구름이 짙게 낀 날씨라 좀 쌀쌀한지, 아이들은 마당에도 안 나오고 마루를 뛰면서 놉니다. 자, 이제 바깥으로 나와서 뒤꼍에서 달리자구.


  작은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한손에 쥐고 뒤꼍으로 오릅니다. 아버지 뒤를 따라 풀포기를 가르면서 뒤꼍을 천천히 걷다가 큰돌 앞에 섭니다. “이 돌 들어 봐도 돼?” “들어 봐도 되는데, 다시 그 자리에 덮어야 해. 거기에 개미집이 있으니까.” “벌레하고 달팽이가 있어!” 뒤꼍에 미처 치우지 못한 큰돌이 있는 자리마다 개미집 구멍이 있습니다. 개미집 구멍 옆에는 달팽이집도 있고, 땅강아지집도 있습니다. 온갖 풀벌레가 뒤꼍에서 제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개미집과 벌레집이 생길 만큼 우리 집 뒤꼍이 찬찬히 살아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법 오래 버려진데다가 쓰레기가 많이 파묻혔던 곳이라 풀이 마음껏 자라도록 하면서 묵히는 뒤꼍입니다. 몇 해에 걸쳐 여러 풀이 나고 지도록 한 끝에 요새는 달걀꽃이나 비름나물은 뒤꼍에서 돋지 못합니다. 올해에는 쑥만 신나게 오릅니다.


  감나무 밑에 섭니다. 쑥잎이랑 갯기름나물잎에 감꽃이 한 송이씩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을 불러서 손

바닥에 하나씩 얹습니다. “이 꽃은 뭐야?” “먹어 봐.” “먹어도 돼?” “너희들 지난해에 이맘때쯤 날마다 이 꽃 먹느라 바빴어.” “그래?”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아이들은 감꽃이 떨어질 무렵 아침저녁으로 뒤꼍에서 감꽃을 주워서 먹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간 일이라 못 떠올릴까요? 앞으로 나이를 더 먹으면 해마다 이맘때에 감꽃을 주워 먹는 줄 몸으로 알 만할까요?


  대롱대롱 달린 앙증맞은 감꽃을 올려다봅니다. 감꽃은 바람이 안 부는 때에도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한손으로 감꽃을 주워서 다른 한손에 모읍니다. 감꽃을 모으는 동안에도 어깨에 머리에 감꽃이 떨어집니다.


  끼니마다 한 줌씩 줍자고 생각합니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그릇에 담습니다. 아침을 차리기 앞서 두 아이는 신나게 감꽃을 집어서 먹습니다. 노오란 꽃송이뿐 아니라 푸른 꽃받침도 함께 먹습니다. 감꽃맛은 꽃송이랑 꽃받침을 함께 먹을 적에 더욱 싱그럽고 상큼합니다.


  자, 오늘 아침도 꽃밥을 차려서 먹자. 즐겁고 신나게 먹고 새로운 기운을 내어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누리자. 4348.5.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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