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35. 바람을 가르며



  우리 집 배움자리는 ‘바람터’이다. 언제나 바람을 생각하고, 바람을 읽으며, 바람을 누리고, 바람을 먹다가는, 바람을 노래하고, 바람을 꿈꿀 뿐 아니라, 바랑하고 사이좋게 노는 터이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길을 생각하면서 배운다. 바람을 가르며 새랑 풀벌레랑 나비랑 모두 동무가 되어 무지개를 걸어가는 길을 헤아리면서 익힌다. 우리는 바람이 되려고 바람길을 달린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바람이’로 살려고 이 보금자리를 마음껏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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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펄쩍순이



  사름벼리는 잠자리가 되었다. 잠자리처럼 날개와 같은 팔을 곧게 펼치고 팔랑팔랑 펄쩍펄쩍 바람을 가르면서 난다. 이제 제법 높이 멀리 난다. 다리힘과 허리힘이 차츰 더 붙으면 훨씬 높이 멀리 날아오르겠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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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아버지 따라갈래



  낮에 뒤꼍에 올라서 풀내음을 맡으면서 햇볕을 쬔다. 얼마쯤 이렇게 있자니 작은아이가 아버지를 찾아 뒤꼍으로 올라온다. 작은아이는 늘 아버지를 곰곰이 지켜본다. 마당에 나가든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든 책을 읽든 으레 아버지 꽁무니를 좇는다. 아버지가 마당에 나간 뒤 한참 안 보이니 궁금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뒤꼍으로 오는구나 싶다. 아버지가 뒤꼍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아하, 아버지 여기 있구나. 나도 올라가야지.” 하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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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우기’가 힘든 그대한테



  아이들하고 살아온 지 올해로 여덟 해이다. 그러니까 큰아이가 여덟 살이라는 뜻이다. 올해가 지나면 큰아이는 아홉 살도 되고 열 살도 되며, 스무 살이나 마흔 살도 되리라 본다. 아무튼, 지난 여덟 해 동안 틈틈이 ‘육아일기’라는 글을 썼다. 이 육아일기를 본 이웃은 더러 나한테 묻는다. “아이키우기 힘들지 않으세요?”


  나는 이제껏 이런 물음에 “안 힘들어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라든지 “힘들다면 힘들고, 안 힘들다면 안 힘들어요.” “힘들 때도 있구나 싶지만, 힘들 때에도 언제나 아이들한테서 배우며 즐거워요.”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말이 하나도 안 나왔다. 이제 이런 말로는 대꾸할 수 없다고 느꼈다.


  “‘아이키우기’가 힘들다면, 아이하고 함께 사는 나날이 힘들다는 뜻인데, 아이한테 도무지 못 할 말이지 않을까 싶어요. 말이 될 수도 없고요. 저는 아이들과 살며 이 아이들이 나한테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같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가 ‘어버이인 나와 곁님’한테 찾아와서 보내는 하루는 그야말로 기쁨이요 선물이고 사랑인데, 기쁨이 힘들다거나 선물이 힘들다거나 사랑이 힘들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온누리 어떤 기쁨이나 선물이나 사랑이 힘들까? 기쁨이나 선물이나 사랑이 참다운 기쁨이나 선물이나 사랑이라면 힘들 수 있을까? ‘힘든 기쁨’이나 ‘힘든 선물’이나 ‘힘든 사랑’이 있을까?


  기쁨은 오로지 기쁨이요, 선물은 오직 선물이며, 사랑은 바로 사랑이다. 다른 어떤 꾸밈말도 앞뒤에 붙일 수 없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돌아다니자면 ‘힘을 많이 써야’ 한다.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 ‘힘을 많이 쏟아야’ 비로소 짐을 짊어지거나 자전거를 몰 수 있다. 그러나, ‘힘을 많이 쓴다’고 할 뿐 ‘힘이 많이 든다’고 할 수 없다. 참말 나는 지난 여덟 해 동안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힘을 쓴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이제부터 새롭게 생각을 가슴에 품기로 한다. 지난 여덟 해는 ‘힘쓰기’ 또는 ‘용쓰기’ 또는 ‘애쓰기’로 하루하루 살았다면, 앞으로 누릴 새로운 해에는 ‘오로지 기쁨’하고 ‘오직 선물’이랑 ‘바로 사랑’ 이 세 가지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품기로 한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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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5-30 23:36   좋아요 0 | URL
저한테 가르침이 되는 글이네요.

파란놀 2015-05-30 23:58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언제나 기쁘고 고맙습니다
 

책마실



  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오면, 두 팔 가득 책을 짊어진다. 한 권을 골라도 두 팔 가득 책을 품고, 열 권을 골라도 두 팔 한가득 책을 안는다. 가벼운 책이든 무거운 책이든, 적든 많든, 언제나 가슴으로 따사롭게 책을 품는다.


  즐겁게 장만한 책은 즐겁게 읽는다. 사랑스레 장만한 책은 사랑스레 읽는다. 고맙게 장만한 책은 고맙게 읽는다. 이리하여, 얄궂게 훔친 책은 얄궂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은 채 읽어야 하고, 우악스레 빼앗은 책은 우악스러운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읽어야 한다.


  책을 마주할 때뿐 아니라 책을 장만할 때에도 가장 너그러우면서 넓고 넉넉한 마음이 되도록 다스린다. 아이를 돌보거나 밥을 지을 때뿐 아니라 말을 섞거나 글을 쓸 때에도 가장 따스하면서 고운 마음이 되도록 추스른다.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 아름답게 꿈꾸는 삶을 짓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집안에 갖춘 뒤 틈틈이 읽고 또 읽는다. 책마실을 하는 사람은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찾으려는’ 마실을 누린다. 책마실을 아이와 함께 즐기는 사람은 ‘사랑을 짓는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밝힌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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