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돋는 길



  바닥이 흙이라면 풀이 돋는다. 바닥에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면 풀이 못 돋는다. 풀이 돋는 자리는 비가 거세게 내려도 흙이 얼마 안 쓸린다. 풀이 안 돋는 자리는 비가 왔다 하면 빗물이 콸콸콸 흐르면서 흙이 많이 쓸린다.


  멧자락에 나무만 있으면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린다. 나무 곁에 풀밭이 있어야 비로소 흙이 덜 쓸리거나 안 쓸린다. 밭자락이나 논둑도 이와 같다. 풀을 죄 죽이거나 뽑으면 흙은 버티거나 배길 수 없다.


  길바닥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깔면 자동차가 다니기 좋다. 이러면서 빗물이 콸콸콸 흐르니, 길바닥 둘레는 흙이 쓸리기 쉽다. 길바닥이 흙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는 자리는 움푹 패이면서 풀이 못 돋는다. 자동차 바퀴가 안 닿는 자리는 덜 밟히기도 하고 풀이 잘 돋는다.


  숲에서 살면서 늘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다 알 수 있다. 숲에서 살지 않으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보지 않으면 이론을 세우기 마련이요 실험을 할 테지. 숲에서 배우지 않고 책으로만 배우면, 삶이 없는 지식인이 된다. 4348.6.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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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책빛 먹기

25. 교과서는 책인가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시험을 치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교과서를 씁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이어야 시험 문제로 다룰 만하고, 시험 문제를 잘 외워서 맞출 수 있어야 ‘공부를 잘 한다’고 여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는 과목에 따라 한 권씩 있습니다. 한 학기에 교과서 한 권을 떼기도 하고, 한 해에 교과서 한 권을 떼기도 합니다. 열 과목이나 스무 과목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면, 짐짓 많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나 한 해에 열 권이나 스무 권에 이르는 교과서를 배운다고 한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는 대단히 적습니다. 한 해에 교과서 열 권을 뗀다면 한 달에 한 권도 못 떼는 셈이요, 한 해에 교과서 스무 권을 뗀다면 한 달에 한 권 반쯤 겨우 떼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바깥쪽을 헤아리면,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다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책은 날마다 꾸준하게 새로 나와요. 학교 안쪽을 들여다보면, 교과서 아닌 책을 볼 틈을 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쪽에서는 시험 문제 때문에 교과서를 단단히 붙잡아야 하고, 학교 바깥쪽에서는 학원에서 교과서를 더 깊이 붙잡도록 이끕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님이 쓴 《아시아의 민중봉기》(오월의봄,2015)라는 책이 있습니다. 800쪽 가까이 되는 책으로, 필리핀·버마·티베트·중국·타이완·방글라데시·네팔·인도네시아에서 어떤 ‘민중봉기’가 있었는가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800쪽짜리 책이라고만 여기면 두툼할는지 모르나, 아시아 여러 나라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라고 여기면 ‘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더 두툼할 테고, 한 나라에서 일어난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두툼한 책 몇 권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읽으면 “19세기 말 스페인 제국이 몰락하면서 미국이 필리핀에 대해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인들의 ‘명백한 운명’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이 분쇄되기 전까지 미국은 약 20만 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다(80쪽).”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흐릅니다. ‘20만 명 원주민 학살’이 필리핀에서 있었다는데,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쓰는 역사(세계사) 교과서에서는 필리핀 이야기를 어느 만큼 다룰까요?


  “경제적 기능이 마비 상태인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철거민 수십만 명이 빈궁한 생활을 한다. 최고 군사 지도자들은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는 반면, 90퍼센트의 버마인들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간다(166쪽).” 같은 이야기도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버마 이야기가 어느 만큼 나올까요? 버마가 군사독재 때문에 모진 아픔을 겪어야 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군홧발에 짓눌린 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인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거나 듣거나 엿볼 수 있을까요? 버마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이야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아시아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 이야기도 매한가지예요.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교과서에서는 ‘한국에서 가난하고 힘겹게 살면서 굶주리는 이웃’ 이야기를 얼마나 다룰까요? 교과서에서는 우리 역사나 사회나 문화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교과서에서 민중봉기 이야기를 다루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민중봉기 이야기를 시험 문제로 내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군사독재나 쿠테타나 학살 이야기를 교과서나 시험 문제로 똑똑히 다루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려서 담습니다. 교과서 한 권에는 모든 이야기를 담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찬찬히 익힌다면, 어떤 지식을 놓고 큰그림을 그린다든지 테두리를 잡는다든지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로는 속살을 샅샅이 파고들지는 못합니다. 어느 때에는 교과서로 겉훑기조차 제대로 못할 수 있습니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시를 몇 꼭지나 실어서 읽힐까요? 문학 교과서는 소설을 한 권이라도 차근차근 다룰 수 있을까요? 과학 교과서는 우주 물리학이나 양자 물리학을 얼마나 짚을까요? 국어 교과서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얼마나 잘 쓰거나 헤아리도록 북돋울까요?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은 “민중이 들고일어날 때, 그들의 용감한 행동은 춤·시·산문·연극으로 신화화했다. 그러나 오만한 권력 앞에서 침묵한다면, 승리한 폭군의 내실 외에 어디에서도 그들을 찬양하지 않는다(332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민중’은 ‘오만한 권력’ 앞에서 고개를 꺾거나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중은 언제나 씩씩하고 기운차게 일어나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중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민중입니다. 민중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라면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답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사람’일 때에는 슬기롭게 생각하고 사랑스레 꿈을 꾸어야 사람입니다. ‘사람’이기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웃을 아낍니다. ‘사람’인 만큼 아름답게 노래하고 곱게 웃으면서 기쁘게 삶을 짓습니다.


  교과서는 교과서입니다. 학교에서 학생한테 기초 지식을 알려주려고 쓰려고 엮는 교과서입니다. 그러니, 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로 배우는 동안, ‘교과서 아닌 책’을 늘 곁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눈길을 틔워야 하고, 스스로 생각을 가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눈높이를 북돋아야 하고, 스스로 마음을 일구어야 합니다.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 책은 아닙니다. 교과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책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 구실을 합니다. 문학 교과서가 시나 소설을 드문드문 몇 가지만 살짝 추려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문학 교과서는 바로 ‘문학책으로 가는 길’을 가만히 보여주면서 우리가 스스로 기쁘게 나아가도록 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과서도 온갖 지식을 맛보기로만 가볍게 보여줍니다. 학문을 하든 살림을 돌보든 사랑을 하든,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수많은 책을 품에 안으면서 너른 바다를 헤엄칠 줄 아는 숨결로 거듭나야 합니다. 삶에서 이야기를 짓고, 삶에서 보람을 찾으며, 삶에서 뜻을 이룹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덜 나오더라도 교과서에 덜 매이면서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험성적만 잘 나오는 몸짓으로 학교를 마치면, 사회에서도 삶에서도 ‘눈뜬 장님’이 되기 일쑤입니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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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개구리 보려고



  개구리가 우리 곁에서 노래한다. 산들보라는 좀처럼 개구리를 못 찾는다. 개구리가 흙빛 바윗돌에 찰싹 달라붙었기 때문일까. 자, 눈을 더 크게 뜨고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렴. 그러면 네 눈에도 개구리가 보일 테니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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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층짜리 집 (양장) 100층짜리 집 2
이와이 도시오 글.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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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37



지구별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

― 지하 100층짜리 집

 이와이 도시오 글·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 2010.11.10.



  이와이 도시오 님은 ‘100층짜리 집’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빚습니다. 먼저 《100층짜리 집》(2009)이 나왔고, 《지하 100층짜리 집》(2010)이 나왔으며, 《바다 100층짜리 집》(2014)이 나왔어요. 지구별에 100층으로 솟은 집 이야기 다음으로는 땅속으로 파고드는 100층짜리 집이요, 다음으로는 바닷속으로 파고드는 100층짜리 집이니, 앞으로는 지구별 바깥으로 뻗는 100층짜리 집이 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 몸속에 아주 조그마한 핏톨이나 세포가 어우러진 100층짜리 집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구름 위로 뻗는 100층짜리 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지개를 타고 흐르는 100층짜리 집을 그릴 수 있어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100층짜리 집이라든지, 커다란 바윗돌에 깃든 100층짜리 집이나 큼지막한 나무 안쪽에 있는 100층짜리 집도 헤아릴 만합니다.



.. 어느 날, 쿠가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쿠, 지하 100층에 있는 우리 집에서 곧 잔치가 열려. 놀러 오지 않을래?” ..  (2쪽)




  그림책 《지하 100층짜리 집》(북뱅크,2010)을 차근차근 넘깁니다. 열 층마다 새로운 이웃이나 동무가 나옵니다. 열 층을 두고 한 가지 짐승이나 벌레가 요모조모 알뜰살뜰 살림을 꾸립니다. ‘지하 100층짜리 집’을 찾아가는 ‘쿠’라는 아이는 열 층을 지날 적마다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마주하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다른 짐승이나 벌레도 사람하고 비슷하게 살림을 가꾸는구나 하고 깨닫고는 즐겁게 어우러져서 놀거나 일손을 거듭니다.


  그나저나, 쿠라는 아이는 어떻게 지하 100층짜리 집에 나들이를 갈 수 있을까요? 아마 여느 때에 땅속 나라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생각하면서 살았겠지요. 다른 100층자리 집 그림책에서도 100층짜리 집에 나들이를 가는 아이들은 여느 때에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습니다. 착한 마음결로 살아가는 아이들이기에 사람이 아닌 별님이 속삭이는 소리라든지, 거북이가 읊는 말이라든지, 풀잎이나 꽃씨가 노래하는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고운 마음씨로 살아가는 아이들이기에 바람을 읽고 해님을 읽으며 냇물을 읽습니다.



.. 지하 50층에 다다랐습니다. 다음 층에는 누가 살까요 ..  (15쪽)




  곰곰이 돌아보면, 어른들은 100층짜리 집에 나들이를 못 갑니다. 시멘트나 쇠붙이로 척척 올려세운 도시 한복판 100층짜리 집에 일터가 있을는지는 모르나, 별나라 100층짜리 집이라든지 바닷마을 100층짜리 집이라든지 땅속 나라 100층짜리 집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구름이나 무지개하고 동무하지 못하는 어른이요, 별빛이나 햇빛이 들려주는 노래를 못 듣는 어른이며, 풀벌레랑 개구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삶을 모르는 어른입니다.


  어른들은 도룡뇽이 사는 집이나 마을을 하루아침에 허뭅니다. 어른들은 두더지나 수달이 사는 집이나 마을을 우지끈 뚝딱 무너뜨립니다. 어른들은 꾀꼬리와 제비가 지은 집이나 마을을 아무렇지 않게 부숩니다. 더군다나 어른들은 사람이 지은 집과 마을조차 함부로 망가뜨려요. 전쟁무기를 밀어붙여서 망가뜨리기도 하고, 재개발을 한다면서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 지하 100층에는 거북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오늘로 100살이 되셔.” “아, 생일잔치였구나! 거북 할머니 안녕하세요? 생신 축하드려요!” ..  (26∼27쪽)




  지구별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 오붓하게 어깨동무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구별 이웃을 아끼려는 마음이 있다면 전쟁무기랑 군대는 다 같이 몽땅 없애리라 생각합니다. 지구별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평화와 평등을 가르치고 나누는 사회와 학교와 경제와 문화와 과학으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100층짜리 집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아이는 이웃이랑 동무를 더욱 살뜰히 바라봅니다. 우리(사람)를 둘러싼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우리(사람)하고 오순도순 지내는 이웃이 얼마나 따스하고 살가우며 아름다운가를 새롭게 배웁니다. 이 마음을 한결같이 보듬을 수 있으면, 아이들은 앞으로 이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하고 푸른 꿈을 넉넉히 심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리라 봅니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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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441) 시간적 1


해수욕도 하려 했었는데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박세욱-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77쪽


시간적(時間的) : 시간에 관한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 시간을 따지면 어림없다

→ 시간을 보니 어림없다

→ 시간이 없었다

→ 시간이 안 되었다

→ 시간이 모자랐다

 …



  한국말사전 풀이를 따르면 “시간적으로 어림없다”는 “시간에 관한 어림없다”란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풀이를 해 놓고 보면 어딘가 엉뚱합니다. 아무래도 걸맞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시간적 배경”이나 “시간에 관한 배경” 모두 어울리지 않고 “시간 배경”이라고 할 때에 비로소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시간적 순서”나 “시간에 관한 순서” 또한 어울리지 않으며, “시간 순서”라고 적을 때가 가장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

→ 시간 여유가 없다

→ 여유가 없다

→ 느긋하지 않다

→ 겨를이 없다

→ 틈이 안 난다

→ 짬이 없다

 시간적인 제한이 있다

→ 시간 제한이 있다

→ 시간이 빡빡하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시간 여유가 없다”라는 말마디도 어쩐지 어설픕니다. 아무래도 앞뒤가 잘 안 들어맞습니다. 한자말 ‘여유(餘裕)’를 넣어서 어설프기보다는, ‘시간이 넉넉하게 있지 않아 바쁘다’는 뜻과 느낌을 밝힐 적에 한국사람은 으레 “시간이 없다”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에 꾸밈말을 넣는다면 “시간이 얼마 없다”나 “시간이 넉넉히 없다”처럼 말합니다. “여유가 거의 없다”나 “여유가 하나도 없다”처럼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얼마 없다”로 쓰면 손쉽고 수수한 말투인데, “시간 여유가 없다”로 고쳐서 쓰다가 “시간의 여유가 없다”라든지 “시간적 여유가 없다” 같은 말투가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한자말 ‘여유’를 써서 잘못이 아니요, 한자말 ‘여유’는 안 써야 올바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말 ‘얼마’나 ‘넉넉히’를 뒤로 젖히면서 ‘-의’하고 ‘-적’이 달라붙는 말투가 스멀스멀 나타나고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시금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그럴 겨를이 없다”나 “그럴 틈이 없다”나 “그럴 새가 없다”나 “그럴 짬이 없다”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로 ‘시간’이라는 낱말을 넣지 않으면서 뜻과 느낌을 알맞게 나타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시간’ 같은 낱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이 낱말이 없다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고 할 만큼 삶터가 달라졌습니다만, 지난날에는 이런 낱말이 없이도 우리 넋과 마음과 생각을 넉넉히 나눌 수 있었습니다. ‘때·겨를·틈·새·틈새·짬·말미’ 같은 낱말을 흐름과 자리에 따라 알맞게 넣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 시간이 빠듯하다 / 빠듯하다

→ 시간이 없다 / 겨를이 없다

→ 시간이 모자라다 / (무엇할) 틈이 없다

→ 코앞에 닥치다 / 발등에 떨어지다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

→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모자라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없다고 마무리되었다


  찬찬히 짬을 내면서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넉넉히 말미를 나누면서 한국말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가누는지 바르게 추스르는지 알맞게 쓰다듬는지 곱게 매만지는지를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틈을 내고 겨를을 내야 합니다. 차분하게 되짚을 새가 있어야 합니다. 남한테 떠맡기는 말다듬기나 글다듬기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깊이 있게 다루는 말이요 손수 갈고닦는 글이 될 때에, 바야흐로 말이 살고 글이 삽니다. 말이 살며 넋이 살고, 글이 살며 얼이 살아날 때에 삶도 꽃처럼 피어납니다. 넋과 얼이 나란히 살 때에 마음이 살고 생각이 살 수 있고, 시나브로 사랑과 믿음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이 살지 않는다면 참되거나 슬기로운 삶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4339.2.8.물/4343.1.8.쇠/4348.6.2.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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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도 들어가려 했는데 시간을 보니 어림없다


‘해수욕(海水浴)’이란 바다에서 헤엄을 치거나 노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바다에도 들어가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헤엄치려 했는데”로 손질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555) 시간적 2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이며, 결말 부분에서 30년을 건너뛰며

《선안나-천의 얼굴을 가진 아동문학》(청동거울,2007) 175쪽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 《몽실언니》를 쓴 시간 배경은

→ 《몽실언니》를 쓴 때는

→ 《몽실언니》가 다루는 때는

→ 《몽실언니》 이야기가 펼쳐지는 때는

→ 《몽실언니》 이야기가 흐르는 때는

 …



  논문이나 기사나 비평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는 글을 쓰는 분들은 이 보기글과 같은 짜임새에 익숙합니다.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무렵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즈음 삶자락을 보여주는 작품이며”처럼 이야기하는 짜임새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몽실언니》를 쓴 때는”이라든지 “《몽실언니》가 다루는 때”처럼 글을 쓸 수 있고,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앞뒤를 다루며”처럼 글을 써도 잘 어울립니다. 4343.1.8.쇠/4348.6.2.불.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앞뒤를 다루며, 마지막에서 서른 해를 건너뛰며


“한국전쟁 전후(前後)이며”는 “한국전쟁 앞뒤이며”나 “한국전쟁 즈음이며”나 “한국전쟁 무렵이며”로 손질합니다. “결말(結末) 부분(部分)에서”는 “끝에서”나 “마지막에서”로 다듬고, ‘30년(三十年)’은 ‘서른 해’로 다듬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713) 시간적 3


하지만 꽃의 일부가 살눈으로 변해 종피가 없어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싹이 정상적으로 자랄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 보여 걱정이다

《주원섭-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자연과생태,2015) 68쪽


 정상적으로 자랄 시간적 여유가

→ 제대로 자랄 시간이

→ 제대로 자랄 여유가

→ 제대로 자랄 틈이

→ 제대로 자랄 겨를이

→ 제대로 자랄 수가

 …



  이 보기글에서는 ‘시간’으로만 적거나 ‘여유’로 적으면 됩니다. 또는 ‘틈’이나 ‘겨를’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고, 이 모두를 덜고 “제대로 자랄 수가”로 적어도 됩니다. 4348.6.2.불.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꽃 한쪽이 살눈으로 바뀌어 씨껍질이 없으니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싹이 제대로 자랄 틈이 너무 없어 보여 걱정이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손보고, “꽃의 일부(一部)가”는 “꽃 한쪽이”로 손보며, ‘변(變)해’는 ‘바뀌어’로 손봅니다. ‘종피(種皮)’는 ‘씨껍질’로 손질하고, ‘정상적(正常的)으로’는 ‘제대로’로 손질하며, ‘여유(餘裕)’는 ‘겨를’이나 ‘틈’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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