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방울은 우리 집 둘레에서 쉽게 만나서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나 스스로 즐겁게 찍을 사진을 생각하면서, 이 사진을 볼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보기를 바라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꼭 충격스러운 사진일 때에 볼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없이 충격만 있다면, 이는 사진이 아니라 ‘충격 장치’일 뿐입니다.



모과꽃이 지면서 모과잎에 살짝 내려앉습니다. 떨어지는 꽃송이도 똑같이 꽃입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도 사진을 쉽게 배워서 즐겁게 찍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마음으로 ‘사진 찍는 눈빛’이라는 글을 씁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사진이요,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사진 이야기를 씁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아이들이 놀고 남긴 자취도, 모두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기에, 이 삶을 찍으면 ‘사진’이 됩니다.



우리 둘레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 삶을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이라면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나한테서 샘솟아 내 곁에 있는 고운 님과 이웃 모두를 사랑스레 품는 사진을 헤아려 봅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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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69. 두 가지 꽃



  유채꽃이나 갓꽃은 무척 일찍 핍니다. 동백꽃이 한겨울에 피기도 하듯이, 유채꽃이나 갓꽃은 겨울 한복판인 십이월이나 일월이나 이월에도 꽃대를 올려서 노란 꽃송이를 바람 따라 흔들곤 합니다. 노란 꽃송이가 물결처럼 출렁이는 때는 삼월과 사월이지만, 찬바람이 아직 불면서 포근한 볕이 내리쬐면 유채씨와 갓씨에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납니다.

  노란 꽃물결이 일렁일 즈음, 들과 숲에서는 하얀 꽃이 올망졸망 돋습니다. 수많은 들꽃은 흰꽃을 피우는데, 이 가운데 딸기꽃도 하얀 꽃송이입니다. 그래서 삼월 끝자락부터 사월 사이에 도랑이나 풀숲 둘레에서 노랗고 하얀 꽃잔치를 틈틈이 만날 수 있습니다. 유채꽃이나 갓꽃은 꽃대를 높이 올려서 한들거리고, 딸기꽃은 땅바닥에 그리 높지 않은 자리에서 꽃송이를 터뜨리며 고개를 까딱까딱합니다.

  ‘무지개빛’으로 보여주는 ‘칼라사진’은 노란꽃과 흰꽃을 싱그럽게 보여줍니다. ‘흑백사진’으로 찍어도 노랑과 하양은 살짝 다른 기운으로 찍힐 텐데, 봄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에 두 가지 꽃이 두 가지 풀빛을 바탕으로 돋는 이야기는 무지개빛으로 담을 적에 참 곱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이 태어나지 않던 지난날에는 이 두 가지 꽃을 그림으로 그렸을 테지요. 사진이 처음 태어나 흑백필름만 있던 때에는 노랑과 하양이 어우러진 숨결을 사진으로도 애틋하게 담고 싶어서 무지개빛 필름을 그예 만들 수 있었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꽃’을 찍습니다. 꽃밭이나 들이나 숲에서 피는 꽃뿐 아니라, 마음에서 피는 꽃을 찍습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마음을 사랑이라는 꽃으로 찍습니다. 어느 갈래에 서는 사진을 찍든 모든 사진은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삶꽃을 찍고, 사랑꽃을 찍으며, 마음꽃을 찍습니다. 생각꽃을 찍고, 이야기꽃을 찍으며, 웃음꽃을 찍습니다. 눈물꽃하고 노래꽃하고 춤꽃을 사진으로 되살립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은 ‘사람꽃’을 찍는 셈입니다. 우리 곁에서 고요히 피고 지는 꽃을 알아볼 때에 ‘사진꽃’은 문화도 되고 예술도 되지만, 무엇보다 삶이 되어 아름답게 흐릅니다. 4348.6.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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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농증 수술 안 하기’와 ‘숨쉬기’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간 때가 언제인 지 떠올리지 못한다. 다만, 무척 어릴 적부터 병원을 드나든 줄은 안다. 다섯 살인지 일곱 살인지 이무렵에도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떠오르는데, 내가 떠올리는 병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비인후과이고, 다른 하나는 피부과이다. 치과도 자주 다녀야 했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이비인후과와 피부과를 자주 다녔다. 이비인후과는 한 주 가운데 닷새나 엿새를 다녔고, 피부과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적부터 가을이 될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축농증 진단을 아마 다섯 살인가 일곱 살 때에 처음 받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그야말로 이비인후과 마실을 늘 다녀야 했다. 피부과는 중학교에 들어선 뒤에는 더 다니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하면,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학교에 매인 채 지냈으니 햇볕을 쬘 일이 너무 적었다.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는 여름에 반소매나 민소매를 입고 몇 시간쯤 해를 쬐면 팔뚝과 어깨까지 살갗이 다 일어나서 벗겨졌고, 반바지를 입으면 살이 드러나는 자리가 모두 일어나서 벗겨졌다.


  아무튼 이비인후과를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하니 집에서도 진료비를 대느라 만만하지 않았을 텐데, 병원에서는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를 꽁꽁 묶어서 입원을 시킨 뒤 수술을 시키려던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이때마다 대단히 무섭고 싫어서 엄청나게 몸부림이랑 발버둥을 쳤기에 가까스로 수술은 안 받았고 진료만 받고 약을 탔다. 축농증 약은 국민학교에 들 무렵부터 먹었지 싶은데, 이 약은 군대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더 먹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이런 약을 주지도 않으니까.


  어떤 이는 소금물을 코에 넣으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소금물을 코에 넣기도 쉽지 않았고, 소금물을 코에 넣어도 코가 뚫리지 않았다. 딱히 어떤 수도 쓸 수 없이 늘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채 고단하게 숨을 쉬면서 서른 몇 해를 살았다. 어릴 적부터 ‘숨쉬기’를 놓고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를테면, 엄청난 돈과 ‘숨쉬기’가 있을 적에, 내가 무엇을 고르겠는가 하는 대목에서 ‘숨쉬기’를 고르겠노라 하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술로는 코를 고칠 수 없다고 느꼈다. 돈이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기’를 바랐고, 숨을 쉬면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기를 바랐다.


  숨 쉬는 걱정이 없는 사람은 모를 텐데, 늘 코가 막혀서 괴로운 사람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숨 쉬는 소리’를 늘 듣거나 느낀다. 저절로 부드럽게 쉴 수 있는 숨이 아니라, 힘을 들여서 쉬어야 하고, 코가 자주 막히지만, 코를 후빈들 코를 풀든 코가 뚫리지 않으니 언제나 코가 맹맹하고 머리가 띵하다. 이제 와 돌아보니, 늘 코가 아프고 괴로우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깊이 생각하는 일’조차 제대로 할 틈을 못 내기도 했겠구나 싶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숨을 못 쉬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노릇인데, 다른 어느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숨을 한 번 쉴 적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죽을 노릇인 사람이 어떤 꿈을 가슴에 품을 만할까.


  때때로 숨을 잘 쉴 수 있기도 하다. 바람이 매우 맑은 곳에 있거나,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을 잘 쉰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김매기나 풀베기를 안 좋아하는 까닭은 ‘코가 나빠서 숨을 잘 못 쉬지만, 풀내음이 짙게 흐르는 곳에서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니, 풀을 베는 일이 달갑지 않다고 몸으로 느꼈구나 싶다. 그리고, 머리를 깨우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자리에서도 문득 ‘숨쉬기’를 잊는다. 새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맞아들일 적에도 으레 ‘숨을 쉬기가 괴롭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요즈음 들어서 나는 숨쉬기가 무척 부드러워졌다. 꽁지뼈 언저리부터 불바람을 일으켜서 가슴을 지나 머리 뒤꼭지와 이마로 이 불바람이 터져나오도록 하는 숨쉬기(C & E)를 제대로 익혀 꾸준히 이 숨쉬기를 한 뒤,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서른 몇 해 묵은 축농증이 있다’는 대목을 잊었다. 그동안 숨쉬기가 늘 괴로워서 잠자리에 들 적마다 몹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잘 잔다. 참말 나한테 축농증이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주 가끔 콧물이 조금 나면, ‘아, 그래, 내가 어릴 적에 이 콧물 때문에 날마다 죽어났지. 늘 코가 빨개야 했지.’ 하고 되새긴다.


  코가 뚫려서 비로소 숨을 부드럽게 쉴 뿐 아니라 ‘숨을 쉬어야 산다’고 하는 생각에서 홀가분하게 놓여나니, 내 몸을 이루는 빛띠가 돌아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듣는다. 이제껏 코맹맹 소리와 코훌쩍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하던 온갖 소리를 하나하나 새롭게 듣는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못 하고 살던 ‘생각하기’도 요즈음에는 조금씩 한다. 그동안 ‘생각하기’를 꽤 오랫동안 못 하고 살다 보니 ‘생각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주 잊은 듯한데, 차근차근 하루하루 생각을 하면서 지낸다.


  1980년대 첫무렵에 축농증 수술비는 꽤 비쌌다. 요새는 이백만 원 즈음이면 된단다. 불바람을 일으키는 숨쉬기를 하면서 축농증이 내 몸에서 떨어지도록 했으니, 돈으로 치면 나는 얼마쯤 번 셈일까. 아니, 이를 돈값으로 따질 수 있을까. 몸에 칼을 대지 않고 몸을 낫게 했으니, 나는 스스로 내 길을 연 셈이고, 어릴 적에 수술대에 눕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악을 쓰듯이 온몸과 온마음이 새겼던 ‘죽어도 축농증 수술은 안 해, 수술 안 하고 낫고야 말겠어’를 이루었다. 이를 이룬 지 꽤 된 듯한데, 오늘에서야 ‘아, 내가 나한테서 축농증을 참말 떨쳤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왜 오늘에서야 이를 알아차렸을까? 요즈음 들어 비로소 ‘생각하기’를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오늘 집에서 곁님이 나한테 ‘생각하며 살기’를 건드려 주어서 비로소 이 여러 가지가 그림처럼 하나씩 떠오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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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8. 서로 높이는 말



  일요일 낮에 두 아이하고 함께 면소지재 놀이터에 갔다. 마침 면소재지 초등학교 아이들이 제법 많이 놀이터에서 어우러져서 논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하고 섞여서 뛰논다. 작은아이가 시소에서 한 번 자빠졌는데, 그래도 언니 누나 들이 돌봐 주어 곧 울음을 그치고 잘 논다. 열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가 운동장을 뛰어놀다가 나한테 다가와서 작은아이가 시소에서 미끄러졌다는 말을 들려준다. 다 보아서 알지만 이렇게 알려주니 고맙다. 아이한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아이는 나한테 “아저씨, 왜 우리한테 ‘요’를 붙여요?” 하고 묻는다. 언제나 버릇처럼 누구한테나 높임말을 쓰면서 살다 보니 갓난쟁이한테도 다섯 살 어린이한테도 열 살 어린이나 열다섯 살 푸름이한테도 으레 높임말을 쓰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물으니 무어라고 대꾸해야 할는지 할 말을 못 찾아서 “높임말을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한테나 높임말을 쓰면 됩니다.” 하고 말하고 말았다. 뭔가 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 듯싶은데, 막상 그 아이한테 더 이야기를 해 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아이들한테도 높임말을 쓸까? 무엇보다 아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참된 나이’를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 따사롭게 높이면서 아끼고 싶다. 이제 나는 오랜 고향동무한테도 높임말을 섞어서 쓴다. 오랜 동무라 하더라도 높임말을 안 쓰면 내가 스스로 힘들고, 그렇다고 고향동무한테 말을 안 놓으면 동무들이 거북해 하니, 두 가지 말씨를 섞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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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23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23



내 마음에 네 숨소리를 담는다

― 치하야후루 23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4.25.



  스에츠구 유키 님이 빚은 만화책 《치하야후루》(학산문화사,2014) 스물셋째 권을 가만히 읽습니다. 카루타라는 카드를 사이에 놓고 벌이는 싸움과 다툼과 만남과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두 사람은 카루타 카드를 앞에 놓고서 기쁨을 나눌 수 있고, 슬픔을 북돋울 수 있으나, 차분한 마음이 되기도 하며, 차가운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싸움이나 다툼으로 불꽃이 튀지만, 어느 때에는 사랑과 꿈이 곱게 피어납니다. 어느 때에는 차디차거나 매몰찬 바람이 불지만, 어느 때에는 포근하고 보드라운 노래와 같은 바람이 붑니다.



“아, 아까웠어. 굉장한 시합이었는데! 하라다 선생님과 아라타의, 두 사람의 카루타가 참 달라서 재미있었어.” (20∼21쪽)

“나, 니 좋아한다, 치하야. 타이치가 벌써 말했는지는 몰라도, 난 대학은 인자 이쪽에서 다니기로 했다. 혹시, 니도 마음이 있다면, 같이 카루타 하제이.” (26∼28쪽)



  카루타 카드를 놓고 누가 더 겨루기를 잘 하는가 하고 대회를 엽니다. 대회에서 으뜸 자리를 거머쥐는 사람이 있습니다. 으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있고, 으뜸 자리에 올라선 뒤 좀처럼 내려오지 않을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카루타 카드가 아니더라도 둘이 두는 바둑이나 장기도 이기는 사람하고 지는 사람이 나옵니다. 잘 두어서 이기는 사람은 급수가 높습니다. 잘 두지 못해 으레 지는 사람은 급수가 낮습니다. 그런데, 장기이든 바둑이든 카루타이든, 왜 급수를 두어야 할까요. 그냥 두면 안 될까요. 잘 두면 얼마나 대단하고, 못 두면 얼마나 대수로울까요. 으뜸을 가리는 일도 재미있을 수 있는데, 가장 높다고 하는 자리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 가슴이 허전하거나 텅 비지는 않을까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누구한테나 즐겁거나 재미있는 놀이였을 텐데, 급수와 점수와 등수를 따지면서 어느새 즐거움과 재미하고는 동떨어지면서 ‘더 놀라운 솜씨나 손재주’로 기울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노력도 재능도 니가 빠지는 건 없다 본다만도. ‘없는’ 것은 만났나?” “심술과 경험, 정열, 애정, 애정. 애정.” (36∼37쪽)



  우리 삶을 든든히 받치는 기둥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이 빛납니다. 사랑이 있기에 아이와 어버이 사이에 기쁜 웃음이 흐릅니다. 사랑이 있으니 두 어른은 서로 짝꿍이 되어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사랑을 고이 아끼고 보듬으면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스오 씨의 움직임에 휘둘리지는 않아. 눈을 감지 않아도 그 정도의 기분으로 집중하라는 뜻. 소리를 잘 듣고, 한 점을 노린다.’ (117쪽)

‘엄마하고는 왠지, 가족이란 느낌이 안 드니까. 카루타 카드가 더 가족 같아. 카루타 카드.’ (162쪽)



  내 마음속에 네 숨소리를 담습니다. 네 마음속에 내 숨소리가 담깁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서로서로 숨소리를 주고받습니다. 미움이나 시샘 같은 마음이 아닌,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마음이 되도록 고운 숨소리를 주고받습니다. 만화책 《치하야후루》에 나오는 아이들도, 만화책이 아닌 우리 삶터에 있는 모든 아이들도, 저마다 마음자리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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