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이 100. 2015.6.9. 두 손 가득 매화알



  매화알을 딴다. 오늘 우리 집 시골돌이는 살림돌이가 되면서 꽃돌이가 된다. 매화꽃에서 새롭게 거듭난 알맹이인 매화알을 두 손 가득 안으면서 온몸에 고운 매화내음을 받아들인다. 고맙구나. 네가 이렇게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일손을 거드는구나. 그저 옆에서 한손을 거들면서 놀기만 해도 든든하고 고맙구나.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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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60) -의 : 생존의 방식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생존의 방식을 안다

《주원섭-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자연과생태,2015) 22쪽


 생존의 방식을 안다

→ 생존 방식을 안다

→ 사는 길을 안다

→ 살아남는 길을 안다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안다

 …



  이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어도 됩니다. “생존 방식”으로 적으면 될 뿐입니다. ‘-의’를 붙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슷한 얼거리로 “생활 방식”이나 “독서 방식”이나 “요리 방식”처럼 쓰면 됩니다. 한자말을 쓰든 한국말을 쓰든, 사이에 ‘-의’를 넣지 않습니다. “생존 본능”이나 “생존 문제”처럼 쓰면 됩니다. 어느 자리에서도 ‘-의’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4348.6.10.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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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을 텐데 녀석들은 처음부터 어떻게 사는가를 안다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는 “가르쳐 주지도 않을 텐데”로 손질하고, ‘본능적(本能的)으로’는 ‘본능에 따라’나 ‘몸으로’나 ‘처음부터’로 손질하며, ‘생존(生存)’은 ‘살기’나 ‘살아남기’로 손질합니다. ‘방식(方式)’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길’로 손보아도 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62) 앞의 2


앞의 사례 연구에서 보았듯이, 봉기가 일어나는 동안 스스로 통치하는 보통 사람들의 능력은 계속해서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민주적 형태의 협의를 생산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원영수 옮김-아시아의 민중봉기》(오월의봄,2015) 542쪽


 앞의 사례 연구

→ 앞에서 사례 연구에서

→ 앞에서 다룬 사례 연구에서

→ 앞에 나온 사례 연구에서

→ 앞에서 다룬 연구에서

→ 앞에서 다룬 사례에서

→ 앞에서

 …



  앞에서 말하고, 뒤에서 말합니다. 앞에서 다룬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다시 다루며, 이 자리에서 다시 다룬 이야기를 뒤에 가서 또 다룹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우리는 앞‘에서’ 다루거나 뒤‘에서’ 다룹니다. 4348.6.10.물.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앞에서 보았듯이, 봉기가 일어나는 동안 스스로 다스리는 여느 사람들이 보여주는 힘은 슬기롭고 올바른 결정을 꾸준하게 내리며, 서로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례(事例)’는 ‘보기’로 손볼 만한데, “사례 연구(硏究)에서”는 이 글월에서 덜어내도 되고, “연구에서”만 적어도 됩니다. ‘통치(統治)하는’은 ‘다스리는’으로 손질하고, “보통(普通) 사람들의 능력(能力)은”은 “여느 사람들이 보여주는 힘은”으로 손질하며, ‘계속(繼續)해서’는 ‘꾸준하게’로 손질합니다. “지성적(知性的)이고 합리적(合理的)인 결정(決定)을 내리며”는 “슬기롭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며”나 “슬기롭고 올바른 길로 가며”나 “슬기롭고 올바른 뜻을 모으며”로 다듬고, “민주적(民主的) 형태(形態)의 협의(協議)를 생산(生産)했다”는 “민주 형태로 모임을 이루었다”나 “민주주의다운 모임을 이루었다”나 “민주 형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나 “서로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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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빠진 날에 안 쉬면



  힘이 빠진 날에 안 쉬면 어떻게 될까? 뭔가 일어난다. 엊저녁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녀온 뒤, 조금 쉬었다가 걸어서 면소재지 놀이터까지 다녀왔다. 두 아이가 꽤 힘들었을 텐데 씩씩하게 걸어서 면소재지까지 오갔다. 모두 십 킬로미터를 걸었는데, 놀이터에서는 놀이터대로 뛰놀고, 걷기는 또 걸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이들도 힘들었을 텐데, 어른도 힘이 든다. 그런데 엊저녁에 매실을 손질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리병을 물로 헹구어 물기를 털다가 그만 미끄러졌고, 개수대에 있던 머그컵 하나를 깨뜨렸다. 몸이 좀 힘들면 매실 손질은 살짝 미뤄도 되었으련만, 유리병 헹구기도 나중에 해도 되었으련만, 왜 나는 굳이 몸이 힘든 때에도 이 모두를 다 하려 했을까.


  몸이 어떠한가를 새삼스레 깨닫고는 밤일(밤에 할 일)을 모두 안 하기로 한다. 그러고는 푹 잔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미룬 일을 하나씩 한다. 그래, 하루쯤 미뤄도 된다. 힘이 빠져서 몸을 쓰기 힘들면, 힘이 돌아올 때까지 몸을 쉴 노릇이다. 머그잔 하나를 깨뜨리고 곁님한테 퉁을 한 마디 들으면서 다시 깨우친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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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9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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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22



이제 망설이지 말고 나아가자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9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5.5.25.



  어떤 일이 잘 되거나 안 되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라면을 잘 끓이거나 못 끓이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한집살이를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오늘 안 되면 모레에 다시 하고, 모레에 또 안 되면 글피에 거듭 하면 됩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일어서면 되며, 자꾸자꾸 일을 그르친다면 일을 안 그르칠 때까지 기운차게 새롭게 하면 됩니다. 갓 걸음마를 뗀 아기가 새롭게 한 발 두 발 떼듯이, 어린이도 어른도 저마다 활짝 웃으면서 한 가지씩 즐겁게 하면 됩니다.



“그렇구나, 야생의 후박나무는 크구나. 크고 모양이 좋은걸. 오! 이게 후박나무 향기구나. 어전지 코비 교수님이 후박나무잎을 이야기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38쪽)

“후박나무잎을 접시로 쓰니 굉장히 멋지네요.” “싱싱한 잎사귀의 향이 좋아.” “치라시 초밥을 얹으면 후박나무잎 초밥이 되겠군.” (41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5) 아홉째 권을 읽으면, 망설이는 사람과 더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망설이느라 정작 스스로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더는 망설이지 않으면서 이제부터 스스로 하고픈 일을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망설이는 사람은 언제나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더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이제나 저제나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앞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내 발걸음을 즐겁게 누립니다.



‘말해도 괜찮아. 분명 쿠루리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낼 거야. 나는 거기에 답해 주면 되고.’ (44∼45쪽)

“솔직해지라고. 자신을 볼 수 없는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으니까.” (59쪽)

‘지나간 기억과 지나간 상상밖에 없었던 내가 너와 함께 있기 위해서 움직였어. 그건 자신의 이론을 간접체험하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67쪽)




  어떤 일을 잘 해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못 해내기에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즐겁거나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할 때에 훌륭합니다.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마지못해 일손을 붙잡는다면 바보스럽습니다.


  어떤 일을 즐겁고 기쁘게 해낼 때에 가없이 훌륭합니다. 아무런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이 어떤 일을 해낼 때에는 그저 그렇습니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삶을 가꾸면서 힘썼으나 어떤 일을 끝내 해내지 못하면, 아무래도 살짝 아쉬울 테지만, 즐거움이나 기쁨은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조차 없이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야말로 괴로우면서 쓸쓸합니다.



‘자립이란 금전만이 아니라고 어떻게 전해 줘야 할까. 분명히 이건 보호자로서 내게 남겨진 얼마 안 되는 일 중 하나.’ (79쪽)

“이게 지리일세. 통상의 학문은 먼저 답을 정해 놓지만, 우리는 먼저 뛰어드는 거지. 보고, 가 보고, 해 보고, 테이터를 뽑고, 검증하고, 비교하고, 생각한다.” (88∼89쪽)



  길이 있으니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길이 없으니 새롭게 길을 내면서 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맞으니 이 길대로 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맞아도 저 길로 일부러 에돌아서 새로운 숨결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삶만 있지 않고, 한 가지 사랑만 있지 않으며, 한 가지 길만 있지 않습니다. 열 가지 삶이랑 백 가지 삶이랑 천 가지 삶이 있습니다. 끝없이 너른 삶이 있고, 언제나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가꾸는 삶이 있고, 시나브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씩씩하게 혼자서 일구는 삶이 있습니다.




“내가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래. 언제나 보고만 있고, 귀찮아 하고, 도망치기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움직이지 않고, 나는 얼마나 남에게 용서받아 온 걸까.” (118쪽)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몸 주변에 있는 것 전부 어디에서 와서 왜 여기에 있는가 그들은 알고 있어. 그 지식이 자신감이겠지. 불안정한 자연환경에서 몸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는 건.” (159쪽)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은 열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는다고 합니다. 마지막 열째 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아무래도 ‘두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씩씩하게 서는 이야기를 보여줄 테지요. 스스로 가슴에 품은 꿈대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줄 테고, 스스로 마음을 아끼는 숨결을 보여주겠지요.


  여름에 벚나무에 버찌가 달리니, 나무를 타고 올라서 열매를 따먹습니다. 여름날 후박나무는 잎사귀가 도톰하면서 짙푸르기에 ‘잎접시’로 쓰면 무척 향긋합니다.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버찌를 먹고, 후박잎을 누리면 됩니다. 들딸기를 훑고, 찔레싹을 꺾으면 됩니다. 오디를 줍고, 밤꽃내음을 맡으면 됩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이고, 언제나 기쁜 이야기가 샘솟는 삶입니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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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악수하는 법 삶의 시선 26
고선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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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9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

― 꽃과 악수하는 법

 고선주 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08.1.30.



  흰줄갈풀이 있습니다. 이 들풀이 우리 집 뒤꼍에서 넓게 자랍니다. 이 들풀이 왜 이곳에서 자라는지 잘 모릅니다. 먼 곳에서 씨앗이 날아와서 이곳에 내려앉았을 수 있고, 새가 풀씨를 먹고는 이곳에 똥을 누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은 무척 오래 빈터요 빈집이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 심어서 길렀을 수 있습니다.


  흰줄갈풀은 곧고 길게 뻗는 잎에 흰줄이 생깁니다. 어릴 적부터 흰줄이 생기지는 않고, 차츰 키가 자라면서 흰줄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얼핏 보면 시드는 모습이지만, 가만히 보면 잎에 생기는 하얀 무늬입니다.


  그나저나 흰줄갈풀은 어디에 썼을까요? 댓잎으로 바구니를 짜듯이 흰줄갈풀로도 바구니를 짰을까요? 예부터 갈풀은 논을 갈 적에 뿌려서 땅힘을 북돋우는 거름으로 삼았다고 하니, 흰줄갈풀도 거름으로 삼는 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흰줄갈풀은 잎이 퍽 부드러우니, 집에서 소를 키우면서 소먹이로 쓸 수 있어요.



나무들이 생년월일, 연락처 없이도 / 어찌나 조화롭게 사계를 꾸려가는지, / 까마귀밥여름나무, 당단풍나무, 국수나무, 개암나무, / 굴참나무, 조릿대, 산철쭉, 소나무 / 모두 내게는 지인들이다 (나무들이 웃는다)



  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이 땅에서는 어떤 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잡초’라는 한자말을 한겨레가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김’이나 ‘지심’이라는 낱말만 썼습니다. ‘김’이나 ‘지심’은 어떤 풀을 가리키는가 하면, 사람이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는 풀(남새나 곡식)이 아닌 ‘저절로 싹이 터서 돋은 풀’을 가리킵니다. 김매기(지심매기)를 하는 까닭은 ‘남새나 곡식’을 더 알뜰히 돌보려는 뜻입니다. 뽑거나 베어서 없애려는 뜻으로 김매기를 하지 않습니다. 김매기를 해서 뽑거나 벤 풀은 언제나 짐승먹이로 삼았고, 잘 말려서 다시 흙한테 돌려 주어 땅힘을 북돋우는 데에 썼습니다. 김매기를 한 풀을 잘 말려서 흙바닥에 덮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풀이 다시 돋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김매기를 해서 말린 풀을 고랑마다 깔면, 저절로 ‘풀막이’가 되는 셈입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비닐을 덮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흔히 ‘잡초’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시골에서 소를 기르는 분도 논밭을 갈려고 소를 기르지 않을 뿐더러, 고기소로 길러서 팔더라도 풀이 아닌 사료를 먹입니다. 시골 어디에서나 저절로 돋는 너른 풀은 이제 ‘풀’도 ‘들풀’도 ‘나물’도 ‘약초’도 ‘김’도 ‘지심’도 아닌 ‘잡초’일 뿐입니다.



꽃은 봄에 피지 않는다 / 십구 개월 된 딸아이 입에서 먼저 발화한다 // 한창 말하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 / 꽃, 꽃, 꽃 했더니 껏, 껏, 껏 한다 (꽃)



  고선주 님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삶이보이는창,2008)을 읽습니다. 고선주 님은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시를 쓴다고 합니다. 신문사 기자하고 시인이라는 이름은 얼핏 동떨어진 자리일 수 있지만,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삶과 사람과 사회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면, 이 숨결은 언제나 고운 노래로 흐를 만하리라 봅니다.



라면 한 그릇 먹으러 그곳에 갈 때마다 / 할머니의 위태로운 날들과 대면한다 / 칠순이 되고도 식당일과 손자 육아까지 / 덤으로 얹어진 날들 / 식탁 하나 의제 네 개가 전부인 식당에는 / 할머니의 손때 묻은 것들 / 할머니와 같이 늙어 있다 (할머니 분식집)



  유월을 맞이한 시골은 밤꽃내음이 흐릅니다. 들과 숲을 밝히던 온갖 풀꽃과 나무꽃은 거의 저물면서 풀잎과 나뭇잎은 한껏 짙푸르게 물듭니다. 오월까지만 해도 노란 기운이 감돌던 감잎은 어느새 푸른 빛깔만 가득합니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익고, 벚나무에서 버찌가 익습니다. 유월에 피는 나무꽃은 유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유월에 익는 나무알(나무 열매)은 유월에 싱그러운 숨결을 퍼뜨립니다.


  유월바람을 느끼면서 《꽃과 악수하는 법》을 새롭게 읽어 봅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면 손을 맞잡을 만하겠지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을 살뜰히 아끼고 너그러이 사랑할 줄 알아야겠지요. 꽃을 살뜰히 아끼거나 너그러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다란 꽃송이뿐 아니라 작은 들꽃도 곱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마음이 되어야겠지요.



2년이 흐른 지금, 학교는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학생들 웃음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은 교정에는 염치없는 잡풀들만 높이뛰기 시합을 하고 그간 마을의 오랜 전통처럼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교실바닥을 굴러다녔다 (폐교 가다)



  꽃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무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나무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숲에서 부는 바람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니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나무랑 바람하고 손을 맞잡으면 나무랑 바람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들어요.


  그리고, 꽃하고 손을 맞잡듯이 이웃사람하고 손을 맞잡습니다.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듯이 이웃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이웃사람한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기쁘게 돕고, 이웃사람한테 즐거운 일이 찾아오면 함께 웃습니다.


  꽃을 노래하면서 사람을 노래하고, 사람을 노래하면서 꽃을 노래합니다. 꽃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꽃을 사랑합니다.



나는 집 한 채 없다 / 살기는 살 뿐이지 / 어디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남의 집, 남의 회사, 남의 학교 다니는 / 나는 내 것이라곤 없지 / 딸과 아내와 살 집 한 칸 없다니 / 한참 잘못된 자본주의 아닌가  (두껍아, 새 집 줄게)



  2008년에 《꽃과 악수하는 법》을 선보인 고선주 님은 이무렵 아직 ‘내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내 집’을 장만하셨을까요? 곁님하고 아이랑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이루셨을까요?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시 한 줄을 쓰는 마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곁님하고 아이랑 기쁘게 삶을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는지 까마득하더라도, 들꽃이 들과 숲뿐 아니라 도시 한복판 골목길에서도 곱게 피어나서 맑게 웃듯이 아름다운 하루를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흐르는 마음으로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지구별 어느 곳이나 ‘내 보금자리’요 ‘내 쉼터’이며 ‘내 삶자리’입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마음이 되면 삶을 노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을 거느린다고 하더라도 노래 한 가락조차 못 부르는 가난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를 써서 노래하는 사람은 ‘내 집이라고 하는 재산이 번듯하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별을 온통 내 집으로 삼는 사랑으로 꿈꾸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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