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결혼생활 : 3년째 적나라한 결혼생활 2
케라 에이코 지음, 심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25



한집살이 세 해쯤 되면 두 사람 모습은?

― 적나라한 결혼생활, 3년째

 케라 에이코 글·그림

 심영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5.3.6.



  만화책 《아따맘마》를 그린 케라 에이코 님이 빚은 《적나라한 결혼생활, 3년째》(21세기북스,2015)를 읽습니다. ‘적나라한 결혼생활’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신혼편’하고 ‘결혼편’하고 ‘3년째’하고 ‘7년째’, 이렇게 네 권이 한꺼번에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한집살이를 한 지 세 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맨 먼저 읽어 봅니다. 한집살이 세 해쯤 되면 어떤 이야기가 흐를 만할까 하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집에 혼자 있는 게 좋아! 행복하다!’ 부웅.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방귀 어떻게 뀌려나.’ (9쪽)

“화장실에 책 들고 들어가지 마! 밥 먹으면서 책 읽기도 하잖아!” “봐! 괜찮아. 응가 같은 거 안 묻히니까!” “그래도 냄새가.” (40쪽)



  케라 에이코 님은 집에서 지내며 만화를 그리고, 이녁 곁님은 회사를 다닙니다. 집일은 만화를 그리는 분이 도맡고, 밥도 집에서 지내는 사람이 도맡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집일을 잘 모르고, 밥짓기도 잘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예나 이제나 비슷하구나 싶고, 한국이나 이웃나라도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참말 안 달라지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아무리 성평등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한집살이를 하면서 ‘집 바깥’으로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집일이나 집살림에 눈길을 못 둔다고 할까요.


  그나저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방귀를 어떻게 뀔까요? 어쩌면 소리를 죽이고 뀔는지 모르고, 살짝 뒷간을 다녀오거나 담배를 태우려고 바깥으로 나가서 뀔는지 모릅니다. 방귀가 나오려 하면 끝까지 참을는지 모르고, 회사일이 끝날 때까지 꾹 누르다가 회사를 나서기 무섭게 뀔는지 모릅니다.


  바깥일이 바빠서 방귀를 뀔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회사일을 하지만, 정작 회사에 눌러앉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일을 보느라, 길에서 거리낌없이 뀔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다른 사람이 듣거나 말거나 씩씩하게 뀔 수 있어요.




‘부부도 오래되면 완전히 순수한 상태가 된다. 언제 누가 침실로 들어와도, 천사처럼 잠든 얼굴.’ (69쪽)

“밖에서 아내 험담을 하는 게, 남자의 자존심이야. 시시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부터 먼저 자존심을 버려.” “싫어엉! 아내는 미인이고, 재능 있는 요리 천재란 말이야앙!” “자존심이 너무 없어!” (79쪽)



  한집살이를 오래 했기에 두 사람이 해맑은(순수한) 마음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태어날 적부터 해맑은 마음이라고 느껴요. 해맑은 마음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뛰놀다가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사회에서 온갖 일에 치이면서 차츰차츰 해맑은 마음이 스러지거나 옅어지는데, 한집살이를 하는 두 사람이 서로 아끼고 믿고 사랑하는 동안, 이 해맑은 마음이 새롭게 깨어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해맑은 마음이던 두 사람이 한동안 툭탁거릴 수 있지만,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 한집살이를 하면서, 미움도 시샘도 싫음도 털어내고, 좋음도 반함도 반가움도 가만히 내려놓으면서 고요한 마음으로 거듭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앗! 목욕타월이 뛰어다녀요!” “아니, 그게, 흉측한 꼴로 있어서.”  “남편 분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네에, 뭐어.” ‘하지만 이번 일로 저 녀석도 역시 질렸겠지.’ (108쪽)

“아, 맞다. 다이어리 올해 속지 사는 걸 잊고 있었네.” “엇, 그럼 백화점 가? 백화점 가야겠네! 같이 가 줄게, 응? 응? 다이어리 내가 사도 괜찮아!” “어쩔 수 없군.” … “봤어! 당신! ‘내 쇼핑에 같이 가 준다’는 식으로 말해 놓고. 그 잔뜩 쓰인 메모는 뭐야?” (123∼124쪽)



  집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지냅니다. 뒤꼍이나 마당에서 일할 적에도 가벼운 차림새입니다. 시골에서 흙일을 하는 사람은 멋지거나 예쁜 옷을 차리는 일이 드뭅니다. 수수한 차림이면서 가벼운 옷입니다. 옷으로 뽐내거나 그럴듯하게 보일 까닭이 사라지면서, 한결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고,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으로 삶을 읽고 사랑을 노래하는 사이로 달라지리라 느낍니다.


  한집에서 오래도록 지내는 삶이라면 바로 ‘한마음’ 되기로 나아가는 삶이리라 봅니다. 한집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삶벗이 되면, 두 사람은 ‘한넋’이요 ‘한사랑’이며 ‘한꿈’을 가꾸는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나는 하루이리라 봅니다.


  그러나, 툭탁거림을 그치지 못한 나머지 두집살이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두 마음이 끝내 두 마음으로 갈라지기만 할 뿐, 한마음으로 엮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깃든 고요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넋을 바라보면서 해맑게 어루만질 때에, 두 사람이 이루는 한집살이는 맑은 웃음이랑 밝은 노래로 아침마다 기쁘게 열리리라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혼인을 해서 지내는 삶은 ‘좋음 싫음’이나 ‘좋음 나쁨’으로 가를 수 없습니다. 더 좋아지려고 한집살이를 하지 않고,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두집살이를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고우면서 착하며 참다운 사랑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기 때문에 한집살이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집살이를 아홉 해째 하면서 느낀 생각입니다. 4348.6.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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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님 소설과 미시마 유키오 님



  잡지 《전라도닷컴》에 보낼 글을 쓰다가 실마리가 자꾸 꼬이는구나 싶어서 숨을 돌리는데, 문득 ‘신경숙 표절 논란’이라는 글월이 눈에 뜨인다. 집에서도 모시잎을 가루로 내어 쓸 수 있는 길을 살펴보며, 이 이야기를 글로 쓰려다가, 누리그물(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로 갑자기 소설꾼 신경숙 님 이름이 뜨기에, 뭔 일이 있나 싶어서 한 번 들여다본다. 그러고 나서, 이응준 님이 쓴 글을 찬찬히 읽어 본다. 어쩐지 숨이 막힌다. 표절 시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을 보니 숨이 막히고, 표절을 밝히는 글을 쓰려고 한국문단에 여덟 해나 발을 끊고서 변호사까지 미리 알아본 뒤에 글을 썼다고 하는 대목에서도 숨이 막힌다. 표절을 밝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왜 변호사까지 알아보아야 하고, 왜 한국문단에 발까지 끊어야 할까? 한국 사회는 이렇게 꽉 막힌 곳일까?


  신경숙 님이 표절을 했다는 글은 미시마 유키오라는 일본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미시마 유키오 님은 제국주의를 높이 떠받든 사람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전쟁 미치광이라고 할 미시마 유키오 님이다. 전쟁 미치광이라고 해서 나쁜 놈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전쟁놀이에 사로잡힌 나머지 삶도 사랑도 꿈도 못 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표절이 참이든 거짓이든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왜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보느냐 하면, 표절이 참이라면 고개 숙여 잘못을 빌고, 모든 이름값이랑 상패와 훈장을 내려놓고,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 표절이 참이 아니라면 씩씩하게 고개를 들고 한결 아름답고 멋스러운 글을 쓰면 된다. 소설꾼 신경숙 님은 어떤 길을 걸어가려나? 4348.6.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람과 책읽기)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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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잎 밥(모시밥)’을 지은 하루



  모시잎을 밥에 얹어서 함께 지어서 먹는다는 얘기를 문득 듣는다. 밥을 지을 적에 모시잎은 언제 얹어야 할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넣지는 않으리라. 밥물이 제법 보글보글 끓고 밥알이 웬만큼 부풀 즈음에 밥솥뚜껑을 열고 한 잎씩 얹으면 되겠지. 마당에서 모시잎을 한 줌 뜯어서 물에 헹군 뒤 얹어 본다. 어떤 맛이 될까. 어떤 밥이 될까.


  밥하고 함께 익은 모시잎은 그저 모시잎 맛이 난다. 그런데 밥알은 맛이 좀 남다르다. 늘 짓듯이 밥을 지었는데 밥알이 여느 때보다 반지르르하지 싶고, 꽤 보드랍다. 모시잎을 얹어서 지은 밥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모시잎이 밥맛을 새롭게 해 주었지 싶다.


  모시풀은 시골집에서 흔히 돋는다. 모시풀 줄기에서 실을 얻고, 모시잎으로 떡을 찐다. 그리고, 이렇게 모시잎을 밥에도 얹어서 더욱 맛나게 누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요즈음은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짓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이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대단히 적다. 우리 집에서 신나게 돋는 모시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모시잎 밥(모시밥)’을 지었더니 재미있다. 모시풀이 한창 돋는 철에는 날마다 모시밥을 지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4348.6.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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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생각 9. 빨리 달리기



  자전거를 빨리 달리고 싶다면 다리힘을 길러야 합니다. 발판을 빠르게 밟아서 자전거가 바람처럼 나아가도록 하면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빨리 달릴 적에는 둘레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잡는 손잡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빨리 달릴 적에 손잡이가 흔들리면 그만 자빠지거나 뒹굴 수 있어요.


  자동차를 달릴 적에도 빨리 달린다면 옆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자동차를 빨리 달리는 사람은 손잡이에서 손을 뗄 수 없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앞만, 아주 좁은 앞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빨리 가야 한다면 아주 좁은 앞만 보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애써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가르고 하늘숨을 마시는데, 아주 좁은 앞만 본다면 어떤 재미나 즐거움을 누릴 만할까 궁금해요. 빨리 가고 싶다면 오토바이를 몰거나 자동차를 몰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전거로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빨리 달릴 만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로 빨리 달릴 만한 길이 드뭅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자동차가 대단히 많고 신호등이나 건널목도 많습니다. 게다가 골목에서는 자동차나 사람이 언제 앞으로 나올는지 모르니, 섣불리 빨리 달려서는 안 됩니다. 국도에서도 자전거를 빨리 달리다가 길섶에 있는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밟으면 아슬아슬하기 때문에 함부로 빨리 달리지 말 노릇입니다.


  자전거길에서도 빨리 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다른 이웃이 아슬아슬하거든요. 아무도 없는 호젓한 시골길이라면 혼자서 빨리 달릴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호젓한 시골길에서 빨리 달리기만 한다면, 아름다운 숲을 느긋하게 못 누립니다. 짙푸른 숲바람이 부는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빨리 달리려고만 한다면, 싱그러운 바람도 상큼한 바람노래도 시원한 바람결도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빠르기를 붙잡으려고 하면 삶을 놓칩니다. 빠르게만 가려고 하면 사랑을 못 봅니다. 빠르게 달리고 싶다면 달릴 노릇이기에,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빨리 달릴 적에는 아이들하고 아무런 얘기를 못 나눕니다.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이 그저 빨리 달리려고만 하면 헉헉거리면서 숨이 가쁘니,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저 즐겁고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적에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쐬면서 이야기꽃도 피우고, 둘레 모습을 넉넉히 품을 수 있습니다. 4348.6.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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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69. 숲바람 자전거돌이 (2015.6.15.)



  자전거를 달려 숲길에 깃들면, 우리 자전거는 숲자전거가 되지. 숲자전거를 타는 너는 숲자전거돌이가 되고. 숲바람은 어떠하니? 상큼하니? 시원하니? 즐겁니?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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