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에서 제공하는 연간통계를 보면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을 바탕으로

알라딘서재에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어느 만큼 썼는가를 따진다.


이번에 '신경숙 표절' 이야기를 헤아린다면

연간통계에서 잣대로 삼는 책을 바꿔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부디 다른 작가 책으로 바꾸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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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문학동네 동시집 33
김은영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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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1



오늘날 학교는 ‘배움집’ 구실을 하는가?

―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김은영 글

 강전희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12.22.



  아침이 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갑니다.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며, 고등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까닭은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새롭게 배울 뿐 아니라, 또래동무를 널리 사귀면서 둘레를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는 뜻은 졸업장이나 자격증 때문이 아닙니다.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하느라 바빠서 아이들을 집에서 내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배워야 한다고 여겨서 학교라고 하는 ‘배움집’을 마련합니다.



선생님이 / 내 알림장에 / 입 모양 하나 그려 주셨다. // 내가 입이 두 개인 듯 / 수업 시간마다 떠들어서 / 입 하나를 그려 준 거랬다. (입 두 개)



  학교는 ‘배움집’입니다. 배우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늘 지내는 집은 어떤 곳일까요? ‘살림집’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집은 ‘살림집’입니다. 아이들은 살림집에서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어버이한테서 배웁니다. 그리고, 저마다 배움집을 드나들면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배웁니다.


  학교가 맡은 몫은 배움집인 만큼, 학교는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면서 아름답게 북돋우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기쁨을 저마다 새롭게 누리거나 맞아들일 수 있도록 가꾸는 곳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꽃은 벌들이 다니는 학교야. / 꿀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 우리들은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 꽃은 벌들이 노는 놀이터예요. / 꿀벌들이 신나게 놀고 있잖아요. (꽃과 꿀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동시를 쓰는 김은영 님이 선보이는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문학동네,2014)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딪히거나 겪거나 마주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교사 눈높이로 아이들을 보기 때문일 테고,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일 테지요. 동시를 읽을 아이들도 거의 다 학교를 다닐 테니까, 동시집에서도 학교 이야기를 크게 다룰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내가 복도에서 뛰는 건 / 발뒤꿈치를 들고 / 사뿐사뿐 걷다 보면 / 나도 모르게 /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뛰는 까닭)



  교사인 글쓴이는 “꽃은 벌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말합니다. 교사인 글쓴이를 마주하는 아이들은 “꽃은 벌들이 노는 놀이터”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는 까닭을 노래한 동시는 교사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아이들 목소리일까요? 아무래도 아이들 목소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은 참말 그렇거든요. 아이들은 참말 가볍게 뛰거나 달려요. 아이들은 무겁게 뛰거나 달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심었어요. / 씨앗이 바람 타고 날아왔으니까. / 하늘이 심은 거야. / 바람은 하늘에서 부니까. / 땅이 심은 거야. / 씨앗이 땅에서 났으니까. (하늘 농사 땅 농사)



  아이들은 마음껏 놀면서 배웁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는 배우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면서 배우기만 해야 한다면, 아이들로서는 이보다 크고 끔찍한 불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문제집이랑 참고서만 손에 쥐고서, 학습도서나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를 줄줄이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면, 아이들로는 이보다 싫고 미운 불벼락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나마 초등학교에서라면 조금 쉬거나 뛰논다고 하지만, 중학교 문턱을 넘어서면 그예 죽어납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이 헤어날 길이 없으니, 아이들은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채, 이성친구 사귀는 데에 눈길이 뻗습니다. 삶도 사랑도 아닌 그저 이성친구일 뿐입니다. 또는 여린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바보짓으로 휘둘립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하고는 바람이 심고 하늘이 심으며 땅이 심는 씨앗 이야기를 동시로도 나누고 그림책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푸름이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는지요? 중·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학교 텃밭’을 두는 데가 몇 군데가 될는지요?



외할머니 옆에 엄마가 누웠다. / 엄마 옆에 나도 나란히 누웠다. // 외할머니는 / 엄마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고 / 엄마는 / 외할머니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한다. (외할머니 생신날)



  어린이 나이를 지나서 푸름이 나이를 보낼 적에 입시공부만 해야 한다면, 이 어리고 푸른 넋은 삶이나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어버이 살내음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살결을 느끼지 못한 채 학교에만 갇혀야 하는 아이들이라면, 아이들 앞날에 기쁜 삶이나 즐거운 사랑이 피어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학교는 배움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학교는 배움집으로 바로서야 합니다. 학교는 배움집답게 거듭나야 합니다.


  대학교라는 데에 가면 어떻고, 안 가면 어떠할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격증이나 저런 증명서가 없더라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배워서 삶을 가꾸고 삶을 노래하는 아이들로 자랄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배워서 사랑을 가꾸고 사랑을 노래하는 어른으로 거듭날 때에 아름답지요.



앵두 한 움큼 / 한입에 먹으면 / 입 속에서 다디단 풍선이 / 퐁! 퐁! 퐁! / 터진다. (앵두 먹기)



  앵두알은 아이한테도 맛나고 어른한테도 맛납니다. 수박이나 참외는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맛납니다. 아이들이 가야 하는 학교 이야기를 동시로 다룬다면, 학교에서 겪거나 부딪히거나 마주하는 일뿐 아니라, 학교가 배움집다운 몫을 톡톡히 하도록 이끄는 이야기도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교사 눈높이나 학생 눈썰미가 아닌, 삶을 사랑하는 숨결로 꿈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동시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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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글쓰기, 훔치는 글쓰기 (표절문학)



  ‘배우기’와 ‘훔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둘은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배우기’하고 ‘흉내내기’나 ‘시늉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이 둘도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배우기’랑 ‘따라하기’는 얼마나 다를까? 아마 이 또한 종이 앞뒤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표절(剽竊)’이라는 한자말이 있다. 한국말사전에서 말뜻을 살피니,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지은 글이나 노래를 다른 사람한테 알리거나 말하거나 밝히지 않고 몰래 따서 쓰는 일이 ‘표절’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일은 ‘훔치기’라고 할 만하다. “훔친 글”이나 “훔친 노래”나 “훔친 사진”이나 “훔친 그림”이라고 할 테지.


  배우는 사람은 훔칠 수 없다. 배우는 사람은 기쁘게 배우고, 고맙게 배우며, 아름답게 배운다. 배우는 사람은 흉내를 내거나 시늉을 하지 못한다.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롭게 짓고, 새롭게 나아가며, 새롭게 꿈꾼다. 배우는 사람은 따라할 까닭이 없다. 배우는 사람은 제 가락을 찾고, 제 결을 생각하며, 제 무늬를 사랑한다.


  그런데, ‘배움’이랑 ‘훔침’이랑 ‘흉내’랑 ‘시늉’이랑 ‘따름(따라하기)’을 똑똑히 가리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꿈속에서 하늘나라 소리를 듣고 노래를 지을 수 있다. 꿈나라를 누비다가 오백 해나 천 해쯤 지나서야 태어날 것을 미리 보고 오늘 이곳에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어쩌면 도라에몽한테서 책상서랍 타임머신을 빌려 타고 옛날과 앞날을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따올 수 있겠지.


  아이들이 어버이 말이나 몸짓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기쁘게 배우면서 재미있게 새 말이나 몸짓으로 피워낸다. 어른이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즐겁게 배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말과 삶을 배운다. 어른은 아이들한테서 사랑과 꿈을 배워서 동시나 동화나 동요를 쓰고 그림책을 그린다. 배우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아름다우면서 기쁜 삶이 된다. 배우지 않고 훔치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벼랑이나 낭떠러지에 부딪히는 삶이 된다.


  어른이 아이한테서 배운다고 부끄러울 일이 없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배울 적에 부끄러울 까닭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직 글이 어수룩하거나 어설프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다른 사람’한테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웠으면 즐겁게 ‘배웠다’고 말하면 된다.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대단하거나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 글’을 읽은 기쁨으로 ‘나도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씩씩하게 말하면 된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늘 새롭게 배운다.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말조차 하지 않는다면, 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친다.


  사람은 모름지기 서로 어울리면서 가르치고 배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지 않고, 더 못난 사람이 따로 없다. 웃으면서 배우고, 노래하면서 가르치면 즐겁다. 이 얼거리를 잊으면, 마냥 훔치기만 하면서 웃음도 노래도 모두 잊고 말리라. 4348.6.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밥 한 그릇 함께 맛나게 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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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87. 2015.6.16. 빈 그릇



  노는 데에 마음이 팔려서 허둥지둥 밥그릇을 비운 작은아이. 밥상을 치우려다가 작은아이를 부른다. 얘야, 밥을 다 안 먹었구나. 밥알 하나하나 다 긁어서 먹어야지. 이리 와서 앉아 봐. 숟가락 들고 다 훑어서 먹어. 깔끔하게 다 먹자. 그러고 나서 개수대에 갖다 놓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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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6-18 09:25   좋아요 0 | URL
아. 부러워요. 요즘 둘째가 밥을 영 안 먹네요.

파란놀 2015-06-18 10:51   좋아요 0 | URL
날이 더워서 그러할 수 있을까 하고도 느껴요.
저만큼 먹기까지... 한 시간은 넉넉히 걸립니다 @.@
 

한글노래 84. 창문을 열면



버스를 타고 창문을 열면

바람이 확 끼치면서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나풀나풀

목덜미랑 목을 간질이며

춤을 추네.

하하하

동생하고 고샅이랑 마당이랑

달릴 적에도

꽃바람이 확확 불면서

눈이랑 귀를 간질이며

춤을 추던데.



2015.5.22.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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