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노래 삶노래 88. 매화알


매화알 따려고
매화나무 밑에 선다

아버지는 척척 따고
나는 까치발로 가까스로
닿을 동 말 동

걸상을 가지고 온다
이제 좀 딸 만하네
이러다 문득
아버지 목에 타면
아주 높은 곳도 따겠네 싶어어
“아버지 아버지 목말!”

그런데
목말 타니까 아하하 간지러워
한참 웃다가 내려온다.


2015.6.10.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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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 씻기고 밥 끓이고 빨래를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 마실을 다녀온다. 두 아이는 놀이터에서 온몸이 흙땀투성이가 되었다. 하하하. 너희들 참 재미나고 개구지게 놀 줄 아는구나? 너희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궁금하네. 너희 어머니하고 아버지도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을 테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잠든다. 집에 닿자마자 보일러를 돌린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을 챙기도록 하고, 작은아이는 안고서 갈아입힐 옷을 들고 씻는방으로 간다. 잠든 아이를 살살 안고 물이 따뜻해진 뒤 옷을 벗기고 씻긴다. 따스한 물을 받은 작은아이는 보드랍게 잠에서 깬다. 땀이랑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인 줄 스스로 잘 알고서 ‘잠보다 씻기’로 마음을 돌린 듯하다.


  작은아이를 씻기니 큰아이가 옷을 벗고 들어온다. 작은아이는 큰 대야에 앉으면서 물놀이를 하겠단다. 작은아이는 머리를 감기고 몸을 박박 문질러서 때를 벗긴 뒤 대야에 앉아서 놀도록 한다. 큰아이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긴다. 히유.


  물기를 훔치고 옷을 갈아입도록 한다. 이러면서 저녁밥을 끓인다. 후다닥 몸을 빠르게 놀린다. 냄비가 끓을 때까지 빨래를 한다. 두 아이가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래, 배고픈 줄 잘 알아. 그렇게 뛰놀았으니 배가 고플밖에 없지. 저녁을 다 지어서 밥상을 차린다. 이러고 나서 빨래를 마저 해서 마당에 넌다.


  자전거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 큰아이 오줌그릇을 비운다. 이럭저럭 다 되었나? 히유 하고 다시 숨을 돌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상맡에 앉는다. 아아, 고맙게 잘 먹겠습니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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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슬란 전기 2 - 만화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다나카 요시키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31



전쟁이 남기는 이야기

― 아르슬란 전기 2

 다나카 요시키 글

 아라카와 히로무 그림

 김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2.25.



  전쟁이 남기는 이야기는 ‘전쟁영웅’ 이야기이거나 ‘전쟁피해’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전쟁에서 지거나 이긴 이야기가 있고, 전쟁으로 땅을 잃거나 빼앗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전쟁 이야기가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전쟁터에서 훈장을 가슴에 단 몇몇 이름난 장수 이름이 역사책에 나오고, 이름난 몇몇 장수를 거느린 임금 이름도 역사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여느 병사는 그저 목숨을 맡겨야 할 뿐,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르슬란 전하. 저는 전하의 부군께 1만 닢이나 되는 금화를 받은 적이 있지요. 오늘 식사는 은화 한 닢도 못 되는 것이었습니다.” (11쪽)

“전하, 새삼스레 아뢰기도 부질없사오니, 부왕 폐하께서는 노예제도를 폐지하셔야 했습니다. 국가에게 학대를 받았던 자가 어떻게 국가를 위해 싸울까요?” (14쪽)



  《아르슬란 전기》(학산문화사,2014) 둘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갑자기 등돌린 장수가 있어서 나라를 빼앗긴 이들이 있고, 이들은 힘과 슬기를 모아서 나라를 되찾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임금 자리에 앉아서 정치를 꾀한다는 사람만 바뀔 뿐, ‘나라를 버티는 바탕이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흙을 부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궁궐에서 밥을 짓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심부름꾼이 되거나 짐꾼이 되는 사람도 늘 그대로입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으레 명예나 종교를 내세웁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지구별이 오직 한 사람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듯이 여깁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헤아리는 권력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쟁무기를 안 만들면서 다 함께 손을 맞잡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권력자는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도 정치도 어차피 재가 되어 사라질 뿐. 후세에는 오로지 위대한 예술만이 남는 법입니다.” (17쪽)

“나는 루시타이아의 고명한 화가에게 죽은 모습을 그리게 하느니, 나르사스에게 살아 있는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고 싶다.” (40쪽)



  어느 모로 보아도 전쟁은 그저 전쟁입니다. 너를 죽이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는 전쟁입니다. 네 것을 내가 빼앗느냐, 아니면 내 것을 네가 빼앗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다투는 전쟁입니다.


  너랑 내가 이웃이라면 우리 둘 사이에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랑 네가 이웃이라면 우리 둘 사이에 가시울타리를 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이웃이라면 서로 윽박지르거나 깎아내리는 짓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냉큼 죽여라. 네놈들의 신 따위에게 구원을 받느니 나는 지옥이든 어디든 가 주마. 그리고 그곳에서 네놈들의 신과 국가가 네놈들 자신의 잔인함에 잡아먹히는 모습을 지켜봐 주지!” (68쪽)

“절세까진 아니지만 미인을 죽이다니 무슨 짓이냐! 살아 있었으면 뉘우치고 나를 벌어먹여 줬을지도 모르는데. 나 원, 연약한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심지어 타고 넘기까지 하다니, 네가 말하는 ‘참된 정의’가 인간의 존엄을 타고 넘어가는 거냐?” (114쪽)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이교도’라는 말을 합니다. 둘이 서로 아끼지 않으니 한쪽은 ‘노예’가 됩니다. 둘이 서로 보살피지 못하니 권력이 서고 계급에 따라 사람이 갈립니다.


  우리가 손에 칼을 쥐어야 한다면, 밥을 맛나게 짓도록 도마질을 하는 칼을 쥘 노릇입니다. 내가 너를 찌르거나 네가 나를 찌르는 칼놀림 때문에 칼을 쥐어야 하지 않습니다.기쁘게 웃으면서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총도 칼도 내려놓은 뒤, 호미와 쟁기를 씩씩하게 쥘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지을 때에 사랑이 흐로고, 삶을 짓지 않을 때에 자꾸자꾸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투항하게, 삼. 이알다바오트교로 개종하면 자네의 목숨도 지위도 보장해 주지.” “개가 인간의 지위를 운운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130쪽)

“보댕 놈, 저항도 못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기만 할 뿐, 전장에 나가 싸운 적도 없는 주제에, 왜 저런 놈이 목숨 걸고 싸운 우리보다 부와 권력을 더 마음껏 누리는지.” (183쪽)



  만화책으로 새롭게 태어난 《아르슬란 전기》는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참으로 낱낱이 보여줍니다. 전쟁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하나하나 드러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으레 바보입니다. 전쟁을 내세워서 사람들을 홀리거나 들볶는 이들도 으레 바보입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많이 죽여서 ‘영웅’이 되거나 ‘훈장’을 받는다면, 이러한 영웅이나 훈장은 우리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가꿀 만한 바탕이 될까요.


  젊은 사내가 총이나 칼을 손에 쥐고 군사훈련을 받으니, 몸과 마음에 ‘폭력’이 자랍니다. 젊은 사내가 총이나 칼을 손에 쥐고는 이웃을 죽이고 또 죽이면서 제 목숨을 건사하다 보니, 자꾸자꾸 ‘폭력’에 무딘 바보로 나뒹굽니다.


  군대가 있기에 폭력이 있습니다. 전쟁이 도사리니 폭력이 안 멈춥니다. 전쟁무기가 득실거리니 폭력이 넘칩니다. 온누리에 군인이 바글거리니 폭력이 안 끊어집니다.


  젊은 사내는 총이나 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손에는 호미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연필을 쥘 노릇입니다. 한손으로는 사랑을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꿈을 지을 노릇입니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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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라는 곳



  놀이터가 있기에 놀 수 있지 않다. 어디에서든 놀면서 놀이터에서도 논다. 놀이터에서는 어떤 놀이를 해도 다 재미있다. 꼭 이런 놀이만 해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이터에서는 옷을 얼마나 더럽히든 대수롭지 않다. 마음껏 뛰놀면서 땀투성이랑 흙투성이가 되어도 즐거우니까 놀이터에서 뒹군다. 놀고 놀고 자꾸 논다. 놀고 놀며 신나게 논다.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에 와서, 참말 두 아이가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논다. 저녁햇살이 새삼스레 눈부시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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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객 한윤형



  나는 한윤형 님 글을 읽은 일이 없다. 내가 ‘진보가 아니’기 때문도 아니고, ‘ㅈㅈㄷ을 좋아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 눈길이 한윤형 님 글에 가지 않았고,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즐거움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한윤형 데이트 폭력’이나 ‘한윤형 사과글’도 따로 읽지 않는다.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고, 이런 일이 왜 생기는가 하고 알쏭달쏭했다.


  낮에 손빨래를 하며 문득 생각에 잠긴다. 폭력이란 무엇일까? 폭력을 일으키는 쪽은 거의 다 ‘사내(남자)’이고, ‘폭력을 일으키는 사내(남자)’는 거의 다 힘(권력)이 있다. 사내가 거머쥔 힘은 ‘주먹힘’이랑 ‘발힘(발길질을 하는 힘)’을 비롯해서 ‘이름값 힘’에다가 ‘돈힘’이 있다. 요즈음은 여기에다가 ‘사회권력’이나 ‘정치권력’이나 ‘교회권력’이라는 힘이 있다.


  아무튼, 한윤형 님이 ‘글을 안 쓰겠다(절필)’고 밝힌 듯하다. 낯부끄러워서라도 글을 쓸 수 없을 테며, 낯부끄러운 짓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런 사람 글을 실어 줄 만한 매체가 선뜻 나오기도 어려울 노릇이리라 본다. 그러면, 한윤형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자리에서 가만히 돌아본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다가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아이들한테 빽 소리를 지르고는 스스로 내가 몹시 밉거나 싫어서 아플 때가 있다. 여린 아이들을 나무란들, 또 빽 소리를 지른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해’서 도무지 나한테 뭐가 좋을는지 알 수 없으나, 아이와 지내면서 곧잘 이런 바보짓을 하면서 참말 스스로 바보가 된다.


  바보짓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 바보짓을 삭이면서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다. 바보짓을 낱낱이 돌아보면서 나무를 쓰다듬고 풀을 뜯는다.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되찾아서 자장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재운다. 아이들을 다그친 날은 어김없이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눈물이 뚝뚝 듣는다.


  한윤형 님 같은 이들이 ‘진보논객’ 같은 허울좋은 이름은 모두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빈다. 신경숙 님 같은 이들도 ‘작가’ 같은 허울좋은 이름은 모조리 내다버릴 수 있기를 빈다. 도시를 떠나서 시골로 가고,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으면서 적어도 몇 해쯤 ‘참말 글 한 줄 안 쓰고 책 한 줄 안 읽는’ 삶을 보내 보기를 바란다. 나중에 ‘참으로 글을 안 쓰고 못 배기겠다’ 싶다면, 다른 글은 쓰지 말고 ‘시골에서 손수 씨앗을 심고 돌보면서 곡식이랑 열매를 거두는 이야기’하고 ‘숲에서 바람이 구름을 날리면서 들려주는 노랫소리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마음이 온몸에 깃들지 못하기에 폭력을 저지른다. 아름다운 마음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만 폭력을 일삼는다. 사과글로는 폭력을 씻지 못한다. 삶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비로소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사랑을 가슴에 담으려면 ‘참회록 쓰기’ 같은 일보다는 ‘씨앗 심기’와 ‘나무 어루만지기’와 ‘숲바람 쐬기’가 가장 걸맞고 알맞으리라 본다. 이제 나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4348.6.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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