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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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6



말맛, 삶맛, 사랑맛, 이야기맛

― 동사의 맛

 김정선 글

 유유 펴냄, 2015.4.4.



  지구별에 있는 모든 다른 나라와 겨레는 다른 말맛을 누립니다. 한국말에는 한국말다운 맛이 있고, 영어에는 영어다운 맛이 있으며, 중국말에는 중국말다운 맛이 있습니다. 더 나은 말맛이 없고, 덜떨어지는 말맛이 없습니다. 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로운 말맛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을 놓고 볼 적에도, 전라말이 경상말보다 낫지 않고, 강원말이 평안말보다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서울말이든 경기말이든 저마다 다르면서 사랑스러운 말맛을 풍깁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1900년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말맛이 크게 뒤흔들렸습니다. 아스라한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스스로 숲에서 길어올린 말이 잊혀지면서, 이웃 여러 나라에서 총칼을 거머쥐고 밀려드는 말에 짓눌리거나 짓밟혔어요. 다른 문명하고 문화를 만난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말은 쉴새없이 흔들리고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달라집니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감치다/깁다, 36쪽)


남자는 거미줄을 걷고 여자는 치마를 걷어지른 채 낡고 삭은 발을 걷어들겠지. (거두다/걷다, 42쪽)



  김정선 님이 쓴 《동사의 맛》(유유,2015)을 읽습니다.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자면 ‘동사 맛’일 텐데, 이 책을 쓴 분은 ‘-의’를 사이에 넣습니다. 일본 영화를 ‘녹차의 맛’으로 옮기듯, ‘-의’를 넣어야 말맛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로구나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바나나 맛 우유’나 ‘딸기 맛 우유’처럼, 한국사람은 어떤 맛을 가리킬 적에 ‘-의’ 없이 말합니다. ‘말맛’도 그냥 말맛입니다. ‘밥맛’도 그저 밥맛입니다. 술맛은 술맛이요 차맛은 차맛입니다. 바람맛은 바람맛이며 물맛은 물맛입니다.


  다만, “동사 맛”으로만 적어야 한국말 맛을 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영어를 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중국 한자말을 섞고, 어떤 사람은 한국말에 일본 한자말을 섞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자를 드러내어 글을 쓰고 싶고, 어떤 사람은 알파벳을 훤히 드러내며 글을 쓰려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내 말맛”을 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 종일 사전을 뒤적이다 집에 돌아오면 머릿속에 이런저런 낱말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지기 일쑤다. 눈도 아프고 몸도 무거울 때면 정말이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다. 잠을 청하기 위해 소주를 홀짝이다가 소주병이며 안주 나부랭이가 널브러진 방 안에 너부러진 채로 잠이 들 때도 있으니까. (너부러지다/널브러지다, 85쪽)


사전을 보면 모든 낱말이 분명한 제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낱말에 기대고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낱말들이 서로를 눌러보고 눌러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떤 낱말도 제 뜻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눌러듣다/눌러보다, 97쪽)



  옛날 사람이라면 “과학을 가리키다”처럼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오늘날 사람이라면 “과학을 가리키다”처럼 말해도 “과학을 ‘가르치다’”인 줄 압니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가운데 ‘가르치다’하고 ‘가리키다’를 옳게 가누지 못하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아이들은 ‘잘 배웁’니다.


  어느 모로 보면 ‘틀린’ 말이라 할 테지만,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다면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할 만합니다. 나이 먹은 어른이 이녁 어머니를 ‘엄마’라 하든, 어른들이 서로 “‘까까’ 먹자.”라 말하든, 저마다 제 삶에 걸맞게 제 말맛을 찾으려고 낱말을 고른다고 할 만합니다. “‘너무’ 예뻐”가 말이 안 된다는 얘기는 말법으로만 하는 얘기가 되는 오늘날입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까지 “너무 예뻐” 같은 말을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썼다고 하더라도, 2010년대인 오늘날 “너무 예뻐”라는 말이 두루 퍼졌으면, 이러한 말투가 오늘날 말투가 되면서, 새로운 말맛이 될 만합니다.


  달라지는 사회에서는 달라지는 말이고, 흐르는 사회에서는 흐르는 말입니다. 옳거나 그른 얘기가 아니고, 맞거나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달라지는 말맛이요, 흐르는 말맛입니다.



낱말의 뜻을 살피면 그다지 헷갈릴 일도 없다. ‘뒤쳐지다’는 ‘뒤치다’에서 왔고, ‘뒤처지다’는 ‘처지다’에서 왔다. 그러니 물건이 뒤집혀서 젖혀질 때는 ‘뒤쳐지다’라고 쓰고, 자꾸 뒤로 처질 때는 ‘뒤처지다’라고 써야 한다. (107쪽)


‘불리다’가 당하는 말이니 ‘불려지다’라거나 ‘불리우다’라고 쓰는 건 어법에 맞지 않다. 심지어 ‘불리워지다’라고 쓰기도 하는데, 기본형인 ‘부르다’ 어디에도 ㅂ받침이나 ‘ㅜ’가 없으니 ‘워’를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 (131쪽)



  《동사의 맛》이라는 책은 한국말에서 ‘동사’ 한 가지를 놓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동사 이야기는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모두 스스로 깨달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동사 이야기를 스스로 한국말사전을 뒤지면서 스스로 배우려고 하는 한국사람이 몹시 적어요. 수많은 책을 읽고, 날마다 신문을 읽으며, 온갖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살피더라도, 막상 ‘내가 여느 자리에서 흔히 쓰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낱낱이 살피거나 가리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이를테면 ‘먹다·하다·있다·쓰다·보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즐겁다·기쁘다·흐뭇하다·좋다·넉넉하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달리다·뛰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쁘다·곱다·아름답다·아리땁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서, 저마다 어떻게 달리 쓰는 낱말인가를 스스로 배우려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한국말사전을 뒤적인다고 해서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는지는 좀 아리송합니다. ‘불쌍하다·가엾다·애처롭다’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살피면, 돌림풀이로 오락가락할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한국말사전은 거의 ‘한자말 풀이 사전’ 구실을 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말을 한국사람이 즐겁고 아름답게 잘 살려서 쓰도록 북돋우는 구실보다는, 한국사람이 안 쓰는 낯선 온갖 한자말을 집어넣어서 한자백과사전처럼 보이는 구실을 한달 수 있습니다.



새벽녘에 혼자 깨 보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란다. 친구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가 보니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고. 도시에서 비를 만날 때하고는 달라 여자는 잠깐 멍했단다. 뭐랄까, 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안하기도 했달까. (166∼167쪽)


이런 예는 ‘깨치다’와 ‘깨우치다’에서도 볼 수 있다. ‘깨치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고, ‘깨우치다’는 누군가를 깨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223쪽)



  《동사의 맛》은 이야기책입니다. 한국말 몇 가지를 바탕으로 삼아서 아기자기하게 지은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한국말 가운데 동사 몇 가지를 알맞게 엮어서, 이 낱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책입니다.


  ‘동사’는 ‘움직씨’입니다. 움직씨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움직임이란 흐름이요 몸짓입니다. 몸으로 짓는 삶을 움직씨라는 낱말을 빌어서 나타냅니다. 사람이 스스로 몸으로 짓는 삶이 움직씨에 담기고, 사람을 둘러싼 숲에서 흐르는 온갖 움직임과 흐름이 움직씨에 깃듭니다.


  바람이 붑니다. 햇볕이 내리쪼입니다. 물이 흐릅니다. 아이가 웃습니다. 어버이가 노래합니다. 네가 찾아옵니다. 내가 찾아갑니다. 서로 만납니다. 기쁘게 어깨를 겯습니다. 팔짱을 끼고 걷다가, 땀이 나도록 달립니다. 고갯마루에 오르면서 땀을 훔칩니다. 느긋하게 쉬면서 구름을 바라봅니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면 숲에서 별빛을 헤아리며 고요히 잠듭니다.


  움직임하고 흐름을 담는 ‘움직씨(동사)’라고 하는 말마디는, 우리가 몸을 써서 짓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꽃이랑 풀이랑 나무랑 벌레랑 새랑 물고기랑 다 같이 어우러지는 숲에서, 이 지구별에서, 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어떤 사랑을 빚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말맛을 알기에 삶맛을 느끼고, 삶맛을 느끼면서 사랑맛을 깨달으며, 사랑맛을 깨닫는 사이 시나브로 이야기맛을 누리는 어여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4348.7.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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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쓰는 글쓰기



  문학이란 무엇일까? 글이란 무엇일까? 새벽에 새소리를 듣고 일어나면서 생각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멧새가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들’어서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다가 피식 하고 웃음이 나던데, 어느 모로 보면 멧새가 우리 집 마당에서 되게 시끄럽다. 만화책 《토리빵》을 보면,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려고 해도 수많은 새가 창밖에서 먹이를 쪼며 왁자지껄하니까, 밤새우며 만화를 그렸어도 늦잠을 못 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시골이 우리 집 같지는 않을 테지만, 동이 트는 때를 멧새가 우리 집 마당에서 날마다 알려준다.


  새소리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모든 문학은 바로 새소리, 그러니까 새노래와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시와 그림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리라 본다. 그저 쓰는 글이 아니라, 노래가 되는 글이다. 작품이 되려는 글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는 글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라 노래이다. 새 스스로 아침을 밝히고 낮을 누리며 저녁을 고요히 다스리는 삶노래이다.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기에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문학’이라고 하는 글에 ‘삶글’이라는 이름이나 ‘삶노래’라는 이름을 가만히 붙인다. 4348.7.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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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일 아침에,

내 알라딘서재에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본다.






어제 아침, 그러니까 아홉 시 반 무렵,

방문자가 6538명이었는데...




열 시 즈음이었나, 열한 시 즈음이었나,

갑자기 방문자가 1863명으로 줄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어제 아침나절에 방문자가 7000명 즈음 될 무렵

갑자기 5000명이 사라졌다.


설마 알라딘서재는

방문자가 어느 숫자를 넘으면 과부하가 걸려서

5000명이 뚝딱하고 사라지는 시스템은 아닐 테지?


..


아무튼@.,@

숲노래 서재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모두 고맙고 반갑기에

이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언제나 즐겁고 재미나게 읽고 마음에 고이 담을 이야기가

이 조그마한 '숲집 이야기터'에서 흐를 수 있도록

찬찬히 나아가자고 생각한다.


사라진 방문자 5000명은

곧 5000만 명이 되어 찾아오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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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Legend of Drunken Master (취권)(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Miramax Lionsgate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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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권

醉拳, Drunken Master, 1978



  어릴 적부터 영화 〈취권〉을 퍽 자주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꽤 자주 보여주었으니 자주 볼밖에 없었다. 그런데 〈취권〉은 보고 또 보아도 눈길을 끄는 재미가 있다고 느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도 놀랍지만, 영화 주인공인 ‘황비홍’이 스스로 바보스러움을 깨닫고는 비로소 ‘몸을 갈고닦는 길’을 제대로 걷는 모습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취권’이라고 하는 무술은 ‘틀에 박힌 눈길이나 몸짓’을 모두 내다 버리면서 오로지 바람에 몸을 얹어서 부드러우면서 날렵하고 여리면서도 단단한 숨결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모든 것이 있는 숨결로 손이랑 발을 놀리는 무술이 취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딱딱하게 굳은 손짓이랑 발짓을 쓰는 무술은 취권을 깨지 못한다. 취권이라고 하는 무술은 ‘남이 이 무술을 깨’기 앞서, 이 무술을 쓰려는 사람이 스스로 모든 틀을 깨기 때문에, 이 무술을 쓰는 사람 스스로 ‘어떤 손짓이랑 발짓이 나올’는지 모른다.


  영화에서 황비홍이 제 장난꾸러기 모습이랑 바보스러운 삶을 깨닫는 대목도 재미있다. 왜냐하면 참말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데에서 욱하거나 울컥한다. 그동안 숱한 말을 듣거나 일을 치렀어도 꿈쩍을 않더니, 놀림을 받고 아버지를 깎아내리는 말을 듣고 ‘스무 해를 갈고닦아도 안 된다’는 핀잔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꿈틀거린다.


  스무 해를 갈고닦아도 안 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마따나 스무 해를 갈고닦아도 안 되는 일을 바로 한 해 만에 해낸다. 어떻게 해낼까? 황비홍 스스로 모든 바보짓을 멈춘 뒤, 새로운 몸짓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해낸다.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똑똑히 몸을 가눌 수 있을 적에, 무술을 하는 참뜻인 ‘몸을 갈고닦으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린다’는 삶이 된다.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주먹질이나 발길질로 이웃을 괴롭히는 바보가 된다.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릴 때에는 참다우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간다. 몸을 갈고닦아서 마음껏 온갖 몸짓을 할 수 있을 때에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몸을 갈고닦아 보면 안다. 뒤돌려차기나 빙그르르 돌아 내려앉기를 할 적에, 참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도록 주먹을 질렀다가 끌어당길 적에,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한 ‘짜릿한 아름다움’이 온몸으로 짜르르 하고 퍼진다. 4348.7.4.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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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딸기인걸



  들이나 숲에서 돋는 딸기 가운데 알이 퍽 굵은 녀석이 있다. 조물조물한 알이 모인 들딸기 말고, 굵직굵직한 알이 모인 녀석은 멍석딸기이다. 잎이나 꽃도 여느 들딸기하고 다르다. 찬찬히 살피면 잎이랑 줄기랑 알을 보면서 멍석딸기인 줄 알아챌 수 있지만, 그냥 빨간 빛깔로만 보면 들딸기나 산딸기인 줄 알기 일쑤이다.


  여덟 살 시골순이더러 “얘는 멍석딸기로구나.” 하고 말하는데 ‘멍석’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름을 머리에 안 새기더니, 멍석딸기를 훑고 나서 보름 남짓 지난 어느 날, 들꽃 사진책을 보다가 “아버지, 여기 봐, 우리가 저번에 바다에서 본 딸기는 멍석딸기래!” 하고 외친다.


  아이야, 책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먼저 사람들이 삶에서 빚은 말이란다. 사람들이 삶에서 빚은 말이 없으면 책을 쓸 수 없어. 책에 나왔으니 알아보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언제나 누리기에 이름이 있고, 이러한 이름을 차곡차곡 모아서 책을 엮는단다. 아무튼, 멍석딸기는 멍석을 깔듯이 옆으로 줄줄이 퍼진다. 4348.7.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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