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77) -의 : 시의 세계


 시의 세계에서 보면

→ 시 세계에서 보면

→ 시라는 세계에서 보면

→ 시에서 보면

→ 시 나라에서는

→ 시에서는



  세계를 헤아려 봅니다. “나무 세계”나 “동물 세계”나 “사람 세계”처럼 씁니다. 세상을 생각해 봅니다. “책 세상”이나 “꽃 세상”이나 “노래 세상”처럼 씁니다. 사이에 ‘-의’를 넣지 않습니다. 시나 소설이나 문학이나 사진을 말할 적에도 “시 세계”나 “소설 세계”나 “문학 세상”이나 “사진 세상”처럼 쓰면 됩니다. 4348.7.5.해.ㅅㄴㄹ



시의 세계에서 보면 세상의 사물은 사람과 똑같은 생각과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시 세계에서 보면 온누리 사물한테는 사람과 똑같은 생각과 말이 있습니다

《신현득-몽당연필에도 주소가 있다》(문학동네,2010) 4쪽


‘세계(世界)’나 ‘세상(世上)’은 똑같은 자리를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낱말을 따로 쓸 수도 있으나, 이 보기글에서는 둘 모두 덜거나 ‘나라’나 ‘누리’ 같은 낱말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는 “말이 있습니다”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58) -의 : 독설의 이유


 독설의 이유

→ 독설을 하는 까닭

→ 모질게 말하는 까닭

→ 매섭게 말하는 까닭



  ‘독설(毒舌)’은 “악독(惡毒)스러운 말”이라고 합니다. ‘악독’은 “마음이 흉악하고 독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흉악(凶惡)’은 “성질이 악하고 모짊”을 뜻한다 하고, ‘독(毒)하다’는 “독기가 있다, 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를 뜻한다 합니다. ‘악(惡)하다’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쁘다”를 뜻한다고 해요. 여러모로 살피면, ‘독설’이란 “모질게 하는 말”이나 “나쁘게 하는 말”인 셈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세상에 대고 모질게 말하다’나 ‘세상 사람한테 매섭게 말하다’쯤으로 풀어서 적을 때에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한자말 ‘독설’을 쓰고 싶다면 “독설을 하는 까닭”으로 적으면 됩니다. 4348.7.5.해.ㅅㄴㄹ



로산진은 세상을 향한 독설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로산진은 세상에 대고 매섭게 말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든다

《신한균,박영봉-로산진 평전》(아우라,2015) 113쪽


“세상을 향(向)한”은 “세상에 대고”나 “사람들한테”로 다듬습니다.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손보고, “말하고 있다”는 “말한다”로 손봅니다. 그런데, ‘독설’하고 ‘말한다’는 똑같이 ‘말하기’인 만큼, 뒤쪽에 나오는 ‘말한다’는 ‘든다’로 고쳐 줍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 문학동네 동시집 16
신현득 지음, 전미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62



아이들을 지켜보면 시가 샘솟아요

―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

 신현득 글

 전미화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0.12.8. 8500원



  다섯 살 작은아이가 문득 “그림 그리고 싶어.” 하고 말합니다. 여느 때와 달리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감판하고 그림종이를 내줍니다. 작은아이는 물을 쓸 수 있는 부엌바닥에 종이를 펼쳐서 그림을 그립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가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다가 저도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두 아이는 종이뿐 아니라 부엌바닥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그림놀이를 마친 뒤, 부엌바닥을 걸레로 훔칩니다. 부엌바닥을 더 깨끗하게 닦으라는 뜻으로 부엌바닥에 그림을 그렸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두 아이는 갓난쟁이였을 적에 사흘이 멀다 하고 이불이 쉬를 누거나 똥을 발랐습니다. 기저귀를 갈랴 이불을 빨랴 그야말로 손이 쉴 겨를이 없었어요. 아기를 돌보는 집은 깨끗해야 하니까 이불을 자주 빨라는 뜻으로 그렇게 쉴새없이 이불에 쉬와 똥을 발라 주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 땅에서 / 뾰족 나온 / 우리나라 // 거기에 / 점 하나 찍으면 / 우리 마을 (점 속에 내가 있다)


한 바퀴 세계를 돌고 보면 /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길 // 북극에서 오는 길도, /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도 이 길이라죠 // 우리 집 골목에서 / 끝나는 길 (우리 집 골목길은)



  신현득 님이 빚은 동시를 모은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문학동네,2010)를 읽습니다. 1950년대부터 동시를 쓴 분이 바라보는 2010년대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1950년대에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길하고 2010년대에 어린이를 헤아리는 눈길은 어느 만큼 다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자리에서 바라보는 어린이 삶이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에서 흐른다고 할 만합니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동시로 썼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나라와 아시아와 지구별을 넓게 살필 수 있도록 북돋우고 싶은 마음을 동시로 그리기도 했다고 느낍니다.



이름만 듣고도 알 수 있지 / 이쁘다고 이쁜이 / 순한 아기 순단이 / 야무진 차돌이 / 힘이 센 센둥이 (이름이란 그런 것)


내 이름은 김개나리야 // 전학 서류 가지고 찾아간 / 학교 이름도 / ‘개나리초등학교’였지 (개나리초등학교)



  아이들을 지켜보면 시가 샘솟습니다. 아이들이 어버이나 어른더러 시를 쓰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어버이나 어른이 함께 놀기를 바라고, 함께 놀지 않더라도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함께 놀면, 함께 노는 대로 즐겁습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함께 놀아 주지 않아도, 저희끼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새 놀이를 지어서 까르르 웃고 뒹굴고 달리고 뛰면서 지냅니다.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함께 놀면서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시라고 한다면, 또 동시라고 한다면, 굳이 꾸며서 쓸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노는 이야기를 쓰면 모두 동시가 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거이 바라보는 삶을 고스란히 쓰면 언제나 동시가 돼요.


  땀을 흘리면서 달리는 이야기를 씁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를 씁니다. 마을 빨래터에서 함께 물이끼를 걷고 노는 이야기를 씁니다. 마당이랑 뒤꼍에서 풀을 뜯는 이야기를 씁니다. 철마다 달리 부는 바람을 마시면서 꽃을 보고 열매를 얻는 이야기를 씁니다. 심부름을 하고 살림을 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아이들한테는 ‘학교’만 학교이지 않습니다. 집도 마을도 숲도 모두 학교, 곧 배움터입니다. 살아가는 터가 배우는 터요, 살아가는 터에서 사랑을 누립니다.



“어둠나라 개가 달을 먹네.” / 월식날 밤, 옛사람들이 / 달을 보며 말했지 (달을 먹는 개)



  《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에 흐르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동시를 쓰는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어떤 마음밥을 건네려고 하는가를 되새깁니다. 옛이야기는 먼 옛날부터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들려주고, 아이가 할아버지가 되면서 다시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또 아이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는 사이에 새로운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달을 먹은 개 이야기도, 제비와 흥부 이야기도, 어린 개구리와 어미 개구리 이야기도, 베짱이 이야기도,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이 들려줍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아버지로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새로운 어른으로 우뚝 서면, 이 아이들은 새롭게 아이를 낳을 테고, 그때에 나는 할아버지로 지내면서 새로운 삶과 이야기를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하루가 삶으로 모이고, 이러한 삶이 이야기가 되며, 이러한 이야기가 사랑이 되어 흐릅니다.



돋아난 / 새싹을 / 손끝으로 / 톡, / 건드려 봐 // 놀라서 / 옴싹 / 움츠리지 (새싹 간질이기)


장독대 돌봐 놓고 / 둘레에 맨드라미, 봉숭아 몇 포기도 / 만져서 피워 주고 // 해거름에 해님은 배고프다며, 휘딱 / 저녁 먹으러 가 버렸어요 (해님은 손으로 장맛을 들여요)



  해가 뜨는 아침에 해를 바라보면서 놉니다. 햇볕이 뜨거운 낮이 되면 구름이 와라, 바람아 불어라, 노래하면서 놉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이 되면 발그스름하다가 노르스름하게 물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놉니다. 별이 돋는 밤하늘을 그리면서 놀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크게 하품을 하고는 잠자리에 듭니다.


  즐겁게 놀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아이한테는 근심이나 걱정이 없습니다. 근심이나 걱정이 없이 신나게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나 어른한테도 근심이나 걱정이 깃들지 않습니다. 우리 어버이와 어른한테는 무엇이 깃들까요? 바로 사랑이 깃들어요. 어버이와 어른은 저마다 사랑을 가슴에 담고서 아이들을 어루만집니다. 이불깃을 여미면서 가슴을 토닥입니다. 입맛을 다시면서 자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가슴속에 꿈을 품습니다.


  어버이와 어른은 사랑을 헤아리면서 삶이 기쁘고, 아이는 꿈을 지으면서 삶이 재미납니다. 동시는 사랑하고 꿈이 만나는 삶자리에서 언제나 새롭게 태어납니다. 4348.7.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동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밥 먹자 192. 2015.6.13. 딸기빵


  숲에서 훑은 멍석딸기를 빵 한 조각에 얹어서 함께 먹는다. 딸기알이 톡톡 터진다. 다시 딸기알을 빵조각에 올려서 같이 먹는다. 딸기알이 오독오독 씹힌다. 온 식구가 저전거를 타고 바닷마실 나와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딸기빵을 먹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들보라 긴신에 물 들어갔어



  산들보라가 긴신에 물이 들어갔으니 뻬 달라고 말한다. 나는 산들보라한테 “얘, 네가 신을 벗어서 털면 돼.” 하고 말한다. 그러나, 산들보라는 이렇게 못 한다. 어른으로서는 말로 하기 쉽지. 아이로서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서 움직이기는 아직 어렵다. 그래도, 시늉을 낸다. 그래, 시늉을 내렴. 그렇게 하고 또 해야 신을 혼자 신고 벗을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54) 일상의 5


 일상의 즐거움

→ 즐거운 하루

→ 하루가 즐겁다

 일상의 실천

→ 늘 실천

 일상의 물건

→ 늘 쓰는 물건

→ 자주 쓰는 물건



  “삶을 산다”고도 말하니, “일상을 산다”나 “생활을 산다”처럼 말할 수도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그런데 “생활을 산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고 여기지 싶습니다. “생활을 한다”처럼 말하지요.


  한자말 ‘일상(日常)’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뜻해요. ‘생활(生活)’하고 같은 셈이요, ‘생활’은 한국말 ‘삶’하고 같습니다. 다만, 한자말 ‘일상’은 늘 되풀이되는 모습을 가리키는 대목이 살짝 다릅니다. “일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면 “언제나 되풀이하는 일”이나 “날마다 하는 일”이나 “늘 똑같이 하는 일”을 가리키고,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는 “바쁜 하루를 되풀이하며 산다”나 “바쁘게 산다”나 “바쁘게 하루를 산다”를 가리켜요.


  ‘일상 + 의’ 꼴로 “일상의 행복”이나 “일상의 인문학”처럼 쓰는 사람이 차츰 늘어납니다. ‘일상’이라는 한자말하고 ‘-의’라는 토씨를 곁들여서 쓰는 말투입니다. 그런데 ‘일상’이라는 낱말이 쓰이는 자리를 보면 ‘날마다’이거나 ‘늘’이라고 할 만합니다. 날마다 하는 어떤 일을 가리키고, 늘 마주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려고 하지요.


  실마리를 쉽습니다. ‘날마다’나 ‘늘’이나 ‘언제나’를 쓰면 돼요. 때와 곳에 따라 ‘자주’를 쓸 만하고, ‘하루’나 ‘삶’ 같은 낱말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어울리는 말을 나 스스로 헤아리면서 찾습니다. 4348.7.4.흙.ㅅㄴㄹ



* 더 살펴보기 *


일상의 생활은 의식주로 요약된다. 일상의 기본은 먹고 입고 쉬고 자는 일이다

→ 우리 삶은 옷밥집으로 이루어진다. 삶을 이루는 바탕은 먹고 입고 쉬고 자는 일이다

《정수복-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문학동네,2015) 25쪽


※ ‘일상’이라는 한자말이 ‘생활’을 뜻하기에 “일상의 생활”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의식주(衣食住)로 요약(要約)된다”는 “옷밥집으로 이루어진다”로 다듬고, ‘기본(基本)’은 ‘바탕’으로 다듬습니다.


 일상의 생활은

→ 하루 삶은

→ 우리 삶은

→ 우리 하루는

→ 사람살이는

→ 여느 삶은



일부러 그것을 찾아다닌 것도 아닌, 다만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 일부러 그것을 찾아다니지도 않은, 다만 늘 있는 일을 쓸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지누-잃어버린 풍경 1》(호미,2005) 6쪽


※‘기록(記錄)일 뿐이었는데도’는 ‘쓸 뿐이었는데도’나 ‘적을 뿐이었는데도’로 손봅니다.


 일상의 기록일 뿐이었는데도

→ 하루 일을 적을 뿐인데도

→ 그날그날을 썼을 뿐인데도

→ 늘 있는 일을 쓸 뿐이었는데도

→ 늘 하는 일을 적을 뿐인데도



이 책은 예술과 사진에 관한 나의 생각과 사진가로서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느낀 바를 여러 지면에 그때그때 수필 형식으로 발표했던 것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 이 책은 예술과 사진을 보는 내 생각과 사진가로서 학생들한테 사진을 가르치며 있던 일, 그리고 살면서 느낀 바를 여러 곳에 그때그때 수필처럼 쓴 글을 모아 다시 엮었다

《육명심-사진으로부터의 자유》(눈빛,2005) 5쪽


※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입니다. “사진에 관(關)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내 생각”이나 “사진을 느끼는 내 생각”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여러 지면(誌面)에”는 “여러 곳에”로 고치고, “발표(發表)했던 것들”은 “내놓았던 글들”이나 “썼던 글들”로 고칩니다. “재편집(再編輯)한 것이다”는 “다시 엮었다”나 “다시 묶었다”로 손봅니다.


 일상의 삶에서 느낀 바

→ 살아가며 느낀 바

→ 사는 동안 느낀 바

→ 하루하루 살면서 느낀 여러 가지

→ 여태껏 살아오며 느낀 이야기

→ 살아오며 느낀 그대로



이곳의 자연과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내가 직접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 이곳 자연과 여기서 사는 사람들을,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호시노 미치오/이규원 옮김-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5) 248쪽


※ “이곳의 자연과”는 “이곳 자연과”나 “이 자연과”로 다듬습니다. ‘생활(生活)하는’은 ‘살아가는’이나 ‘사는’으로 다듬고요. ‘직접(直接)’은 ‘몸소’나 ‘바로’로 고쳐 줍니다.


 내가 직접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꾸밈없이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바라보자는

→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보자는



조선인들 사이에 일본어 습득이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이는 다분히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생존의 도구’로서 기능했다

→ 조선사람 사이에 일본말 배우기가 아주 빠르게 퍼졌으며, 이는 적잖이 ‘먹고사는 연장’ 구실을 했다

《손준식,이옥순,김권정-식민주의와 언어》(아름나무,2007) 152쪽


※ ‘조선인(-人)’은 ‘조선사람’으로 다듬고, “일본어(-語) 습득(習得)이”는 “일본말 배우기가”로 다듬습니다. “급속도(急速度)로 확산(擴散)되었으며”는 “아주 빠르게 퍼졌으며”나 “재빠르게 번졌으며”로 다듬고, ‘다분(多分)히’는 ‘적잖이’나 ‘적이’로 다듬어 줍니다. “생존(生存)의 도구(道具)”는 “살아남는 연장”으로 손보고, ‘기능(機能)했다’는 ‘움직였다’나 ‘돌아갔다’로 손질합니다. 또는, 앞말과 이어서 “‘살아남는 연장’ 노릇을 했다”처럼 다듬어 봅니다.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 먹고사는

→ 하루하루 버티는

→ 하루를 살아가는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