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닷 Photo닷 2015.7 - Vol.20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209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다

― 사진잡지 《포토닷》 20호

 포토닷 펴냄, 2015.7.1.

 정기구독 문의 : 02-718-1133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쌀알을 끓여서 밥을 짓기도 하고, 밀을 반죽해서 빵을 굽기도 합니다. 고기를 장만해서 익히기도 하며, 풀을 뜯어서 나물로 무치기도 합니다. 어떤 먹을거리를 받아들여도 언제나 밥입니다. 즐겁게 맞이하는 밥 한 그릇이요, 기쁘게 나누는 밥 한 끼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아이들하고 먹으면서 생각합니다. 밥맛이 좋으려면, 밥을 짓는 사람 마음이 좋아야 합니다. 좋지 않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이 고스란히 밥에 깃듭니다. 좋은 마음이 되어 밥을 지으면, 이 기운도 고스란히 밥에 깃들어요. 그러니,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맛난 밥도 짓고 안 맛난 밥도 지어요.



나는 도시와 같은 어떤 공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찰하는 게 좋았다. (19쪽/김영경)


사진 중에 노란 자전거를 탄 할머니가 지나가는 배경의 낡고 허물어진 집들은 술을 제조하던 양조장이다. 그런데 지난달에 갔을 때 그곳에 포크레인이 있었다. 이처럼 지정된 보존 가옥 외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27쪽/최철민)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기라는 기계’보다도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장비를 갖추었어도, 마음이 좋지 못하다면,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즐거울 적에 사진이 즐겁고, 마음이 고울 적에 사진이 고우며, 마음이 사랑스러울 적에 사진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20호(2015.7.)를 읽습니다. 《포토닷》 20호는 ‘2015년 최민식 사진상’을 특집 기사로 다룹니다. 올 2015년에는 ‘최민식 사진상’을 최광호 님이 받았다고 합니다. 사진 한길을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나누는 사진상인 만큼, 이 상을 받은 분이나 이 상을 못 받은 분 누구나 기쁘게 사진길을 더욱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수많은 정치적 희생자들이 머물렀던 건물이나 장소를 촬영하는 것은 그곳에서 고통 받고 사라져 간 사람들 모두의 희생을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55쪽/다이애나 마타)


순천으로 내려와 시간이 많아졌다. 주변 환경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책도 천천히 읽고, 사진도 천천히 하게 됐다. 기다릴 줄 알게 된 것 같다. 지방은 나름대로 새로운 작업환경을 제공하는데 여건이 좋다고 생각한다. (79쪽/지성배)



  가만히 보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밥맛이 달라지고, 사진이 달라지는데, 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달라집니다. 아이들도 마음이 안 좋으면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좋은 마음일 때에 비로소 신나게 웃으면서 놀아요. 장난감이 아무리 많은들, 놀 틈을 아무리 넉넉히 내어준들, 아이들 스스로 좋은 마음으로 지내지 못한다면,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흐르지 않습니다. 웃지 않는 아이들은 놀지 않고, 놀지 않는 아이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노래하지 않는 아이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밥이나 주전부리를 먹을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아이하고 어른은 좀 달라서, 어른은 마음이 안 좋아도 꾹 누르거나 참으면서 일을 합니다. 힘들어도 일을 하고, 지겨워도 일을 하며, 싫어도 일을 하지요. 그야말로 꿋꿋하게 일어서서 일을 하는 어른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이어도 이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을 하는 어른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좋지 못한 마음으로 힘겨이 일할 적하고,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할 적에, 일하는 보람은 어느 쪽이 나을까요? 아주 마땅하게도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누리면서 활짝 웃겠지요.




내 사진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지만 내가 가진 생각은 글로 쓸 수밖에 없다. 사진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글까지 보면 좀더 많은 해석과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82쪽/최수연)


나는 내 생각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 표현에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이다 … 사진은 아무리 상상해도 현실에 베이스를 두기 때문에 추상이 되지 않는다 … 나는 이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의 리스트를 표지로 하고 싶었다. ‘이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멋진 사진을 담았어요’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3, 96, 98쪽/사이이다)



  사진은 언제나 삶을 찍습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우리가 사는 하루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만지든, 처음부터 기계에 손을 보아서 ‘추상’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든, ‘추상’을 담으려고 하면 ‘추상이 아닌 삶’이 있어야 합니다. 삶이 있기에 추상을 나타낼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우리한테는 저마다 다른 삶이 있기에,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꿈을 그립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면,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고 싶은 삶입니다. 새롭게 가꾸면서 기쁘게 누리려는 삶은 어떠한 숨결로 흐를까요? 바로 사랑으로 흐릅니다.


  이리하여, 삶을 찍는 사진은, 늘 꿈을 찍는 사진이면서, 언제나 사랑을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삶이랑 꿈이랑 사랑을 스스로 기쁘게 마주하고 바라보면서 이야기로 엮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크툼이니 아우라니 하는 말로 자기 사진의 예술성을 보증하려 한다. 그 속뜻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로댕은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한다. 사진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풍크툼도 아우라도 아니라고. (111쪽/장정민)


이제 보도사진을 다루는 사람의 자격 요건에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글씨’를 잘 쓰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연관성이 없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설득력 있는 사진을 내보일 수 있는 표현력과 넘쳐나는 사진들 속에서 ‘보도될 만한 사진’을 솎아낼 수 있는 시각적, 윤리적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다. (115쪽/이기원)



  사진잡지 《포토닷》이 바라보는 곳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사진잡지 한 권이 나아가는 길은 ‘사람이 있는 길’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먼저 보고, 네가 함께 봅니다. 네가 찍은 사진을 네가 기쁘게 보면서 나도 기쁘게 함께 봅니다.


  전문 사진가이든 아마추어이든, 풋내기 사진가이든 아직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이든, 사진을 찍을 적에는 고요하면서 홀가분하고 따사로운 숨결이 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는 ‘이제껏 사진을 찍은 햇수’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녔다거나 ‘나라밖에서 사진을 배웠다’고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앞에 마주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나눌 밥을 짓습니다. 요리사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뛰어나거나 빼어난 솜씨쟁이가 짓는 밥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짓는 밥입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싱그럽게 웃고 노래하면서 뛰노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사진으로 찍습니다. 현을생 님이 제주섬이나 제주 해녀나 절집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한다면,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예술이나 정치나 교육 같은 것을 따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제주섬하고 제주 해녀하고 절집이 사랑스러워서 찍는 사진입니다. (125쪽/최종규)


늘 건강하시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2014년 2월의 일이었다. 사진을 한다는 딸로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드리지 못한 후회가 밀려왔다 … 다행히 아버지는 마치 내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시려는 듯이 기적처럼 깨어나셨지만 더는 일어서실 수가 없었다. (140쪽/조정숙)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차분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에 기쁜 웃음을 가득 실으면서 기쁘게 사진을 찍습니다.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눈물젖은 사진을 찍습니다. 아프고 슬픈 삶을 되새김질을 하면서 아프고 슬픈 사진을 찍습니다.


  모든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삶을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진에는 저마다 새로운 숨결이 도사립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랑을 마음으로 품으면서 찍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면 넉넉합니다. 멋진 사진을 찍기도 아주 쉽습니다. 스스로 멋진 삶을 가꾸면 됩니다. 고운 사진이나 예쁜 사진을 찍으려면, 스스로 고운 삶이 되고 예쁜 사랑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스스로 웃음덩어리가 되어 웃음이 피어나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눈물바람이 되어 눈물이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노래가 되어 노래하는 사진을 찍고, 스스로 바람이 되어 바람처럼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4348.7.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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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28. 함께 파를 뜯자 (2015.6.30.)



  살림순이야, 파를 뜯어 줄 수 있니? 네! 얼마나? 일곱. 알았어, 일곱. 자, 작은 칼을 가지고 가서 아래쪽을 살살 잘라 보렴. 나도 할래? 아냐, 너는 아직 어려서 칼을 못 써. 누나가 할 테니까, 너는 우산을 들어 줘. 작은아이는 우산을 받치고, 큰아이는 살살 칼을 놀리면서 파를 벤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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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27. 마늘을 찧자 (2015.6.30.)



  집김치를 담그는 일을 거들고 싶은 살림순이는 마늘찧기를 함께 한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이지만, 하고 또 하고 다시 하고 새로 하고 거듭 하다 보면, 얼마든지 익숙하게 잘 할 수 있다. 아무렴, 우리 집 살림순이와 살림돌이가 얼마나 야무지고 멋진데.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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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93. 2015.7.5. 쇠무릎고기볶음



  마당 한쪽에 잘 자란 모시풀을 솎아내다가 모시풀 옆에 나란히 우거진 풀을 함께 솎는다. 그런데, 뿌리까지 뽑아서 솎다 보니, 모시풀 옆에 우거진 풀이 모두 쇠무릎이다. 어라, 너희 쇠무릎이 이곳에 있었네? 그동안 쇠무릎인 줄 몰랐구나. 아무튼, 뽑아야 할 자리에 난 쇠무릎은 뽑는다. 뽑고 나서 쇠무릎잎은 뜯는다. 쇠무릎풀은 뿌리를 말려서 약처럼 쓴다고 하는데, 잎사귀도 맛있다. 쇠무릎잎은 쓴맛이 하나도 없이 멋진 나물 가운데 하나이다. 저녁에 돼지고기볶음을 하면서 쇠무릎잎을 잔뜩 넣는다. 앞으로는 모시잎뿐 아니라 쇠무릎잎으로도 밥을 지으려 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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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06 16:56   좋아요 0 | URL
님은 못하시는게 없군요?
육아의 달인이시어요^^
음식까지~~~~~

파란놀 2015-07-06 22:00   좋아요 0 | URL
못 하거나 잘 한다기보다
즐겁게 날마다 하려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쁨이라고 생각해요 ^^
 
굿바이 마우지
잔 오머로드 그림, 로비 H. 해리스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파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5



‘죽은 이웃’을 마음으로 사랑하다

― 굿바이 마우지

 로비 H. 해리스 글

 잔 오머로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언어세상 펴냄, 2002.3.18. 8000원



  기운이 다 빠져서 죽은 잠자리를 봅니다. 몸에서 넋이 빠진 잠자리는 새털마냥 가벼우면서, 잘못 만지면 가루처럼 바스라질 듯합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는데, 어느새 작은아이가 옆으로 다가와서 “어, 여기 잠자리 있네?” 하더니 “잠자리 안 움직여. 죽었나 봐?”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거리낌없이 잠자리를 집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잠자리를 제 눈앞에 대고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우지 배를 살살 간질였어요. 하지만 마우지는 깨질 않았어요. (3쪽)



  잠자리는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나비나 애벌레도 목숨을 잃으면 넋이 몸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새로운 곳이 어디일는지는 몸을 떠나야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갔다가 이 지구별이 그리워서 다시 찾아올 수 있을 테지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사람이든 벌레이든 풀이든 새이든,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 몸을 떠난 뒤 이내 새로운 몸을 찾아서 다시 이 땅에서 삶을 짓는다고 할 테고요.


  로비 H. 해리스 님이 글을 쓰고, 잔 오머로드 님이 그림을 그린 《굿바이 마우지》(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시골집에서 으레 ‘죽은 이웃’을 보는 아이들은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죽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쥐’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우리 집에서만 해도 헛간에 깃들어 함께 지내는 마을고양이가 으레 쥐를 잡아서 먹습니다. 언젠가 쥐를 잡아서 죽이고는 마당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기도 하고, 머리통만 남기고 먹은 뒤 마당 한쪽에 놓기도 합니다. 논둑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먹기도 하는 개구리는, 돌울타리에 앉아서 참새나 딱새를 잡고 싶어서 한참 동안 전깃줄이나 나뭇가지를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아빠도 슬프단다.” 아빠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어요. “아빠, 나 …… 마우지를 다시 만져 볼래요.” “그래.” (9쪽)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죽은 이웃’을 많이 봅니다. 자동차에 밟혀서 죽은 개구리와 뱀은 참으로 흔합니다.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참새나 까치나 제비도 있고, 사마귀나 메뚜기나 지렁이도 자동차에 깔려서 죽기 일쑤입니다. 이제 막 깨어나서 날갯짓을 익히면서 아스팔트에서 몸을 쉬는 나비가 그만 밟혀 죽기도 해요.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찻길을 가로지르는 개미조차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다닐 적에도 찻길을 기어가는 온갖 벌레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싱싱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길바닥에 어떤 ‘이웃’이 있는지 살필 겨를을 내기 어려우리라 느껴요.


  요즈음은 농약을 먹고 죽는 개구리가 있고, 농약 맞은 벌레를 먹다가 죽는 새가 있습니다. 논이나 밭이 농약바람으로 휩싸이면, 며칠 동안 벌이나 나비나 잠자리를 한 마리도 못 보기도 해요. 모두 농약바람을 맞아서 죽어요.



“마우지가 없으면, 이제 나 혼자 어떻게 해요?” “마우지를 마당에 묻어 주자. 그러면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12쪽)



  ‘죽은 이웃’을 만나는 아이들이 묻습니다. “얘네들 어떻게 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몰라.” “생각해 봐. 이 아이들은 몸만 여기에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갔어. 앞으로 새로운 몸을 입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날 테니, 다음에 만나자고 인사해 주면 돼.”


  밥상맡에서 늘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고기이든 풀이든 모두 ‘목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기밥은 고기가 되어 준 목숨인 셈이고, 풀밥은 풀로 돋은 목숨인 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돼지나 닭이나 소만 ‘목숨’이지 않아요. 풀이랑 꽃이랑 나무도 목숨이에요. 사람도 다른 짐승도, 모두 ‘다른 목숨’을 밥으로 받아들여야 제 목숨을 건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누리 수많은 목숨을 받아들여서 내 몸을 새롭게 가꿉니다.



“상자에 다른 것도 넣어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나는 마우지 상자에 토스트 한 조각이랑 당근 두 뿌리를 넣었어요. 또 포도 넉 알이랑 초코바도 넣었어요. (17쪽)



  내 목숨이 아름답고, 네 목숨이 아름답습니다. 네 목숨이 사랑스럽고, 내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삶입니다. 그림책 《굿바이 마우지》는 ‘귀염둥이 짐승’으로 함께 살던 작은 쥐 한 마리가 목숨을 내려놓은 뒤,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죽음’을 어떻게 알려주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죽음’하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찬찬히 헤아리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굿바이 마우지》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늘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늘 마음으로 함께 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더라도 언제나 마음으로 함께 있어요. 마음을 살피면서 삶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아끼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사랑하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쁜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8.7.6.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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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7-07 19:12   좋아요 0 | URL
뻣뻣한 사체를 `죽은 이웃`이라 부를 때 이미 거기엔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것이겠지요~~^^ 아무리 작은 생물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무게를 내려놓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네들을 `죽은 이웃`이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저 자신이 죽음 앞에 강건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게 마음으로 사랑하는 힘이 아닐런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5-07-07 23:09   좋아요 0 | URL
우리는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라고 느껴요.
예전에는 어렴풋하게 느꼈고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지내는 요즈음은
날마다 늘 뼛속하고 살갗으로 깊이 느껴요.

고운 이웃님으로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풀꽃놀이 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