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75



풀밥 먹고 꽃밥 먹는 시골살이

― 야생초 밥상

 이상권 글

 이영균 사진

 다산책방 펴냄, 2015.7.3. 13000원



  전남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 깃든 조그마한 우리 집에서는 요즈음 쇠무릎잎을 즐겁게 뜯어서 먹습니다. 밥을 지을 적에는 모시잎을 훑어서 잘게 썬 뒤에 섞어 모시밥을 먹습니다. 고들빼기잎이랑 쇠무릎잎은 풀무침을 해서 먹기도 하고, 날로 먹기도 하며, 고기를 익히거나 구울 적에 잔뜩 넣어서 먹기도 합니다.


  어성초꽃이 지는 요즈막에는 까마중 흰꽃도 함께 피고 지면서 조그마한 풋알이 맺힙니다. 소리쟁이는 붉으죽죽 마르면서 씨앗을 맺고, 오월까지 흐드러지던 유채꽃이랑 갓꽃은 꽃대와 줄기까지 모조리 녹아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주까리잎이 펑퍼짐하게 퍼지고, 잘 자란 쑥은 곧 꽃을 피울 듯합니다. 환삼덩굴이랑 사광이아재비풀이 나무를 타고 오르려 하고, 호박꽃이 피며, 감알도 무화과알도 탱글탱글 익으려 합니다. 조그마한 모과꽃에서 맺히는 모과알은 어찌나 굵은지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립니다.


  이른봄부터 신나게 뜯어먹던 정구지는 이제 쓴맛이 짙어서 볶음을 할 적에만 뜯습니다. 봄에 고맙게 먹던 민들레잎도 어느덧 거의 자취를 감추고, 별꽃나물은 시듭니다. 꽃이 진 돌나물은 씩씩하게 더 넓게 퍼지려 하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비름나물은 틈틈이 꺾어서 고맙게 누립니다.  



어슬어슬 땅거미가 깔리면 여인들은 일어나서 자신들이 솎아 놓은 보리순을 망태기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당에다 망태기를 엎어 놓고는 보리순을 칼로 다듬어서 국을 끓인다. 그러니까 보릿국을 끓여먹기 위해 일부러 보리순을 캐지는 않았다. (22쪽)


“아이고 말도 마라. 뿌리 끝 이파리가 붙어 있는 곳에 까만 때가 붙어 있어서, 그것을 손톱으로 긁어내면서 다듬는 일이 아주 힘들어. 이파리가 붙어 있는 부분을 조각조각 뜯어내고 까만 때를 벗겨내야만 먹을 수가 있거든. 냉이를 캐서 씻는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솔구쟁이 캐서 씻는 일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30∼31쪽)



  봄에는 봄풀을 먹습니다. 여름에는 여름풀을 먹습니다. 가을에는 가을풀을 먹고, 겨울에는 겨울풀을 먹어요. 겨울에 무슨 풀을 먹느냐 물을 수 있을 텐데, 늦가을부터 봄까지꽃이랑 갓이랑 유채가 스멀스멀 싹이 돋아요. 한겨울에도 유채풀이랑 갓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을 무렵부터 쑥하고 냉이를 누립니다.


  이상권 님이 글을 쓰고 이영균 님이 사진을 찍은 《야생초 밥상》(다산책방,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에 붙은 ‘야생초(野生草)는 ‘야초(野草)’라는 한자말처럼 일본사람이 즐겨 쓰는 낱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밖에도 ‘산초(山草)’나 ‘산야초(山野草)’ 같은 한자말을 즐겨 써요.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들에서 나는 풀이면 ‘들풀’이라 합니다. 산(메)에서 나는 풀이면 ‘멧풀’이라 합니다. 그래서, 들에서 뜯는 풀 가운데 즐겁게 먹는 풀은 ‘들나물’이라 하고, 산(메)에서 뜯는 풀 가운데 즐겁게 먹는 풀은 ‘멧나물(산나물)’이라 합니다. “야생초 밥상”은 들에서 나는 풀을 뜯어서 차리는 밥상인 만큼, “풀 밥상”이나 “들풀 밥상”이나 “들나물 밥상”인 셈입니다.



우리는 천천해 해당화꽃밥을 입안에다 밀어넣고, 그 모든 향과 맛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씹었다. 내게는 옛날 생각까지 더해져서 그 맛과 향이 더 깊게 배어들었다. (68쪽)


“어린 풀도 씹을 만하네요. 진짜 쓴맛은 하나도 없고 온통 풀냄새뿐이네요. 이걸로 국을 끓이면 무슨 맛이 날까? 맛은 몰라도 국물 색깔은 기가 막히겠네요.” (89쪽)




  풀은 어디에서나 돋습니다. 풀은 시멘트나 아스팔트 틈바구니를 뚫고 돋기도 합니다. 이러한 풀을 바라보면서 참말로 억세다고들 하지만, 풀로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한테 모질게 짓밟히거나 짓눌리면서도 ‘꿈을 잃지 않’기에 씩씩하게 돋을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이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흙바닥을 단단히 눌러서 다진 뒤 시멘트랑 아스팔트를 들이붓더라도, 조그마한 풀씨는 흙 기운을 찾아나서면서 뿌리를 내리려 해요.


  시인 김수영 님이 풀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만, 풀은 시골사람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임금님하고 양반한테 짓눌리면서 살아온 수수한 사람이 시골사람이요, 성곽을 쌓거나 병졸로 끌려가는 사람이 시골사람입니다. 궁궐에서 심부름꾼이나 종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시골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은 풀처럼 씩씩합니다. 시골사람을 풀을 먹으면서 풀빛 같은 마음입니다. 시골사람은 풀을 뜯고 풀을 손질하며 풀을 다루는 동안, 어느새 온몸이 풀물이 들고, 풀내음이 가득합니다.


  사람도 풀을 먹고 짐승도 풀을 먹습니다. 더욱이 벌레도 풀을 먹습니다. 게다가 겨울이 되어 온누리가 차갑게 얼어붙으면, 풀은 시들어 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가요. 봄부터 가을까지 지구별 모든 목숨붙이를 먹여 살리던 풀은, 겨우내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풀이 겨우내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땅(흙)에 새롭게 씨앗을 심어서 거둘 수 있어요.



“곰밤부리야 사방에 천지에 깔렸으니까. 게다가 고것은 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안 주고 한마디로 농사꾼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풀이니까, 고걸 뜯어다 나물로 하면 우리도 좋지요. 우리야 저런 것 먹고 컸지만 요새 사람들이 어디 그러요?” (112∼113쪽)


“제가 새팥 깍지를 따면 이 동네 어르신들도 다 저보고 손가락질하고 그래요. 제 친구들도 몇 와서 보더니,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하기도 해요. 전 힘들지 않아요. 이게 좋아요. 남들 보기에는 심란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야생콩이나 풀뿌리 캐먹고 백년 천년 살 거냐고 비웃기도 하지만, 제가 오래 살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 (129쪽)




  풀밥은 풀을 뜯어서 지은 밥이요, 지구별 뭍을 두루 덮은 풀내음을 담은 밥입니다. 풀 한 포기에서 꽃이 피면, 이 꽃을 갈무리해서 꽃밥을 짓기도 합니다. 꽃밥은 풀꽃밥이요, 지구별 모든 목숨붙이한테 기쁨과 웃음을 베푸는 사랑스러운 꽃내음을 실은 밥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풀이랑 꽃이랑 알(열매)을 골고루 먹습니다. 맨 처음에는 새싹을 먹어요. 다음으로 풀잎이랑 풀줄기를 먹습니다. 어느덧 풀알(풀열매, 곡식)을 먹고, 나중에는 풀뿌리를 먹습니다. 풀 한 포기를 모조리 골고루 먹어요.


  사람은 모든 풀을 다 먹지 못합니다. 사람이 못 먹고 남은 풀은 겨우내 삭으면서 까무잡잡한 새로운 흙이 되고, 새로운 흙은 온누리를 기름지게 바꾸어 주어요.


  더 생각해 보면, 풀이 돋는 땅이기에 비가 와도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풀이 돋는 땅이기에 사막이 안 됩니다. 풀이 돋는 땅이기에 싱그러운 풀내음이 가득한 바람이 붑니다. 풀이 돋아 풀밭이 되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만하고, 풀밭이 우거지기에 풀짐승이 고요히 깃들 만하며, 풀밭이 예쁘장하기에 사람들이 숲집을 짓고 숲살림을 기쁘게 건사합니다.


  이야기책 《야생초 밥상》은 바로 이 대목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모든 시골사람이 저마다 제 고장에서 제철 풀을 뜯고 누리던 삶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눈부신 풀이나, 돋보이는 풀이나, 빼어난 풀이나, 대단한 풀이나, 놀라운 풀이나, 엄청난 풀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이면 누구나 흔하게 먹으면서 널리 사랑하던 풀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마음을 밝히려고 합니다. 너랑 나랑 함께 먹고, 오순도순 같이 먹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삶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뱀밥이 맛있는 나물이라는 것은 다 알았지만, 너무 손이 많이 가서 잘 해먹지 않았어. 옛날에는 시골이 늘 바빠서 한가롭게 반찬 할 틈이 없었거든. 그래서 손쉽게 뜯어다 살짝 데쳐서 무쳐먹는 나물을 가장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어.” (193쪽)


구량배미 할매는 닳아질 대로 닳아진 손톱으로 그 무시무시한 마름 껍질을 까서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야, 맛있다! 밤 맛이다!” “아니, 깨금(개암) 맛이다!” 아이들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마름을 씹어먹었다. (249쪽)




  《야생초 밥상》이라는 책에서 글을 쓴 이상권 님은 이녁이 어릴 적부터 듣고 보고 겪은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 사진을 찍은 이영균 님은 ‘글로만 읽을 적’에는 요즈음 도시사람이 제대로 헤아리거나 살피기 어려운 모습을 멋스럽게 되살려서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보리, 소리쟁이, 원추리, 점나도나물, 해당화, 광대나물, 뚝새풀, 조팝나무, 별꽃, 새팥, 댑싸리, 옥매듭, 쇠무릎, 피, 쇠뜨기, 무릇 같은 풀이랑 꽃을 맛나게 먹는 삶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상권 님이 책에서도 쓰듯이 ‘별꽃나물’을 전라도에서 ‘곰밤부리’라고도 합니다. 이상권 님이 ‘새팥’이라고 하는 아이는 전남 고흥에서는 ‘돌콩’이라고 합니다. 돌콩이 익는 철이면 바지런한 할매는 돌콩밭을 찾아가서 광주리를 채우고, 우리 아이들도 돌콩깍지를 하나씩 손에 쥐고는 주머니에 넣습니다. 돌콩깍지를 살살 쥐어 주머니에 빨리 넣지 않으면 깍지가 탁 소리를 크게 내면서 터집니다. 이러면 돌콩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못 주워요.


  푸짐한 풀밥상을 《야생초 밥상》이라는 책으로 만나면서 우리 집 밥상도 한결 푸르게 북돋우자고 생각합니다. 넉넉한 꽃밥상을 《야생초 밥상》이라는 책으로 마주하면서 우리 집 밥차림도 더욱 싱그러이 가꾸자고 생각합니다.


  풀 한 포기가 햇볕이랑 빗물이랑 햇볕을 먹으면서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싱그럽습니다. 풀 두 포기가 멧새 노랫소리랑 개구리 노랫소리랑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해맑습니다. 풀 세 포기가 아이들 손길을 타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풀 네 포기가 내 눈길을 받고 내 마음길하고 이어지면서 즐거이 춤을 춥니다.


  풀밥을 먹고 풀노래를 부르면서 풀사람이 됩니다. 풀밥상을 차리고 풀사랑을 나누면서 풀꿈을 키웁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들이 텃밭이랑 마당을 누리면서 손수 밥상을 차릴 수 있기를 빌어요. 지구별 누구나 텃밭하고 마당에서 예쁜 삶을 짓는 슬기로운 생각을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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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23] 우리 곁에



  노래하는 바람하고 춤추는 햇볕하고

  푸른 나무랑 싱그러운 풀이랑

  내 곁에서 어깨동무



  바람 한 줄기가 벗이 됩니다. 햇볕 한 줌이 동무가 됩니다.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이웃이 됩니다. 우리 곁에서 곱게 벗님이 되고 동무님이 되며 이웃님이 되는 모든 숨결은 언제나 넉넉하면서 기쁜 하루를 누리도록 북돋아 줍니다.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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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바라보는 눈, 책을 안 보려는 눈



  ‘바라보는 눈’을 생각하면 무엇이든 바라본다. 그래서 책을 손에 쥐고 읽으려고 할 적에, ‘이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되면, 내가 손에 쥔 책이 몹시 어렵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기쁘게 헤아리면서 누릴 수 있다. ‘어휴, 이 책 보기 끔찍해’ 하는 마음이 되면, 내가 손에 쥔 책이 참으로 얇고 쉽다고 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아무것도 못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사람들이 ‘서평단 책읽기’를 하는 일은 오직 ‘서평단으로서 책을 마주하고 읽다가 서평단으로서 글을 쓰는 삶’으로 그친다. 이러한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저 ‘서평단 경험’을 할 뿐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서평단이 되어 책을 거저로 받아서 읽은 뒤 서평을 올려야 할 적에는, ‘서평 테두리’에서 맴돌기만 한다는 뜻이다. 책을 책으로 마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평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책읽기를 누리려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줄거리를 간추려서 얼른 서평을 올려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서려서 나한테 삶을 기쁨으로 노래하는 선물을 베풀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바라보는 눈이란, 삶하고 사랑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다. 마음에 드는 짝꿍하고 만날 적에, 그러니까 데이트를 할 적에 ‘서평단 책읽기’나 ‘서평단 글쓰기’를 하듯이 후다닥 읽어서 줄거리를 간추리듯이 하루를 보내어도 재미있거나 즐거울까?


  책읽기는 ‘줄거리 간추리기’가 아니다. 책읽기는 말 그대로 ‘책을 읽기’이고,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책을 쓴 사람하고 책을 빚은 사람이 일군 삶이랑 사랑을 읽는 몸짓’이다. 책을 쓴 사람하고 책을 빚은 사람이 일군 삶이랑 사랑을 읽지 못하는 몸짓이라면 ‘책읽기’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바람맛’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은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맑고 싱그러운 바람을 끌어들여서 즐겁게 하루를 누린다. ‘바람맛’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조차 맑거나 싱그러운 바람을 몰라보거나 등진 채 툴툴거리다가 그만 몸을 망가뜨린다.


  이름난 작가 한 사람이 썼대서 ‘책맛’이 훌륭하지 않다. 책은 ‘작가 이름’으로 읽지 않는다. 책은 ‘책에 흐르는 이야기맛’을 보려고 읽는다. 요리사가 지은 밥이 맛있을 수도 있을 테지.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요리사 밥맛이 아니라 ‘어머니 밥맛’이나 ‘할머니 밥맛’을 그린다. 드문드문 ‘아버지 밥맛’이나 ‘할아버지 밥맛’을 그리기도 한다. 왜 그러하겠는가? 삶맛하고 사랑맛이 깃든 밥맛이 사람한테 가장 따스하면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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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펴내는 재미난 잡지 <전라도닷컴>에 싣는 글입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이 글을 함께 실었습니다. 


..




손빨래 누리는 아버지



  하루 내내 비가 퍼붓는 날에는 빨래를 할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에 앉아서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아이들이 마루와 방과 부엌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아이들은 궂은 날이건 맑은 날이건 개구지게 뛰어놀면서 날마다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맑은 날에는 땀이랑 흙으로 버무러진 빨랫감을 내놓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마당이나 뒤꼍에서 놀다가 넘어지면서 땀이랑 흙이랑 빗물이 어우러진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이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때를 가만히 그립니다. 가시내인 큰아이는 막 태어나서 세이레가 될 무렵까지 하루에 천기저귀를 마흔다섯 장씩 내놓았습니다. 삼십 분에 한 장씩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베풀었어요. 큰아이를 낳을 무렵 천기저귀를 서른 장 마련했으니, 이 아이가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내놓으면 두어 장씩 바지런히 빨았습니다. 백 날이 지날 무렵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내놓고, 석 달이 지날 무렵 마흔 장 밑으로 떨어집니다. 기저귀 빨래가 줄 적마다 아기한테 절을 했습니다.


  큰아이는 밤에도 삼십 분마다 오줌기저귀를 베풀었으니, 밤새 잠을 잘 겨를이 없습니다. 참말 처음 보름 남짓 한숨조차 못 자면서 기저귀를 갈아서 빨래하고 미역국을 끓이며 집일을 건사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했겠거니 여겼고,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 먼먼 옛날부터 숱한 어머니도 이렇게 했으리라 여겼습니다.





손으로 만지는 삶


  큰아이를 거쳐 작은아이도 천기저귀를 대었습니다. 둘레에서는 ‘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 하고 묻더군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손빨래가 즐거워요.’ 손으로 아기 똥오줌을 조물락거리면서 기저귀랑 이불을 빨면서 웃는 내 모습이 아무래도 아리송해 보일까요? 날마다 기저귀 빨래가 그득하고, 이불까지 사나흘에 한 차례씩 새로 빨아야 했지만, 기계가 아닌 두 손으로 모든 빨래를 하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이 아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갓난쟁이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때때로 물었어요. “얘야, 너도 재미있지? 네 아버지는 어떻게 네가 오줌을 누면 곧바로 알까?” 이무렵,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아이가 기저귀에 쉬를 하는 소리에 잠을 깨서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처음에는 부시시 일어나서 갈았으나 달포쯤 지나고부터는, 누운 채 손만 척척 뻗어서 젖은 기저귀를 풀어서 한쪽에 놓습니다. 다른 한손으로 마른 기저귀를 댄 뒤 척척 이불을 고이 여민 뒤 고요히 쉽니다.


  장마철에는 오줌기저귀가 두 장 나올 적마다 빨고는 곧장 다리미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기저귀가 잘 마르지 않아 밤새 빨래와 다리미질을 했어요. 고지식한지 어리석은지 바보스러운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기저귀를 빨고, 아기 샅을 달래며, 다리미질을 하고 빨랫줄에 널면서 두 손은 차츰 단단히 야뭅니다. 여느 때에도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힌 몸이었는데, 두 아이를 돌보는 사이 내 손바닥은 훨씬 두툼한 굳은살투성이가 됩니다.


  그나저나 왜 손빨래를 할까요? 손빨래를 하면 무엇이 재미있을까요? 도시에서는 그저 ‘빨래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우리 집은 옥탑집이었기에 빨래를 널며 하늘을 바라보는 기쁨이 컸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해와 구름이 우리 옷가지를 보듬어 준다고 느꼈어요. 시골에서 우리 집은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초피나무랑 감나무가 마당을 살그마니 감싸는 예쁜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서도 하늘과 바람과 해와 구름이 우리 옷가지를 보듬는데, 여기에 나무랑 새랑 풀벌레랑 온갖 풀이랑 개구리랑 뱀이랑 나비랑 잠자리가 우리 옷가지를 어루만져 줍니다. 두 손으로 옷가지를 만지고, 우리를 둘러싼 숲동무와 숲이웃이 빨래를 살살 건드립니다.





 손으로 누리는 사랑


  시골물은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합니다. 시골물은 여름에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 추위를 다독입니다. 우리 마을 샘터하고 빨래터는 한겨울에 물이 안 업니다. 한겨울에 물이 따뜻합니다. 어떻게 이러할 수 있을까요? 고이 흐르는 물일 뿐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샘터하고 빨래터가 있어요. 여름이고 겨울이고 늘 물을 만져야 하던 옛 어머니와 할머니는 ‘겨울에도 물이 따뜻한 곳’을 잘 살피셨겠지요.


  빨래터에서 손빨래를 하고, 이동안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라치면, 마을 어르신이 으레 “세탁기 없나?” 하고 묻습니다. 우리 집에도 세탁기는 있습니다. 그러께에 집에 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빨래 기계’는 늘 쉬고, 내 몸이 움직입니다.


  마당이랑 뒤꼍에서 나물이나 남새를 뜯을 적에 아이들하고 함께 두 손으로 풀내음을 맡으면서 뜯듯이, 빨래를 할 적에도 아이들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서 빨래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아이들하고 노래합니다. 온 하루를 함께 누리면서 아이들은 어깨 너머로 사랑을 배우고, 아침저녁을 함께 어우러지면서 서로 믿고 아끼는 이야기를 빚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요 사내인 내가 빨래를 도맡으면서 아버지다움과 사내다움을 한결 씩씩하게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버지요 사내인 나는 스스로 빨래를 하고 밥짓기를 하며 비질이랑 걸레질을 하는 동안 ‘아이를 낳아 누리는 사랑’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내 몸은 아기를 낳지 못하지만, 내 몸은 아이와 곁님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빨래란 어떤 일인가요? 힘을 쓰는 일이지요. 밥짓기란 어떤 일일까요? 슬기를 살리는 일이에요. 비질이랑 걸레질이란 어떤 일이 될까요? 즐겁게 노래하는 일이에요. 기계를 빌지 않고 두 손으로 아기 똥오줌을 주무르며 살기에,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더 또렷이 느낍니다. 손수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기에, 집살림이 흐르는 얼거리를 찬찬히 되새깁니다.


  손빨래는 손으로 누리는 사랑입니다. 호미질이나 삽질이나 못질이나 톱질은 손으로 짓는 살림입니다. 손으로 밥을 짓고, 손으로 밥을 먹어요. 손으로 살가이 쓰다듬고, 손으로 씩씩하게 빨래를 비빕니다. 맑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빨래를 널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4348.6.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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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19 : 주입注入


선생님은 많은 지식의 주입注入을 배격하시고 10대가 된 에밀의 삶에 필요한 지식만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게끔 지도하셨습니다

《성내운-인간 회복의 교육》(살림터,2015) 124쪽


주입(注入)

1. 흘러 들어가도록 부어 넣음

2. [교육] 기억과 암기를 주로 하여 지식을 넣어 줌


 지식의 주입注入을

→ 지식 부어 넣기를

→ 지식 집어넣기를

→ 지식 외우기를

 …



  ‘주입식 교육’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워낙 흔히 쓰니 이 말마디는 관용구처럼 사람들 입에 굳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를 붙여서 말뜻을 잘 헤아리도록 도우려 하는구나 싶은데, ‘주입’을 ‘注入’으로 적는다 하더라도, 말뜻을 잘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말로 ‘부어 넣다’나 ‘집어넣다’로 적어야 잘 헤아릴 만합니다. ‘쑤셔 넣다’나 ‘마구 넣다’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습니다. ‘주입식 교육’은 아이들이 지식을 외우도록 닦달하는 만큼 “지식 외우기”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7.8.물.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선생님은 많은 지식 외우기를 물리치시고, 열 살이 된 에밀한테 삶에 이바지할 지식만 제대로 익힐 수 있게끔 이끄셨습니다


‘배격(排擊)하시고’는 ‘물리치시고’로 손봅니다. “10대(十代)가 된”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열 살이 된”이나 “열 살이 넘은”이나 “열 살부터”로 손볼 수 있습니다. “에밀의 삶에 필요(必要)한 지식”은 “에밀한테 삶에 도움이 될 지식”이나 “에밀한테 삶에 이바지할 지식”으로 손질하고, “완전(完全)히 습득(習得)할”은 “제대로 익힐”이나 “오롯이 배울”로 손질하며, ‘지도(指導)하셨습니다’는 ‘이끄셨습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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