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153. 낮잠 한숨 (13.9.16.)



  물놀이를 하라고 마당에 둔 큰 물통을 비운 뒤 햇볕에 말린다. 시골순이는 햇볕에 따끈따끈 마른 큰 물통으로 슬그머니 들어가서 “아, 따뜻해!” 하더니 팔베개를 하고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늘 한 점 없이 땡볕인 자리이지만 덥지는 않은가 보다. 빨래터에서 실컷 물놀이를 하고 온 뒤이기 때문일까.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를 살랑이고, 멧새가 가만히 노래하는 한낮이 조용히 흐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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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7. 비 오는 날 파를 끊기


  여덟 살 아이도 부엌칼을 쓰고 싶습니다. 아직 여덟 살 아이한테 부엌칼을 손에 쥐도록 하지 않으나, 가끔 작은 칼을 건넵니다. 마당에서 파를 뜯거나 자를 적에 여덟 살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기면서 한 줌 훑어 보라고 말합니다. 비 오는 날 파를 끊으려고 마당을 빙 도는 큰아이를 보고는 다섯 살 동생이 “나도! 나도!” 하고 외칩니다. 여덟 살 큰아이는 동생더러 “너는 아직 안 돼.” 하고 말합니다. “나도 하고 싶은데.” 하고 말하는 동생한테 “그럼 너는 우산 좀 씌워 줄래?”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한테 우산을 받쳐 주면서 칼놀림을 살펴봅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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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도화중학교 청소년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려고 쓴 글입니다.


..


ㄹ 책빛 먹기

24. 문학책을 읽는다



  시는 문학입니다. 수필과 소설도 문학입니다. 희곡도 문학입니다. 시집이나 수필책이나 소설책이나 희곡집은 모두 문학책입니다. 그러면,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희곡이라고 하는 문학에는 무엇을 담을까요? 문학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문학이 될까요?


  모든 문학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면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없이 틀거리(형식)만 시를 닮거나 수필을 닮거나 소설을 닮거나 희곡을 닮는대서 문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이나 무늬만 보면서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이야기를 담을 적에는 틀거리가 엉성하더라도 아름다운 문학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할 적에는 틀거리가 빈틈없더라도 문학이라는 이름조차 안 붙입니다. 커다란 음식점을 보면 길가에 유리 진열장을 마련해서 ‘모조품 요리’를 놓기도 합니다. 참말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은 ‘모조품 요리’입니다만, 이 모조품을 가리켜서 ‘요리’나 ‘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조품’이거나 ‘인형’이거나 ‘거짓’이거나 ‘가짜’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훔치거나 가로채서 뽐내려 할 적에도 ‘거짓’이라고 해요. 이때에는 ‘훔친 것’이라는 이름까지 붙습니다. 이른바 문학에서 ‘표절’이라고 하는 작품은, 겉보기로는 매우 뛰어나 보이기도 할 수 있으나, 표절 작품은 ‘거짓 작품’이거나 ‘훔친 작품’이지요. 다른 사람 작품을 훔치면서 제 이름값을 높이거나 돈을 벌려고 하는 몸짓으로 쓴 글은 ‘문학’이 아닙니다. 한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더라도, 참모습이 드러난 날부터 이러한 글은 믿음을 모조리 잃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지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75년부터 2015년까지 전남 보성에서 집배원으로 일한 류상진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마흔 해에 걸쳐 시골마을 집배원으로 일한 발자취를 손수 찬찬히 적바림해서 《밥은 묵고 가야제!》(봄날의책,2015)라는 책을 선보였습니다.


  시골 집배원이 쓴 책을 놓고 ‘문학’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집배원은 이녁 이야기를 이녁 누리사랑방(블로그)에 올렸을 뿐, 문학잡지에 이녁 글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시골 집배원으로서 쓴 글을 신춘문예 같은 자리에 보낸 적이 없고, 문학상을 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시골 집배원입니다.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 같은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집배원’이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시골 집배원 류상진 님이 쓴 책을 보면, “금메 영남떡이 아니고 율리떡이랑께 그라네!”(27쪽)라든지 “그랄지 알았으문 내가 회령 장터에 있는 택배로 갖고 가서 부치껏인디!”(82쪽)라든지 “금메 그란당께! 딴 집에 더 크고 널룹고 이삔 편지통도 많은디 해필 우리 집 째깐한 통에다 새끼를 까놨당께. 안 쫍은가 몰것네!”(153쪽)라든지 “와따아! 이 사람아, 그란다고 술 한 잔 묵을 시간도 읍서?”(217쪽)라든지 “안 그래도 애기들은 온다 그란디 방은 차디차고, 그라다 우리 손지들 감기라도 걸리문 또 ‘할메가 지름 애낄라고 방에 불도 안 때놨다!’ 그라문 으짜껏이여?”(284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시골마을 할매랑 할배가 집배원 일꾼한테 들려준 말입니다. 시골 집배원으로 일하는 분은 이녁이 늘 마주하는 시골 할매랑 할배가 들려주는 말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은’ 뒤 글로 차근차근 옮겼습니다. 《밥은 묵고 가야제!》라는 책에 나오는 온갖 이야기는 ‘전남 보성 고장말’입니다.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표준말이 아닙니다.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쓰는 서울말은 시골말이 아닙니다. 서울말은 표준말이 되고, 표준말은 서울말이 됩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과 책은 서울말이자 표준말로 나옵니다. 내가 쓰는 이 글도 시골말이 아닌 서울말이거나 표준말입니다. 내 입에서는 시골말이 흐르더라도 내 글은 서울말이거나 표준말이 되어야 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를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밥은 묵고 가야제!》라는 책에 나오는 시골 할매랑 할배 이야기를 ‘전남 보성 시골말’이 아닌 ‘서울 표준말’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시골에서 흙을 부치면서 사는 할매랑 할배가 날마다 빚는 이야기를 ‘서울 표준말’은 어느 만큼 담아낼 만할까요?


  시골 말씨를 써야 꼭 시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다. 시골 말씨가 아니어도 시골 이야기는 얼마든지 잘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겉모습이 아닌 알맹이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껍데기가 아닌 속마음으로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이 따스하기에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보살피는 사랑이 곱기에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이 붙는 문학은, 바로 이 대목을 살필 때에 태어납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따사로이 나누는 이야기가 될 때에 문학이 됩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 틀거리로 알맞게 짜서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가꿀 수 있으면 언제나 문학이 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즐겁게 글로 옮기면 모두 문학이 됩니다. 문학상을 받거나 문학잡지에 글을 실어야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글 한 줄을 쓴 적이 없더라도 ‘입으로 구성지거나 구수하거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삶을 짓는다면, 이때에도 아름다운 문학을 하는 셈입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삶은, 전문용어를 빌자면 ‘구비문학’입니다.


  다만,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나 소식을 입으로 읊는 일은 문학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겪은 일을 내 나름대로 마음으로 삭여서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할 적에 비로소 문학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헤아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이러한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문학책은 종이로 묶은 책으로도 읽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삶으로도 읽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문학을 즐기고, 마을 할매랑 할배가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문학을 맛봅니다.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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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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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5



‘극장 없는’ 시골에는 ‘마당이 있지’

― 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5.5.31.



  시골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영화관이 없고 놀이공원이 없으며 대형마트가 없습니다. 쇼핑센터나 지하철이나 지하상가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이나 빽빽한 아파트숲도 없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들어 지내는 전남 고흥에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도 없고, 시멘트공장 한 곳과 김 공장을 빼고는 공장조차 없습니다. 고흥에는 골프장도 고속도로도 기차역도 공항도 없습니다. 대학교도 없고, 고등학교조차 자꾸 줄어들며, 관광지라고 할 만한 데도 드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시골 놀이터’는 피시방입니다. 피시방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도시로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웁니다. 아니면, 손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텔레비전을 들여다봅니다. 손전화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시골마을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이야기는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신문에 나오는 사건이나 사고나 소식도 도시 이야기요, 방송에 흐르는 예능이나 연속극도 오로지 도시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하루 내내 배우는 교과서는 언제나 도시 이야기일 뿐입니다.



‘나는 따분함이 질색이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거라고는 내겐 통 관심 없는 것들뿐.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든지, 수조 안에 들어 있는 물이 양동에 몇 개 들이라든지, 알 게 뭐람.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건, 어떡하면 따분해 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다. 그리고 나는 그 따분함에게 매일 조금씩 승리해 왔다.’ (22∼23쪽)



  시골에는 ‘도시에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도시에 있는 것이 시골에 모조리 있다면, 시골은 시골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시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골에는 ‘도시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도시에 없는 곳’이 가득한 시골이요, ‘시골에 있는 것’은 도시에 없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맑고 새파란 하늘은 도시에 없습니다. 싱그럽고 깨끗한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바닷물은 도시에 없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도 도시에 없고, 풀벌레하고 개구리가 노래하는 풀밭도 도시에 없습니다. 멧새가 둥지를 트는 너른 터도, 제비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처마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마당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이 더러 있습니다만, 웬만큼 돈이 있지 않고서야 마당을 못 누리는 도시사람입니다. 서울에 천만 사람이 산다는데, 천만 사람 가운데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요?



“전부터 얘기하려고 한 건데, 우리 좀더 안전하고 유익하게 시간을 쓰는 게 어때? 이제 슬슬 관두자고. 담력시험.” (48쪽)

‘분명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말 그럴까? 가르쳐 주느라 힘이 드는 거. 수업이 지연되는 거. 서툰 노래에 맞춰 주는 거.’ (87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는 두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한 아이는 ‘학교하고 집하고 마을에서 지내는 하루’가 너무나 따분해서 미칠 듯합니다. 다른 한 아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삶’을 조용히 누립니다.


  삶이 따분해서 미치겠다고 여기는 아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전학생 아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는 삶’을 따분하게 여기는 나머지,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마음을 안 기울입니다. 삶이 따분해서 미치겠다고 여기는 아이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도 ‘넌지시 전학생 따돌리기’를 하면서 ‘따분한 나날’에 재미를 누립니다.



“오늘은 보청기를 안 끼어서 특히나. 누가 개울에 던져버려서 못 찾았어요. 쇼코 애는 찾아본 것 같지만.” “던져버려요?” “얘, 학교에서 애들이 괴롭혀요. 뭐, 곧 장애 아동을 배려하는 학교로 전학시킬 거지만.” (64쪽)



  학교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이 오직 ‘따분함’ 때문에 벌어진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분함’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분함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사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왜 태어났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스스로 찾지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보람이 없으니 동무를 짓궂게 괴롭히면서 ‘짜릿함’을 느끼지만, 짜릿함은 기쁨이나 즐거움하고 동떨어집니다. 그저 짜릿함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 짙거나 센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서 더 괴롭히고 더 못살게 굽니다.


  못된 동무한테 시달리는 아이가 어떤 마음인가를 알 길은 없습니다. 짓궂은 동무한테 괴로운 아이가 어떤 삶인가를 알 길도 없습니다. 다만,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일삼는 아이가 ‘거꾸로 괴롭힘하고 따돌림을 고스란히 받는 자리’로 바뀐다면, 이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겠지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따분한 삶을 헤쳐 나가고자 소리를 못 듣는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가 거꾸로 괴롭힘을 받으면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고등학교까지 마치는 나날’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짚히는 데가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렴. 다 합쳐 170만 엔쯤 되는 모양이더구나. 물론 너희는 어린이니까, 그런 고가의 보청기 비용을 물어낼 순 없겠지. 지금 솔직히 이야기하면 학교 선에서 해결도 가능하단다. 아버지 어머니께 폐를 끼치는 일 없이 말이다.” (122∼123쪽)



  마당이 너른 시골집에서 온갖 놀이를 누리던 아이들이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갑갑해서 괴로워 합니다. 마당이 너른 시골집에서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지르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던 아이들이 도시로 마실을 가면 답답해서 좀이 쑤시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넓은 아파트에 놀러가더라도 마루에서 못 뛰고 못 구릅니다. 도시에서는 재미난 골목이란 없이 자동차 주차장만 있는데다가 어느 골목에서 자동차가 불쑥 튀어나올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집 바깥에서 하루 내내 신나게 놀 만한 터전이 못 되는 도시 사회입니다. 학교하고 학원에서는 입시교육만 시키는 한국 사회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은 따분하고 괴로운 나머지 피시방하고 손전화하고 텔레비전 아니고는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나마 극장이라도 있으면 좋다고 여기지만, 극장마저 없는 시골에서는 할 일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당 있는 집이라면,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나무를 철마다 다른 숨결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봄하고 여름에는 나비와 나방 애벌레가 깨어나서 꼬물꼬물 기어다니면서 잎을 갉아먹는 몸짓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제비가 잠자리나 나비를 낚아채어 새끼한테 먹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멧골마을이라면 숲이나 멧등성이를 땀흘려 오르내릴 만합니다. 바닷마을이라면 시원하게 헤엄을 치고 모래밭 놀이를 누릴 만합니다. 들마을이라면 들풀을 뜯고 들꽃을 꺾으면서 들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제일 싫다. 나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고독한 것이 아니라고 믿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2 때 처음으로 혼자 나고야까지 갔다. 엄청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바짝 긴장했다. 도착해 보고 알게 된 것은, 돈이랑 배짱만 있으면 의외로 가깝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의외로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180∼181쪽)



  시골에서는 잘사는 집만 마당이 있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는 모든 집이 마당을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땅이 넓은 집만 새파랗게 맑은 하늘을 누리지 않습니다. 모든 시골집이 드넓은 하늘을 누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쐽니다.


  걸음을 옮길 수 있으면 시골에서는 누구나 숲하고 골짜기를 누립니다. 마실을 다닐 마음이 있으면 시골에서는 누구나 바다와 들과 멧등성이를 누립니다. 아무런 마음이 없으면, 도시에서도 삶이 갑갑하고 시골에서도 삶이 답답합니다.


  깜깜한 밤은 그저 깜깜할 뿐 무서울 일이 없습니다. 밝은 낮은 그저 밝을 뿐 안 무서울 일이 없습니다. 밤이 있기에 무더운 여름이 차분히 식습니다. 낮이 있기에 해가 온누리를 비추면서 따스하게 어루만집니다.


  아이들이 씨앗 심는 재미를 느끼고, 씨앗 돌보는 즐거움을 마주하며, 씨앗 거두는 보람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철마다 다른 삶을 느끼고, 다달이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며, 언제나 기쁘게 찾아오는 아침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따분함이란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없으니 그예 따분한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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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76. 2015.6.9. 가만가만 넘기며



  마룻바닥에 바람넣개를 세우고는 그림책을 가만가만 넘긴다. 살그마니 보드라운 손길로 한 장을 넘긴다. 책돌이는 책을 참말 예쁘면서 재미나게 볼 줄 아는구나. 네 손끝에서 이는 바람이 온 집안을 감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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