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67) 타입의


 이런 타입의 옷을 찾아요

→ 이런 옷을 찾아요

→ 이렇게 생긴 옷을 찾아요

 내 타입의 사람이야

→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야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 내 마음을 끄는 사람이야

→ 나한테 맞는 사람이야


  ‘타입(type)’은 영어입니다. 한국말사전에도 이 낱말은 실리고 ‘모양’이나 ‘생김새’나 ‘유형’으로 고쳐쓰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이런 모양인 옷”을 찾고, “내 눈을 끄는 생김새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타입’을 쓰고 싶다면 “이런 타입인 옷을 찾아요”나 “내 타입인 사람이야”처럼 쓸 만합니다.


  영어를 썼기에 말썽이거나 잘못이지 않습니다. 영어를 써도 한국말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얼거리에 알맞게 맞추어야 할 뿐입니다.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얼거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바깥말만 잔뜩 집어넣으면, 말투가 망가지고 말결이 흔들립니다.


  더 헤아려 보면, “이런 타입의 옷”에서 ‘타입 + 의’는 덜어도 됩니다. 굳이 넣을 까닭이 없는데 이 말을 넣으면서 말투가 망가집니다. “내 타입의 사람”이라는 얼거리에서는 ‘타입’이 어떻다고 하는 말이 빠졌습니다. 누군가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나 마음인가를 제대로 밝히지 않으니 말결이 흔들립니다. 4348.7.20.달.ㅅㄴㄹ



미래의 보금자리를 디자인해 줄 그러한 타입의 디자이너들인 것이다

→ 미래 보금자리를 그려 줄 그러한 디자이너들이다

→ 새 앞날 보금자리를 그려 줄 그러한 디자이너들이다

→ 앞으로 살아갈 보금자리를 그려 줄 그러한 디자이너들이다

《빅터 파파넥/현용순,이은재 옮김-인간을 위한 디자인》(미진사,1983)


전형적인 문학 소녀 타입의 아이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나의 독서에 관심을 나타냈다

→ 마치 문학 소녀 같은 아이가 하루 내내 이어지는 내 책읽기를 눈여겨보았다

《채지민-내 안의 자유》(사계절,1999) 31쪽


옛날 동네에서 한문도 좀 할 줄 알던 생원 타입의 노인이다

→ 옛날 마을에서 한문도 좀 할 줄 알던 생원 같은 할아버지이다

→ 옛날 마을에서 한문도 좀 할 줄 알던 생원 비슷한 어르신이다

《서숙-따뜻한 뿌리》(녹색평론사,2003) 111쪽


전혀 다른 타입의 분들이시고, 말씀들 또한 다르지만, 뭐랄까 일맥상통한다고 하지요

→ 아주 다른 분들이시고, 말씀들 또한 다르지만, 뭐랄까 엇비슷하다고 하지요

→ 아주 다른 모습인 분들이시고, 말씀들 또한 다르지만, 뭐랄까 비슷하다고 하지요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33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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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700) 하자 (하자 보수)


 이 책은 분명 멋지지만, ‘하자’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책은 참으로 멋지지만, ‘잘못’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 이 책은 무척 멋지지만, ‘틀린 곳’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하자보수를 하다

→ 잘못된 곳을 고치다

→ 말썽 난 곳을 손보다


  거의 한 묶음처럼 쓰는 ‘하자 보수’입니다. ‘하자(瑕疵)’는 “옥의 얼룩진 흔적이라는 뜻으로, ‘흠’을 이르는 말”이라 하고, ‘보수(補修)’는 “건물이나 시설 따위의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침”을 뜻한다고 합니다. ‘흠(欠)’은 “1.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2. 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3. 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자·흠’은 ‘잘못·모자람·아쉬움·말썽’을 나타냅니다. ‘보수’는 한국말로 ‘고치기·손보기·손질하기·다듬기’인 셈입니다.


  “하자 없는 물건”이라면 “말썽 없는 물건”이나 “멀쩡한 물건”이나 “말끔한 물건”을 가리킵니다. “하자가 있을 경우에는 즉시 보수해 드리겠습니다” 같은 말은 “말썽이 생기면 바로 고쳐 드리겠습니다”로 손볼 만해요.


  ‘하자’라는 한자말은 중국하고 일본에서 두루 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한자말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한결 쉽게 쓸 만한 한국말이 있어요. 말흐름을 살펴서 알맞게 쓸 쉬운 말을 넉넉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4348.7.20.달.ㅅㄴㄹ



조금의 하자라도 발견되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져야 하는

→ 조금이라도 잘못이 보이면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져야 하는

→ 조금이라도 말썽이 생기면 모질게 쓰레기통으로 버려져야 하는

《채지민-내 안의 자유》(사계절,1999) 4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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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큰할매 - 어린이를 위한 인권 이야기 철수와영희 그림책 7
김규정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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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0



할머니 시골집에 송전탑 박는 대한민국

― 밀양 큰할매

 김규정 글·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5.7.17. 12000원



  전깃불을 쓰니, 밤에도 퍽 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있기에, 집안에 온갖 전기제품을 들일 수 있습니다. 전기가 있으니 컴퓨터하고 인터넷을 쓰며, 전기를 누리면서 손전화기나 사진기를 다룹니다.


  전깃불을 안 쓰던 예전에는, 밤에 촛불이나 호롱불을 밝혔습니다. 때로는 일찍 자거나, 때로는 밤눈을 또랑또랑 뜨면서 일했어요. 전깃불로 골목이나 고샅을 밝혀야 길을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전깃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밤눈을 뜨면 됩니다.


  전기가 없던 예전에는 전화가 없어도 편지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넷이 없어도 먼길을 마다 않고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갔습니다. 전기를 먹는 디지털사진기가 없었어도 필름으로 감는 수동사진기가 있었어요.




아침이면 큰할매는 논밭부터 살피러 간다. 왜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하니까 할매가 말했다. “벼는 농부 발소리 듣고 크는 기라. 그마이 부지런해야 댄다.” (15쪽)



  시골에서는 전기가 끊어져도 딱히 근심할 일은 없습니다. 골짝물이 흐르고 샘물이 흐르기에, 동이에 물을 길어서 쓰면 됩니다. 도시에서는 전기가 끊어지면 아파트에서 지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물 한 방울을 못 씁니다. 전기가 없으면 컴퓨터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은 모두 꺼지고, 전기가 없으면 지하철도 버스도 기차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극장도 방송국도 백화점도 야구장도 모두 먹통이 됩니다. 버스는 기름을 먹는다지만, 전기가 없으면 기름집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줄 수 없어요.


  가만히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전기 없이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이 전깃줄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건사하는 살림이 아니라면, 참말 전기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기를 집집마다 손수 빚어서 쓰지 못하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집이든 마을이든 공장이든 큰 건물이든, 저마다 스스로 전기를 빚어서 쓰도록 하면 좋을 텐데, 사회·경제 정책은 으레 우람한 발전소를 짓고 커다란 송전탑을 박습니다. 나라에서만 전기를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제 낮이면 큰할매는 포클레인 그늘에서 쉰다. 할매가 걱정돼 자식들이 모시러 간 날, 송전탑 때문에 사람도, 짐승도, 농작물도 못 견디는 고향을 물려줄 수는 없다면서 할매는 울었다. (25쪽)





  김규정 님이 빚은 그림책 《밀양 큰할매》(철수와영희,2015)를 읽습니다. ‘밀양 큰할매’는 밀양에 사는 큰할매입니다. 아이한테 큰할머니일 수 있고, 밀양 시골마을에서 어른으로 섬기는 큰할머니일 수 있습니다.


  큰할매는 오랜 옛날부터 흙을 일구며 살았습니다. 손으로 돌을 고르고 풀을 뽑고 나물을 뜯고 짐승을 건사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할매(어매) 손길을 받고 학교를 잘 다닌 뒤에 도시로 떠나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짝을 지은 뒤 새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한 번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다시 시골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도시에 그대로 남아서 사무직 노동자나 공장 노동자로 일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면 떠날수록, 도시에서는 집이 모자라고 전기와 상수도가 모자랍니다.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는 아이들이 짝을 지어서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도시에서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니까, 이 흐름에 맞추어 아파트를 더 높이 올리고 찻길을 더 닦으며 전기를 훨씬 많이 써야 할 뿐 아니라, 시골에서 곡식이랑 열매를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국은 식량자급율이 쌀을 빼면 10퍼센트조차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온갖 곡식이랑 열매를 사들입니다.



큰할매를 만나고 오는 길에 아빠가 말했다. “송전탑을 따라가면 그 끝에 핵 발전소가 나온단다.” 핵 발전소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사고가 났던 발전소란다. 다른 나라에서는 위험하다고 핵 발전소를 안 짓는다는데 우리나라는 더 짓는단다. 그래서 저 송전탑이 필요하단다. 서울로 더 많은 전기를 보내려고 말이다. (31쪽)




  나라에서는 밀양에 송전탑을 꼭 박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부에서는 송전탑을 안전하게 짓겠다고 외칩니다. 밀양 시골사람이 쓸 전기가 아니라 큰도시에 넘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써야 할 전기이기 때문에, 큰도시하고 많이 떨어진 외진 시골에 핵발전소를 짓고, 외진 시골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박아야 한다고 합니다.


  서울이나 부산 한복판에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짓는 일은 없습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발전소가 터질까 위험하다기보다, 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이 둘레에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송전탑을 박으면, 송전탑을 박는 돈뿐 아니라, 송전탑을 거치면서 버려지는 전기가 무척 많습니다. 얼핏 보기에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짓고 시골에 짓는 일이 돈을 아끼는 일인 듯 여기지만, 도시에서 쓸 전기는 도시에 발전소를 지어야 옳을 뿐 아니라, 돈도 적게 듭니다. 큰 발전소하고 우람한 송전탑으로 전기를 얻는 사회와 경제는 이제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집집마다 전기를 손수 얻어서 쓰는 흐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더욱이, 송전탑을 박는 시골은 외진 시골이요, 아름다운 멧골이기 일쑤입니다. 한국전력 일꾼은 지도를 펼쳐서 송전탑 박을 곳을 따지기에, 우람한 송전탑은 으레 논 한복판에 섭니다. 아름드리 숲과 멧등성이 한복판에 송전탑이 자꾸 들어서면서, 숲이 망가지고, 산사태가 일어나며, 숲짐승이 죽습니다. 이뿐 아니라 논밭과 농장과 짐승우리 둘레에 송전탑이 서면서 ‘도시사람이 먹는 곡식과 열매와 고기를 거두는 시골 농사’도 나빠지기 마련입니다. 큰 발전소하고 우람한 송전탑을 시골에 세운다고 해서 도시사람이 ‘안전’할 수 없어요. 농약범벅 곡식이 사람 몸에 좋을 수 없듯이, 송전탑 곁에서 자란 곡식이 사람 몸에 좋을 수 없습니다.



산에 있는 우리 큰할매가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부끄럼 많은 옆집 할매, 경운기 운전 잘하는 뒷집 할배, 멋쟁이 이장 아저씨, 우리 할매 말벗 감나무 집 아줌마. 할매 그림에서는 모두가 웃고 있다. (32∼35쪽)




  그림책 《밀양 큰할매》는 시골마을 할머니 한 분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을 알뜰히 가르쳐서 훌륭한 일꾼이 되도록 키운 시골마을 할머니가 늘그막에 고향을 빼앗기면서 아파해야 하는 삶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핵발전소나 송전탑을 반대하는 일은 ‘지역 이기주의’일까요?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가 아닌 시골에 핵발전소를 세우고 송전탑을 박으려고 하는 일은 ‘지역 이기주의’가 아닐까요?


  그러나,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오직 ‘수요와 공급이라는 숫자’만 들여다보는 사회·경제 정책에 매달리는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기를 쓰려면 아름다운 발전 정책을 세워서, 시골하고 도시가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운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투경찰을 앞세워서 발전소하고 송전탑을 후다닥 때려박으면 될 일이 아닙니다. 지역 발전소가 서고, 자립 발전기를 갖추어야 하며, 전기에 덜 기대거나 전기가 없어도 될 삶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골 할매하고 할배를 못살게 구는 정책은 사라져야지요. 군부대를 들여야 한다면서, 고속도로와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면서,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꼭 있어야 한다면서, 정갈하고 조용한 시골을 뒤흔드는 정책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시골이 정갈하고 조용하게 살아야, 도시사람도 몸에 좋은 깨끗한 곡식하고 열매를 먹습니다. 시골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있어야, 도시사람도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습니다. 핵발전소를 옆에 둔 바닷가에 놀러가고 싶은 도시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송전탑이 골짜기나 들 한복판에 우뚝 선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은 도시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생각하는 정치와 경제와 행정이 곱게 설 수 있기를 빕니다. 밀양을 비롯한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 가슴에 큰못을 박는 짓은 이제 사라지기를 빕니다. 4348.7.2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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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걱정



  노는 아이는 옷 걱정을 안 한다. 노는 아이는 놀 생각을 한다. 그러니, 노는 아이더러 옷을 깨끗하게 건사하라고 말하면, 놀지 말라는 뜻이다. 노는 아이가 잘 놀도록, 갈아입을 옷을 잘 챙기거나, 옷이 더러워지면 털거나 곧장 빨아 주면 된다.


  놀 생각이란 얼마나 예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대목을 늘 제대로 바라보면서 알면 된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고 기쁘게 달리며 마음껏 놀 수 있기를 빈다. 4348.7.2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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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82) -의 : 곰팡이의 한 종류


세 명의 사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 사내 아이가 셋 있었습니다

→ 세 사내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토 사토루/햇살과나무꾼 옮김-비밀의 달팽이 호》(크레용하우스,2000) 8쪽


  아주 흔히 잘못 쓰는 보기입니다. ‘명(名)의’를 덜기만 해도 되고, 말짜임을 손질해 주어도 됩니다. ‘명’을 쓰고 싶다면 “사내 아이가 세 명”처럼 씁니다.


산은 나무의 집이다

→ 산은 나무네 집이다

→ 산은 나무가 사는 집이다

《김용택-나무》(창작과비평사,2002) 46쪽


  한국사람은 “아무개네 집”이라는 말을 널리 씁니다.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나무네 집”입니다. “바다네 집”이라든지 “철수네 집”이라 하면 됩니다. “나무가 사는 집”이나 “나무가 모인 집”이나 “나무를 사랑하는 집”처럼 풀어서 써도 됩니다.


송이는 곰팡이의 한 종류로 갓 아래에 있는 주름 부분의 포자에서 후손을 만듭니다

→ 송이는 곰팡이 가운데 하나로 갓 아래에 있는 주름에서 씨앗이 자랍니다

《신응섭-송이버섯 이야기》(여우별,2012) 60쪽


  ‘가운데’라는 말을 넣어야 하는데 ‘-의’를 붙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의사 가운데 하나”처럼 말해야 옳고, “의사의 하나”나 “의사 중의 하나”처럼 말할 적에는 옳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은 오롯이 번역 말투입니다. “주름 부분의 포자” 같은 대목에서도 “주름 부분 포자”나 “주름 부분에서”나 “주름에서”로 고쳐쓸 만합니다. 4348.7.19.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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