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포로 - 송관호 6.25전쟁 수기
송관호 지음, 김종운 정리 / 눈빛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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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에 포로가 된 젊은이

― 전쟁포로, 송관호 6·25전쟁 수기

 송관호 글

 김종운 정리

 눈빛 펴냄, 2015.6.25. 13000원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한겨레는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채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한국은 그저 한국일 뿐이지만,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하는 커다란 나라를 등에 업고서 반으로 쪼개지는 길을 가고야 말았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남·북녘으로 쪼개지기를 바라지 않던 독립운동가는 해방 뒤에 하나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어야 했고, 남녘과 북녘에서 저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이녁 힘을 더욱 키우려고 끝없이 숙청을 일삼았습니다. 이리하여 남녘하고 북녘은 ‘사회 얼거리’하고 ‘정치 틀’이 사뭇 다르다고 하는 두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 나라’가 ‘두 나라’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두 나라를 이룬 ‘여느 사람(일반 시민)’은 정치 틀이나 사회 얼거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1940∼50년대만 하더라도 남녘과 북녘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일구었습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말이 살갗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저 한겨레이고, 이웃입니다. 남녘에서 군대로 끌려가거나 북녘에서 군대로 끌려간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남녘 군인이니 북녘에 있는 한겨레하고 이웃을 ‘죽여도 될 만한 놈’으로 여겼을까요? 북녘 군인이니 남녘에 있는 한겨레하고 이웃을 ‘하루아침에 나쁜 놈’으로 바라보았을까요?



행군 도중 우리 일행 다섯은 하도 배가 고파서 길가 무밭에서 무를 뽑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적기가 나타나 기총사격을 해 왔다. 우리 모두는 재빨리 밭두렁에 엎드려 꼼짝도 않고 죽은 체하였다. (55쪽)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인민군 전사들이 차에 치어 신음하는 부상병을 치료하기는커녕 바로 그 자리에서 총창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군을 재촉하여 원산 방향으로 전투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모습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이유를 들어 본즉 사랑하는 전우이지만 중상을 당한 그들을 후방으로 후송할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놔두면 적군에게 포로가 될 것이므로 불가피하게 죽인 것이라고 했다. (57쪽)



  송관호 님이 남긴 글을 갈무리해서 책으로 묶은 《전쟁포로》(눈빛,2015)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북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송관호 님은 북녘에서 인민군으로 끌려갔다가 몸이 튼튼하지 않아서 싸움터로 나가지는 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끝내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북진하는 남녘 군인’한테 붙잡혀서 포로가 됩니다.


  포로가 된 송관호 님은 실컷 두들겨맞은 뒤 부산으로 갔고, 부산에서 거제도로 옮겨서 ‘포로 스스로’ 포로수용소를 짓는 일을 합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나는 날을 맞이하고 난 뒤에는 북녘 고향으로 가지 않고 남녘에 남습니다. 북녘에서 다른 인민군이 동료 인민군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모습을 보고는, 또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포로 스스로 좌익하고 우익으로 갈려서 서로 괴롭히거나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북녘 고향집으로 갈 엄두를 못 냅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녘에서 어쨌든 살아남자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피난민 하나가 산으로 오르다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아래서는 치안대가 애국자를 죽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질 행동을 저지르고 있어요. 지금 위대한 애국투사들이, 혁명가들이 죽어 가고 있어요. 나도 죽을 걸 피해 간신히 도망쳐 있어요.” 그는 치를 떨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인민군이었던 나도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87쪽)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그곳에서 한국군과 헌병을 보았는데 여기저기서 개머리판이 마구 날아와 사정없이 온몸을 후려쳤다. 개머리판에 이어 총구로도 찔렀다. 얼마나 아픈지 처음에는 입이 딱 벌어져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 귀순하면 국군이 환대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죽어라 매타작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91, 92쪽)



  전쟁수기인 《전쟁포로》에 나오는 이야기는 역사책에 한 줄로도 안 나옵니다. 역사책은 송관호 님 같은 사람이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책은 여러 지식인이 여러 자료와 책을 바탕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전쟁수기 《전쟁포로》에 나오는 이야기는 ‘정치권력하고는 한 번도 줄이 닿은 적 없는 여느 사람’인 송관호 님이 한국전쟁 싸움터에서 기적처럼 살아남고, 또 인민군과 국군으로 지내야 하면서도 놀랍게 살아남은 뒤, 이녁 스스로 이 이야기를 남겨야겠구나 하고 느껴서 혼자서 남긴 글입니다. 책으로 나올는지 안 나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남긴 글입니다. 그래서 《전쟁포로》를 읽다 보면, 남녘이나 북녘이 서로 똑같이 ‘이념에 휩쓸려서 사람다운 삶을 잃거나 놓친 대목’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서로 ‘이웃’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죽이려고 합니다. 서로 ‘적’으로 바라보니까 온갖 욕지꺼리를 늘어놓으면서 두들겨패려고 합니다.


  북녘 군인은 북녘 군인대로 남녘 군인을 죽이려 합니다. 남녘 군인은 남녘 군인대로 북녘 군인을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서로 군인옷을 벗고 마주하면 ‘똑같은 한겨레’입니다. 이름을 트고 고향을 묻다 보면, 서로 알 만한 사이입니다. 군인옷을 입은 채 서로 적으로 마주해야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인’을 저질러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 슬픈 벼랑으로 굴러떨어져야 합니다.



북으로 간 친구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가 좋아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족이 그리워서 북으로 간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남에 남기로 한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북으로 송환되더라도 “포로가 되어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하고 위로하며 우릴 가족의 품으로 절대 돌려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167쪽)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인민군이 무력이 강하고 사상이 강해 모든 면에서 국군보다 우월하여 초기에 남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무슨 말이냐고 반문을 했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나라를 예속시키기 위해 동족 간에 사상 싸움을 일으키어 전쟁이 나게 한 후 쌍방을 강대국에게 예숙시켜 민족주의 애국자를 제거하고 자기 앞잡이들을 내세워 정권을 잡게 한 후 그를 지원하면서 동족을 죽이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숙청하여 분단을 영원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대국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180쪽)



  한국이라는 나라가 둘로 갈라져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만 둘로 갈라졌습니다. 둘로 갈라지는 동안, 남·북녘(이 아닌 그냥 한국)에서 저마다 씩씩하고 훌륭히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해방공간에서 참다운 평화를 바라던 이들은 하나씩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독재정치가 이루어집니다.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군사주의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군대만 얄궂게 커집니다.


  《전쟁포로》를 쓴 송관호 님은 ‘국가권력에 포로가 된 젊은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저 ‘한국사람’일 뿐이고, ‘한겨레’일 뿐이지만, ‘전쟁포로’라고 하는 뜬금없는 이름을 얻어야 하던 슬픈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이 나라에는 ‘전쟁영웅’이라고 하는 여러모로 안타까운 사람이 함께 생겨야 합니다. 적군을 많이 죽인 이를 가리켜 전쟁영웅이라고 하는데, 남·북녘이 서로 맞붙어서 죽이고 죽인 ‘적군’이란 누구였을까요? 바로 우리 이웃이요 한겨레입니다.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은 남녘이나 북녘으로 갈라져서 저마다 다른 정치나 사회인 듯이 내세웠지만, 막상 남녘하고 북녘에서 살던 여느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닙니다. 정치 틀이 이렇다고 해서 사람까지 그렇게 달라질 수 없습니다. 사회 얼거리가 저렇다고 해서 사람까지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나는 거기(전남 해남 시골마을)서 추석을 맞이했다. 주민들이 모처럼 좋은 음식을 차려 단정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았는데, 불과 삼사 년 전에 좌익 또는 우익으로 몰려 무더기로 죽은 사람들 제사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유족들이 서로 천추의 한을 품고 원수 대하듯 할 만도 한데, 서로 반목하지 않고 다정히 정을 나누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아, 저렇게 순진하고 착한 농민들을 어째서 전쟁 따위로 서로 죽게 하였단 말인가?’ 하고 시절을 원망했다. (209쪽)


우리 중대는 “대통령에게 이 박사를 찍어 줘라”라는 지시로 대부분 이승만에게 투표를 했다. 후에 다른 중대가 투표하러 내려왔다가 다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해서 투표도 못하고 그냥 올라갔다. 알고 보니 표를 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것으로 찍어 놓고 올라가라고 한 것이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 후보를 물리치고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90쪽)



  《전쟁포로》 끝자락을 보면, 1950년대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1990년대 부정선거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어떤 부정선거인가 하면, 나는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에서 전역을 했는데, 바로 이무렵 1997년에 대통령선거를 했습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 군인은 ‘군 부재자 선거’를 했습니다. 그런데, 군 부재자 선거를 어떻게 했느냐 하면, 비무장지대에 있던 부대마다 ‘휴지상자’를 ‘투표함’으로 만들어서 했습니다. 소초마다 빈 휴지상자를 하얀 종이로 감싸서 구멍을 냈고, 철책에 있던 군인들은 ‘투표용지’를 이 휴지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이 휴지상자를 중대본부에서 거두었고, 행정보급관이 모아서 이녁 자가용에 싣고 대대로 가져갔지요. 대대에서는 또 이렇게 ‘부대마다 휴지상자로 만들어서 투표용지를 모은 투표함’을 모아서 연대로 가져가고요.


  ‘휴지상자 투표함’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제대로 건넸을까요? ‘휴지상자 투표함’에 담긴 투표용지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투표용지’였을까요?


  평화를 바라지 않은 국가권력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민주를 생각하지 않는 정치권력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평화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포로가 된 사람도, 영웅으로 훈장을 얻은 사람도, 희생이 된 사람도, 모두 우리 이웃입니다. 한겨레는 서로 아낄 이웃이지,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한국 사회부터 평화와 민주가 자라서, 지구별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삶을 일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7.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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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번 토요일에 강원도 영월에서 동강사진축제에 간다. 일요일 아침에 강의를 하나 맡았기 때문이다. 발제 글은 썼는데, 발제 글에 붙일 뒷글을 아직 마무리짓지 못했다. 쉬 쓸 수 있겠거니 여겼으나, 생각처럼 쉬 나오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잊혀지거나 숨겨진 사진책 이야기를 짤막하게 쓰려는데, 외려 짤막하게 쓰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동강사진축제에서 ‘사진책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한테 뜻있고 알찬 숨결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수요일 아침까지 잘 마무리를 지어야지. 기운을 내 보자. 4348.7.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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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2


 산책(散策)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산보(散步) : 바람을 쐬거나 쉬기 위하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일


  흔히 ‘산책’은 한국 한자말로 여기고, ‘산보’는 일본 한자말로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국사람은 ‘산책’이라는 한자말을 즐겨쓰고, 일본사람은 ‘산보’라는 한자말을 즐겨씁니다. 그런데, 두 나라에서 이 한자말을 즐겨쓴다고 하지만, 한국사람은 예부터 ‘산책’이 아닌 ‘마실’이나 ‘마을’이라는 한국말을 널리 썼어요.


 마실 가다 . 마을 가다 . 나들이 가다


  조선이나 개화기 언저리에 여러 지식인은 언제나 한문으로 글을 썼어요. 이들은 ‘마실·마을·나들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자말 ‘산책’을 썼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아픈 나날을 겪을 적에 일본사람이 널리 쓰는 ‘산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에 한국말로 문학을 하던 이는 ‘마을·마실·나들이’ 같은 낱말로 글을 씁니다. 글을 쓰거나 문학을 하지 않는 여느 한국사람은 언제나 ‘마을·마실·나들이’ 같은 한국말을 씁니다. 요즈음은 시골에만 남은 ‘마을·마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도시에서도 ‘마을·마실·나들이’ 세 마디가 찬찬히 되살아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서로 아끼고 보듬는 옛 마을살이를 도시에서도 되찾으려고 애쓰는 이들이 ‘마을 만들기’나 ‘마을 가꾸기’를 하면서 ‘마실 가다·마을 가다’ 같은 말을 두루 씁니다. 아무래도 ‘마을’을 새로 가꾸거나 사랑하려 하니까 ‘마을·마실’ 같은 낱말을 더 살뜰히 쓸 테지요.


  남녘에서는 ‘산책’을 흔히 쓴다 하고, 북녘에서는 ‘산보’를 흔히 쓴다 하는데, 앞으로는 남북녘 모두 한국말 ‘마을·마실·나들이’를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7.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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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에 실으려고 써 둔 글이었지만, 이 글은 안 싣기로 하고 다른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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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고갯마루 넘는 자전거



  언제나처럼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며 마실을 다니다가 문득 돌아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전거를 좋아하는가 하고. 자동차가 길을 누비면 배기가스도 나오고, 자동차를 만들기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자원을 쓰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내 어릴 적 일을 떠올리면, 자동차가 멀쩡한 빈터에 설 적에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동무들하고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자동차에 맞으면, 마을에서 ‘자동차 임자인 아저씨’나 ‘아저씨네 아주머니’가 어느새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주먹을 흔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는 꽁지가 빠져라 내뺍니다. 자동차가 골목을 지나가면 모든 놀이를 멈추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모는 어른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이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나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골목을 에둘러서 큰길로 가는 어른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홀가분하게 놀도록 자동차는 ‘주차장이나 큰길’에 대고 걸어서 골목을 지나가려는 어른도 매우 드뭅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우리 마을 뒷산인 천등산(553미터)을 넘기로 하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전거를 몰면서 아이들하고 마실을 다니는가 하고. 자동차를 장만해서 몰면 한결 멀리 다닐 만합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아이들은 차에서 새근새근 잠들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몰면,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들 수 있으나, 큰아이는 샛자전거를 함께 밟아야 하니 쉬거나 잠들지 못합니다. 내 젊은 날을 떠올리면, 신문을 돌리려고 새벽 두 시부터 골목을 누비면서 집집마다 돌며 바람을 가르던 맛이 몹시 싱그러웠습니다. 겨울에는 손발이랑 샅이 꽁꽁 얼어붙어 눈물바람으로 신문을 돌리고, 장마철에는 몇 시간이고 비에 젖으면서 신문을 돌립니다. 그래도, 철마다 새롭게 밝는 하늘을 보면서 즐거웠고,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가볍게 밟을 적에 새벽동을 바라보는 일이 기뻤습니다.


  마저리 키난 롤링즈 님이 쓴 《아기 사슴 플랙》(시공주니어,1998)이라는 오래된 동화책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아기 사슴’이나 ‘아기 고슴도치’나 ‘아기 여우’를 만날 만한 시골아이도 도시아이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이런 동화책을 쓸 만한 사람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미국에서는 어떠할까요? 아무튼, “바다가 비롯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바다가 이곳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은 조디만이 알고 있었다. 야생 동물들과 목마른 새들을 빼놓고는 아무도 이곳에 온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자 조디는 가슴이 뿌듯해졌다(13∼14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밑줄을 긋습니다. 깊은 숲에서 사는 아이 조디는 밭일을 하다가 어머니 몰래 일손을 놓고 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놀러간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샘가에 엎드려서 숲짐승하고 저하고만 아는 이 멋진 곳을 생각하면서 기쁘게 웃는다고 해요.


  두 아이를 이끌고 뒷산을 넘는 자전거마실을 하며 생각합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 숲길이나 고갯길을 자전거로 넘는 사람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이곳을 두 다리로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 고장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 가운데 이 숲길이나 고갯길을 오르내리면서 노는 기쁨을 누리는 숨결은 몇이나 될까요?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우리 아이들을 빼고는 아무도 이 길을 밟는 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세계를 읽다’ 가운데 한 권으로 나왔다고 하는 《이탈리아》(가지,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탈리아에 나들이를 가고 싶어서 읽지는 않습니다. ‘세계를 읽다’라고 하니, 이탈리아를 읽으면서 내가 사는 이 고장을 새롭게 읽는 눈썰미를 밝힐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빅맥을 먹으러 이탈리아까지 간 것은 아니지 않은가(23쪽)?” 같은 대목을 읽다가 하하 웃습니다. 그러게요. 이탈리아이든 크로아티아이든 일본이든 대만이든, 우리가 다른 나라로 나들이를 간다면, 그 나라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들르러 가지는 않아요. 패스트푸드 가게라는 곳은 지구별 어디에 있어도 똑같은 먹을거리를 내놓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콜라는 남다른 맛이라 할는지 모르나, 콜라는 어디에서나 그저 콜라입니다.


  아침에 마당에서 모시잎을 훑어서 밥을 짓습니다. 모시잎으로 떡을 찌어 먹기도 할 뿐 아니라, 밥을 지을 적에 살포시 얹어서 먹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밥이 어느 만큼 익을 무렵 밥솥뚜껑을 열고 모시잎을 얹어 보았습니다. 모시잎을 얹어서 밥을 지으니, 여느 때에는 볼 수 없던 반지르르한 기운이 밥알에 돕니다. 모시잎을 말려서 가루로 빻은 뒤 처음부터 밥물에 타서 밥을 지으면 밥알빛이 매우 새로우면서 구수하다고 해요.


  아이들하고 모시밥을 먹고 새삼스레 기운을 냅니다. 시골마을에서 시골밥을 먹으며 시골사람답게 시골마실을 다닙니다. 두 아이를 이끌고 숲이며 골짜기이며 누비느라, 우리 집 자전거는 바퀴가 빨리 닳고 안장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우리 집 자전거는 성한 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씩씩하게 골골샅샅 달립니다. 오르막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내리막에서 신나게 바람을 가릅니다. 오르막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다리를 쉬는 동안 온갖 새가 지저귀는 노래하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상큼한 노래를 듣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깃들면 냇물이 흐르는 냇바닥에 들어가서 드러눕습니다. 풀밭에도 드러눕고, 커다란 돌에도 드러눕습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곳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춥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고, 어른은 어른대로 놉니다. 마음껏 놀아요. 아름답고 짙푸른 한여름에 고갯마루를 넘어 숲으로 자전거를 달리면, 자전거는 힘들다며 끼익끼익 소리를 내지만, 숲 한쪽에 가만히 눕히면 자전거도 나란히 숲바람을 쐬면서 좋구마 하고 단잠에 빠집니다. 4348.6.17.물.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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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놀이 5 - 물줄기가 몽글몽글



  마당에서 하던 물총놀이를 도랑과 흙이 있는 자리라면 어디에서나 신나게 한다. 논둑길을 걸으면서도 물총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도랑에서 물을 채워 더운 여름날을 시원하게 즐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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