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35] 셋이 함께



  너랑 나랑 있으니 ‘둘이 함께’입니다. 너랑 나에다가 그 사람이 있으니 ‘셋이 함께’입니다. 우리는 ‘넷이 함께’ 있기도 하고, ‘다섯이 함께’나 ‘여럿이 함께’ 있기도 해요. 셋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일컬어 ‘삼위일체’라고도 하는데, 세 사람이나 세 가지가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그대로 “셋이 함께”라 할 만하고, ‘셋이함께’처럼 적을 수 있어요. 또는 “셋이 한몸”이라든지 “셋이 하나”처럼 말할 만합니다. 세 사람은 어떤 삶일까요? “셋이 한삶”을 이루거나 “셋이 온삶”을 이룰 수 있어요. 세 가지는 어떤 숨결일까요? “셋이 한노래”이거나 “셋이 한줄기”로 흐를 수 있습니다. 4348.7.2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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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197



삶을 사랑하는 책 한 권이 여기에 있으니

― 책으로 가는 문

 미야자키 하야오 글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2013.8.8. 13000원



  나는 맨발로 다니기를 즐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기를 즐깁니다. 맨발로 땅을 디디면 발바닥을 거쳐서 땅바닥 기운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이때에 이 지구별이 어떤 숨결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맨발로 풀밭이나 마당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지구별도 사람처럼 콩닥콩닥 숨을 쉬네 하고 느낍니다.


  지구별이 숨을 쉬는구나 하고 느끼면, 우리가 사는 이 별에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없습니다. 사람과 똑같이 숨을 쉬는 지구별이네 하고 느낄 적에는, 우리가 사는 이 별에 아름다운 바람이 볼 수 있도록 슬기롭게 하루를 짓자는 생각이 듭니다.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합니다. 꿈을 꾸는 넋으로 아이들하고 보금자리를 가꾸자고 생각합니다.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몸짓으로 빨래를 하고 밥을 짓자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모든 날은 기쁨이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처음으로 다 읽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말로 내뱉으면 소중한 뭔가가 빠져나가버릴 것만 같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습니다. (18쪽)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작은 비할 데 없이 멋진 이야기입니다. 학창 시절 저는 이웃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푸우 이야기를 읽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음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36쪽)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쓴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님이 어릴 적에 읽은 여러 동화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뒤에, 요즈음 아이들한테 ‘이런 아름다운 책을 읽어 보지 않겠니?’ 하고 알려주는 책입니다.


  쉰 권에 이르는 책을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줄거리를 밝히거나 교훈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쉰 권에 이르는 책을 ‘어른으로 선 오늘’에 되새기면서 ‘아이로 있는 이웃이 오늘 누릴 꿈’을 북돋우려고 하는 말마디가 흐릅니다.



이 사람의 작품은 모두 보물입니다.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됩니다. 찬찬히 몇 번이고 읽고, 소리 내서 읽고, 그러고 나서 마음에 울리는 것이나 전해 오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며칠 지난 후에 다시 읽고, 몇 년 지나고 나서도 읽고, 잘 일지도 못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생각이 들고 (46쪽)


저자는 정신의 광채 같은 것을 지닌 사람인 듯합니다. 무척 선량하고 지혜로우며 단단하고 반짝반짝하며 따뜻합니다. (51쪽)



  곰곰이 헤아려 보면, 모든 어린이문학(동화책, 동시집)은 어른이 아이한테 베푸는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 책을 많이 사서 읽어서 돈을 잘 벌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문학상을 타야지!’라든지, ‘작가로서 이름을 드날려야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오늘 아이로 사는 이웃한테 오늘 하루를 마음껏 누리면서 기쁘게 뛰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온몸을 움직여서 뛰노는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쁘게 웃기를 바라기에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한참 뛰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땀을 훔치면서 책 한 권을 살며시 펼치기를 바라면서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몸을 가꾸고 마음을 돌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라기를 바라니 어린이문학을 씁니다.



아이들 놀이 세계는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없습니다. 공간에도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나카가와 리에코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몇 번이나 서로 울리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손을 잡고 돌아갑니다. (99쪽)



  삶을 사랑하는 책은 온누리 곳곳에 있습니다. 책이 된 나무가 자라는 숲도 아름다운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무를 베어서 종이를 얻은 뒤에 글씨를 잉크로 박아서 넣을 때에만 책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푸른 바람이 살랑이는 숲도 통째로 책입니다.


  나무에 둥지를 튼 멧새도 책입니다. 숲에서 날갯짓하는 나비도 책입니다. 나무 둘레에서 곱게 피어난 들꽃도 책입니다. 두더지와 지렁이도 책이요, 구름하고 빗물도 책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날씨를 헤아리던 옛사람 매무새도 책을 읽는 몸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서 모시옷을 짓던 옛사람 살림살이도 책을 읽는 몸짓이라고 할 만해요.


  씨앗을 심어서 거두던 몸짓이 오롯이 글쓰기에다가 책읽기입니다. 밥을 지어서 차리는 어버이 손길은 옹글게 글쓰기이면서 책읽기입니다. 자장노래를 부르고, 이불깃을 여미며, 젖을 물리는 어버이 손짓도 사랑스레 글쓰기이면서 책읽기예요.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55쪽)



  《책으로 가는 문》은 ‘책으로 가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인 ‘종이책 읽기’를 다룹니다. 어린이문학을 쓴 수많은 어른이 저마다 어떤 사랑을 글 한 줄에 담았는가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이 기쁜 선물을 반가이 받아들이면서 너른 꿈을 그득그득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이들한테 선물인 어린이문학은 어른한테도 선물입니다. 명작동화나 고전동화가 아닌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함께 누리는 어른이 되어 보셔요. 어린이하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해맑은 웃음으로 노래하는 어른이 되어 보셔요.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어른이라면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이라면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나 핵무기에는 눈길 한 번 안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을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어른이라면 모든 거짓을 지구별에서 활활 불태워서 모든 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힘쓰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읽을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따사롭고 넉넉하게 빚은 선물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한테도 삶을 사랑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산들바람 같은 선물입니다. 4348.7.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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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려는 꿈



  그리려는 꿈이 있어야 생각이 자란다. 생각이 자라야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가 나와야 삶을 이룬다. 삶을 이루어야 마음을 짓는다. 마음을 지어야 하루가 즐겁다. 하루가 즐거워야 웃음이 샘솟는다. 웃음이 샘솟아야 노래가 흐른다. 노래가 흘러야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서로 어깨동무를 해야 가만히 손을 맞잡으면서 새롭게 꿈을 꾸는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그리려는 꿈이 없으면 생각이 못 자란다. 생각이 못 자라면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가 없으면 삶을 이루지 못한다. 삶을 못 이루면 마음을 못 짓는다. 마음을 못 지으면 하루가 따분하다. 하루가 따분하니 웃음하고 동떨어진다. 웃음하고 동떨어지니 노래를 도무지 모른다. 노래가 도무지 안 흐르니 서로 등을 돌린다. 서로 등을 돌린 채 시끄럽게 다투면서 다시금 따분하면서 미움만 넘치고야 만다. 4348.7.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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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 글쓰는 사람



  ‘말하다’는 한 낱말이다. ‘글쓰다’는 한 낱말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고, 글쓰는 사람은 이 지구별에 생긴 지 얼마 안 된다. 아스라하구나 싶도록 오랫동안 사람은 누구나 말을 했다. 아니, 사람이라면 마땅히 말을 하면서 삶을 지었다.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모두 삶이었고, 꿈이나 사랑은 언제나 말로 꽃피웠다고 할 만하다.


  글이나 책이라고 하는 문화나 문명은 역사가 대단히 짧다. 게다가 수많은 글이나 책은 요 천 해나 이천 해 사이에 몇몇 사람 손에서 태어나고 몇몇 사람 손에만 읽혔을 뿐이다. 글이나 책이 지구별 사람한테 두루 퍼진 지는 기껏해야 백 해쯤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지구별에서는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글(서류)을 만지작거리는 솜씨를 가르치는 학교가 대단히 많고, 웬만한 사람은 글(문서)을 오물조물거리면서 돈을 번다. 숱한 공무원과 회사원은 ‘글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옛날에 처음 태어난 ‘말’을 다루는 ‘글’이라고 할까.


  시골에서 땅을 짓는 사람(말)이 있기에, 도시에서 회사를 꾸리거나 정치를 엮는 사람(글)이 있다. 대통령이건 시장이건 재벌 우두머리이건 의사이건 법관이건, 시골지기(말)가 있기에 비로소 이들은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먹고산다. 그런데, 시골지기(말)가 사라지면 어찌 될까? 그때에도 도시에서 문화나 문명이 버틸 수 있을까?


  말이 있어야 글이 있다. 말이 없이 글이 있을 수 없다. 한국말이 있으니 이를 한글로 담는다. 한국말이 없다면 한국사람으로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말(시골과 숲과 사랑)을 살피지 않고 글(도시와 문명과 기계)만 주무르며 이론과 지식을 퍼뜨리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 말은 모르는 채 글만 뚝딱거리는 책을 손에 쥐는 사람도 자꾸 늘어난다. 말은 아예 잊은 채 글만 붙잡는 사람도 자꾸 생긴다. 삶이 없이 읊는 글은 문학도 철학도 종교도 정치도 교육도 안문도 되지 않는다. 4348.7.2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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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인천을 떠나 영월로 갈 때이다.

인천에 있는 형네 집에서
하룻밤 고맙게 묵었다.
아이들도 잘 놀아 준다.
배는 안 고프리라.
또 시외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야 하니
뱃속을 가볍게 하면서 가야지.

영월에서는 이틀을 보내기로 했는데
참말 잘 한 생각이로구나 싶다.
느긋해야지.

영월에서 이틀을 아름답게 누리려 한다.
얘들아, 우리 노래하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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