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놀 > 알라딘서재는 '막말'을 일삼아도 되는 곳인가?



누가 누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수로울 일은 없습니다.

다만, 알라딘서재에서

다른 서재이웃을 놓고

"존나게 해서" 같은 비속어를 쓰면서

깎아내리는 말을 그냥그냥 해도 되는지는 궁금합니다.


알라딘서재 서재지기 님한테 여쭙습니다.

알라딘서재에서 이런 인신공격 글을 버젓이 올려도 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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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31 10:06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안그래도 님이 어찌 생각하실지?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숲노래님!
그냥 제생각을 조금 말씀드리자면요 페이퍼에 작성된 글도 문제시 되지만 댓글들에 달린 인신공격성 글들과 야유,조롱,욕설을 혹시 보셨습니까?
저는 그런글들도 더욱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빈번하게 봐오는 논쟁들이라 애써 찾아보지 않다가 저의 이웃님들이 거론되기에 무엇인가?싶어 건너 건너 댓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ㅜ

(처음엔 이런상황들이 정말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한 사람을 여럿이서 집중공략하는지도 이해가 안됐구요 아마도 서로의 감정들이 오랫동안 쌓여있어서 그런 것인가?추측만 할뿐입니다)

저는 올리는 페이퍼나 리뷰의 글도 중요하지만 댓글의 글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주로 주고 받는 사적인 댓글속에서 그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판단하곤 합니다
그사람의 글은 참 좋습니다 헌데 어떤 곳에서의 댓글에선 실망할때도 더러 있습니다(아~물론 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댓글 올리는게 주제넘을 수도 있겠어요ㅜ)

한수철님은 분명 인신공격 글을 쓰신 것은 크게 잘못했습니다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지~~왜 실명을 거론한 것일까?아직도 수철님의 그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한수철님은 사적인 댓글에서는 아직 인신공격용 글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르게 수철님의 글보다는 실제 모습의 다른 인간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숲노래님을 보는 시선으로 한수철님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제눈이 틀리지 않았다면요!) 헌데 몇몇분들은 어쩌면 제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그속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상처를 주는 것인가?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글 못지않게 저런류의 댓글들도 저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빨리 논쟁이 끝나 더이상 상처받는 사람이 없었음 싶네요

파란놀 2015-07-31 12:1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저는 사람을 믿으면서 살지 않습니다. 누구이든, 그저 `바라보면`서 삽니다. 나는 나대로 바라보고, 곁님과 아이들은 곁님과 아이들대로 바라봅니다. 훌륭하다는 분은 훌륭하다는 분대로 바라보고, 어설프거나 바보스러운 사람은 이런 대로 바라봅니다.

`믿고 안 믿고`는 가치판단을 하는 눈길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누구를 믿거나 안 믿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바라보거나 지켜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수철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분 서재에 들어가 본 일도 없으나, 이번에 다른 서재이웃님 글을 읽다가 그 이웃님 글에 한수철이라는 분이 댓글을 붙여서, 이런 댓글을 쓰는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숲노래라는 알라딘 서재쟁이 가운데 한 사람을 ˝존나게(좆나게)˝ 싫어한다고 하는데, 이 댓글은 밤에 술을 한잔 걸치고 썼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지만, 한수철이라는 분은 이녁 블로그에 똑같이 이런 글을 다시 썼더군요.

인신공격이란 `남을 해코지`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모든 인신공격은 언제나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공격하는 노릇이 될 뿐입니다.

잘못이고 안 잘못이고를 따질 일은 없다고 느껴요. 그런 댓글을 쓴 사람이 스스로 잘못이라고 느낀다면, 제 알라딘서재에 들어와서 사과글을 남긴다거나 해명을 댄다거나 핑계를 댄다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모습을 보이거나 하겠지요.

한 사람이 `이런 글에서는 괜찮`고 `저런 글에서는 얄궂`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누군가 이런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면 `이중성`이 될 테고, 겉과 속이 다른 셈이 될 테지요. 이 사람한테는 착하되 저 사람한테는 나쁘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진보논객이든 수구논객이든 `데이트폭력`은 언제나 `데이트폭력`입니다.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 인기작가이든 무명작가이든 `표절`은 언제나 `표절`입니다.

책읽는나무 님이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이 고맙습니다. 이렇게 따스한 눈길을 받으면서, 알라딘서재에서 글을 쓰는 모든 이웃님들이 마음 가득 사랑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책읽는나무 2015-07-31 11:55   좋아요 0 | URL
`원인`과 `결과`를 놓고 판단하기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너무 헛갈리고 어렵습니다
마음이 이리 쏠렸다가 또 다음날은 저렇게도 쏠립니다
저는 지금 `결과`만을 놓고,그분의 댓글의 인신공격과 비아냥을 보고 겉과 속을 다르게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님의 댓글을 읽고 이런글에서는 괜찮고 저런글에서는 얄궂을 수없다는쪽으로 마음을 돌리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힘든데 선입견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의심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잊혀지지 않던 비아냥거리던 댓글들을 머리속에서 지우겠습니다

`원인`이 나쁘다,
`결과`가 나쁘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단계입니다
책임을 묻는 과정들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니까 일은 해결되는 것이 맞는데 해결되어 가는 과정들이 당사자들(연관된 다른사람들도 포함입니다)의 고민이 읽혀 아파보입니다

(그리고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분의 글들에서 해명을 하셨고,사과도 하셨는데 장소가 중요하겠습니까?
정중하게 숲노래님께 찾아오는 것이 맞긴하지만 그분이 자신의 페이퍼에 올리는 것이 더 정중하다고 여겨 올렸다면 받아들이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거론되신 세 분 모두와 잘 해결되었음 바라마지 않는데 어찌될지는!!)

그리고 그마지막 문구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어쩌면 글과 실제모습이 다른 참으로 이중적일 수있습니다 칭찬은 고맙지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이기적이고 어쩌면 비겁하느 성격이라 그칭찬을 받들기엔 그릇이 작습니다

그저 저는 님이 제뜻을 오해하지 않으시고 조곤조곤 답변을 들려주시니 내생각들과 비교해볼 수있어 고맙습니다

더워서 아이들이 뛰놀려면 땀이 또 많이 흐르겠습니다 보신 되는 것으로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시어 건강하게 뛰노는 아이들 모습 오랫동안 지켜보게 해주십시오^^




파란놀 2015-07-31 12:11   좋아요 0 | URL
여러 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저는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날벼락을 맞은 사람이
날벼락을 때린 사람 서재에 가서 뭔가를 기웃거려야 한다는 대목은
많이 우스워 보입니다 ^^;;;;
앞뒤조차 안 맞는구나 싶고요.

저는 제 이웃님 서재에 들어갔다가
저한테 ˝존나게˝ 싫다고 하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 이웃님 서재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면
그런 댓글을 못 보았을 텐데,
못 본 척하고 지나갈까 하다가
보았으면서 못 본 척하지는 말아야겠다 싶기도 하고,
알라딘서재라는 곳이
다른 서재쟁이를 비아냥거려도 되는 곳으로 어지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알라딘 서재지기한테 문의 글을 남겼고
그 문의 글을 제 서재에 걸쳤습니다.

그런데, 참말 원인은 뭐고 결과는 뭘까요?
저는 제가 누리는 삶을 즐겁게 글로 쓰고,
제가 하는 일을 제 서재에 쓸 뿐입니다.

저는 글을 쓰고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며
아이와 지내는 삶을 적어 놓으려고 서재에
바지런히 글하고 사진을 남깁니다.

나중에 이 글하고 사진은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런 활동을 ˝존나게˝ 싫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날벼락처럼 불쑥 나타났어요.

원인도 결과도 모두 ˝존나게˝ 싫은 사람한테 있겠지요.
여러모로 말씀 고맙습니다 ^^

`우편번호가 다음주부터 바뀐다`고 해서
바지런히 도서관소식지를 봉투질 해서 우체국에 부치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골짜기로 마실을 가려고 해요.

책읽는나무 님도 신나고 즐거운 여름날 누리셔요~~ ^^

책읽는나무 2015-07-31 14:3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괜한말씀을 드렸나봅니다
저는 그저 일이 크게 확대되지 않고 조용하게 빨리 마무리지어졌음 싶어서 드린 말씀이었어요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저도 우편번호가 바뀐 봉투를 받았었는데 그것이 다음주였군요!
저는 금방 옥수수를 삶아서 아이들과 먹고 도서관을 올라가려고 해요!
도서관만큼 시원한 곳이 없는 듯해서요^^
다음주에는 휴가를 갈계획이라 님의 말씀처럼 즐거운 여름날 보내고 오겠습니다^^
숲노래님도 건강한 여름날 되세요
 

쉬운 글은 없다 (표절 작가한테서 배운다)



  2015년에 들어서 ‘표절 작가’ 이름이 크게 오르내린다. 이제껏 이런 일은 드물었다. 표절을 했겠거니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일은 있되, 언제나 어영부영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동안 ‘표절 작가’도 ‘표절 작품을 책으로 내놓은 출판사’도 ‘표절 작품을 추켜세우는 주례사비평을 일삼은 평론가’도 모두 ‘그냥 지나갔’다.


  이들은 그동안 왜 ‘그냥 지나갔’을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이건 아니건 대수롭지 않다. 그냥 쓰면 되고, 덧말을 붙일 까닭이나 붙임말을 달 까닭을 느끼지 않았다.


  쉽게 얻어서 써도 되는 글이 있을까? 그냥 함부로 써도 되는 글이 있을까? 어렵게 얻어서 써도 되는 글이든 쉽게 얻어서 써도 되는 글은 따로 없다. 글삯을 많이 치러서 얻는 글이나 글삯을 안 치러도 되는 글도 따로 없다. 글이라고 하면 모두 똑같은 글이다.


  그다지 도움이 안 되었다고 하는 글이라면, 왜 그런 글을 보았을까? 그리 보탬이 안 되었다고 하는 글이라면, 왜 그런 글에 나오는 줄거리나 이야기를 쏙쏙 빼먹을까?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배운다. 어른도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도 어른한테서 배운다. 유명작가도 무명작가한테서 배우며, 무명작가도 유명작가한테서 배운다. 배우면서 쓰는 글이라면, ‘내가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어 고맙다’는 뜻을 밝히기 마련이다. 배우지 않고 글치레를 하거나 글이름을 날리려고 한다면, ‘배워서 고맙다’는 뜻을 밝히지도 못할 뿐 아니라 ‘글삯(저작권 사용료)’을 치르면서 ‘고맙게 얻어서 쓰겠노라’ 하는 생각조차 못 하기 마련이다.


  나도 빗댐말을 한 가지 들고 싶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에 자동차를 세우고는 몇 시간 동안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걷는 사람은 아예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님길’이 거님길인지 모르는 셈이다. 자동차는 거님길이나 찻길 한쪽에 아무렇게나 세워도 된다고 여기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냥 무단주차’를 하는 셈이다. 이들은 무단주차가 ‘불법’인지 모를 뿐 아니라, 무단주차를 할 적에 벌금을 물어야 하는지 생각조차 안 하고, ‘정식주차’를 하면서 ‘주차비를 제대로 내야 한다’는 생각마저 아예 없다. 무단주차를 하면서도 무단주차라는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하고 표절 작가하고 무엇이 다를까? 4348.7.3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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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9 짓고 씻어서 날리다



  마음속에 짓는 생각이 있을 적에, 이 생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지은 생각이 아직 없다면, 아직 나한테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적에는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때에 누군가 나한테 어떤 말(생각)을 들려준다면, 나는 그 말(생각)을 쉽게 받아들여서 그 말(생각)대로 쉽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나한테 아무런 말(생각)을 지어서 들려주지 않았으니 남(다른 사람)이 나한테 지어서 들려주는 말이 내 몸을 움직입니다.


  학교는 아이한테 온갖 말(생각)을 들려줍니다. 학교는 어떤 틀에 따라 세운 교과서를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수많은 말(생각)을 들려줍니다. 학교에서는 다 다른 아이를 다 다르게 살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지어서 이러한 생각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면 ‘내 생각’을 키우지 않고 ‘남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도록 길듭니다.


  내 생각을 스스로 짓지 않은 사람은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꿈을 짓지 못합니다. 꿈을 짓지 못하기에 삶을 짓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을 수 있고,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화를 누릴 수 있으며, 사회에서 여러 가지 계층이나 계급에 설 수 있습니다만, 손수 가꾸어 나누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내 생각이 없으니 ‘내 꿈’이 없고, 내 꿈이 없을 때에는 ‘내 삶’이 없으며, 내 삶이 없을 때에는 ‘내 이야기’가 없습니다.


  말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생각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꿈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삶을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이야기를 짓고, 씻어서, 날립니다.


  내가 지은 삶이 내 이야기입니다. 내가 지은 삶이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즐겁고 넉넉하며 아름답습니다. 내 삶이 내 이야기인 터라, 나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영화가 없어도 얼마든지 기쁘고 너그러우며 사랑스럽습니다. 먼 옛날부터, 삶을 손수 지어서 가꾼 사람은 모든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손수 지어서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이와 달리, 삶을 손수 못 짓고 못 가꾸는 이들은, 아무런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손수 못 짓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다른 사람)이 지은 노래와 춤과 이야기에 빠져들기만 합니다. 오늘날에는 몇몇 ‘노래 전문가’와 ‘춤 전문가’와 ‘이야기 전문가(시인·소설가)’한테 사로잡히는 ‘팬클럽’이 될 뿐, 스스로 제 이야기를 짓지 못합니다.


  삶이 있으려면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있으려면, 이 생각을 이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말’을 터뜨려야 합니다. 맨 처음 지은 내 말이 마음을 거쳐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면서, ‘내 몸을 이루는 파란 거미줄 같은 숨결’을 건드리고, 내 온 숨결을 건드린 말은 내 몸에서 빠져나와서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집니다. 멀리 날아가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저마다 말(생각)을 지어서, 이 말로 내 몸(숨결)을 새롭게 씻기고, 새롭게 씻긴 말을 내 바깥으로 내놓아서 바람에 실려 날릴 때에 이러한 말이 꿈으로 드러나고, 삶으로 피어나면서, 이야기로 자랍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짓지’ 않고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나아가려는 길을 스스로 지어서 내가 이루려는 꿈으로 스스로 노래할 수 있는 한편, 내 생각은 하나도 없이 ‘남이 시키는 굴레와 틀에 스스로 갇히는 몸뚱이’가 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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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민규 님, 안타깝습니다


 〈월간 중앙〉에 소설가 박민규 님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하고 얽혀 표절이냐 아니냐 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이 작품이 처음 한겨레신문사 문학상을 받을 무렵부터 나돌았다. 소설가 박민규 님은 이녁 책에 “연락할 길이 없는 한재영 님께” 같은 말을 붙이기도 했으나, 참말 연락할 길이 없었는지 있었는지 알 노릇이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소설가 박민규 님은 다음처럼 이야기를 한다.


ㄱ. “그냥 썼죠. 저작권이 있는 글이라고 전혀 인식을 못했어요.”

ㄴ. “분명히 그 글을 보긴 봤어요. 하지만 자료 수집 과정에서 알게 된 거에 불과해요. 처음에는 야구 자료를 얻기 위해 KBO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신문사에 가서 장당 얼마를 주고 신문 3년 치를 복사했어요. 이후 그 인터넷 글을 보게 됐고요. 실제로 인천에서 성장하고 삼미를 응원했던 사람 3~4명을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서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삼미’에 얽힌 일이라든지 추억들은 거의 비슷해요.”

ㄷ. “공식적으로 이런 표절 관련 질문을 받은 게 데뷔 12년 만에 처음이에요. 대체 어떤 실수를 한 건지 해결을 봤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개인이라서 일방적인 주장에 대응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인터넷에 여론이라는 게 형성되면 그냥 그걸로 낙인이 돼버리는 거죠. 어떤 게 저작물이고 저작권인지 그런 것도 사실 불분명한 상황이잖아요. 데뷔작 때 수집한 자료들이 있었다던 게시판이라든지 그런 사이트들마저도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없어지고 해서 출처조차 확인이 불분명해요. 그런데도 낙인이 찍히고 표절 작가가 되고.”

ㄹ. “혼자 동굴에 앉아서 완전한 창조를 한다고 해도 우연한 일치, 마치 교통사고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박민규 님은 소설가로 등단하기 앞서 ‘잡지 〈BESTSELLER〉’ 편집장이었다. 잡지 편집장 일을 하던 분이 ‘다른 사람 글을 그냥 써도 된다’고 여길 만한지 궁금하다.

  삼미에 얽힌 추억은 거의 비슷하다고 하나, 바로 거의 비슷한 추억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한테서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야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를 쓸 수 없다.

  ‘공식적인 표절 질문’을 받기로는 처음일는지 모르나 ‘비공식적인 표절 질문’은 받았을 터이다. 작가는 그냥 개인이 아니라 ‘잡지 〈월간 중앙〉하고 인터뷰를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공인’이 아닐까?

  삼미 슈퍼스타즈를 떠올리는 팬클럽이 있었고, 이 팬클럽 게시판에서는 예전 일을 떠올리는 적잖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렇다고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삼미 팬클럽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없어지지’ 않았다. 삼미 팬클럽은 거의 하나밖에 없었다 할 만하고, 박민규 님 소설책이 나온 뒤 여러모로 상처를 입고 pc통신 팬클럽을 해체했다.

  우연하게 일치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을 말하고 싶은 셈일까 궁금하다. 양자역학에 따른다면 ‘우연하게 비슷한 소재’가 나타날 수 있고 ‘우연하게 비슷한 이야기’를 서로 다른 곳에서 창작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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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30 22:44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리고 정말 정말 재미나게 읽은 소설인데~~~ㅜ
충격이네요

파란놀 2015-07-30 23:36   좋아요 0 | URL
많은 이들이 삼미소설을 재미나게 읽어 주셨기에
저도 이 작품을 놓고 이런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쓸쓸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 원년 소년팬이자
청보핀토스 어린이팬이자
태평양돌핀스 청소년팬이자
현대유니콘스 어른팬으로 지냈던 사람으로서
삼미소설이 나오고 삼미팬클럽이 상처받으면서
해체되어야 했을 적에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blanca 2015-07-31 13:58   좋아요 0 | URL
ㅣㅑㅏ
 

[말이랑 놀자 139] 골짝놀이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물놀이 할래.” 하고 말합니다. 두 아이가 물놀이를 하겠다는 때는 새벽 여섯 시 반. “얘들아, 조금 더 있다가 하지 않으련?” 하고 묻지만, 새벽 여섯 시부터 일어난 아이들은 자는 동안 물놀이를 꿈꾸었을는지 모릅니다. 시골집에서는 땅속 깊숙한 데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리니, 손이랑 낯만 씻어도 “어, 추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큰 통에 받아 놓은 물도 그늘 자리에 놓으면 그대로 차갑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골짜기에 가고 싶어요. 골짜기에서 놀래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자전거를 몰아 골짝마실을 갑니다. 우리는 자전거로 고갯길을 타고 골짜기에 마실을 가서 ‘골짝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드리우는 나무 그늘이 시원하면 마당놀이를 하고, 이불을 마당에 널어서 말리면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 이불놀이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이가 되어요. 책을 읽으면 책놀이요, 소꿉을 만지작거리면 소꿉놀이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놀이가 되고, 숲에서는 숲놀이입니다. 한국말사전에는 ‘물놀이·소꿉놀이’쯤만 나오지만, 아이들은 날마다 온갖 놀이를 새롭게 빚으면서 새로운 말을 끝없이 짓습니다. 4348.7.3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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