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40] 살림밥



  요사이는 어디에서나 ‘가정주부’나 ‘주부’ 같은 말을 쓰지만, 고작 쉰 해나 백 해 앞서를 떠올리면 이런 말은 어디에서도 안 썼어요.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살림꾼’을 말했어요. 살림을 야무지게 한대서 살림꾼이기도 하지만,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살림꾼입니다. 집에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사람이라면 가시내도 사내도 모두 살림꾼이에요. 나는 어버이로서 살림꾼이 되자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씩씩하고 슬기로운 살림꾼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봅니다. ‘살림지기’가 되고 ‘살림벗’이 되며 ‘살림님’이 되기를 바라요. 숲지기처럼 집살림을 지킬 수 있는 살림지기요, 이웃이나 벗처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살림벗이며, 하느님이나 곁님처럼 아름다운 살림님입니다. ‘살림’은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밥을 짓는 살림꾼이라면 ‘살림밥’을 짓습니다. 서로서로 고운 숨결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말을 들려준다면 ‘살림말’을 나누어요. 이웃을 아끼면서 착한 마음을 살리려 한다면 ‘살림넋’이 곱다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살림을 건사하던 살림지기·살림님이 부르던 노래는 ‘살림노래’입니다. 노동요도 민요도 아닌 살림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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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향고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0
정영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98



시와 풀내음

― 말향고래

 정영주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7.7.16. 7000원



  한여름으로 접어든 시골은 조용합니다. 여름철 무더위를 잊으려고 시골로 찾아온 손님이 북적이는 시골이라면 한동안 왁자지껄할 수 있고, 자동차 뜸하던 찻길에도 자동차가 제법 지나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시골은 더없이 조용합니다.


  농약 뿌리려고 경운기를 몰고 나오는 할매와 할배가 있으면, 농약이 논밭으로 퍼지는 소리가 울립니다. 농협에서 띄우는 농약살포 헬리콥터가 돌아다니면 꽤 먼 데까지 웅웅거리는 소리가 퍼집니다.

  시골은 도시처럼 매미 우는 소리가 우렁차지 않습니다. 시골은 멧새 노랫소리하고 풀벌레 노랫소리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때때로 한낮에도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풀을 베다가 여러 소리를 듣습니다. 땀을 훔치면서 마루에 앉아서 쉬다가 온갖 소리를 듣습니다. 밥을 지어 아이들을 먹인 뒤 한 차례 멱을 감고 평상에 앉아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신화가 된 고래의 늑골 하나 빼내어 / 내 빈 곳 채울 수 있다면 / 스스로 말향고래가 되어 심해까지 / 내려가 심장과 내장 뼈 마디마디 / 썩지 않을 기름으로 채울 수 있다면 (말향고래)



  정영주 님 시집 《말향고래》(실천문학사,2007)를 읽습니다. 고래 이야기라면 이제 철지난 옛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고래잡이배는 뜨기 어렵고, 고래를 함부로 잡을 수 없는 요즈음입니다.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다큐영화 같은 데에서는 고래를 볼 테지만, 어른도 아이도 맨눈으로 고래를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피노키오나 모비딕을 말할 적에 으레 고래를 떠올린다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는 고래를 얼마나 잘 이야기할 만할까요.



금목서가 왜 쓰러졌는지 모른다 / 쓰러지면서 진저리치며 터지는 / 꽃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 문득, 그제야 내가 오랫동안 / 뜨락에 나간 적이 없음을 알았다 (금목서)



  시골에서 풀내음을 맡습니다. 시골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풀내음을 맡을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에서 풀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풀노래를 부를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풀내음을 맡고 싶어서 시골에서 산다고 할 만합니다. 풀빛을 마주하면서 푸른 마음이 되고 싶기에 시골에서 사는구나 하고 곧잘 깨닫습니다. 풀숨을 마시고 풀열매를 먹으며, 풀잎을 훑어서 즐기려는 뜻에서 시골에서 사는구나 하고 으레 느낍니다.


  그러면 풀내음이란 무엇일까요? 풀이 베푸는 내음입니다. 도시사람은 나무밭(수목원) 같은 데에 가서 일부러 ‘나무내음’을 쐬려고 합니다. 나무내음을 맡으면 여느 때에 배기가스나 온갖 지저분한 바람을 마시느라 고단한 허파가 싱그러이 살아난다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맡으려고 하는 나무내음은 어떤 내음일까요? 나뭇줄기나 나무뿌리 내음일까요? 아마 이런 내음도 있을 테지만, 사람들한테 짙고 깊게 스며드는 나무내음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나뭇잎이 베푸는 내음’입니다.



집에 오니 / 옷자락에 쐐기풀이 잔뜩 박혀 있다 / 숲 속 몇 마장 들다 나왔는데 (흔적)



  시집 《말향고래》는 예부터 사람들이 제 삶터에서 맡던 온갖 내음을 가만히 이야기합니다. 쐐기풀에 깃든 내음을, 숲에 서리는 내음을, 햇볕에 배는 내음을, 창문에 번지는 내음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흙길을 걷는 사람과 아스팔트길을 걷는 사람은 서로 다른 냄새를 맡습니다. 풀밭길을 걷는 사람과 시멘트길을 걷는 사람은 서로 다른 냄새를 맞이합니다. 숲길을 걷는 사람과 골목길이나 시내 한복판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냄새를 들이켭니다.



잘 달궈진 햇볕이 / 벽돌담을 넘어와 / 창문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뉘 고르는 여자)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골에 젊은이도 어린이도 많았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늙은 사람만 많습니다. 시골에서 젊은이와 어린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집짐승을 키우는 집이 사라지고, ‘풀을 먹고 사는 집짐승’을 키우는 집이 사라지면서, 밭둑이나 논둑에서 잘 자라던 풀을 성가셔 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납니다. 여기에다가 1970년대부터 밀어닥친 새마을운동은 ‘풀을 뜯어서 먹지 말’고 ‘풀에 농약을 뿌려서 죽이라’는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한의사와 제약회사는 정갈하고 고즈넉한 시골이나 숲에서 자라는 풀을 얻어서 약으로 삼습니다. 시골사람은 이제 고들빼기나 소리쟁이나 부들이나 모시나 까마중이나 쇠무릎이나 질경이를 약으로 삼을 줄 모릅니다. 약으로 쓰던 슬기를 모두 잊었습니다. 망감도 하늘타리도 귀찮을 뿐이고, 댓잎이나 갈잎으로 바구니를 엮던 손길은 아주 끊어집니다.



찢어진 돌을 보았다 / 그 속으로 보타진 강이 흐르다 / 멈춘 것을 보았다 / 미처 이사 가지 못한 고라니와 / 바람에 넘어지는 숲과 / 돌아서 뒤채는 물 속에 / 머리카락 죄다 풀어헤치는 / 줄풀들의 울음소리가 / 갈라진 돌 틈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돌 속에 누워)



  시를 한 줄 읽으면서 풀내음을 떠올립니다. 시를 두 줄 읽으면서 풀내음을 그립니다. 시를 석 줄 읽으면서 아련하게 스미는 풀내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집을 덮은 뒤 우리 집 둘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풀이 베푸는 온갖 내음을 마십니다.


  다만, 풀내음을 맡더라도 틈틈이 낫질을 합니다. 걸어서 지나다닐 길은 있어야 하니까요. 모기가 너무 끓지 않도록 풀밭을 건사해야 하기도 하고요. 아이들 키보다 웃자란 쑥을 베거나 뽑아서 한쪽에 쌓으면, 쑥대가 땡볕에 잘 마르면서 고운 ‘짚내음’을 베풉니다.


  참말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소와 염소가 이 너른 풀을 신나게 먹었을 테고, 사람들은 소한테서는 소젖을 얻고 염소한테서는 염소젖을 얻었을 테지요. 풀을 먹는 짐승이 풀노래를 부르듯이, 풀을 아끼고 돌보던 시골사람은 풀바람을 쐬면서 풀밥을 먹고 풀잔치를 누렸을 테지요. 잠자리가 달맞이꽃에 가만히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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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빨래터에서 자동차랑


  빨래터에 생긴 물이끼를 모두 걷은 뒤 신나게 놀면 어느새 물이 다시 차오른다. 물이 찰랑거리는 빨래터에 온몸을 담근 작은아이는 자동차하고 함께 논다. 빨래터 물깊이는 작은아이한테 꼭 맞는다. 더위를 가시고, 이 더위를 장난감 자동차도 함께 가실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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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아톰 인형 만지고 싶어



  우리 집 아톰 인형은 아이들이 자꾸 떼었다 붙였다 하느라 팔 한쪽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쩌면 마루 밑으로 떨어졌을는지 모른다. 나들이를 간 곳에 곱게 놓인 아톰 인형을 본 사름벼리는 이 인형을 만지고 싶다. 만지고 싶지? 그런데 네 것이 아니란다. 눈으로만 보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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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98) -의 차이


 둘 사이의 차이가 없다

→ 둘 사이가 다르지 않다

→ 둘 사이가 벌어지지 않다

→ 둘 사이가 같다


  ‘차이(差異)’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을 뜻합니다. 그런데 “같지 않음”하고 “다름”은 같은 말입니다. 같지 않으니 다르고, 다르니 같지 않아요. 아주 쉬운 말이고 더없이 마땅한 말입니다. 그런데 “같지 않다”나 “다르다”라 하지 않고 “차이”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말썽이 생깁니다. “둘 사이의 차이”처럼 ‘-의’를 붙이는 말씨가 나타납니다. 운동경기에서는 “1위와 2위의 차이가 벌어집니다”처럼 쓰기도 하는데, “1위와 2위 사이가 벌어집니다”라든지 “1위와 2위가 더 벌어집니다”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4348.8.1.흙.ㅅㄴㄹ




역사학과 문학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역사학과 문학이 무엇이 다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다

《이상신 엮음-문학과 역사》(민음사,1982) 175쪽


경제면에서는 아유브 칸 정권의 고도성장정책과 하등의 차이도 없었다

→ 경제에서는 아유브 칸 정권이 꾀한 고도성장정책과 하나도 안 다르다

→ 경제에서는 아유브 칸 정권이 꾀한 고도성장정책과 거의 같다

《서천륜/편집부 옮-제3세계의 발자취》(거름,1983) 30쪽


이것이 만남과 헤어짐의 차이가 아닐까

→ 이것이 만남과 헤어짐이 다른 대목이 아닐까

→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다르지 않을까

《천상병-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지상,1988) 19쪽


좋은 데에 되느냐 좀 못한 데에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좋은 데에 되느냐 좀 못한 데에 되느냐가 다를 뿐이다

《마광수-사랑받지 못하여》(행림출판,1990) 163쪽


거실에서 녹지의 조망 여부에 따라서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가격이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차이가 나는 오늘의 현실이다

→ 마루에서 숲을 볼 수 있는지에 따라서 평수가 같은 아파트라도 값이 수천만 원에서 억대로 벌어지는 오늘날이다

《윤호섭 외-녹색캠퍼스를 꿈꾸며》(이크,2004) 32쪽


간혹 서로 간에 시각의 차이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 때로 서로 다르게 생각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는데

→ 곧잘 서로 생각이 어긋나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는데

《조문기-슬픈 조국의 노래》(민족문제연구소,2005) 171쪽


잡초들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크기나 모양의 차이가 크다

→ 풀은 자라는 곳에 따라 크기나 생김새가 다르다

《강우근-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메이데이,2011) 92쪽


어떤 환경에서 채취되었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

→ 어떤 곳에서 얻었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문숙-문숙의 자연식》(샨티,2015) 77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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