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범나비



  나비는 여느 때에는 그야말로 쉬지 않고 팔랑거리면서 춤을 춘다. 춤을 추는 나비를 사진으로 잡아채기란 몹시 어렵다. 그런데, 짝짓기를 하는 나비는 대단히 얌전하다. 나비가 짝짓기를 하는 동안에는 바람조차 잠들고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이렇게 고요한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선다. 부디 나비가 내 발자국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디 나비가 그대를 헤살 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가만히 바라보고 싶을 뿐인 줄 느껴 주기를 바라면서.


  범나비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려는 줄 먼발치에서 알아채고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아이들한테도 목소리도 발소리도 죽이라고 하고는 함께 천천히 다가섰다. 암수 나비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숲을 환하게 빛내면서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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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 비룡소의 그림동화 207
밸러리 토머스 글, 노은정 옮김, 코키 폴 그림 / 비룡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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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52



즐겁게 심고 기쁘게 노래하는 밭일

― 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

 코키 폴 그림

 밸러리 토머스 글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10.1.30. 10500원



  지난 칠월부터 호박꽃이 핍니다. 호박넝쿨은 날마다 힘차게 뻗으면서 무엇이든 감고 오르려 합니다. 호박꽃은 노랗고 커다란 꽃송이를 벌리면서 꽃가루받이를 해 줄 벌나비를 부릅니다. 칠월부터 꽃이 피고 지는 호박넝쿨이니 팔월이 저물 무렵부터 커다랗고 묵직한 열매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어림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우리 집 흙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고이 먹으면서 자랄 호박은 얼마나 맛날까 하고 군침을 흘리는 꿈을 꿉니다.



마녀 위니는 채소를 뭉텅뭉텅 냠냠 즐겨 먹었어요. 꽃양배추와 양배추, 브로콜리와 순무를 좋아했지요. 완두콩과 강낭콩, 당근과 감자, 시금치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어요. (2쪽)




  코키 폴 님하고 밸러리 토머스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비룡소,2010)을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읽습니다. 마녀 위니는 이름 그대로 마녀인 위니이고, 위니는 엄청나게 커다란 호박을 얻습니다.


  남새를 아주 즐겨 먹는다는 위니는 언제나 저잣거리에 빗자루를 타고 찾아가서, 온갖 남새를 잔뜩 장만한다고 해요. 그런데 위니는 온갖 남새를 아주 많이 장만해서 들고 날아서 돌아오기 때문에 빗자루는 으레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하늘에서 주루루 흘린다고 합니다.


  빗자루도 힘들 테지요. 가냘픈 빗자루에 짐을 잔뜩 실으면 빗자루도 벅차서 슬그머니 짐을 떨어뜨릴는지 모릅니다.



“이런! 엉터리 빗자루 같으니!” 위니가 투덜거렸어요.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을 해냈지요. “내가 직접 채소를 길러 먹어야겠어.” 위니는 정원을 갈아엎어서 널찍한 텃밭을 만들었어요. (6쪽)



  마녀 위니는 빗자루더러 “엉터리!”라고 외칩니다. 이러다가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해요. 굳이 멀리 마실을 다니면서 남새를 장만하지 말고, 손수 집에서 씨앗을 심어서 길러 먹으면 된다고 깨닫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언제 ‘내 먹을 밥’을 다른 데에서 사다가 먹었겠습니까. 지구별 어디에서나 누구나 ‘내 먹을 밥’은 참말 스스로 흙을 일구어서 얻었어요.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베트남도 호주도 아르헨티나도, 참말 어느 나라 어느 고장에서든, 사람들은 스스로 흙을 아끼고 가꾸면서 밥을 얻었습니다.


  즐겁게 괭이질을 해서 밭을 갑니다. 즐겁게 호미질을 하면서 풀을 뽑습니다. 뽑은 풀은 나물무침을 할 수 있고, 그냥 고랑에 두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면서 풀내음하고 흙내음을 맡습니다. 밭에서 일을 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 온갖 새가 찾아와서 나뭇가지에 앉고는 새로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위니네 텃밭에 있는 것들은 모두 어마어마하고 기막히게 컸어요! 완두콩 넝쿨은 하늘까지 뻗어 올라갔고 양배추는 어미 소만큼 우람했어요. 토끼도 어미 소보다 훨씬 컸고요. (14쪽)



  마녀 위니는 밭을 갈고 씨앗까지 잘 심었는데, 씨앗이 알맞춤하게 스스로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마녀인 만큼 마법을 써서 무럭무럭 쑥쑥 크라고 주문을 겁니다. 이렇게 하고는 가만히 씨앗을 지켜보는데 ‘곧장 싹이 트지’ 않으니 주문이 잘못되었나 하고는 잊어버려요.


  마녀 위니가 다른 곳에 가느라 밭을 깜빡 잊는 사이에, 밭자락에서 온갖 남새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위니가 건 주문을 신나게 받아들인 씨앗은 어느새 위니네 집을 온통 뒤덮도록 줄기를 뻗고 넝쿨을 휘감으며 열매를 맺어요. 호박은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위니네 집을 짓눌러서 뭉개려고 합니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위니는 마법을 돌려놓으려고 하는데, 커다란 호박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붕에서 겨우 밑으로 내렸습니다. 이웃을 불러 어마어마한 호박을 거저로 나누어 줍니다. 손수 길러서 기쁘게 얻은 열매를 이웃하고 나누는 보람을 누립니다.



“이 호박 껍질로 무얼 하지?” 위니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집을 만들면 좋겠지만, 나는 벌써 집이 있잖아? 음, 예전에 어떤 친구처럼 호박 마차를 만들어 볼까? 아니야, 나는 무도회에 갈 일도 없고, 게다가 호박 마차를 끌 말을 만드는 것도 귀찮아.” (20쪽)




  요 며칠 앞서 우리 집에서는 모과차를 담갔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잘 자라는 모과나무가 베푼 굵은 모과알을 고이 그러모아서 신나게 썰었습니다. 팔이 저리도록 모과알을 써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서 지켜봅니다. “아버지, 모과차 언제 먹을 수 있어? 먹고 싶다.” 하고 입맛을 다십니다. “언제 먹을 수 있을까? 모과차를 담가 놓는다고 해서 바로 먹지는 못해. 기다려야 하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글쎄, 기다리다 보면 알맞춤한 때가 오니까, 그냥 기다리면 돼.”


  그림책 《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을 다시 돌아봅니다. 커다란 호박을 이웃하고 나눈 위니한테 ‘껍데기만 남은 커다란 호박’이 남습니다. 호박 껍데기는 거름으로 삼아서 흙한테 돌려줄 수 있습니다만, 위니는 이 커다란 껍데기로 뭔가 재미난 일을 꾸미고 싶습니다.


  생각하고 거듭 생각합니다. 삶을 즐기는 길을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다른 이웃이 즐긴 삶을 떠올리다가, 남을 흉내내기보다는 위니로서는 위니답게 삶을 즐기는 길이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멋진 길을 찾습니다. 바로 ‘호박콥터’입니다. 위니네 텃밭 가꾸기는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다시 저자마실을 다니려고 ‘호박 껍데기’를 ‘호박콥터’로 바꾸고는, 마실길에 남새를 툭툭 떨어뜨리는 일이 없이 우주까지 날아오르면서 삶을 즐깁니다.


  위니는 마녀이기 때문에 ‘마녀 주문’을 외워서 뚝딱뚝딱 이것저것 만든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주문을 외우려면 먼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위니는 마녀이면서도 텃밭을 가꿀 적에는 손수 괭이질을 했고, 손수 씨앗을 심었으며, 손수 북을 돋았어요. 이렇게 하고 난 뒤에야 ‘잘 자라렴’ 하고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우리 삶도 이러합니다. 땅을 일구고 가꾸면서 씨앗한테 말을 걸어요. 나무를 돌보고 열매를 고맙게 얻으면서 나무한테 이야기를 해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바람한테 노래를 불러 줍니다. ‘마녀 주문’은 남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고운 마음을 담아서 기쁘게 외치는 노랫가락이라면 어떤 말이든 ‘멋진 주문’이 되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밝혀 주리라 봅니다.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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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잘못했어’ 하고 말하기



  아이한테 “어머니가 잘못했어”나 “아버지가 잘못했어” 하고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이 살며 ‘잘’과 ‘잘못’은 따로 없지만, 아이더러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어른이 했다면, 아이가 한 말을 어른이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아서 말썽이 생겼다면, 이때에 어른은 서슴없이 스스럼없이 틀림없이 “잘못했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시골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을 도시로 마실을 가면 느닷없이 겪곤 한다. 이레쯤 앞서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며 자동계단에 오르던 때였다. 여덟 살 큰아이는 자동계단이 제법 익숙하기도 하고 힘살도 많이 붙었으니 척척 올라탄다. 다섯 살 작은아이는 자동계단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힘살도 적게 붙어서 아슬아슬하면서도 느리다. 작은아이가 겨우 자동계단에 올라타서 제자리를 잡고 서려 할 무렵 뒤에서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아이를 확 밀치고 바쁜 걸음을 놀리려 한다. 작은아이는 휘청거리며 넘어지려 했고, 나는 작은아이가 자동계단 벽에 부딪히지 않게 얼른 붙잡았다. 이러면서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아저씨! 아이를 밀치고 지나가면 어떡해요!” “아니, 내가 언제 아이를 밀쳤어?” “코앞에서 아이를 밀치셨잖아요.” “밀치지 않고 그냥 지나갔어.” “어른한테는 밀치지 않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작은아이는 어른이 가볍게 치기만 해도 넘어져요. 이런 데서 밀쳐서 넘어지면 얼마나 크게 다치는지 모르세요?” “난 안 밀쳤다니까?”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아이한테도 아이 어버이한테도 ‘잘못했다’라는 말을 끝까지 안 하고, 나를 밀고 바삐 위로 올라간다. ‘남을 밀고 앞질러 가기’가 온몸에 버릇으로 붙은 듯하다. 이런 사람한테는 아이도 다른 사람도 안 보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일는지 모르지.


  아이한테 ‘잘못했어’나 ‘미안해’ 하고 말할 줄 모르는 어른은, 어른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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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02 06:28   좋아요 0 | URL
어른으로서 아이들한테 참으로 미안해지는 순간들입니다 저도 이제부터 아이들한테 조심하도록 노력하고 `미안하다`고 자주 얘기해줘야겠어요^^

파란놀 2015-08-02 07:19   좋아요 0 | URL
일부러 잘못을 해서 미안하다고 하기보다는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고마워, 사랑해!˝ 하는 말을
늘 들려주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민들레처럼 2015-08-02 09: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맞아요. 어른이 아이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이를 하늘같이 섬겨라.`라고 하신 이오덕선생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파란놀 2015-08-02 11:01   좋아요 0 | URL
어른도 아이도
누가 누구 위에 있거나 아래에 놓일 수 없이
서로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이요 넋이기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느껴요.
 



어린이 눈높이



  사람들 많이 오가는 도시에서는,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며 우산을 아주 생각 없이 흔들다가 ‘아이 눈’을 찌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라면 ‘옆구리에 우산 끼기’를 하지 않으리라.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라면 ‘우산을 손으로 움켜쥘’ 테지. ‘옆구리에 우산을 끼’는 높이는 바로 아이들 눈을 찌르기에 딱 좋다. 아이들을 이끌고 인천으로 나들이를 가던 길에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우리 앞에 있던 젊은이가 우산을 불쑥 옆구리에 끼더니 흔든다. 나는 아이들을 쳐다보느라 이 젊은이가 이러는 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젊은이가 옆구리에 우산을 끼고 흔들며 내 사진기 렌즈를 툭 쳤다. 하마터면 사진기 렌즈가 깨질 뻔했다. 그리고, 사진기 렌즈가 아닌 아이 쪽으로 우산 꼭지가 날아들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사진기 렌즈가 우산에 맞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으나 젊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에 오른다. 아마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지하철에 오른 뒤 젊은이를 불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함부로 우산을 옆구리에 끼면서 흔들면 안 된다고, 내 사진기가 우산에 맞아서 깨질 뻔했다고, 사진기는 다치지 않았는데, 자칫 아이들이 맞았으면 눈이 다친다고, 우산 간수 곱게 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하고 놀 줄 아는 어른은 바닷가에서 옷을 적시는 일쯤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들하고 다닐 줄 아는 어른은 길가에서 아이를 안쪽으로 걷게 한다. 아이들을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은 자동차를 몰 적에 함부로 빵빵거리지 않고 멀리 에돌며 천천히 달린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은 이녁 스스로 언제나 아이다운 넋으로 즐겁게 웃는다. 4348.8.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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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님이 파리와 매미하고 얽힌 이야기에

즐거운 댓글을 붙여 주셔서

곰곰이 더 생각을 기울이며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


‘다름’하고 ‘같음’을 바라보기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며 ‘가시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옷을 물려입기도 하고, 얼굴 생김새가 가시내 같다고도 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직 많이 어렸을 적에 머리카락이 더디 자란 모습을 보고, 또 머리카락을 짧게 치니 ‘사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큰아이는 ‘이웃한테서 얻은 사내 아이가 즐겨입었다는 옷’도 거리끼지 않고 입었기에 ‘사내’로 잘못 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가만히 보면, 참 많은 이들은 옷차림을 보고 가시내랑 사내를 가르려 하며, 얼굴 생김새로도 가시내랑 사내를 가르려 합니다. 가시내인지 사내인지 알아내야 하거나 가려야 하는 일이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두 아이가 어떤 이름이며 어떤 숨결이고 어떤 사랑인가를 먼저 바라보고 헤아릴 노릇이리라 봅니다.


  풀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 풀하고 저 풀이 어떻게 다른가를 도무지 모를 수 있습니다. 강아지풀하고 골풀하고 갈풀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고들빼기하고 씀바귀는 고들빼기나 씀바귀를 캐거나 뜯어서 먹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무지 못 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풀을 보면서 어떤 풀인지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 잘못 먹고 배앓이를 하기 일쑤입니다. ‘먹는 풀’하고 ‘약으로 삼는 풀’하고 ‘돗자리나 바구니를 엮는 풀’을 똑똑히 가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풀은 ‘풀’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똑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풀이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까닭은 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롭게 재미난 숨결이기 때문이에요. 어슷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똑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하지 않습니다.


  개미라고 해서 다 같은 개미가 아니고, 하루살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하루살이가 아닙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사람이라는 목숨’으로는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서 밥삶이나 옷삶이나 집삶이 달라요. 서양사람은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을 가리기 어려울 테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먹고 입고 자는 삶이 저마다 다릅니다. 날씨와 흙과 바람과 숲과 들과 바다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은 네덜란드나 덴마크나 룩셈부르크나 크로아티아나 이탈리아나 헝가리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말도 밥도 옷도 집도 다 다른데, 어떻게 다른가조차 알기 어렵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가꾸며 사는 사람은 ‘다 다른 벌레와 풀과 버섯과 나무와 꽃과 새’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날마다 다른 바람과 날씨와 볕과 빛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 다른 빗소리와 비내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바람소리와 바람내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름’을 익히고 배우면서 ‘같음’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삶이 시골살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어른(어버이)하고 아이는 다릅니다. 몸피가 다르고 기운이 다르며 생각이 다릅니다. 어른하고 아이는 같습니다. 목숨이 같고 숨결이 같으며 사랑이 같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배우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서로 같기에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름’하고 ‘같음’은 늘 나란히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더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를 앞에 두거나 뒤에 두어야 하지 않습니다. 늘 나란히 흐르는 즐거운 눈길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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