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방아깨비



  호박꽃이 한창 피고 진다. 호박넝쿨이 뻗는 둘레에 돋는 강아지풀을 신나게 뽑다가 방아깨비를 본다. 아주 조그마한 녀석이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녀석도 알에서 갓 깬 녀석하고 대면 제법 큰 녀석이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불러서 “여기 방아깨비 있어.” 하고 말하면 “어디? 어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피는데, 아이들은 좀처럼 못 찾아낸다. 방아깨비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지만, 풀빛하고 똑같은 몸빛으로 감쪽같이 숨었으니 찾아내기 어렵지.


  손가락으로 “저기.” 하고 가리킨다. 그래도 못 찾는다. “저어기.” 하고 다시 가리킨다. 한참 뒤에야 “아하, 저기 있구나. 쟤가 방아깨비야?” 하고 묻는다. 그래, 쟤가 방아깨비란다. 우리 집 풀밭에서 함께 사는 멋진 이웃들 가운데 하나이지.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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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0원 곱하기 둘



  통장을 하나 만들어야 해서 읍내로 마실을 간다. 이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에 두 아이를 이끌고 읍내 은행에 간다. 시골 읍내 ㄱ은행에는 손님이 뜸하다. 그리 넓지 않은 맞이방에서 두 아이가 지치지 않고 뛰거나 달리면서 논다. 말리고 말려도 듣지 않는다. 놀고 싶은 아이들을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은행에서 ‘고깃집처럼 아이들 놀이방을 마련할 일’은 없는 노릇. 문득 생각하니, 은행에서 ‘VIP룸’은 마련해도 ‘아이들 놀이방’은 마련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돈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무튼, 통장을 만들고 인터넷은행 계좌하고 체크카드까지 만드는데, 체크카드를 안 챙기고 온 듯하다. 나는 은행 일꾼이 주는 대로 받아서 가져왔는데, 집에 닿아서 전화가 왔다. “카드 안 가져가신 것 같은데요?” 하고 묻는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안 가져왔을까, 창구 일꾼이 안 챙겨 줬을까? 이 대목을 따지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중에 읍내마실을 할 적에 챙기면 되지만, 손님이 거의 없는 은행에서 지점장이 뒤에서 쳐다보는데 ‘창구 일꾼이 잘못했다’는 말을 한다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리라. 그러나, 지점장은 왜 손님이 카드를 못 챙겼는지 뻔히 알리라.


  시골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시골에서 안 사는 사람이 많다. 고흥읍이 아닌 순천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다. 고흥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순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통장을 만들려고 아이들을 이끌고 네 시간 남짓 품을 들이고 버스삯으로 ‘2550원 곱하기 둘’만큼 썼다. 카드를 가져오려면 또 이만 한 품에다가 돈을 들여야 한다. 읍내에 굳이 가야 할 일이 없지만, 뭐 일거리를 억지로 하나 만들어야겠다.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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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27. 너랑 나랑 함께 짓지



  어버이가 이것을 하면 아이도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어버이가 저것을 하면 아이도 저것을 하고 싶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는 몸짓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할 뿐이고, 그냥 할 뿐이에요.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이것저것 오리면서 가위질을 익혔습니다. 작은아이도 작은아이대로 이 종이 저 종이 가리지 않으면서 오리면서 차근차근 가위질을 익힙니다. 그림을 그려서 오린 별을 붙이는 놀이도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천천히 함께 하면서 시나브로 익힙니다. 언제나 함께 짓습니다. 말도 삶도 넋도 노래도 꿈도 사랑도 오늘 하루도 참말 너랑 나랑 함께 지어요.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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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명가 한형석 - 조국 독립을 노래하다,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상수리 인물 책방 5
최형미 지음, 김희영 그림 / 상수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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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08



독립과 평화를 바라던 ‘음악 혁명가’

― 음악 혁명가 한형석

 최형미 글

 김희영 그림

 상수리 펴냄, 2015.7.15.



  부산 서구에서는 2015년 8월 13일에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토크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한형석(1910∼1996) 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부산 부민동에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칠 뿐 아니라 아동극을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먼구름’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여서 썼고,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 부르던 군가를 지었으며, 중국에서 〈아리랑〉이라는 가극을 짓고 무대에 올려서 우리 겨레 아픔을 달래 주었다고 해요. 제국주의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광복군으로 뛰기도 했다지요. 항일독립운동을 문화로 예술로 하셨다고 합니다.


  1996년에 숨을 거둘 무렵 한형석 님을 국립묘지에 모시겠다고 했으나, 한형석 님은 ‘건국 매국노’가 묻힌 곳에 함께 누울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고 합니다. ‘건국 매국노’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권력에 빌붙어야 한 사람이 많았을까요? 그리고 해방 뒤에 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친 사람은 드물었으며, 올바른 평화와 독립과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바라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



인공 호수 속에는 돌을 깎아 만든 엄청나게 큰 배도 있었어요. “저것들을 사람들이 다 만들었다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엄청난 흙더미를 쌓아 올려서 만든 산 위에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흙과 돌을 지게에 지고 저 산을 올랐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구나.” 형식이는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웅장하고 화려한 산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슬프고 끔찍해 보였어요. (41∼42쪽)



  최형미 님이 글을 쓰고 김희영 님이 그림을 그린 《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2015)을 읽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나 사회에나 사람들한테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할 만한 한형석 님을 어린이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빚은 예쁜 책입니다.


  한형석 님을 낳은 아버지는 ‘의술로 펼치는 독립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할 적에 모든 사람이 총을 들 수는 없다고, 다친 사람을 다스리고 고쳐 주는 일을 할 사람이 있다고 여겨서 의술을 펼친 아버님이요, 의술로 번 돈을 조용히 독립군 자금으로 대었다고 합니다. 한형석 님도 아버지 길을 이어서 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의사가 되는 공부가 한형석 님한테는 도무지 안 맞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한참 갈팡질팡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무렵, 임정요인이자 광복군을 여는 일에 이바지한 조성환 님이 도움말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한형석 님더러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물을 적에 한형석 님은 서슴지 않고 ‘음악’을 잘 한다고 말했고, 이에 조성환 님은 그러면 ‘예술 구국’을 하라고 이야기했다지요.




“대학은 만주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가거라. 어려운 때일수록 의술이 꼭 필요하다.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형석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겼어요. (47∼48쪽)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형석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어요. “음악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조성환 선생은 무릎을 치며 말했어요. “그거 아주 좋구나. 넌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 구국을 하거라.” (57쪽)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광복군이 쓰는 총을 만들려고 쇠를 달구는 일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광복군이 입는 옷을 지으려고 바느질을 하는 이들도 독립운동가입니다. 독립운동에 힘쓰는 이들이 먹을 밥을 지으려고 땅을 부치는 모든 농사꾼도 독립운동가입니다.


  정치 일꾼이 되어야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삶자리를 지킬 수 있는 씩씩하고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된다면, 어느 곳에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마을을 지키며 나 스스로를 지키는 튼튼한 사람으로 섭니다.


  학교를 일으키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남새를 파는 아지매와 할매도 똑같이 독립운동이요 민주운동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총칼을 앞세워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고 해서 고개를 떨굴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고 올바른 넋으로 아름다운 손길을 나누며 어깨동무할 적에는 어느 누구도 이 땅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부모님과도 소식이 닿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자 형석이는 창작 활동에 더 열심히 매달렸어요. 1937년 6월, 여름방학을 맞은 형석이는 첫 종합 예술 작품이면서 중국 최초의 가무극인 〈리나〉를 아동극장에서 발표하게 되어썽요. 〈리나〉는 나라 잃은 폴란드의 음악가가 자신의 딸 리나를 데리고 연주 활동을 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이야기예요. (67쪽)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으면서 ‘구국’이나 ‘독립’을 이루려고 애쓰는 몸짓과 넋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곰곰이 따지면, 군관학교를 세우려고 벽돌을 나르던 사람들 손길도 모두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발치에서 마음으로 힘을 북돋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칼을 든 제국주의는 서른여섯 해에 이르도록 군홧발로 이 땅을 짓눌렀지만, 이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권력에 빌붙는 길로 접어들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여느 사람들은 꿋꿋하게 섰습니다. 마치 풀처럼 서고, 마치 나무처럼 섭니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처럼, 뽑히고 뽑혀도 다시 싹을 틔워서 자라는 풀처럼 섰어요. 베이고 베여도 다시 가지를 내놓고, 아예 뿌리를 뽑히면 어린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아기나무를 키우는 어미나무처럼, 이 땅 수수한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씩씩하게 섰습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목숨도 빼앗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빼앗고, 마음도 병들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쟁 중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는 예술은 무척 중요해요. (79쪽)


(1940년 5월에) 〈아리랑〉은 모두 우리말로 공연되었지만 중국 사람들의 반응도 대단했어요. 〈아리랑〉은 실험극장에서 열흘 동안 공연을 마친 뒤 중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그 덕분에 중국 사람들에게도 〈아리랑〉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어요. 또한 공연으로 번 돈은 독립군의 겨울옷을 마련하는 데 쓰였어요. (88쪽)




  전쟁이란 무엇이고, 침략이나 식민지란 무엇이며, 다툼이나 싸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기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서로 이웃이 되지 않으니 침략이나 식민지를 일삼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다툼이나 싸움을 벌입니다.


  우리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전쟁이라고 하는 바보짓’이 다시 이 땅에 들어서지 않도록 슬기를 모으고 힘을 모으려는 마음을 키울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겨레 사이에 너와 내가 ‘적군’이 되는 짓부터 내려놓고,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전쟁무기를 쓸어없앨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할 때에 비로소 평화를 이루리라 느낍니다.


  평화가 이 땅에 깃들어야 비로소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함께 이루는 길로 나아가려 할 적에, 독재라든지 막개발이라든지 차별이라든지 불평등 같은 씁쓸한 것들을 쓸어낼 수 있어요.



형석이의 바람과는 달리 연합국이 들어오면서 극장은 미군 전용 위안 극장으로 쓰였어요. 형석이는 단순한 극장 관리자가 되고 말았어요. 형석이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의 새로운 꿈이 물거품이 되어서가 아니에요. 그토록 힘들게 되찾은 조국인데 동족끼리 총을 겨누게 된 현실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에요. (104쪽)


당시 형석이는 부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월급을 받았는데 자유아동극장을 (무료 공연으로) 운영하느라 늘 빚에 허덕였어요. 하지만 극장 공연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야학원까지 운영했어요. 형석이는 자유아동극장에서 낮에는 공연을 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108쪽)



  《음악 혁명가 한형석》을 읽는 어린이들이 가슴속에 고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이 책을 어린이한테 읽힐 어른들도 가슴속에 맑은 노래를 고운 씨앗으로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 한 가락으로 부르는 독립과 평화를 함께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우리가 다 함께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고 민주와 평등과 통일로도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어린이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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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달리다가



  아이들을 태우고 한여름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문득 멈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들은 어쩐지 얄궂지 않은가? 멧등성이나 멧자락에 있던 나무를 솎아내면서 찻길을 늘리거나 햇볕전지판을 늘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아리송하지 않은가?


  나무를 건사하거나 심으려고 하는 까닭은 ‘오늘 내가 쓸 생각’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를 건사하거나 심는 마음은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 뒤에 이 땅에서 살아갈 뒷사람을 헤아리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쓰는 나무’라고 한다면 적어도 백 해나 이백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아끼거나 건사하거나 돌보거나 심은 나무인 셈이다.


  지구가 무너져도 능금나무를 심는다고 하는 할배는 이녁이 능금알을 얻으려는 뜻이 아니다. 이녁이 사는 이곳에서 지구별이 참말 무너질는지 안 무너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녁은 곧 흙으로 돌아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무튼 능금나무를 심어서 ‘이 땅에서 살며 누린 고마운 능금알’을 이녁 뒤를 이어서 이 땅에서 살 아이들한테 선물로 나누어 주고 싶은 뜻이다.


  오늘 이 들에서 농약을 뿌리는 ‘어른’은 무슨 생각일까? 농약에 찌든 들을 물려받을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누려야 할까?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도, 송전탑과 골프장도, 고속도로와 온갖 터널도, 참말 아이들이나 먼먼 뒷사람을 헤아리면서 짓는 시설일까? 입시지옥 따위를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오늘 이 나라 어른’일까? 4348.8.3.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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