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99) 과거의


 과거의 습관

→ 예전 버릇

→ 옛 버릇

→ 지난날 버릇

 과거에 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 지난날에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 예전에 교사 일을 한 적이 있다

→ 지난 한때 교사로 있던 적이 있다


  ‘과거(過去)’는 “1. 이미 지나간 때 2. 지나간 일이나 생활”을 뜻합니다. 흔히 ‘과거·현재·미래’처럼 묶어서 씁니다. 그런데, 한국말로는 ‘지난날·오늘날·앞날’이거나 ‘어제·오늘·모레’입니다.


  ‘과거’라는 한자말을 쓰려고 한다면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습관”처럼 쓸 일은 없습니다. “옛 버릇”이라 하면 되니까요. “과거를 속이다”나 “과거를 캐다”는 “옛일을 속이다”나 “지난 일을 캐다”처럼 손질해서 쓸 만합니다.


  지나간 때나 날이라면 ‘지난때·지난날’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쓰면 됩니다. 지나간 해라면 ‘지난해’ 같은 낱말을 쓰면 돼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지난때’는 안 나오지만, ‘지난날·지난달·지난해’ 같은 낱말은 나옵니다. 한국말로는 ‘지난-’이나 ‘옛-’을 앞가지로 삼아서 쓰면 되고, 글흐름을 살피면서 ‘예전’이나 ‘지나간’이나 ‘묵은·해묵은’ 같은 낱말을 쓰면 됩니다. 4348.8.4.불.ㅅㄴㄹ




굽신굽신 머리를 숙이고 드나들었던 일은 지난 과거의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굽신굽신 머리를 숙이고 드나들었던 일은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굽신굽신 머리를 숙이고 드나들었던 일은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랠프 랩/표문태 옮김-핵전쟁》(현암사,1970) 40쪽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 그러나 이것은 지나간 이야기이다

→ 그러나 이것은 흘러간 이야기이다

→ 그러나 이것은 옛날이야기이다

→ 그러나 이것은 해묵은 이야기이다

《P.우드링/홍웅성 옮김-미국의 고등교육》(탐구당,1972) 100쪽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 살 수 없었다

→ 더는 옛 방식으로 살 수 없었다

→ 더는 옛날처럼 살 수 없었다

→ 더는 낡은 틀로 살 수 없었다

→ 더는 고리타분하게 살 수 없었다

《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민중의 세계사》(책갈피,2004) 39쪽


도시야 같은 아이는 과거의 일들을 자기 안에서 언어를 통해 분류하고 정리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 도시야 같은 아이는 지난 일을 제 안에서 말로 가르고 나누어서 떠올리지 않고

→ 도시야 같은 아이는 예전 일을 제 안에서 말로 가르고 나누어서 되새기지 않고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03쪽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말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지 말고 그 내용을 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말을 낡은 것으로 돌리지 말고 그 알맹이를 새롭게 살려야 한다

《하라 켄야/민병걸 옮김-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2007) 236쪽


기자간담회 직후 따로 만난 조정래에게 과거의 발언을 상기시킨 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현재의 소회를 물었다

→ 기자모임을 마치고 따로 만난 조정래한테 예전 말을 되새긴 뒤, 노무현 정부를 요즈음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이명원-말과 사람》(이매진,2008) 47쪽


저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 저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난 아니다

→ 저 사람들은 지나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난 아니다

《김민희-젤리장수 다로 1》(마녀의책장,2010) 5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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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제트 2015-08-05 18:15   좋아요 0 | URL
고맙네요 ^^.

파란놀 2015-08-05 18:52   좋아요 0 | URL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고맙습니다~
 



[시골살이 일기 101] 드디어 날아오른 새끼 제비

― 닷새 만에 여섯 마리 모두 날다



  우리 집 처마 밑은 제비가 지내기에 좋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아이가 있는 시골마을이 드물고, 농약을 안 치는 시골집이 드무니, 여러모로 제비는 우리 집에서 지내기에 좋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 깃드는 제비는 해마다 비슷한 철에 돌아오고 비슷한 철에 떠납니다.


  다만, 우리 마을로 돌아오는 제비 숫자는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듭니다. 2011년에는 수백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온 들과 마을에서 춤을 추었으나, 이듬해부터 부쩍 줄고 자꾸 줄어서 올해에는 열 마리도 채 못 봅니다. 그러니까 여러 마을을 아울러 고작 열 마리 즈음밖에 안 되는 제비 가운데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에 깃들어 새끼를 낳아서 보살핍니다.


  사월 첫무렵에 우리 집 제비가 둥지를 손질하며 깃들려 할 적에, 알을 낳아서 깠는가 궁금했지만, 둥지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제비가 떠날 수 있으니까요. 잘 낳았을 테고 잘 돌보겠거니 여기면서 지켜보니 사월 이십일에 비로소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며칠 먹이를 물어 나르다가 조용해졌어요. 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을 테지요.


  어미 제비는 한 달 남짓 우리 집 처마 밑을 떠났고, 우리 집 처마 밑은 이동안 몹시 조용했습니다. 처마 다른 쪽에는 겨우내 참새가 둥지를 틀어서 알을 까고 새끼를 길렀는데, 참새가 쉰 마리에 이르는 무리를 이끌고 찾아오며 제비와 다툰 적이 잦았으니, 뭔가 저지레가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오월 끝무렵부터 어미 제비 두 마리는 다시 처마 밑으로 찾아옵니다. 이때에도 참새하고 다툽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비가 물러서지 않습니다. 참새도 이번에는 그리 골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참새가 우리 집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깔 수 있던 까닭은 제비가 도왔기 때문(마음을 써 주었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참새가 제비집에 깃들어서 지내기도 하니, 참새는 제비한테 더없이 고마워 해야 할 노릇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칠월로 접어들어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다시 봅니다. 이사이에 어미 제비가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굴려서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왜 알 하나를 버렸을는지 알 길이 없으나, 제비는 제비대로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칠월 삼십일에, 새끼 제비 세 마리가 둥지에서 벗어납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한테 더 먹이를 물어 나르지 않고, 새끼 가운데 세 마리는 씩씩하게 둥지를 벗어납니다. 다만, 갓 둥지를 벗어난 새끼 제비는 어미 제비처럼 훨훨 날지 않아요. 처마 밑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서 깃을 손질하거나 말똥말똥거릴 뿐입니다.


  그런데 새끼 제비가 처음 둥지를 벗어난 이날에도 참새 한 마리가 새끼 제비한테 다가오려 합니다. 어미 제비는 참새를 한 번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새끼들을 바라봅니다. 참새는 멀거니 제비를 보다가 저도 고개를 돌립니다. 이렇게 한동안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다른 어미 제비가 날아오니 참새가 떠납니다. 다른 어미 제비는 새끼를 지키던 어미 제비한테 무어라고 한참 지저귀더니, 새끼를 지키던 어미 제비 입에 벌레 한 마리를 넣어 줍니다. 어미 제비 두 마리는 서로 몫을 나누어 하나는 새끼한테 저지레를 할 녀석이 없도록 지키고, 다른 한 마리는 제 짝한테 먹이를 물어다 주는군요.




  이리하여 2015년 올해 우리 집 제비집에서 새끼 제비가 씩씩하게 세 마리 깨어나서 어른 제비로 큽니다. 그런데, 둥지에 아직 어린 새끼 제비가 있습니다. 어린 새끼 제비는 그야말로 말똥말똥 바깥을 내다보기만 할 뿐 조금도 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 냅니다. 먼저 밖으로 나온 새끼 제비가 둥지로 날아들어서 “얘들아, 너희도 이제 나와!” 하고 지저귀는구나 싶은데, 둥지 앞에서 날갯짓을 보여주는데, 이래도 꼼짝을 않습니다.


  한 번 둥지 밖으로 나온 새끼 제비는 이튿날부터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해질녘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새끼 제비는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에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하나도 안 주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어미 제비는 ‘남은 새끼 제비’가 가여운지,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아무래도 ‘앞선 세 마리’보다 ‘남은 몇 마리’가 작거나 여리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기로도,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나를 적에 빽빽거리며 고개를 내민 새끼는 세 마리만 보였어요.


  아마 세 마리가 몸이 먼저 잘 자라서 일찍 둥지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테고, 여리거나 작은 아이들은 먹이도 늦게 받거나 제대로 못 먹었을 수 있습니다.


  팔월 사일 새벽 이십 분 즈음, 처마 밑이 몹시 부산스럽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까요? 큰아이가 먼저 바깥을 내다보더니 “제비들 잘 나네?” 하고 말합니다. 옳거니, 남은 새끼도 이제 둥지를 벗어났는가?


  늦게 둥지를 벗어난 새끼도 세 마리입니다. 두 마리가 늦도록 못 나오나 하고 여겼는데, 먼저 나온 아이도, 나중 나온 아이도 셋씩입니다. 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면 더 씩씩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미 제비 두 마리가 먹이를 물어 나르기에는 여섯 마리가 좀 벅찼을 수 있습니다.


  나중 나온 세 마리는 빨랫줄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입니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다가서면서 손을 뻗습니다. 새끼 제비는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서도 날아오르지 않습니다. 어미 재비가 보채거나 닦달을 하니 한두 번 날개를 파닥이는 듯하다 그치기를 되풀이하다가, 지붕을 타고 앉기도 하고, 빨랫줄 다른 자리로 옮겨 앉기도 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나중 세 마리도 하늘을 가르면서 놀 테지요. 이제 오늘부터 나중 세 마리도 날갯힘을 기르고 스스로 먹이를 잡는 몸놀림을 배울 테지요.


  늦깎이로 깨어난 제비 여섯 마리는 그야말로 바지런히 날고 또 날아야 합니다. 여름이 저물 무렵 태평양을 건너려면 날마다 신나게 날고 다시 날면서 힘을 키워야 합니다.


  부디 한국을 떠나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그날까지 튼튼하게 자라기를 빕니다. 올해가 저물고 이듬해에 새봄이 찾아오면 그때에도 기운차게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빕니다. 이듬해에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제비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과 제비가 서로 사이좋게 아끼고 보듬으면서 사랑스러운 시골마을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흥부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제비가 살 만한 마을일 때에 사람도 살 만한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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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달리고 싶어서



  사름벼리는 달리고 싶어서 이 신을 신지. 하니처럼 달리고, 바람처럼 달리고, 하늘을 가르면서 달리고 싶어서 이 신을 신지. “얼른 이리 와 보세요.” “아버지는 짐을 들고 가느라 못 달리는데.” 홀가분한 몸으로 아주 가볍고 날렵하게 폴짝폴짝 뛰면서 멋지게 달리는 시골순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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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58. 한여름 논둑길에서 (15.8.1.)



  한여름 논둑길을 버스 장난감 안고서 하품하며 걷는 아이는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 집 귀염둥이요 개구쟁이인 작은아이로다. 잠을 덜 잤니? 잠이 모자라니? 너른 볕살 먹으면서 기운을 내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돌이,시골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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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8-04 09:45   좋아요 0 | URL
어랏! 벼리 머리 잘랐네요? 키가 훌쩍 더 커보여요. 무엇보다도 시원해보이고요.

파란놀 2015-08-04 09:56   좋아요 0 | URL
벼리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깎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한여름에 아무래도 많이 덥고 힘들었나 봐요 ^^;;;
제가 날마다 알뜰히 묶고 땋아 주었으면
안 깎았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ㅠ.ㅜ
 
오전3시의 무법지대 1
요코 네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2



사내들이 알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 오전 3시의 무법지대

 네무 요코 글·그림

 김승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9.9.15. 5500원



  《펜과 초콜릿》,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같은 작품을 그린 네무 요코 님이 빚은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대원씨아이,2009)를 읽습니다. 모두 세 권으로 나온 《오전 3시의 무법지대》이고, 이 만화에 뒤이어 《오전 3시의 위험지대》가 세 권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전 3시의 무법지대》라는 만화책은 ‘전문대’를 막 마치고 회사원이 된 젊은이가 회사에서 겪는 일을 그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네무 요코 님은 ‘만화에 나오는 회사’가 이녁이 처음 사회생활을 할 무렵에 다닌 회사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밥먹듯이 밤일이나 밤새움을 해야 하고, 이제 일을 다 마치고 기지개를 켤라 치면 새로운 일감이 떨어집니다. 새벽까지 부시시하게 일하다가 회사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기 일쑤입니다.



‘올봄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익숙지 않은 용어와 꽉 찬 담배 연기와 반복되는 자문자답에 완전히 쩔어 있다.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4∼5쪽)


‘가장 필요했던 건 침대 따위가 아니라, 그 손이었는데, 이젠 굉장히 멀어 … 하지만, 솔직히 지금 나에겐 눈앞의 일을 납기 마감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큰 문제라.’ (23, 25쪽)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사내들이 밤새움을 밥먹듯이 하는 회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둘째, 회사 일을 밤을 새우며 하더라도 남녀 사이에 나누는 짝짓기를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셋째, 많이 어리거나 젊은 나이에 홀로서기를 하면서 홀가분하게 살림을 꾸리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넷째, 꿈으로 나아가고 싶은 젊은 넋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섯째,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을 달랠 수 있지만, 바로 이 조그마한 일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가녀린 넋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은 사내 아닌 가시내입니다. 사내들이 우글거리고, 사내들이 변태스러운 짓을 하며, 사내들이 미친듯이 일감을 우악스레 맡아서 꾸역꾸역 해치우는 곳에 여린 가시내가 막내 일꾼으로 들어옵니다. 수많은 가시내가 막내로 들어왔다가 이곳에서 못 버티고 떠나는데, 이 일터는 재미있게(?)도 막내 일꾼을 자꾸 사내가 아닌 가시내로 뽑습니다.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맡을 사람을 찾다 보니 사내는 드물고 가시내가 많을 수 있지만, 회사나 사회 얼거리를 살핀다면, 이만 한 일터라면 웬만한 사내도 버티기 힘든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로워 마땅한 그런 파괴적인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어쩔 수 없지 뭐’라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여자의 감성이 저하된 자신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 맞은편에서 나부끼는 형광 핑크 현수막에 눈을 빼앗기는 자신. 도모코가 만든 거네, 예쁘다. 파칭코 현수막을 보고 ‘예쁘다’라…….’ (30∼31쪽)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지더라. 충격이고 슬픔이고. 오히려 후련하기까지 하더라고. 이상하지?” “이상해. 널 그렇게 만든 게 회사라면, 그딴 데 가고 싶지도 않다.” ‘만약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난 울었을까.’ (48쪽)



  일이 힘든 사람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일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무엇을 바랄까요? 왜 우리는 즐겁고 신나게 일하기보다는, 힘들고 고단하게 일하려 할까요? 일감을 더 많이 따와야 먹고살 수 있을까요? 저마다 일감을 더 따오려고 하는 바람에 먹고살 길이 외려 더 팍팍하지 않을까요? 알맞게 나누고 알맞게 쓰며 알맞게 일할 적에 삶이 눈부시게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을 말하면, 매일 꽤 즐겁게 일하고 있다. 더 깊이 말하면, 요즘 들어서는 그만두고 싶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70∼71쪽)


“이제 그만 결정해야지. 모모코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릴 위해서도. ‘이딴 회사’라도, 우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78쪽)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서 말하는 ‘오전 3시’란 “밤 세 시”입니다. 밤 세 시에도 일해야 하는 곳이요, 밤 세 시는 아무것이 아닌 일터입니다. 아니, 밤 세 시까지 일을 마치고는 까무룩 잠이 드는 일터라고 할 만하다는 소리도 될 텐데, 문득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는 으레 네 시 즈음 일어나서 하루를 엽니다.  시골사람으로서는 새벽 네 시이건 세 시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를 여는 때일 뿐입니다.


  고요한 서너 시에 눈을 뜨면, 맨 먼저 개구리 소리하고 풀벌레 소리가 잦아드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무렵에는 밤새도 거의 숨을 죽입니다. 다섯 시쯤 되면 낮새가 바지런히 깃을 털고 일어납니다. 풀잎도 나뭇잎도 가만히 자면서 이슬을 머금는 새벽 서너 시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때에 맨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여는 사람을 두고 ‘이슬떨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겠지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로 하루를 여는 사람은 언제나 씩씩하면서 야무지고 의젓합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삶을 짓고, 기쁘게 꿈꾸면서 일손을 잡습니다.


  그러니까,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나오는 여린 아가씨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와 같은 길을 간다고 할 만합니다. 이 여린 아가씨를 아끼던 선배 언니도 지난날에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와 같은 길을 갔을 테고요.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즐거운 일. 즐거운 일을 선택하면 안 되는 걸까?’ (93쪽)


“내일 데이트라며, 얼른 일 끝내야지.” “데이트. 그런 거나 가도 될까요?” “무슨 소리야? 파칭코 가게 바닥의 고작 80cm 공백이랑 자신의 데이트랑 뭐가 더 중요해? 응? 뭐냐고? 당연히 데이트지!” (151쪽)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나오는 사내들은 ‘사람 마음’을 잘 못 읽습니다. ‘사람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사내도 있으나, ‘사람 마음’을 도무지 못 헤아리는 사내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내는 만화책에만 있지 않습니다. 만화책 바깥, 그러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도 ‘사람 마음’을 읽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않는 사내는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읽지 못하거나, 사람으로서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내라고 할까요.


  꽤 많은 사내는 밥을 차리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참 많은 사내는 빨래하고 아이들 돌보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무척 많은 사내는 살림을 짓고 밭을 가꾸는 꿈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힘을 써서 더 많은 짐을 짊어지는 사내는 힘을 덜 쓰거나 못 쓰면서 짐을 짊어지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알려고 하는 생각조차 없을는지 모르지요. 여리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려고 하는 사내가 드물 수밖에 없을는지 모릅니다. 사내는 예부터 전쟁터에 끌려가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짓을 저질러야 했고, 사내는 힘자랑을 해야 뭔가 대단하다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니까요.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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