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160. 파란하늘 이고 달린다 (15.8.3.)



  날이 더워도 달린다. 날이 추워도 달린다. 어떻게? 달리면서 놀 적에는 더위도 추위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달리면서 놀 때에는 그저 달리면서 노는 기쁨만 가슴으로 품기 때문에. 자, 우리 함께 파란하늘을 온몸으로 이면서 달리자. 파란하늘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풀처럼 신나게 노래하면서 달리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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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 ‘건전해’진다



  서울에 사는 이웃님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입으로 “시골에서 살면 ‘건전해’져요.”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어라, 그런가? 그래, 그렇구나. 시골에서는 도시하고 달리 ‘눈을 어지럽히는 것’도 ‘소비와 상품에 꼬드기는 것’도 없다. 흙을 만지는 사람한테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쓸모가 없다. 흙을 만지는 사람한테는 주먹힘이나 이름값 따위는 쓸데가 없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얼굴 생김새라든지 잘빠진 몸매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더군다나 시골에서는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살지 않으면, 술 한 병을 살 곳도 없다. 언제나 바람소리를 듣고 풀내음을 맡으며 숲노래를 부르는 삶이 시골살이라고 할 만하다.


  아, 예전에는 한겨레 누구나 시골사람이었다. 몇몇 지식인과 궁중 관료만 서울사람이었다. 그런데, 몇몇 지식인조차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날에는 한겨레 거의 모두 도시사람이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시골집에 깃들어 흙을 만지면서 공무원 노릇을 하거나 지식인이나 학자로서 글을 쓰거나 정치 일꾼으로 지내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도시사람이기에 ‘안 건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시골사람이어도 농약을 마시고 비료를 만져야 하면 고단하다. 농협 수매로 근심을 하고 자질구레한 행정에 시달리면 괴롭다. 일철에도 일철이 아닌 때에도 오늘날 시골 할배는 날마다 소줏병을 옆에 낀다. ‘건전’이란 뭘까? 어떠한 삶이 ‘건전’일까? 즐거운 삶이나 아름다운 삶이란 뭘까? 도시에서나 시골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기쁨을 헤아리는 삶은 얼마나 될까? 4348.8.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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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104) 매분마다


 매분마다 선택을 하고

→ 1분마다 고르고

→ 1분마다 한 번씩 고르고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매분(每分)’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일 분 일 분”이나 “일 분마다”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 이 보기글처럼 “매분마다” 꼴로 적으면 겹말입니다. ‘每’를 넣는 한자말 ‘매일·매월·매년’을 ‘매일마다·매월마다·매년마다’처럼 쓰는 분이 꽤 많은데, 이러한 말투도 모두 겹말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매일·매월·매년’처럼 쓸 노릇이고, 한국말을 쓰려 한다면 ‘날마다(나날이)·달마다(다달이)·해마다’처럼 쓸 일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1분마다 한 번씩”이나 “1분에 한 번씩”처럼 쓸 수 있어요. 더 힘주어 말하고 싶기 때문에 겹말이 나타나기 일쑤이니, 이렇게 한결 또렷하게 적어 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을 쓰든 한국말을 쓰든, 일본말이나 영어를 쓰든 그리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매분마다’ 같은 말투를 쓰고 맙니다. 한국에서 이웃하고 나누는 말이나 글을 펼칠 적에는 오롯이 한문이나 일본말이나 영어로 쓰지는 않지만, 낱말이나 말투 몇 가지를 한자말이나 영어를 끼워서 쓰려고 하다 보니, ‘매분마다’ 같은 겹말이 자꾸 나타납니다. 4348.8.5.물.ㅅㄴㄹ



앨리스와 밥은 각자 자신의 상자 앞에 앉아서 매분마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선택을 하고

→ 앨리스와 밥은 저마다 제 상자 앞에 앉아서 1분마다 마음대로 스스로 고르고

《니콜라스 지생/이해웅,이순칠 옮김-양자우연성》(승산,2015) 5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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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04) 아래의


 아래의 책을 참고하시오

→ 다음 책을 살펴보시오

→ 다음에 드는 책을 살펴보시오

→ 이 책을 살펴보시오

→ 이 같은 책을 살펴보시오


  말을 할 적에는 “아래의 보기”나 “아래의 이야기”처럼 말하지 못합니다. ‘아래’에는 아무런 보기도 이야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같은 말투는 글을 쓸 적에 흔히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투는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일본 말투이지요. 일본사람이 원고지로 글을 쓸 적에 ‘한쪽에서 위와 아래를 갈라서 아래쪽이 되는 자리’에 드는 보기나 이야기를 밝히려고 ‘아래’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종이(원고)에 글을 쓸 적에는 ‘아래’에 놓이더라도, 책을 엮으면서 다음 쪽으로 넘어갈 수 있고, 위쪽에 다른 보기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러하든 저러하든 “아래의 보기”나 “아래의 이야기”는 틀립니다. 말을 할 적이든 글을 쓸 적이든 ‘다음’이나 ‘이러한’이나 ‘이 같은’이나 ‘이’라고 하는 말마디를 넣어서 써야 올바릅니다. 4348.8.5.물.ㅅㄴㄹ



그리고 기자를 데리고 언덕 아래의 공터로 향했습니다

→ 그리고 기자를 데리고 언덕 아래 빈터로 갔습니다

《쿠루사(글),모니카 도페르트(그림)/최성희 옮김-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동쪽나라,2003) 41쪽


이시모토 야스오 씨와 의논해서 편집한 것이 아래의 내용이었다

→ 이시모토 야스오 씨와 얘기해서 엮은 줄거리가 이와 같다

《오쓰카 노부카즈/송태욱 옮김-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 27쪽


아래의 이야기는 그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다

→ 다음 이야기는 그와 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던 일이다

《니콜라스 지생/이해웅,이순칠 옮김-양자우연성》(승산,2015) 6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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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24) 결론적


 결론적 입장 → 마지막 생각

 결론적인 이야기 → 끝맺는 이야기

 결론적으로 말하다 → 끝맺으며 말하다


  ‘결론적(結論的)’이라는 말마디는 2010년 즈음까지 한국말사전에 안 실렸습니다. 요즈막에 한국말사전에 실립니다. 쓰임새가 부쩍 늘었기에 한국말사전에 실을 수 있습니다만, ‘결론’이라는 한자말은 “끝”이나 “마지막”을 뜻합니다. 요즈막에 한국말사전에 실린 ‘결론적’은 “최종적으로 말하거나 판단하여 나온”을 뜻한다고 해요. ‘최종적(最終的)’은 “맨 나중의”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이든 ‘최종적’이든 “맨 나중”이나 “끝”이나 “마지막”이나 “마무리” 같은 한국말로 손질하면 됩니다.


  어떤 말을 마무리를 짓는 자리라면 “마무리를 짓자면”이나 “마무리를 지어서”라 말할 만하고, 어떤 말을 끝맺는 자리라면 ‘끝맺다’라는 낱말을 넣지요. ‘곧’이나 ‘그러니까’나 ‘그래서’나 ‘이리하여’ 같은 말마디를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8.5.물.ㅅㄴㄹ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장치이다

→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장치이다

→ 한 마디로 사진은 삶을 적는 장치이다

《한정식-사진, 예술로 가는 길》(눈빛,2006) 70쪽


결론적으로 상자 안에 정확히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그러니까 상자에 바로 어떤 것이 들었는지는 대수롭지 않다

→ 이리하여 상자에 바로 어떤 것이 들었는지는 대단하지 않다

《니콜라스 지생/이해웅,이순칠 옮김-양자우연성》(승산,2015) 6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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