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을 쓰는 까닭



  누구나 언제나 즐겁게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느껴요. 그렇기에 어른들은 어린이문학이라고 하는 글을 써서 아이들하고 함께 나누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몸이 작고 힘이 여린 아이들도 모든 일을 즐겁고 씩씩하게 잘 할 수 있거든요.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온갖 놀이를 멋지고 재미나게 할 수 있거든요.


  어린이문학은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사랑을 심어 주는 선물을 베풀려고 하는 이야기꾸러미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베푸는 사랑이라고 하는 선물은, 언제나 어른이 어른 스스로 누리는 사랑스러운 선물이기도 합니다. 어른인 내가 나한테 사랑스레 선물할 수 있기에, 이 마음을 아이하고도 기쁘게 나누는 사랑스러운 선물로 글을 쓸 수 있어요.


  왜 어린이문학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까요? 아이와 어른 모두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가슴 가득 차오르는 사랑을 느끼면서 기쁜 웃음이 샘솟기 때문이지요. 사랑을 그리기에 어린이문학이고, 사랑을 선물로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그리기에 어린이문학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삶을 그리기에 어린이문학입니다. 4348.8.1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네 손에



  네 손에 즐거운 놀이가 있다. 네 눈에 기쁜 웃음이 있다. 네 다리에 씩씩한 기운이 있다. 네 머리에 슬기로운 넋이 있다. 네 가슴에 착한 숨결이 있다. 네 온몸에 고요한 바람이 있다. 네 둘레에 고운 볕이 있다. 그리고 장난감 하나가 너한테 찾아가서 함께 논다. 4348.8.1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집배움자리 52.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하면 누구나 한다. 할 수 없도록 하면 누구도 못 한다.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가만히 마음을 열고 지켜보면 된다. 할 수 없도록 하려면 꽁꽁 마음을 닫고서는 고개를 홱 돌리면 된다. 아이한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이와 같다. 이 땅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려면 이 땅을 어떻게 가꾸어야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서로 이웃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 땅을 어떻게 망가뜨리겠는가? 너와 내가 함께 마시는 샘물이라고 느끼면 논밭뿐 아니라 아무 데에나 농약을 안 쓴다. 너와 내가 함께 마시는 바람이라고 느끼면 플라스틱을 아무 데에서나 태우지 않는다. 핵발전소 같은 위해시설을 큰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데에 지으면 큰도시는 깨끗하거나 걱정없을까? 위해시설은 어디에 들어서든 똑같이 무시무시하다. 아름다운 시설을 갖추려 하면, 이 아름다운 시설은 큰도시에 깃들든 두멧자락에 깃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4348.8.1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08) 각고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다

→ 뼈를 깎듯이 온힘을 기울이다

→ 뼈를 깎듯이 애쓰다

 각고의 연구 끝에

→ 뼈를 깎는 연구 끝에

→ 뼈를 깎듯 연구한 끝에


  ‘각고(刻苦)’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어려움을 견디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척 애를 씀”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흔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다”처럼 쓰는데, “뼈를 깎도록 애쓰다”나 “뼈를 깎을 만큼 애쓰다”로 다듬으면 잘 어울립니다. 또는 ‘피나다’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어요. “피나게 애쓰다”나 “피나는 연구 끝에”처럼 쓸 만해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노력(努力)’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을 뜻합니다. “각고의 노력”처럼 말하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이라는 뜻을 ‘-의’를 사이에 두고 잇달아 적는 셈입니다. 마치 “노력의 노력을 기울이다”나 “각고의 각고를 기울이다”처럼 쓰는 셈이라고 할까요.


 온힘을 기울이다 . 온힘을 쏟다

 온마음을 다하다 . 온마음을 바치다


  “온몸을 바쳐 애쓰다”라든지 “온마음을 쏟으며 애쓰다”처럼 쓰면 됩니다. “온몸을 바치듯이 애쓰다”라든지 “온마음을 쏟듯이 애쓰다”처럼 써도 됩니다. 4348.8.10.달.ㅅㄴㄹ



한 꿈많은 소녀가 자신이 타고난 소질로서의 육체를 각고의 노력으로 갈고 다듬어 예술품처럼 만인 앞에 내세우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다고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 꿈 많은 소녀가 제 타고난 재주로서 몸을 피나게 갈고 다듬어 예술품처럼 뭇사람 앞에 내세우려는 뜻을 펼친다고 이 일이 잘못은 아니다

《구혜영-세월의 강물소리》(유아개발사,1979) 196쪽


진정한 시와 시인은 어느 시기에 별안간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각고의 탐색 끝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 참된 시와 시인은 어느 때에 느닷없이 고를 수 있지 않고 오래 애쓰고 살핀 끝에 이루어진다는 대목을 헤아릴 때

《조태일-고여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전예원(1980)> 111쪽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우리말 표기에 가장 적절한 문자를 발명하신 것이다

→ 이렇게 피나게 애써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며 우리말을 적기에 가장 알맞은 글자를 지으셨다

《정광-한글의 발명》(김영사,2015) 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적나라한 결혼생활 : 결혼편 적나라한 결혼생활 4
케라 에이코 지음, 심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34



‘함께 짓는 삶’이 뭔데?

―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

 케라 에이코 글·그림

 심영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015.3.6.



  ‘혼인’은 사회 제도입니다. 혼인을 하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두 집안 어버이가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식구’가 된다고 합니다. 혼인이라고 하는 사회 제도를 따르지 않고 함께 산다면, 그저 ‘함께 산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사이는 친척도 친족도 아니며 한식구도 아닙니다. 다만, 매우 가까운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서로 피로 맺은 사이는 아니라 하지만, 마음으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지내는 사이가 됩니다.



“현재의 자신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그 후의 문제를 들이대 봤자지! 장래 같은 거 생각할 수 없을 거 아냐? 분명.” (12쪽)

“결혼 같은 건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먼 일이란 언제? 몇 살쯤?” “서른 살이랄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은 일도 막 시작했고, 그럴 때가 아니야.” “왜? 결혼해도 일은 할 수 있잖아!” (17쪽)



  케라 에이코 님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21세기북스,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은 ‘적나라한’이라고 하는데, 감추지 않고 다 밝힌다고 하는데, 무엇을 안 감추고 다 밝힐까요?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요? 두 집안이 만나서 함께 이루는 친족살이가 되는 모습이 결혼생활일까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사회 제도로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한국사람하고 일본사람이 한집 사람이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이라면, 나라를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도 성별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으로 흐르는 기쁜 넋을 바라봅니다.



“나한텐 좋은 점이 없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런 귀여운 아이를 독점할 수 있잖아.” (20∼21쪽)

‘가까워진 계기가 ‘만화 동아리’? 뭔가 얼간이 같은 이 두 사람!’ (63쪽)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사회 제도에 맞추어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올리려고 하는 동안’에 어떤 일을 겪고, 이러한 일을 겪는 동안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철이 없거나 생각이 깊지 않던 나이에 혼인신고와 예식을 함께 치르면서 한집살이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나 몸짓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까놓고(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혼인하기 앞서나 혼인하고 나서나 그리 달라질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만화책을 그린 분은 ‘살섞기(섹스)’를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하는 부부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한집살이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양을 떨거나 살내음을 바라는 한집살이가 아니라, 마음이 차분하게 맞는 두 사람이 새롭게 짓는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요즈막 젊은이들 눈높이나 삶하고는 많이 안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섞기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할 뿐 아니라, 서로 손을 잡고 다니는 일조차 드물면서 ‘혼인’을 하며 지내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이니까요.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전부 부를 수 없는 건 사실이네.” “친구에 우선순위라니. 적기 어렵다. 또,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가 초대를 받아서 이쪽도 부르지 않으면 미안한 사람도 있네.” (110쪽)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일입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 살섞기가 아닙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기에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을 섞으면 살섞기이고, 입을 맞추면 입맞춤입니다. 서로 껴안으면 껴안기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도 안 아끼면서 살만 자주 섞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조금도 안 헤아리면서 손만 잘 잡는다고 해서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혼인도, 살내음에 앞서 마음결을 느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삶도 생각도, 얼굴이나 몸매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씨를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저기 저기, 생선 별로지 않아? 역시 한 등급 위의 코스로 해둘 걸 그랬어.” “엣? 그렇구나.” ‘싫다. 그렇구나. 모두들 먹고 있잖아. 아아, 저 사람 지금 막 먹으려 한다. 아, 씹고 있어. 씹고 있어. 죄송하네.’ (161∼162쪽)



  함께 짓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짓는 삶에서 우러나는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너를 왜 좋아하고, 너는 나를 왜 좋아할까요? 한집에서 쉰 해나 일흔 해를 함께 살 수 있을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할까요? 날마다 늘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사이라고 한다면, 둘은 어떤 눈길이 되어 서로서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만화책 《적나라한 결혼생활, 결혼편》은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참말로 철이 없거나 바보스럽기까지 한 가시내와 사내가 어떻게 혼인신고를 하고 예식을 치르면서 한집살림을 꾸리는 데까지 나아갔느냐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겉모습이나 이름값이나 돈이 이끌려서 한집살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숨을 거두는 날까지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살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쁘게 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입니다.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혼인도 한집살이도 국경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온갖 허울’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일류 대학교를 나왔기에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잘 벌거나 얼굴이 멋지게 생겨서 함께 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하고 참다우면서 슬기로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낄 때에 비로소 함께 살 만한 사람이라고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4348.8.10.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