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2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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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38



너하고 얘기하려고 배운 ‘새로운’ 말

― 목소리의 형태 2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5.31. 5500원



  아기가 하는 말을 도무지 못 알아듣는 어른이 꽤 많습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본 적이 없으면, 아기가 옹알거리는 말을 못 알아채기 마련입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본 적이 있어도 아이 곁에서 오래도록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았으면, 막상 이녁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다른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도 못 알아듣기 일쑤입니다.


  아기하고 한마음이 될 적에 아기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듣습니다. 아기하고 눈높이를 맞출 적에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아기하고 함께 놀면서 하하하 웃을 적에 아기가 노래하는 이야기를 비로소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수화를 하는 거야?” “배, 배웠어! 나라고 할 말 없었던 거 아냐. 네가 목소리가 안 들리다 보니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컸다고.” (15쪽)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여기 왔어. 계속 드는 생각이 있어. 초등학교 6학년 그때, 그때 서로 목소리가 들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내가 싫어. 나밖에 모르고, 배려심도 없고, 같은 반 애들을 깔보면서 살아왔어. 17년 간 살면서 한 번도 착한 녀석이었던 적이 없어. 그때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것으로밖에 목소리를 전하지 못했어.” (18∼20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목소리의 형태》 첫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한 반 가시내를 몹시 못살게 굴었습니다. 삶이 너무 따분하고 지겹다고 여긴 사내 아이는 ‘소리를 못 듣는 동무’한테 아주 짓궂었어요. 그런데, 사내 아이만 짓궂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 거의 모두 똑같이 짓궂은 짓을 일삼았어요.


  나중에 이 따돌림은 크게 말썽이 됩니다.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면서 ‘누가 이런 짓을 일삼았느냐’ 하고 물으니, 사내 아이가 혼자 ‘따돌림’을 짊어집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내 아이 혼자 그 아이를 괴롭혔다고 몰아세웁니다.



‘오늘은 높은 다리에서 죽으려고 했는데, 예정은 다 꼬이고 잉어 먹이나 주고 있지 않나. 덜 떨어진 얼굴에, 눈은 벌겋고, 여드름 하며.’ (29쪽)


“그 노트, 그렇게 소중해?” “한 번 포기했지만, 네가 주워 줬으니까.” (45쪽)



  ‘소리를 못 듣는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는 얼결에 ‘따돌림받는 아이’가 되었어요. 그동안 ‘여린 동무를 따돌리던 아이’에서 하루아침에 자리가 뒤바뀌었지요. 그런데, 곰곰이 따지고 보면, ‘주동자’라는 아이가 ‘피해자’가 된다 하더라도, 말썽거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동자로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도 ‘여린 동무를 괴롭히던 아이’이거든요. 게다가, ‘따돌림받는 사람’이 바뀌기만 했을 뿐, ‘따돌림이 벌어지는 학교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아마 학교에서는 ‘주동자’를 찾아내어 이 아이만 다그치면 될 일이라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말 학교나 사회에서는 ‘가장 나쁜 놈’ 하나를 콕 집어서 꾸짖거나 나무라면 된다고 여긴다고 할 만합니다. ‘주동자한테 이끌려서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했든, ‘주동자 못지않게 신나게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했든, ‘다른 아이들이 여린 동무를 괴롭히는 짓을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렸든, 모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따돌리는 짓’을 함께 한 셈인데, 이 대목을 돌아보면서 학교와 사회를 고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이 드뭅니다.



‘죽었으면, 엄마의 이런 얼굴도 못 봤겠지.’ (47쪽)


‘친구라는 게 뭘까. 사람은 언제부터 타인을 친구로 인식하는 걸까? 단둘이 이야기했을 때?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을 때?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쟤네는 알까? 친구라는 게 뭘까.’ (66쪽)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를 안 다니면 무엇을 못 배울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 여느 어버이는 으레 ‘학교를 다녀야 사회를 배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서, 아이들은 참으로 학교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똑똑히 배워요.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모두 배우지요.


  학교에서 마주하는 좋은 모습이라면,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어울리는 기쁨을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날마다 꾸준히 배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른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는 재미를 배울 수 있고, 과목에 따라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끄는 어른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궂은 모습이라면, 점수에 따라서 줄을 세우는 모습을 학교에서 배우고, 주먹힘이나 돈에 따라서 동무를 괴롭히는 모습을 학교에서 배우며, 입시지옥 얼거리를 배울 뿐 아니라, 학력으로 계급이 갈리는 모습까지 학교에서 배웁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해 주면 돼. 그럼 답이 돌아올 거야. 하지만, 이시다, 난 우정이라는 건, 말이나 이치, 그런 걸 초월한 곳에 있다고 봐.” (72∼73쪽)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어릴 적에 제가 괴롭히던 아이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손말(수화)을 혼자 배운 뒤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철이 아주 없던 어린 날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하루를 빨리 넘기려는 마음이었다면, 철이 조금씩 들 무렵에는 조금씩 생각을 키우다가 손말을 익히고, 누구보다 떠오를 뿐 아니라 잊을 수 없던 옛 동무한테 찾아가요.


  그런데, 이 아이는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면서 옛 동무한테 찾아갑니다. ‘소리를 못 듣는 동무’한테 털어놓고 싶은 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어머니가 짊어져야 한 빚을 갚고는, 아쉬움 없이 목숨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갈 생각입니다.


  자, 그러면 이 아이는 ‘소리를 못 듣는 옛 동무’를 만나서 어떻게 될까요?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다 풀까요? 응어리를 푼 뒤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 아이가 응어리를 푼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이 아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웃긴 뭘 웃는 거야, 내가 지금! 난 웃으면 안 되잖아! 나 자신이 싫다. 옛날 잘못을 용서 받고, 자기 편한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 잊으면 안 돼. 원래는 미소로 가득했어야 할 시간도. 어두운 기억도. 하지만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187∼189쪽)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말’이 맞아야 합니다. 한국사람하고 일본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려면 둘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말이나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면,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알아야 하겠지요.


  ‘소리를 못 듣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말할 적에 입술을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며 ‘소리를 읽는다’면 될 테고, ‘소리를 듣는 사람’이 손말을 익혀도 될 테지요.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갈 적에 두 사람은 서로 사이좋게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를 나눌 만할까요?


  아기를 낳는 어버이는 아기한테 맞추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기한테 말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아기가 옹알거리는 말을 모두 알아들으면서 아기가 즐겁고 넉넉하게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가꾸려고 합니다. 힘이 여리거나 마음이 여리거나 아픈 이웃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리거나 아픈 사람더러 ‘안 여리거나 안 아픈 사람’한테 맞추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겠지요? 여리거나 아픈 사람한테 맞추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겠지요?


  너하고 얘기하려고 배운 ‘새로운’ 말은 너와 나 사이를 여는 실마리입니다. 너하고 마음을 나누려고 배운 ‘새로운’ 말은 너와 나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목소리’는 입으로만 내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마음으로도 냅니다. 아니, 목을 거쳐서 입으로 터지는 말소리는 맨 먼저 마음에서 우러나옵니다. 마음에서 참되고 착한 숨결로 흐르는 이야기일 때에, 비로소 목을 거치고 입으로 터져서 아름다운 말이 됩니다. 4348.8.1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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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모타니 고스케,NHK히로시마 취재팀) 동아시아 펴냄, 2015.7.29.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일자리를 찾는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집삯이나 살림돈을 얻지 못해서 먹고살 수 없다고 여긴다. 어떤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삶자리를 찾는다. 다만, 모든 시골사람이 이처럼 살지는 않는다만,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일자리가 아니라 삶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맑은 물과 싱그러운 바람을 누리면서 푸른 숲을 껴안을 수 있는 삶자리를 살피면서 시골살림을 가꾸려 한다. 그러면 ‘도시 일자리’와 ‘시골 삶자리’는 무엇이 다를까? 돈을 벌어서 돈을 쓰며 살자면, 돈이 꼭 있어야 한다. 삶을 지으면서 삶을 가꾸려 하면, 돈이 아닌 삶이 있으면 된다. 도시에서는 장사를 하든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면, 시골에서는 흙을 일구거나 나무를 베면 된다. 흙은 해마다 새로운 밥을 베풀고, 숲은 해마다 새로운 나무를 나누어 준다. 그러니, 시골자락에서 숲을 껴안으면서 삶을 가꾸려 하는 사람은 삶을 넉넉히 누릴 뿐 아니라, ‘넉넉히 남는 흙하고 나무’로 돈까지 얻을 수 있다.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는 도시나 문화나 문명 따위가 없던 먼 옛날부터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짚자고 물으면서, 오늘날과 앞날을 밝히는 길이 바로 ‘시골’과 ‘숲’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대목을 보여준다. 책이름에 ‘자본주의’라고 적었지만,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숲에서 삶을 껴안다”처럼 말해야 옳다. 4348.8.1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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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산촌자본주의, 가능한 대안인가 유토피아인가?
모타니 고스케 & NHK히로시마 취재팀 지음, 김영주 옮김 / 동아시아 / 2015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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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모자에 잎사귀 꽂겠어



  모자를 쓰는 사름벼리는 그냥 모자만 쓰기보다는 잎사귀를 함께 꽂고 싶다. 넝쿨잎을 하나 똑 따서 귀에 꽂는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 바람에 날릴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곱게 잘 꽂으렴. 넝쿨잎한테도 자전거바람을 선물할 수 있겠구나.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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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모자 잘 어울리네



  우리 집 아이들은 모자를 거의 안 쓰며 살았다. 아무리 볕이 내리쬐어도 모자를 성가셔 한다. 온몸과 얼굴에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놀기를 즐긴다. 그런데 어머니가 모자를 챙겨서 쓰니, 두 아이 모두 모자를 쓰려 하고, 산들보라도 모자를 하나 눌러쓴다. 너 모자 쓴 모습은 한 해에 한두 번 보기도 어려운데, 꽤 잘 어울리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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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23 : 노래老來


노래(老來)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노래老來에

→ 늘그막에

→ 다 늙어서

→ 늦깎이에

→ 늙은 나이에


  한국말로 ‘노래’라고 하면 “귀로 듣는 소리나 가락”입니다. ‘老來’ 같은 한자말은 한국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한자말도 한국말이라고 여기는 마음일는지 모르나, 한자를 밝혀야만 뜻을 어림할 수 있다든지, 한자를 밝혀도 뜻을 어림하기 어렵다면, 영어나 프랑스말처럼 외국말입니다. ‘늘그막’이라는 한국말이 어엿하게 있으니 ‘老來’ 같은 외국말은 한국말사전에서도 털고, 지식인들 입에서도 씻어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8.8.12.물.ㅅㄴㄹ



참으로 노래老來에 소일거리로는 벅찬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참으로 늘그막에 심심풀이로는 벅찬 일이었다고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 참으로 다 늙어서 할 일로는 벅찼다고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정광-한글의 발명》(김영사,2015) 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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