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0.

 : 나무노래를 듣고 싶어



곁님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한다. 반갑다. 모처럼 넷이 함께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곁님이 하얀 자전거롤 혼자 몰고, 나는 두 아이를 이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리는 만큼 물병을 하나 더 챙긴다.


어디로 갈까. 넷이 함께 어디로 갈까. 우리 네 사람은 자전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은 우체국에 먼저 들러야 한다. 곁님 동생한테 옷을 두 상자 부치기로 한다. 우리 집 두 아이가 그동안 입은 옷을 신나게 다시 빨고 며칠 동안 땡볕에 새롭게 말려 놓았다.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물려줄 옷을 두 상자 챙겼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이제 못 입는 조그마한 옷을 다시 빨고 새롭게 말리는 동안 옛 생각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고작 예닐곱 해밖에 안 된 옛 생각이지만, 이 조그마한 옷을 꿰고 신나게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고 놀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옷을 물려주거나 물려받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옷만 건네주거나 건네받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옷에 얽힌 삶을 물려주고, 옷에 깃든 사랑을 물려주며, 옷에 스민 숱한 놀이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물려준다.


작은아이가 앉은 수레에 옷 상자를 둘 끼워넣으니 작은아이 자리가 매우 좁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씩씩하게 “나 괜찮아.” 하면서 웃는다. 어쩌면 작은아이는 ‘좁아진 자리’를 즐기는지 모른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은 조용하다. 이런 시골길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고, 걷기에도 좋다. 나무 그늘이 있거나 새가 노래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을 텐데, 아직 이 길에 나무를 심으려는 몸짓은 찾아볼 수 없다. 깊은 시골마을까지 수도물을 끌어들이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고,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다. 그렇지만 시골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몸짓이나 시골사람이 시골을 더 넉넉하게 누리도록 북돋우려는 몸짓은 드물다. 나라에서는 ‘논농사를 줄이라’고도 하고 ‘쌀 수매를 줄이겠다’고도 하지만, 정작 이런 정책을 외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못 하지 싶다. 나무가 자라서 그늘이 드리울 만한 자리(논 가장자리)를 나라에서 사들인 뒤, 시골버스가 다니는 시골길을 따라서 차곡차곡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정책은 언제쯤 나올 만한지 궁금하다.


논 가장자리를 2미터쯤 ‘나무가 자라는 자리’로 삼아서 열 해만 가꾸어도 나무 그늘이 짙푸르게 생긴다. 스무 해를 가꾸면 나무 그늘이 이어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서른 해를 보살피면 이제 이 ‘나무 그늘 길’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얻겠지.


시골은 시골 그대로 두어도 아름답지만, 곳곳에 나무노래가 흐르고 나무바람이 퍼질 수 있으면 훨씬 아름답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시골이든 찾아가고 싶을 수 있을 테지만, 한결 아름다운 시골이 있다면 한결 아름다운 시골로 찾아가고 싶으리라.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마당이 있는 집’하고,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길마다 가득한 마을’로 가꾸면, 이러한 삶터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아주 좋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린다. 네 사람은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린다. 빨리 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 빨리 달린다고 해서 더 먼 길을 다닐 만하지 않다. 빨리 달리고 싶다면 버스나 자동차를 타면 된다. 자전거를 달리는 까닭은 빨리 더 멀리 가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철마다 다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기쁨을 누린다.


두 다리하고 두 바퀴로 이 땅을 천천히 밟으면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볕을 누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제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가리나 해오라기는 왜 논에 좀처럼 내려앉지 못할까. 아직 여름인데 왜 논개구리는 울지 않을까. 잠자리와 나비는 이 시골길에서 왜 춤추지 않을까.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를 헤아려 본다. 논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댔기에 제비도 참새도 멧비둘기도 까치도 까마귀도 그림자조차 안 보인다. 왜가리나 해오라기가 논에 내려앉아 보았자 개구리 그림자를 찾아볼 길이 없다. 농약이 흐르는 논물에서 노래하던 개구리는 배를 까뒤집고 숨을 거둔다. 잠자리와 나비는 농약바람을 맞고 비실거리다가 길바닥에 떨어져 숨을 거둔다.


앞으로 시골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시골에서 아이들이 나고 자라도록 하려면 시골이 달라져야 한다. 그냥 시골이 아니라, 농약바람이 부는 시골이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온갖 새가 춤추고 개구리가 노래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나무가 커다란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짙푸른 그늘을 선물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등에 이고 집으로 달린다. 이 들길이 아름다운 들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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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14 07:43   좋아요 0 | URL
하늘도 좋고 길도 정말 좋아요. 햇볕은 뜨거웠겠지만 사진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옷을 물려주는 일이 그리 선뜻 해지는 일이 아니게 되는것 같아요.
나름 깨끗하게 입혔다고는 하지만 브랜드가 어쩌고 저쩌고 스타일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말 들을까 우려스럽기도 하구요~~
그래서 작은 옷나오면 고민하다가 그냥 헌 옷상자로 들어가 버린일이 다수 였던것 같아요~~ ㅎㅎ
준다는 말도 달라는 말도 거시기해져요~~ ㅎㅎㅎ

파란놀 2015-08-14 08:17   좋아요 0 | URL
아이들 옷은
가까운 사이라든지 믿을 만한 사이에서만
물려주고 물려받을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개구지게 놀기에
둘레에서 아이 옷을 물려주면 늘 고맙게 받는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큰아이한테 옷을 물려줄 수 있는 이웃님을
이제 슬슬 찾아보아야 할 텐데... 흠...
 

넷이서 자전거로 달리는 날



  넷이서 자전거로 달리는 날은 오랫동안 마실을 다닌다. 아이들하고 아버지만 자전거로 달리는 날은 더 먼 마실을 다니고, 아이들이랑 아버지랑 어머니, 이렇게 넷이서 자전거로 달리는 날은 더 먼 데까지는 가지 않으나 더 오래도록 들길이나 바닷길이나 숲길을 누린다.


  우리 네 사람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와 함께 자전거를 달린다면 더 천천히 더 더디게 더 느리게 더 느긋하게 더 한갓지게 달릴 테지. 그리고, 함께 달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짧게 달리되 더욱 오래 달릴 테지.


  아버지는 두 아이랑 수레랑 샛자전거랑 짐이랑 몽땅 이고 싣고 달리니 힘을 곱배기도 아닌 서너 곱을 쓴다. 그렇지만, 네 식구가 모두 자전거를 달리면서 한여름 무덥고 시원한 바람을 쐬니 한결 신이 난다. 우리는 이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논다. 4348.8.1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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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13 22:12   좋아요 0 | URL
참 좋습니다~!!!^^
벼리와 보라도 아버지와 셋이 자전거를 탈 때도 즐겁겠지만
어머니와 넷이 함께 자전거를 타니~ 더욱 즐거웠을 것 같아요~~

참, 벼리 어머니 자전거는 미니벨로인가요~?^^

파란놀 2015-08-14 07:31   좋아요 0 | URL
네, 작은자전거입니다.
나중에 큰아이가 더더더 자라면
이 자전거를 물려받을 수 있겠지요~~ ^^

희망찬샘 2015-08-13 23:17   좋아요 0 | URL
모자가 손으로 짠 듯한... 만약 그렇다면 정말이지 솜씨가 끝내줍니다.

파란놀 2015-08-14 07:32   좋아요 0 | URL
모자도 옷처럼
도안을 보고 찬찬히 짜면
누구나 다 뜰 수 있어요~
한번 즐겁게 해 보셔요~~

희망찬샘 2015-08-14 20:26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도 도안을 보면 짤 수 있나요? 음... 그렇담 제게만 어려운 일인가요? 전 욕심내고 책도 잔뜩 사고 실도 사고 그랬는데 제겐 그림의 떡들이었던 아픔이... ㅜㅜ

파란놀 2015-08-15 07:46   좋아요 0 | URL
무엇이든 오래 지켜보고 천천히 품을 들여서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다른 일이 많거나 바빠서
제대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면
아무리 쉬운 도안이 있어도 손뜨개를 못해요.

그러니, 느긋하게 온 하루를 뜨개에만 바치면서
여러 날을 보낼 수 있으면
누구나 손뜨개를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희망찬샘 2015-08-15 08:12   좋아요 0 | URL
그건 맞네요! 시간을 들이면 다 할 수 있는 거...^^

파란놀 2015-08-15 10:03   좋아요 0 | URL
뜨개질이나 그림이나
이웃님들이 `잘 못 한다`고 생각하시는 까닭은
더 오랫동안 느긋하게
그 일을 붙잡으면서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지 싶어요.

처음부터 익숙하게 잘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넉넉하게 웃고 노래하면서 꾸준히 하면
참말 누구나 모두 신나게 할 수 있어요.

`잘` 하지 않아도 되니까,
`신나게` 누려 보셔요~~ ^^
 

말·넋·삶 72 제철, 제맛, 제삶



  ‘제철’에 나는 밥을 먹을 줄 알아야 철이 든 사람입니다. 제철에 나지 않는 밥을 먹을 때에는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거의 모두 철이 없이 삽니다. 한겨울에 수박을 먹고, 이른봄에 딸기를 먹습니다. 말이 안 되는 노릇이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은 거의 모두 스스로 철을 잊거나 잃거나 버리거나 팽개치거나 망가뜨리면서 지냅니다. 철을 잊으니 삶이라 하기 어렵고, 철을 잃으니 삶과 동떨어지며, 철을 버리니 삶과 등질 뿐 아니라, 철을 팽개치니 삶하고 멀어지기만 하는데, 철을 망가뜨리니 철이 들 수 없습니다.


  제철에 나는 밥을 먹지 않으니 ‘제맛’을 알기 어렵습니다. 쑥은 봄에 뜯어서 먹을 때에 제맛입니다. 그런데, 쑥떡이나 쑥부침개를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한다면, 손수 쑥을 뜯어 보지 않으면, 쑥내음이 무엇이고 쑥밭이 어떠하며 쑥이 돋는 봄이 어떠한 철인지 알 수 없습니다. 능금꽃과 배꽃이 피고 나서 천천히 꽃이 지고 천천히 열매가 무르익는 결을 살피지 않은 채, 저온창고에 있던 열매를 한겨울이나 봄에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한다면, ‘아무리 좋다고 말하는 과일을 먹는다’ 하더라도 제맛을 알 수 없습니다.


  제철을 모르고 제맛을 모른다면 ‘제삶’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제길’이 아니요, ‘제자리’하고 멉니다. 제자리를 모르기에 어느 곳으로 나아가는 삶인지 모르고, 제자리를 모르니 ‘새걸음’으로 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에 제대로 모르는 셈입니다. 제대로 살려고 하지 않으니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알 길조차 없습니다. 이리하여, ‘제결’을 잃은 채 맴돌고, 주머니에 돈이 많을는지 모르나 삶은 조금도 넉넉하지 않고 즐겁지도 않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마십니다. 봄에는 포근한 기운이 가득한 바람을 마십니다. 여름에는 무더우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마십니다. 가을에는 따사로우면서도 살짝 서늘한 바람을 마십니다. 철마다 바람이 다릅니다. 철바람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이고 숲에서는 숲바람입니다. 그러니, 철을 아는 사람은 밥을 알 뿐 아니라, 바람을 압니다. 바람을 살펴 어느 때에 씨앗을 심어야 하는가를 알고, 바람을 살펴 열매를 언제 거두어야 하는가를 알며, 바람을 살펴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가를 압니다.


  밥과 바람을 알기에 흙을 알고, 밥과 바람과 흙을 알기에 풀과 나무를 알며, 밥과 바람과 흙과 풀과 나무를 알기에 해와 별과 달을 알아요. 앎은 차츰 넓고 깊게 퍼집니다. 차츰 넓고 깊게 퍼지는 앎에 따라 삶이 거듭납니다.


  그런데, 사람은 철만 든다고 해서 삶을 이루지 않습니다. 철은 들되 사랑이 없으면 삶이 메마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사회에서도 ‘철없는 밥’을 먹는다 하더라도, 기쁜 웃음으로 고맙게 맞아들일 수 있다면, ‘아름다운 밥’으로 몸에 받아들입니다. 이는 곧 ‘아이 마음’입니다. 아이는 따로 씨를 뿌리거나 돌보거나 거두거나 갈무리하지 않아요. 아이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차려서 주는 밥을 먹고, 아이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지은 집에서 살며, 아이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마련한 옷을 입어요. 아이는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목숨인데, 철이 안 들었어도 늘 기쁘게 웃으면서 고맙게 모두 받아들입니다.


  철이 들지 않았다면 ‘아이다운 웃음과 노래’를 누리면서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다운 웃음과 노래를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잇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씨앗을 뿌릴 줄 알아도, 웃고 노래하면서 기쁘게 뿌리는 마음이어야 제대로 자라도록 북돋웁니다. 열매를 거둘 줄 알아도, 웃음과 노래와 기쁨과 고마움을 누리면서 나누는 마음이어야 제대로 거두는 손길이 됩니다. 철이 들려는 사람은 ‘어른’이고, 사랑을 가슴에 품으면서 철이 들고자 하는 사람은 ‘어버이’입니다. 4348.3.8.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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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호스
딕 킹 스미스 지음, 김서정 옮김, 데이비드 파킨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9



그대는 ‘괴물’인가, ‘바다이웃’인가?

― 워터 호스

 딕 킹 스미스 글

 데이비드 파킨스 그림

 김서정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3.11.30. 8000원



  파란띠제비나비 애벌레가 우리 집 마당에서 놉니다.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에서 볼볼볼 기면서 후박잎을 갉는 애벌레는 사각사각 소리를 제법 크게 내면서 통통하게 살이 찝니다. 애벌레가 바삐 잎사귀를 갉아먹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꽤 빠르게 잎사귀가 사라집니다. 살이 많이 찐 애벌레는 한 마리씩 번데기가 됩니다. 퍽 오랫동안 번데기가 되어 잠을 자는 애벌레는 저마다 알맞춤한 때를 맞이하면 눈부시게 깨어나는 멋진 나비로 거듭나겠지요.



바람이 잠깐 잦아든 틈에 저 아래 바닷가에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바다가 뭘 실어 왔을까?’ 하고 커스티는 생각했다. 내일 바닷가로 나가 보면 뭘 보게 될까? 모두들 바다 빗질을 좋아했다. 투덜이 할아버지조차도 안 그런 척하면서 그랬다. (12쪽)



  영국에서 1990년에 《The Water Horse》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는 2003년에 《바다의 선물 크루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옮긴 뒤, 2008년에 《워터 호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나온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가 있기에 영화 〈워터 호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문학하고 영화는 사뭇 달라요. 두 작품에 나오는 무대나 때는 비슷하지만, 어린이문학은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집안에서 두 아이(누나와 동생)와 할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네 사람이 ‘워터 호스’를 만납니다. 이와 달리 영화는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에서 어린 아이(동생 혼자)가 ‘워터 호스’를 만나고, 누나는 딱히 눈길을 보내지 않으며, 어머니도 나중에서야 알아차립니다.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는 아이들이 ‘크루소’라는 이름을 붙인 ‘바다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보여줄 뿐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어른(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이 모두 이 바다이웃을 알뜰히 아끼는 숨결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영화 〈워터 호스〉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안 나오고, 어머니도 마지못해서 바다이웃을 바라볼 뿐이며, 누나는 아예 바다이웃한테 눈길조차 안 두는 얼거리로 나와요.



“우리가 먹은 거 아니에요. 엄마, 정말이에요. 그리고 진짜 바다 괴물이 있어요.” 커스티가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커스티. 너희 둘이서 새우인지 가재인지, 뭘 집에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비싼 정어리를 그것한테 낭비할 순 없어. 당장 갖다 버려라. 알아듣겠니?” (33쪽)



  딕 킹 스미스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워터 호스》도 틀림없이 ‘유럽에서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고단한 나날’이 바탕이지만, 이 어린이문학에서는 전쟁 이야기가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어른하고 아이는 먼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에 나오는 바다이웃을 비로소 만난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삶이란 무엇이고, 이웃이란 누구인가’ 같은 대목을 찬찬히 짚고 다룹니다.


  그러고 보면, 딕 킹 스미스 님은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라든지 《도도새는 살아 있다》라든지 《레이디 롤리팝,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든지 《생쥐 볼프강 아마데우스》 같은 작품에서 ‘여러 짐승을 알뜰히 아끼는 넋’을 슬기롭게 보여줍니다. ‘엄청난 괴물’이 아니라 ‘덩치가 크든 작든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라는 대목을 따스한 눈길로 보여줍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쟤들만 했을 때 이런 걸 발견하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을 했는지 아니? 그땐 이런 동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난 그걸 죄다 믿었지.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35∼36쪽)



  한국에서는 어떤 바다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아마 ‘워터 호스’처럼 커다란 바다이웃을 만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남녘도 북녘도 바닷가는 아직 ‘쇠가시그물(철조망)’이 가득하고, 군인이 총을 들고 막아서는 곳이 많습니다. 휴전선하고 좀 떨어진 바닷가에는 공장이 많을 뿐 아니라, 핵발전소까지 있어요. 공장이나 핵발전소가 없는 바닷가는 관광지로 꾸미는데,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요.


  호젓한 바닷가라든지, 사랑스럽고 조용한 바닷마을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한국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기도 어렵지요. 깊은 숲마다 송전탑을 박아대니, 범은 일찌감치 씨가 말랐고, 곰도 살 터가 없습니다. 이리나 늑대나 여우도 남녘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멧돼지하고 고라니가 조금 있다고 할 텐데, 이마저도 아이들이 만나기 어려워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도시에서 학교하고 학원만 오가느라, 밭일을 거들지도 못하고 밭일이 무엇인지조차 몰라요.



엄마는 그 동물을 당장 쫓아내라며 너무 딱딱거린 일에 대해서 은근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동물이 뭐가 됐든지 간에 아주 특이한 녀석이었고, 아이들은 몹시 들떠 있는데다가, 할아버지까지 그랬다. 세상에, 할아버지 얼굴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렇게 행복해 보인 적은 없었다! 지금 할아버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다. (44쪽)



  밭에서 호미를 갖고 노는 아이들이 지렁이를 만납니다. 에그머니 하고 놀라지도 않습니다. 지렁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며 흙을 뿌려서 몸이 뜨거워지지 않도록 하고는 얼른 땅속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흙을 쪼다 보면 공벌레도 나오고 온갖 풀벌레가 나올 뿐 아니라, 때로는 개미집이 무너지고, 어느 때에는 지네가 또아리를 틀고 쉬다가 깜짝 놀라서 부리나케 내뺍니다.


  한여름 풀밭이나 텃밭에서는 방아깨비와 메뚜기가 폴짝폴짝 뜁니다. 사마귀는 죽은듯이 가만히 있다가 먹이를 낚아챕니다. 잠자리가 내려앉고 나비가 납니다. 나무에는 곧 나비로 거듭나고 싶은 여러 애벌레가 잎사귀를 갉아먹느라 바쁩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은 자그마한 이웃을 만납니다. 자그마한 이웃은 자그마한 손길에도 그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이웃은 자그마하면서 따스한 손길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이 크루소를 잠깐 보더라도 자기가 뭘 봤는지 잘 모를 거다. 어쩌면 그냥 통나무 조각이거나 물 위에 비친 무슨 그림자거나, 튀어오르는 연어거나, 아니면 뛰노는 수달이거나, 물살이 실려 떠다니는 나뭇조각이라고 생각하겠지. 뭔지 잘 모를 거야. 그 호수에 수마가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뿐인걸.” 아빠가 말했다. (135∼136쪽)



  바다에서 만난 ‘워터 호스’는 괴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마’라고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요. 바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노래하면서 이 지구별에서 삶을 짓는 어여쁜 이웃입니다.


  우리 바다가 깨끗하다면 북해에서 놀던 커다란 바다 이웃이 대서양을 지나고 태평양을 건너서 동해나 남해나 서해로도 나들이를 올 수 있을까요? 드넓은 바다에서 말 없이 말을 주고받는 고래가 우리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을 치면서 그윽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바다가 깨끗하고, 삶터가 깨끗하며, 어른들 마음이 깨끗할 적에,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키울 만합니다. 바다가 더러워지고, 마을이나 도시나 시골이나 숲마다 쓰레기와 핵발전소와 송전탑과 군부대가 늘면서 망가지면, 이러면서 어른들 마음도 무너지거나 더러워지면,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하고 어떤 곳에서 살아야 즐거울까요? 4348.8.1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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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숲으로 되어라 (2013.7.26.)



  2015년 7월 26일에 강원도 영월에서 동강사진축제 워크샵 마지막 강의를 함께 맡아서 이야기했다. 내가 말할 때를 기다리면서 그림을 하나 그려 보았다. 내가 사람들한테 들려줄 ‘사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고 한 마디로 간추려 보았다. 바로 “숲으로 되어라”이다. 스스로 숲이 되는 사진을 찍으면 되고, 스스로 숲이 되어 사진을 읽으면 된다. 숲처럼 사진을 찍고, 숲으로서 사진을 읽으면 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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