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사진으로 찍는 마음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논둑길을 달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이 더없이 곱다고 느껴서 얼른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습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사진기는 늘 내 목에서 대롱대롱 춤을 춥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뭐 찍어?” “응? 아, 저 구름이 아주 예뻐서, 구름 찍어.” “와, 구름 되게 예쁘네, 참 예쁘다.” “예쁘지? 구름이 우리한테 반갑네 하고 인사하는구나.” “응, 나도 구름한테 반가워 하고 인사했어.”


  어제도 오늘도 구름이 대단히 멋있습니다. 이 밤이 지나고 새로 찾아오는 이튿날 하늘에 낄 구름은 어떠할까요? 비를 머금은 구름이든, 소나기를 이끄는 구름이든, 그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이든,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저 구름을 타면서 놀고 싶어서 구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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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73. 나는 다시 탈래 (2015.8.17.)



  자전거마실을 이끌다가 아버지가 힘이 든다면서 “우리 걸어 볼까?” 하고 말을 걸면, 큰아이는 언제나 씩씩하게 “응, 걸을래.” 하고 말한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서 늘 발판질을 하느라 힘이 꽤 많이 들었을 텐데 어버이 마음을 더없이 깊이 헤아려 준다. 느긋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어버이가 자전거에서 내려 걸을 적에는 그야말로 힘든 때인 줄 알아준다.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제 어버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지 않는다. 두 아이는 한배에서 나왔어도 마음결이 제법 다르다. 그리고, 이 다른 마음결이 여러모로 재미있다. 작은아이는 언제나 제가 바라는 대로 하고 싶으니 제 마음을 안 숨긴다. 큰아이는 늘 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곧잘 제 마음을 살그마니 숨기곤 한다. 나는 큰아이가 씩씩하게 웬만큼 걸어 주는 동안 천천히 기운을 되찾고, 이렇게 되찾은 기운으로 다시 자전거를 이끈다. 큰아이는 ‘뭐, 동생은 수레에 앉아서 갈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면 ‘쳇!’ 하고 생각할까? 둘 다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동생은 동생이니 더 아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고 느낀다. 함께 자전거마실을 다니다 보면 나는 언제나 큰아이한테서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면서 고개를 숙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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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44



나를 사랑하니까 죽여 주겠다고?

― 젤리장수 다로 1

 김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0.11.30. 6000원



  노예제가 사라졌을 적에 노예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소작제가 사라졌을 적에도 소작농으로 있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아무런 대책이나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제도만 없앤다고 해서 삶이 바뀔 수 없습니다.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삶에 익숙합니다. 게다가 수백 해에 걸쳐서 노예나 소작농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 땅’이나 ‘내 일’이 없기 마련입니다. 제도가 없어져도 노예나 소작농은 다시 노예나 소작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얼거리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예나 소작농은 ‘노예로 뒹굴어야 하는 삶’이나 ‘소작농으로 짓눌려야 하는 삶’ 말고는 보거나 겪거나 배운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노예나 소작농이 다른 삶이나 새로운 삶을 찾거나 생각할 적마다 목숨을 빼앗기거나 끔찍하게 얻어맞았을 테니, 제도만 하루아침에 없앤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긴 전시 동안 대량생성된 군인들은 평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살육에 익숙한 그들은 평화로운 삶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적응에 실패한 군인들은 걸인이나 산적과 같은 주변인으로 전락하여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에 나라에서는 구 케산국의 변경에 위치한 ‘절망의 광야’에 출몰하는 괴물들에게 현상금을 붙인다. 그리하여 방황하던 군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절망의 광야에 몰려들게 되었다.’ (9쪽)



  김민희 님이 빚은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마녀의책장,2010) 첫째 권을 읽으면서 빙긋빙긋 웃습니다. 김민희 님이 보여주는 우스개가 재미있기도 하고,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쓸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며 빙그레 웃고, 쓸쓸한 이야기에는 쓰겁게 웃습니다.



‘부럽긴 뭐가 부러워. 착각하면서 사는 게 자신감의 비밀이라니, 쯧쯧. 시시한 인간 같으니! 그나저나 저런 인간을 위해 일평생 여기서 갇혀 살아야 한다니!’ (35쪽)


‘전쟁의 시대는 지나갔다. 저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52쪽)



  ‘전쟁하는 때’에 태어나서 군인이 되어야 한 사람들은 전쟁터에 끌려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전쟁터에서 무기를 들고 ‘누군가를 죽이는 몸짓’이 익숙합니다. 이 일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무척 오랫동안 온 나라가 싸움판이었다면, 젊은 사내는 무엇을 할까요? 봄이 되어 흙을 갈아 씨앗을 심는 일을 할까요, 아니면 무기를 들고 훈련을 하는 일을 할까요?


  다만,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는 ‘무거운 사회비판’ 만화가 아닙니다. 《젤리장수 다로》는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바보스러운 몸짓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뜻선뜻 터져나오는 웃음을 가만히 잡아채는 만화입니다. 무엇보다도 ‘전쟁하는 쳇바퀴’에 길든 어른하고는 다르게 살겠노라 다짐하는 ‘내 삶을 새롭게 찾으려고 하는 어린이(또는 푸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미자 씨는 지도 그리는 일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미자 씨 꿈은 금방 이루어지는 거라서 좋겠다.’ (93쪽)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적군 잘 죽이기’입니다. 군인이 보람을 누릴 수 있는 일이란 ‘적군 많이 죽이기’입니다. 우리한테 적군이 될 저쪽 군인도 마찬가지예요. 서로서로 ‘너를 빨리 죽여’야 내 가슴에 훈장이 붙습니다. 서로서로 ‘너희를 많이 죽여’야 우리한테 평화가 찾아오는 줄 여깁니다.


  그런데 전쟁은 좀처럼 끝나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서로 죽이고 죽여도 전쟁이 끝날 낌새가 안 보입니다. 전쟁이 커지면 커질수록 애꿎게 죽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이기에, 이쪽과 저쪽은 서로서로 더 미워하고야 맙니다.


  전쟁은 평화로 나아갈 뜻이 없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더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미움과 짜증과 앙갚음을 아로새기려 합니다. 이러는 동안 권력자는 높다란 걸상에 한갓지게 앉아서 온갖 권력을 누립니다.



“사람 친구를 먹다니, 그런 적은 없어요. 아직 친구랑 같이 여행 다녀 본 적이 없거든요.” “아직?” “그래서 여러분과 같이 여행을 떠난 것이 몹시 흥분되고 즐거워요.” “시끄러워, 시끄럽고! 아직이란 말은 그런 상황이 오면 사람 친구도 먹을 거란 말이냐? 엉?” “예? 그거야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면야, 우리는 지도 그리는데 목숨을 걸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먼저 죽으면 제 몸을 줄 거고, 반대로 친구가 먼저 죽으면 그 몸을 먹어서라도 살아갈 거예요.” (112∼113쪽)



  군인이 꿀 수 있는 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서 지긋지긋한 이 짓을 그만두기입니다. 군인을 부리는 권력자는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쟁이 이어져야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면서 권력을 더 단단히 지키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전쟁이 끝나더라도 사람들한테 ‘또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사람들 마음에 심어서 언제까지나 권력을 아주 단단히 지키려 합니다.


  그런데, 군인으로서 전쟁터에서 ‘내가 안 죽어’도 내 동무와 이웃과 한식구는 죽기 마련입니다. 군인으로 전쟁터에 끌려가서 ‘내가 안 죽어’도 끝없는 아픔과 슬픔을 언제까지나 짊어지고야 맙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군인이라 하더라도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피비린내에 익숙한 사람이 흙내에 온몸을 비벼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인어국의 최고 형벌이 인간으로 변화시켜서 인간의 감옥에 유배시키는 거라고? 사형이 최고형이 아니네.” (133쪽)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에는 젤리장수인 앳된 사내가 나옵니다. 앳된 사내는 젤리를 한몫 단단히 팔아서 하루 빨리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부자가 되어야 ‘권력자 밑에서 노예로 지내는 어머니’가 풀려나는 길을 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앳된 사내가 젤리를 팔려면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어야 합니다. 젤리를 팔려고 가로질러야 하는 붉은닥세리는 아무나 가로지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평화와 전쟁’ 두 가지를 한몸에 품은 인어가 나오는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는 ‘남을 죽이는 짓’을 아무한테나 하지 않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인어 사회에서는 ‘목숨을 빼앗는 짓’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일이라고 나와요.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너 미워.” 하고 내뱉는 한 마디가 가장 끔찍한 폭력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회 잣대로 보면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인어 사회 잣대(만화책에 나오는 얼거리)’라 할 테지요.



“이것이 나의 정체다. 인어 중에 가장 못된 인어가 나다!” ‘정말 이게 사실이야? 사람을 미워하는 게 죄라니. 인어국은 귀여운 나라구나.’ (156쪽)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님이 있으면 ‘목숨을 빼앗아(죽여)서’ 고마움을 나타낸다고 하는 인어 할아버지를 옆에 끼고 붉은닥세리를 가로질러서 젤리를 신나게 팔아 부자가 되려는 만화책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앳된 주인공은 인어 할아버지가 ‘귀엽다’고 느껴서 더 잘해 주려고 하는데, 인어 할아버지는 앳된 주인공이 더없이 착하고 고마워서 ‘너처럼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죽여 주고 싶다’고 잠꼬대로 한 마디를 합니다.


  젤리장수 아이는 젤리를 팔아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인어 할아버지는 저한테 따스한 젤리장수 아이를 죽일까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도를 그리겠다는 젊은 가시내는 지도를 다 그릴 수 있을까요? 참말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 삶이고, 이러한 삶을 김민희 님은 《젤리장수 다로》에 재미나면서 멋지게 잘 담았구나 싶습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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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7.

 : 네 아버지가 힘에 부칠 때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옮겨 놓고, 면소재지에 들러서 소포를 부친다. 바쁘게 볼일을 마쳤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천천히 몬다. 우리가 자전거로 밟아 보지 않은 요 둘레 새로운 길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달려 본다. 그리 넓지 않은 시골이기는 하지만 안 달려 본 길이 거의 없네 하고 느끼면서 이곳저곳 지나간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하얗고 하늘빛은 파랗고 들빛은 푸르고, 이래저래 싱그러운 여름이다.


내 어린 나날을 문득 돌아본다. 팔월 한복판을 넘어서는 이맘때는 학교에서 방학이 끝날 무렵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집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하루 내내 쳐다보지 않아도 한시름을 던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고 집에서 노니까, 방학이든 개학이든 대수롭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하루 내내 늘 제 어버이하고 붙어서 지낸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한 해 내내 다달이 다르고 나날이 다른 바람을 들에서 쐴 수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아침 낮 저녁에 따라 다른 바람결을 언제나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 뭔가 남다르거나 대단한 어떤 놀이나 일을 해야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침바람을 함께 쐬고, 한낮에 뜨거운 뙤약볕을 함께 쬐며, 저녁에 싱그럽게 가라앉으면서 부는 바람결에 실리는 가벼운 기운을 함께 느낀다.


이래저래 길을 좀 돌아서 집으로 가다 보니 다리와 등허리에 힘이 풀린다. 논둑길을 한참 달리다가 아무래도 힘들구나 싶어서 자전거에서 내린다. 히유, 한숨을 돌린 뒤 아이들이 물을 마시도록 한다. 너희들도 참 대단하지, 이런 더위에도 아버지랑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다니잖니.


큰아이는 집에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면서 사뿐사뿐 저만치 앞장서서 달린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걷겠노라 하다가 “나 이제 탈래.” 하면서 수레에 탄다. 구름이 그늘을 드리우다가 다시 땡볕이 나다가, 구름이 쉴새없이 새 모습을 베풀어 준다. 등허리와 다리를 웬만큼 쉬었으니 큰아이더러 “자, 이제 타고 가자. 땡볕이 더우니 얼른 가자.” 하고 말한다. 뛰듯이 걸으면서 가고 싶다는 낯빛인 큰아이를 겨우 샛자전거에 태운다. 이렇게 씩씩하고 야무진 아이가 어디 있을까. 참말 큰아이는 십 킬로미터 길조차 씩씩하게 걷는다.


논둑에서 돌콩꽃이랑 돌콩꼬투리를 본다. 살짝 멈추어 들여다본다. 우리 집에도 나는 돌콩이고 논둑이나 밭둑이나 빈 들녘에 가득 돋는 돌콩이다. 마을 어귀에 이를 무렵 작은 군내버스가 지나간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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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달리는 이 길은



  오늘 저녁에 자전거를 타 볼까? 늦여름이 되어 해가 일찍 저무는데, 뉘엿뉘엿 기우는 햇살을 바라보고, 살그마니 퍼지는 어두운 빛살을 마주하면서 자전거를 타 볼까? 저녁밥을 든든히 먹은 뒤 자전거를 타자. 풀내음이 가득한 여름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자. 너희 아버지는 앞에서 이끌 테니, 너희는 뒤에서 이 들바람을 마음껏 마시면서 여름 막바지를 즐기자.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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