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무 집에 가져가서 심을래



  네 식구가 해거름에 사뿐사뿐 마을길을 걷는다. 이때에 사름벼리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본다. 아마 오늘 누군가 부러뜨린 나뭇가지로구나 싶다. 거칠게 부러진, 아니 거칠게 찢어진 자국이 났다. “아버지, 이 나무는 뭐야?” “향나무야.” “항나무?” “향나무.” “향나무?” “응. 그런데 네가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어도 돼.” “나, 이 나무 집에 가져가서 심을래.”


  아이들하고 마실을 다니다가 ‘길가로 많이 뻗어서 곧 잘릴 만하다 싶은’ 탱자나무 가지를 내가 먼저 잘라서 뒤꼍에 심어 보기도 했고, 허리가 잘린 대나무를 주워서 심어 보기도 했으며, 이래저래 버려지거나 잘린 나무를 틈틈이 날라서 심곤 한다. 이 가운데 씩씩하게 살아나는 나무가 있고, 그만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사름벼리가 알아채서 살뜰히 주워서 집으로 가져가서 심을 이 나무는 어떻게 될까? 볕이 골고루 잘 드는 자리를 골라서 심는다. 작은아이가 꽃삽으로 땅을 쪼다가 꽃삽을 아버지한테 넘긴다. 꽃삽으로 땅을 팔 수 있겠느냐만, 뭐 작은아이가 쓰던 꽃삽으로 깊이 파고 흙을 모아서 덮어 준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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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꽃 맥문동 바라보기



  우리 집 작은아이 ‘산들보라’는 제 이름 두 글자가 들어간 ‘보라’ 빛깔을 보면 몹시 반긴다. 보라를 말할 적에 언제나 저를 부르는구나 하고 느끼지 싶다. 마당 한쪽 후박나무 옆에서 늦여름에 언제나 곱게 보라빛 꽃대를 길다랗게 올리는 이 꽃을 보면서 “보라꽃이야, 보라꽃!” 하고 노래한다. 그래, 네 말대로 보라꽃이야, 이 꽃이 피는 풀을 놓고 ‘맥문동’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들도 있는데, 우리는 ‘키다리보라꽃’ 같은 이름을 새롭게 지어서 바라볼 수 있어. 참 곱지? 이 고운 아이는 꽃으로뿐 아니라 뿌리로도 우리한테 고운 숨결을 베풀어 준단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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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09) 여타의


 주변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 둘레와는 달리

 여타의 일은 → 다른 일은 / 다른 사람 일은


  ‘여타(餘他)’는 “그 밖의 다른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다른’을 가리키는 한자말 ‘여타’입니다. 또는 ‘그밖에’를 가리킨다고 할 한자말 ‘여타’입니다.


  다르니 ‘다르다’라 할 뿐이지만, 이처럼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餘他’를 끌어들이는 분이 있고, ‘差異’ 같은 한자말을 끌어들이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살피면 “여타 지역과는 달리” 같은 말마디가 보이는데, 말뜻을 곰곰이 따지며 고쳐쓰면 “다른 곳과는 달리”가 됩니다. 이렇게 적으려 한다면 적을밖에 없는데, “같은 곳과는 같이”나 “비슷한 곳과는 비슷이”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앞이나 뒤에서 ‘다른’이나 ‘달리’ 하나를 덜어내야 알맞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는 “주변 지역과는 달리”처럼 적어야 올바르고 “주변 지역”이란 ‘둘레’를 가리키니 “둘레와는 달리”처럼 적으면 단출하면서 또렷합니다.


 ‘다른’이나 ‘그밖에’나 ‘나머지’나 ‘이런저런’을 차근차근 살피면서 알맞게 넣으면, 토씨 ‘-의’는 저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알맞는 낱말을 하나하나 살리고 살핀다면 알맞는 토씨를 붙일 수 있고, 알맞지 못한 낱말을 자꾸자꾸 쓰려 하면, 알맞지 못한 토씨가 자꾸자꾸 들러붙습니다. 4348.8.18.불.ㅅㄴㄹ



석탄 등의 생필품을 제외하면 여타의 상품은 모두 비슷하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 석탄 같은 생필품을 빼면 다른 상품은 모두 비슷하게 올랐다고 한다

→ 석탄 같은 생필품을 빼면 나머지 상품은 모두 비슷하게 올랐단다

→ 석탄 같은 생필품을 빼면 이밖에는 모두 비슷하게 올랐다고 한다

《중공유학기》(녹두,1985) 81쪽


여타의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조잡할 수 있을까

→ 다른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엉성할 수 있을까

→ 나머지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어설플 수 있을까

→ 이밖에 다른 인천 기념조각들은 그처럼 엉터리일 수 있을까

《최원식-황해에 부는 바람》(다인아트,2000) 92쪽


이 영화는 여타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이 영화는 여태껏 찍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 이 영화는 그동안 선보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타 쿠를랏/조영학 옮김-나쁜 감독,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가쎄,2009) 75쪽


여타의 사실은 많은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 다른 사실은 여러 기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이밖에 다른 사실은 여러 기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정광-한글의 발명》(김영사,2015) 3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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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내 동생 (키시카와 에츠코·카리노 후키코) 꿈터 펴냄, 2005.1.26.



  일본에서는 어느 한때 ‘풍진’ 바람이 불어 꽤 많은 아이들이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어느 한때 풍진 바람이 분 까닭은 미군기지 때문인데, 미군기지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일본에 들어섰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쪽이든 저쪽이든 서로 괴롭히면서 서로 죽고 아프도록 하는 바보짓이 전쟁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 말고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괴롭고야 마는 슬픈 짓이 전쟁이다. 어린이문학 《힘내라! 내 동생》은 일본에서 있던 이야기를 문학으로 새롭게 담았다고 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겪는 따돌림이라든지, 이런 아이를 동생으로 둔 언니가 ‘사회에서 받는 차가운 눈길’이라든지, 요즈음은 조금 나아지거나 달라졌다고 할는지 몰라도, ‘나아지거나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뿐, 제대로 고운 삶이 뿌리내리거나 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프거나 슬픈 사람이 없으려면, 소리를 못 듣고 말을 못 듣는 아이도 ‘여느 학교’에 똑같이 들어가서 다닐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소리를 못 듣든 말을 못 하든 똑같이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여기고 껴안는 어여쁜 넋이 나오는 《힘내라! 내 동생》을 우리 집 여덟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는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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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내 동생
키시카와 에츠코 지음, 노래하는 나무 옮김, 카리노 후키코 그림 / 꿈터 / 2005년 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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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라고 부르는 노래야



  큰아이가 여덟 돌을 꽉 채운 요즈막 잠자리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두 아이를 재우려고 자장노래를 한참 부르면서 생각하고, 자장노래를 그친 뒤 내 일을 하려고 옆방으로 조용히 빠져나오면서 생각한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좀처럼 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면 그야말로 요새는 잠을 안 자려 한다. 아아, 이 아이들아, 아버지는 너희가 새근새근 고운 꿈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온몸으로 파란 거미줄을 그려서 아침에 새로운 숨결로 깨어나라고 북돋우려는 마음으로 자장노래를 부르는걸. 노래가 듣고 싶으면 아침이나 낮에 불러 달라고 해야지.


  언젠가 큰아이가 아버지 노래를 들으려고 두 시간이나 잠자리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안 잔 적이 있다. 큰아이는 그날 키득 하고 웃었지만, 나는 참 힘들었다. 아이가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때 노래를 그치고 고요히 있으니 큰아이는 바로 잠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버지 노래를 듣겠다면서 안 자려고 한대서 노래를 안 부를 수 없다. 다만, 나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잘 부르는’ 사람조차 아니다.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 깜냥껏 갈고닦아서 들려준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들려준 노래 가운데 하나는 몇 만 번쯤 부른 노래이다. 한 해가 삼백예순닷새이고, 하루에 열 차례를 불렀으면 참말 여덟 해 동안 몇 만 번을 불렀다고 할 만하다.


  오늘 밤에는 ‘시인과촌장’ 노래 가운데 〈숲〉을 노랫말을 거의 다 바꾸어서 아이들한테 들려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시골마을에서 늘 누리는 숲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도록 이끌려는 생각을 새로운 노랫말로 담아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노래를 들려주면, 이 노래를 부르는 나 스스로 내 목소리에 온마음을 기울인다.


  문득문득 깨닫는다. 노랫결이란 무엇인가 하고 깨닫는다. 내가 사랑을 실어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저희 놀이를 멈춘다. 이때에는 내 몸이 찌르르 하고 떨리면서 아주 달콤하다. ‘달콤한 삶’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곁님을 만나서 아이를 낳고 자장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요즈막에 자주 느낀다. 하기는, 똥오줌기저귀를 날마다 마흔 장 남짓 빨래할 적에도 늘 느끼기는 했는데.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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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19 21:20   좋아요 0 | URL
아이들 재우느라 아이 부모는 나긋나긋 노래를 불러주는데 아이들은 그노랫소리 듣느라 잠을 안자고 눈이 말똥말똥!! 노랠 부르지 않음 바로 잠자던 아이들~~우리아이들도 그런시절이 있었던 것같은데 말입니다^^
(지금은 딸래미들이랑 수다떤다고 시간 다보냅니다ㅜ)

숲노래님!!
이글이 넘 평화로운 광경이 그림으로 그려져 좋네요^^
이곳도(?) 얼른 평화롭게 결론이 났음 좋겠어요!!^^


파란놀 2015-08-19 22:52   좋아요 0 | URL
나이 든 아이들은
어버이와 조잘조잘 수다를 떨면서
멋진 밤을 보내는군요 @.@

그러게요.
그분들이 이곳 방명록에 사과하고
그분들 스스로 `잘못했다`고 여기는 글을
지우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